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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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개혁주의를 비판하면 정죄받아야 하는가?

개혁주의를 비판하면 정죄받아야 하는가?
 
 
개혁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오류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주의를 말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기 마련입니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나 개혁주의를 말하는 그 사람 속에
비성경적인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면
반드시 성경적인 방향으로 조정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사람을 비판하는 일로 인하여
정죄를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하면 개혁주의고,
 네가 하면 안개혁주의다."
 
과연, 이것이 바른 자세일까요?
 
오늘날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에서
시대의 멘탈리티(mentality)를 상실한 것이 현실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멘탈리티(mentality)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이 개혁주의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주의 교회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자기 비판이 없는 개혁주의 교회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그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으로만
존재하는 교회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렇게 개혁주의 교회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개혁주의 교회의 진정한 기수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개혁주의를 비판하면 정죄받아야 할까요?
아무리 개혁주의를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개혁 된 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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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5

  • 마하남 · 2011-11-29 01:15
    진리를 파수하는 일이 영광스럽고 소중하나 그 길이 고난의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파수를 위하여 열심을 품고 계시는 목사님의 사역에 기도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아픈 것은 진리는 있으나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삶에서 배우는 따뜻함을 찾기가 어려워서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종들을 아끼는 마음에 허전함이 듭니다. 과연 주님께서도 목사님께서 비판하시는 문제로 그분들을 비판하실까? 우리도 진리를 지켜야한다는 일념에 목사님들을 목사님처럼 비판하며 살아야하는가? 과연 우리가 교회들과 주의종들을 그렇게 비판하면서 지켜야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누구의 견해가 진리이며 다른 분들의 견해를 정죄할만한 정당성과 신학적 식견과 영적 겸손함으로 준비된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말하기 때문에 혼란 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목사님께서 비판하신 그 분들은 주님의 원수들이니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단을 옹호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이단은 누가 정해주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의 숙제인것 같습니다. 성경이 진리이고 하나님 말씀이기에 성경에 의해서 이단은 드러나겠지요.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이단을 드러내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때로는 서로가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부분 그런 주장들을 읽어보며는 독선적인 부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고 또 비판을 위하여 살아가는 분들처럼 느껴집니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은 더욱 그렇고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교회에 의해서 신중하게 정죄된 이단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조심해야된다고 믿고 그렇게하려고 애를씁니다. 그리고 교회와 교단은 비진리로부터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념이나 성경적 견해에 의해서 함부로 이단내지는 비진리로 정죄되고 비판되는 것은 조심해야하지 않을까요... 주님 당시의 대표적인 비진리의 사람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은 분명 정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목사님께서 비판하시는 분들, 좀 입장이 다른 개혁주의자들이 과연 주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들이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한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말리엘이 한 말입니다. 그것이 진리가 아니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진리라면 누가 무너뜨리겠습니까? 그리고 진정한 개혁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남을 향하는 손가락질과 서슬퍼런 비판은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에게 이단이 원수인 것처럼 저에게도 이단은 원수입니다. 우리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가 우리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양무리들을 위하여 희생의 삶을 살고 계시는 목사님들과 교회들, 더욱이 목사님께서 지적하시는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그분들이 과연 용기가 없는 분들일까요? 피흘리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시는 것일까요? 비판보다 더 힘든 것은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임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비판보다 더 힘든 것은 용납하는 것임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비판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원수까지 축복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가 이단을 드러내고 정죄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웠습니다. 비판보다 더 힘든 것은 잘못된 사람까지도 용납하며 아파하며 기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룟유다를 용납하시며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울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알곡을 위하여 가라지를 그대로 두시는 주님의 양들을 향한 사람을 생각하며 가슴을 친 일이 있습니다. 