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의 정치참여에 대한 황광선 교수의 반론 기독교인 정치 참여 조심해야 한다
김민호 목사의 정치참여에 대한 황광선 교수의 반론 기독교인 정치 참여 조심해야 한다
#김민호목사 #기독교정치 #회복의교회
아래 기사는 김민호 목사의 정치참여에 대한
황광선 교수의 반론이다.
제목처럼 황광선 교수는 "기독교인 정치 참여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내용을 보
[반론] 기독교인 정치 참여 조심해야 한다기자명 황광선입력 2025.02.06 07:01 수정 2025.02.06 07:46 댓글 0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코람데오닷컴 2025년 2월 5일자, 김민호 목사의 칼럼에 부쳐황광선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교수황광선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교수근원과 본질을 뚫고자 노력하는 칼럼으로 필자는 회복의교회 김민호 목사의 칼럼을 즐겨 읽는다. 다만 목사로서 정치 영역에 대한 "과도한" 코멘트에 대해서는 필자는 평신도로서 이의를 제기한다. 구체적으로 코람데오닷컴 2025년 2월 5일자, "기독교인 정치참여는 사랑의 실천이다"라는 칼럼에 대해 다른 의견을 고하고자 한다. 기독인 혹은 교회가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동의한다. 기독인도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보다 기독인도 그 정치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민"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문제의 소지는 다음의 문장에서이다. "새 언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리어 우리는 정치 영역에 들어가서 그 영역을 거룩하게 정화해야 한다". 그 근거로 세상 속의 소금 및 빛 비유를 언급한다. 근거는 맞다. 근거에 따른 주장이 잘못되었다. 정치 및 행정학자로서 그리고 기독인으로서 두가지 반박을 드린다. 김 목사는 혜량하길 바란다.첫째, 세상 정치는 "정화의 영역"이 아니다. 기독교적 선한 영향을 정치에도 뿌릴 수 있고 있어야만 한다는 김 목사의 소망은 십분 공감한다. 필자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 목사는 상당히 "순수하다"(naive). 그러나 정치는 소위 "한정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의 일이다. "현실 정치"는 모든 자원이 배분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세속적 및 인간적 아귀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 곳은 김 목사가 주장한 "성경적 가치관"이 자리할 수 없는 생태계이다. 현실 정치의 세계는 정당 간의 권력 싸움이고, 사랑(즉, 양보와 희생)이 이루어지면 곧 패배를 의미한다. 이런 곳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정치인은 살아남지 못한다. 엄연한 현실이다. 김 목사의 다른 칼럼에서도 주지하였듯, 그래서 우리 기독인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둘째, 세상 정치에 대한 변화로 기독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되었다. 기독인이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김 목사 주장은 기독인을 세상 정치로 적극 유인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실제로 칼럼 후반부에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하려는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보이지 않는 것은 '위선'이고 앞서 성경구절 인용에 따른 소금의 역할 회피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 일은 "시민"으로서 혹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목소리를 낼 것인지 안 낼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기독인에게 칼럼을 통해 유인하는 것은 지나치다.전체적으로 김 목사는 바른 정치를 통한 세상 나라가 마치 하나님 나라로 연결되는 듯 주장하고 있다. 즉, 정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양상이다. 이분법도 위험하지만 이 또한 적절치 않다. 분명 이 세상 통치는 사단에게 있다. 칼럼의 제목에서 사실 필자는 혹했었다. 종국에는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기독인으로서 '사랑의 실천'이다로 귀결된다. 일반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라 생각한다. 허나 수많은 성도들에게 영향을 끼칠 하나님의 대표일꾼으로서 적절한지 의문이다.지나칠까 하다가 굳이 반박 칼럼을 쓰는 이유는 자칫 김 목사의 "현란하고",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칼럼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신이 '믿음 없는 신앙인'으로 자학될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다른 칼럼에서 '기독교 정치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으로 보아 김 목사는 정치 영역 안에 기독교적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르네상스 이후 모든 정치와 행정 및 국가론은 기본 뼈대가 '인본주의적'임을 안다면 쉽지 않다. 행정학자로서 김 목사의 칼럼으로 기독교와 정치의 연결고리에 대해 많이 배우고 사유(思維)하게 되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이번 칼럼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보여준다.자료출처 https://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82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