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고치는 기도법_옥성호
병을 고치는 기도법
옥성호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
제가 얼마 전 ‘배우자를 얻는 기도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갓피플에 가 보았더니 새로운 책이 하나 나왔더군요. ‘신유 집회’로 유명한 손기철 장로님의 ‘왕의 기도’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수백 명을 치료시킨 기도법’이라고 붙어있더군요. 궁금해서 ‘기도법’이라는 단어로 갓피플에서 검색을 해보니까 ‘기도법’이 들어간 몇 권의 책이 있더군요.
“죠지 뮬러 기도법”
“응답이 잘 터지는 기도법”
손 장로님의 ‘왕의 기도’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소개로 이어집니다.
---
손기철, 특급 기도 비밀!!
건국대 학장, 《고맙습니다 성령님》 저자
매주 3천 여 명이 모이는 말씀치유집회 때마다 수백 명을 치유시킨, 바로 그 기도법
“저는 이 기도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대로, 믿고, 선포하고, 행동하는 기도---
이 분은 신유의 은사를 받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몇 달 전 ‘일’ 때문에 이 분의 ‘고맙습니다 성령님’은 읽었습니다.
위의 책 소개로만 봐서는 이 분이 주장하는 이 ‘기도법’을 익히기만 하면 누구라도 손 장로님처럼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왕의 기도법’을 익히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런데....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은사를 ‘신유의 은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신유의 은사가 지금도 여전히 있다고 믿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 글의 논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은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닙니까? 이 점이야말로 은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선물gift'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이 은사들을 달라고 떼쓰는 것은 아예 애교에 속합니다. 아니,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은사를 스스로 ’습득‘하는 법칙들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이제는 나름대로 비법을 획득해서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이 난무해도 그 가르침이 그럴듯한 포장 내지 구호에 싸여 소개되면 그 누구도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이 숨겨졌던 기도 방법을 습득해서 초대 교회에서 수많은 신유의 기적들을 일으킨 것일까요? 누구나 방법만 알면 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한때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부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담임 목사가 매일 새벽 교회에 꿇어 엎드려 300일간 무릎이 낙타처럼 될 때까지 기도하는 ‘새벽 기도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위에 아는 분들 중에는 300일이 아니고 30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그렇게 기도해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부흥’의 ‘부’자도 경험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영적인 것들을 세상으로 끌어내려 법칙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체험한 그런 법칙 안에서 휘둘리는 분이 아닙니다. “건강 달리기법”, “밥을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법”....뭐, 그런 것들 가지고는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그 영역을 우리의 시각에 맞추어 ‘법칙화’시키는 것은 창조주, 초월적 하나님을 범신론적 단계로 끌어내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점점 더 ‘나’만을 향하는 이 추세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내가 생각하는 ‘법칙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믿음의 힘’, ‘긍정의 힘’, ‘능력기도의 힘’이니 아무리 좋은 구호를 갖다 붙이더라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대상이지 우리가 연구해서 공식화 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부흥과 개혁사
옥성호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
제가 얼마 전 ‘배우자를 얻는 기도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갓피플에 가 보았더니 새로운 책이 하나 나왔더군요. ‘신유 집회’로 유명한 손기철 장로님의 ‘왕의 기도’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부제는 ‘수백 명을 치료시킨 기도법’이라고 붙어있더군요. 궁금해서 ‘기도법’이라는 단어로 갓피플에서 검색을 해보니까 ‘기도법’이 들어간 몇 권의 책이 있더군요.
“죠지 뮬러 기도법”
“응답이 잘 터지는 기도법”
손 장로님의 ‘왕의 기도’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소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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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특급 기도 비밀!!
건국대 학장, 《고맙습니다 성령님》 저자
매주 3천 여 명이 모이는 말씀치유집회 때마다 수백 명을 치유시킨, 바로 그 기도법
“저는 이 기도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대로, 믿고, 선포하고, 행동하는 기도---
이 분은 신유의 은사를 받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몇 달 전 ‘일’ 때문에 이 분의 ‘고맙습니다 성령님’은 읽었습니다.
위의 책 소개로만 봐서는 이 분이 주장하는 이 ‘기도법’을 익히기만 하면 누구라도 손 장로님처럼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왕의 기도법’을 익히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런데....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은사를 ‘신유의 은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신유의 은사가 지금도 여전히 있다고 믿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 글의 논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은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닙니까? 이 점이야말로 은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선물gift'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이 은사들을 달라고 떼쓰는 것은 아예 애교에 속합니다. 아니, 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은사를 스스로 ’습득‘하는 법칙들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이제는 나름대로 비법을 획득해서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이 난무해도 그 가르침이 그럴듯한 포장 내지 구호에 싸여 소개되면 그 누구도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이 숨겨졌던 기도 방법을 습득해서 초대 교회에서 수많은 신유의 기적들을 일으킨 것일까요? 누구나 방법만 알면 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한때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부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담임 목사가 매일 새벽 교회에 꿇어 엎드려 300일간 무릎이 낙타처럼 될 때까지 기도하는 ‘새벽 기도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위에 아는 분들 중에는 300일이 아니고 30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그렇게 기도해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부흥’의 ‘부’자도 경험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목회자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영적인 것들을 세상으로 끌어내려 법칙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체험한 그런 법칙 안에서 휘둘리는 분이 아닙니다. “건강 달리기법”, “밥을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법”....뭐, 그런 것들 가지고는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그 영역을 우리의 시각에 맞추어 ‘법칙화’시키는 것은 창조주, 초월적 하나님을 범신론적 단계로 끌어내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점점 더 ‘나’만을 향하는 이 추세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내가 생각하는 ‘법칙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믿음의 힘’, ‘긍정의 힘’, ‘능력기도의 힘’이니 아무리 좋은 구호를 갖다 붙이더라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대상이지 우리가 연구해서 공식화 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부흥과 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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