가라지가 생겨난 게으름을 한탄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작은 분노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목사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아니라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 시대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목사님께서 목사님이시기에 더더욱 비판할 수 없고 분노할 수 없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지극히 평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믿음의 스승들께서 가르쳐주신 원리에서 치명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작은 실수, 그것이 교리적인든지, 윤리적이든지 그러한 실수나 부족함이 주님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옳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혜는 가져야 할지라도 비판은 하지말아야 하고, 또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개혁주의를 가르치시는 스승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하실일과 우리가 해야 할일이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리고 비판은 우리가 성경을 기록하는 권위를 받은 사도가 아니기에 좀더 신중히, 그리고 사적인 신학적 지식이나 견해가 아니라 공교회적인 견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크시고, 우리보다 더 인자하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비판과 정죄는 우리 주님께 맡기고 주의 종들과 교회들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 맡겨진 영혼들을 이단으로부터 지키시는 일에 집중하시고, 혹 다른 목사님들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주심이 어떨까요? 목사님들은 교단과 공적인 권위들을 통해서 다스려지지 않겠습니까? 혹시 교단이 너무 썩어서 그런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또는 다른 목사님들이나 스승들이 목사님보다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으로 부족하여서 목사님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그런 마음이 있어서 이일을 하신다면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목사님의 사역이 주님께 귀히 여겨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와 맡은 양무리들이 풍성한 은혜와 주의 긍휼을 입게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11-11-29 08:49
    네~ 긴 글을 써셨네요~ 저도 그렇게만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사모님처럼 무엇이 어떤 것인지 분별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다 옳고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틀렸다는 말이 아니니다. 사모님의 말씀처럼 이단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경하지만, 말씀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절충주의적 시도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거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을 배울 때, 그저 심리학이 다 좋은 것인 줄로만 배웠습니다. 심리학과 성경을 잘 조합하면 좋은 목회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내적치유를 하면 정말로 상처가 치유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쉐마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정말로 그런 것이 맞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참 놀라웠습니다.
  • 관리자 · 2011-11-29 08:54
    프로이트와 융에 대하여 좋게만 배웠습니다. 상담학에 빠져 있고 내적치유에 심취해 있는 많은 목회자님들과 사모님들을 바라볼 때 저는 그것이 잘못 된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심리학만큼 위험한 것이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이라고 들어면 무슨 대단한 학문인 줄로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체한 무의식이 그 속에 있으며, 그 방법으로는 뉴에이지 구상화(visualization)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뉴에이지 구상화는 쉽게 말하면, 무당이 하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모님, 제가 이만큼 말씀 드렸는데도, 수긍을 못하시겠다면 저는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사모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절충주의 방식입니다. 성경에다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정말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아시면 저보다 더 경악해 하실 것입니다. 저의 책 "내적치유의 허구성"을 읽어 보십시오. 읽어 보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 책을 이 인터넷 상에서 다 말씀 드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관리자 · 2011-11-29 08:58
    사모님이 보시기에 제가 비판과 정죄를 하신다고 보십니까? 그러면 칼빈과 개혁주의 자들과 청교도들은 다 몹쓸 짓을 한 것일까요? 사모님의 말씀대로 그냥 가만히 두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것은 사그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사모님의 자녀들이 잘못 된 길을 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역사라면...,' 하면서 뒷짐지시고 그냥 계시는지요? 아무도 그럴 부모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들이 그냥 조금 잘못 된 것이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말살해야 한다고 하며, 예수님을 극도로 모독하는 사람들의 그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데 대해서 동의하시는 것인가요? 사모님의 말씀처럼, 침묵하는 수많은 목회자들 때문에 성도들과 우리의 자녀들은 얼마나 방황하고 있는지 정녕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 관리자 · 2011-11-29 09:05
    교회를 사랑한다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할까요? 저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잘못 된 길로 가고 있는데 그걸 보고만 있으라구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데 왜 다른 길로 가야 합니까? 심리학과 세상의 사상과 철학이 교회에 밀려 들어와서 얼마나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모님께서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쉐퍼 시리즈를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교회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좀 더 아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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