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종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전적인 타자 궁극적 관심 공은 같은 것이다
류기종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전적인 타자 궁극적 관심 공은 같은 것이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70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 - Rudolf Otto류기종 | rkchg@hanmail.net입력 : 2010년 05월 10일 (월) 16:00:35최종편집 : 2010년 05월 11일 (화) 20:11:05 [조회수 : 311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2)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선각자들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지구촌 인류가 경험한 중대한 사건들은 먼저 1,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었으며, 그 후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이념적 대립에 의한 세계질서의 극한적 대립과 거기에서 파생한 긴장과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전 인류는 큰 고통을 경험했으며, 그 직접적 피해는 이 지구상 어느 민족이나 국가들 보다 더 우리 한국국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경험한 바이였으며, 아직도 그 상처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이다.그러나 20세기의 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의외로 20세기에 지구상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시작의 사건을 지목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서 싹트기 시작한 기독교와 불교와의 접촉과 대화의 시작을 이 지구상(역사상)에 발생한 어느 사건들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기하고 있는 두 종교 즉 동서양을 대표하며 또한 동서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종교 그리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도덕적 가치체계와 구원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는 두 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서로 담을 높이 쌓고 문을 굳게 잠근 채 남남으 로 지내대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굳게 닫친 문을 열고 서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아마도 이것은 인류 역사의 정신적(내면적) 의미의 중대성을 간파한 토인비 박사의 예리한 판단과 통찰력에서 나온 결과로 사료된다. 뿐만 아니라 토인비 박사는 그의 <세계 종교 속의 기독교>란 소책자에서 인류의 평화 증진을 위해서는 기독교와 세계종교들과의 긴밀한 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기독교의 오만(교만)의 포기와 겸손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토인비 박사의 지적대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와 불교는 비록 소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대화가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동서양의 종교 사상가들의 주 관심사가 되다 시피 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주류 신학자들의 주 관심사의 하나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볼 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우리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심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꽉 막혀있던 우리 한국 사회의 두 주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상호이해와 소통의 길이 열리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지난 20세기 동안에 불교와 기독교의 간의 대화의 물꼬를 터준 선각자들은 누구인가 살펴보기로 한다.(1)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 루돌프 오토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1917년에 <성스러움의 의미, Das Heilige) 란 책을 저술한 독일의 신학자며 종교철학자인 루돌프 옷토 일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종교학이나 종교철학 분야에서 하나의 고전이 되다 시피 하였다. 옷토가 기독교 사상을 넘어서 다른 종교 특히 동양의 종교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1910년에서 1911년까지의 2년에 걸친 긴 여행을 통해서라고 보여진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북아푸리카와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거쳐서 인도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5년 후인 1925년과 1927-1928년 사이에 다시 중동과 인도를 방문하여 동양의 종교전통에 대한 그의 지식을 한층 심화시켰다.거룩함의 경험: 옷토는 기독교의 성서가 말하는 종교적 진리의 핵심은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하나님 곧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중심한 것인데, 이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적 차원의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그는 “거룩함에 대한 경험”, 혹은 "초월적 실재"(numen/the numinous)에 대한 경험으로 보았다. 그 한 예로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할 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는 음성을 들은 것은 초월적 실재인 하나님의 임재경험을 들어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이 때 모세에게 준 신의 명칭 즉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뜻을 지닌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신의 명칭은 이 세상 만물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신비 지극한 초월적 실재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옷토는 이해하고 있다. 이 신비 지극한 존재로서의 신을 기독교 신비가들이나 신학자들은 이 세상 만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해서 “전적 타자”(the Wholly Other)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신비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루돌푸 옷토가 현대의 기독교계와 종교계에 공헌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Mysticism)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옷토는 유한자인 우리 인간이 초월자/무한자인 신의 임재를 경험할 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1)극치의 신비에 대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tremendum majestorum)과 (2)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매혹적인 황홀한 마음”(tremendum fasinosum)이다. 이러한 경험이나 느낌과 깨달음은 신비주의의 특색을 잘 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옷토는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신비주의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따라서 신비주의는 기독교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임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저 넘어"(beyond) 라는 것도 역시 모든 종교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비합리적 요소가 극도의 긴장상태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신비주의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의 누멘적 대상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되, 단순히 자연적이고 세상적인 모든 것과의 대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급기야는 “존재 자체(Being itself)”와 모든 “존재하는” 것 과 대립시킨다. 결국 신비주의는 그것을 무(無)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라는 것은 단지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다는 뜻할 뿐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혹은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과 단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질적이며 반대적이라는 뜻이다.....우리 서양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독특한 “무”(nihil)에 대한 고찰은 불교의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공”(空)한 것 혹은 “공”(Sunyata)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타당하다.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신비적 언어나 지시어(ideogram, 상징적 표현)에 대하여 아무런 내적 감정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교적 신비주의자의 "공"과"공화"에 대한 추구는 일종의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동양의 “공”(무)은 서양의 "없음"(nothing)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것”(the wholly other)에 대한 누멘적 지시어인 것이다. 공이란 “기이한 것”(mirum) 그 자체,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언급하게 될 "역설"(paradox)과 “이율 배반적인 것으로 까지 고조되는 것이다.(거룩함의 의미, 길희성 역, 분도, 1987, pp.71-72).위의 글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옷토가 불교의 “무“ 혹은 “공”의 개념을 서양이나 혹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파악한 “전적 타자” 혹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신비적 방법에 의한 인식, 다시 말하면 궁극적 실재인 신에 대한 신비적 경험의 내용과 동일하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옷토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중요한 사실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서구인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도 이질적으로만 느껴지고 심지어는 일종의 허무주의 내지는 부정주의 종교철학 원리로만 인식되던 불교의 “공”사상을 새롭게 보았을 뿌 아니라, 기독교 신비가들이 경험하고 체득한 신(하나님) 체험의 내용과 동일한 차원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옷토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의 첫 물고를 터 준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