죽고 싶을 때 죽고 싶다고 느낄 때는
어제 저녁에 "죽고 싶을 때"라는 제목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인터넷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말이다.
다 별로 변변찮다.
죽기 전에 전화 하라고 전화연락처 많이 달아 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어느 블로그에 보니 이런 글이 있다.
*****************
죽고 싶을 때 죽고 싶다고 느낄 때는
창틀에 올라선채로 아래를 내려다 봐
될 수 있는 한 높은 곳에서
그리고 한 발자국을 옮기는거야
창문 밖,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
아무 생각없이 발을 뻗기만 하는게 아니야,
힘든 일, 슬픈 일, 모두 떠올리면서
죽고 싶단 결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서
발을 뻗을 수 있어야 해
발을 뻗어 보았니?
그 한 발을 내딛은 것만으로도,
세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싶다는 결심을 한 것도,
네가 충분히 괴로워 하는 것도, 모두 다 알 수 있어,
하지만
너는
나머지 한 발을 떼지 않았잖아,
아직 살아 있잖아,
무섭고 두렵잖아,
아직 세상을 버릴 용기가,
너의 모든 것을 버릴 용기가 없잖아,
무엇보다도,
죽는게 두렵잖아,
모든 것을 버리기고 결심했을 때,
모든 것에 욕심이 생겨버린 거잖아.
그 욕심으로 살아가는거야,
세상을 가지겠다는 욕심으로,
너의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욕심으로,
살아야해.
그렇게 쉽게 죽음이란 말을 꺼내선 안돼.
죽지 못할거면서, 죽지 않을거면서
죽음이란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쉽게 말하는거야.
********************
나름이 용기를 줄려고 하는 소리같다.
다른 블로그에는 이런 글도 있다.
*************
@삶이 힘겨울 땐
새벽시장에 한 번 가보십시오.
밤이 낮인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을 보면 힘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도 힘이 나질 않을 땐 뜨끈한 우동한 그릇 드셔보십시오.
국물맛 캬~죽입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땐
산에 한 번 올라가 보십시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세상~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빌딩이라도 내발 아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쳐 보십시오.
"난 큰 손이 될 것이다" ㅎㅎㅎ
이상하게 쳐바도는 사람 분명 있습니다.
그럴 때....,
실실 쪼개십시오-_-
@죽고 싶을 땐
병원에 한 번 가보십시오.
죽으려 했던 내 자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난 버리려고 했던 목숨...,
그들은 처절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파리 목숨이라고 하지만 쇠심줄보다 질긴게 사람목숨입니다.
그래도 죽고 싶을 때, '자살'을 거꾸로 읽어보십시오.
살자!... 맞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갑갑할 땐
버스 여행 한 번 떠나보십시오.
몇 백원으로 떠난 여행...,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무수히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보면서...,
조용히 내 인생을 그려 보십시오....
비로 지금은 한 치 앞도 보지이 않아 깝깝해도...
분명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은 탄탄대로 아스팔트 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별 꺼리가 못되어서 생략.....,)
*********
글을 읽어보면 세상은 참 답이 없는 것이 뻔해 보인다.
사람은 자기 내면이 무너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산다고 해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서 다윗은 얼마나 놀라운 고백을 하는가?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6)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절을 지나는 때에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지키시는 줄 알았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홀로 외로워하고 체념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못산다.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허~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나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도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의미를 부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세상이 주는 의미는 단기간의 의미 외에는 없다.
정말 그것은 순간의 의미, 찰나의 의미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인간이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은 그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의미를 주신다. 이 시간의 세계를 벗어나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의미를 주신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궁극적인 의미, 영원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터넷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말이다.
다 별로 변변찮다.
죽기 전에 전화 하라고 전화연락처 많이 달아 놓은 것은 잘한 일이다.
어느 블로그에 보니 이런 글이 있다.
*****************
죽고 싶을 때 죽고 싶다고 느낄 때는
창틀에 올라선채로 아래를 내려다 봐
될 수 있는 한 높은 곳에서
그리고 한 발자국을 옮기는거야
창문 밖,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
아무 생각없이 발을 뻗기만 하는게 아니야,
힘든 일, 슬픈 일, 모두 떠올리면서
죽고 싶단 결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서
발을 뻗을 수 있어야 해
발을 뻗어 보았니?
그 한 발을 내딛은 것만으로도,
세상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싶다는 결심을 한 것도,
네가 충분히 괴로워 하는 것도, 모두 다 알 수 있어,
하지만
너는
나머지 한 발을 떼지 않았잖아,
아직 살아 있잖아,
무섭고 두렵잖아,
아직 세상을 버릴 용기가,
너의 모든 것을 버릴 용기가 없잖아,
무엇보다도,
죽는게 두렵잖아,
모든 것을 버리기고 결심했을 때,
모든 것에 욕심이 생겨버린 거잖아.
그 욕심으로 살아가는거야,
세상을 가지겠다는 욕심으로,
너의 모든 것을 지키겠다는 욕심으로,
살아야해.
그렇게 쉽게 죽음이란 말을 꺼내선 안돼.
죽지 못할거면서, 죽지 않을거면서
죽음이란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쉽게 말하는거야.
********************
나름이 용기를 줄려고 하는 소리같다.
다른 블로그에는 이런 글도 있다.
*************
@삶이 힘겨울 땐
새벽시장에 한 번 가보십시오.
밤이 낮인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을 보면 힘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도 힘이 나질 않을 땐 뜨끈한 우동한 그릇 드셔보십시오.
국물맛 캬~죽입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땐
산에 한 번 올라가 보십시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세상~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빌딩이라도 내발 아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쳐 보십시오.
"난 큰 손이 될 것이다" ㅎㅎㅎ
이상하게 쳐바도는 사람 분명 있습니다.
그럴 때....,
실실 쪼개십시오-_-
@죽고 싶을 땐
병원에 한 번 가보십시오.
죽으려 했던 내 자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난 버리려고 했던 목숨...,
그들은 처절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파리 목숨이라고 하지만 쇠심줄보다 질긴게 사람목숨입니다.
그래도 죽고 싶을 때, '자살'을 거꾸로 읽어보십시오.
살자!... 맞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갑갑할 땐
버스 여행 한 번 떠나보십시오.
몇 백원으로 떠난 여행...,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무수히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보면서...,
조용히 내 인생을 그려 보십시오....
비로 지금은 한 치 앞도 보지이 않아 깝깝해도...
분명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은 탄탄대로 아스팔트 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별 꺼리가 못되어서 생략.....,)
*********
글을 읽어보면 세상은 참 답이 없는 것이 뻔해 보인다.
사람은 자기 내면이 무너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산다고 해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서 다윗은 얼마나 놀라운 고백을 하는가?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6)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절을 지나는 때에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지키시는 줄 알았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홀로 외로워하고 체념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못산다.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허~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나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도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의미를 부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세상이 주는 의미는 단기간의 의미 외에는 없다.
정말 그것은 순간의 의미, 찰나의 의미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인간이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은 그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의미를 주신다. 이 시간의 세계를 벗어나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의미를 주신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궁극적인 의미, 영원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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