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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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 생각

진정한 행복

 
과거에나 지금이나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행복이라는 단어는 곧 쾌락이라고 할만큼 그 수준과 가치라 추락해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신계계"는 인간 내면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려내려는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려고 몸부림을 친 흔적을 보인다.
인공적으로 아이들이 생산되고, 수면학습, 집단적 프리섹스가 등장한다.
행복이라는 단서를 찾기 위해서
쾌락을 주며 우울병의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소마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의 행복이 아무런 걱정 근심없이 사는 것을
과학이라는 수단에 의지하여 얻어 낼려고 한다.
마음의 행복이라는 것을 애쓰고 노력하지 않고
환각적인 상태로 조작된 행복을 누리며 살려는 인간의 저급함은
계급화된 사회 속에서 불평등한 조직 속에 살면서도 소마를 통해
행복을 누리며 살려는 것은 결국 카스트 제도의 현대판 적용이 아닐까~
헉슬리는 소마에 의존하는 행복은 자유의 희생이라고 보았다.
소마의 복용에 의해 조작된 행복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희생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소마를 창밖으로 내던지며 외친다.
"마침내 인간이 되었어, 인간이 된거야!"
자유의지를 내동댕이 치면서까지 행복해지고 싶지는 않는 인간,
아니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자유의지 속에서
행, 불행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았다.
 
과연 올더스 헉슬리 경이 말하는 이런 자유와 행복이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자유의지 속에서 만들어내는 인간의 결과물들은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을 양산해 내고,
그 속에는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쾌락과 타락하고 저질스러운 것들로 채워져서
결국 자멸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인간은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수많은 실험무대를 거쳐왔다.
그 속에서 인간은 죽어가고 있다.
그냥 죽기 싫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쓴웃음을 짓고 있고
기왕에 죽을 인생 쾌락을 즐기다가 죽으라고 부추기고 있다.
 
도를 닦는 인간들도 고기는 먹어야 배가 부르고 윤기가 흐르는 것을 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힘은 어디다 쓰겠나?
물어보는 내가 바보고 들으며 웃음지는 객이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세상살이에 바빠서 눈떴나 싶으면 벌써 하루가 지나 잠드나 싶은 바쁜 인생들 속에서도
사는게 이런건가 싶어서 침 삼키며 하는 말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것이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해야 그것이 살 길이다.
이건 한 번 해보자 안되면 다시 살아보지 뭐 이럴 일이 아니다.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코베어가는 세상인데 말이다.
저 가는 길도 모르는 놈이 남의 길 포장해준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업자들이 많다.
그게 비포장이면 어떻고 안포장이면 어떤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것부터 제대로 알고 가야할 것 아닌가?
실컷 가다가 돌아와서 다시 갈려고 하면 허탕쳤다고 누구를 원망하겠나?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고 사는 반푼수들이 많다.
그것도 하나님 이름 거들먹 거리고,
예수 십자가를 그렇게 외치면서 말이다.
서론과 본론까지도 비슷해 보이는데,
결론에 와서 본색을 드러낸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목적이 있는 인생, 꿈을 꾸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
낮뜨거운 짓은 그만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추운 날씨에 사는 맛이 제대로 날 것 아닌가~
 
아직도 복이 뭔지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사니 문제다.
인간이 추구하고 만들 행복은 자유의지 속에서 궁시렁대다가 자폭할 인생이다.
진정한 복은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인생 속에 간섭하고 있음을 믿고 사는 길이요,
그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며 그 말씀대로 살고파서 거룩과 경건으로 달려가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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