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인 그리스도인_비판적읽기3
강박적인 그리스도인_비판적읽기3
진단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 대안이 더 중요하다.
비판이 중요하기는 해도 그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일 때는 더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23페이지를 더 보자.
"부모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자녀에게 강박적으로 다그치며 호통을 치기만 하는 것처럼,
교회도 안식 없는 성장만 외치며 일의 성공에 집착한다.
오늘날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부모와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만져 주기보다는 의무와 희생의 짐만 떠맡긴다.
하지만 주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의무뿐 아니라 위로와
(24페이지)
안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롭게 부여되는 의미 또한 항상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고 성장 위주로 갈려고 하니까,
교인들이 그 짐을 떠맡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그 대안이 문제다.
본문에서 "대안"이라는 말은 안하지만,
다른 말로, "치료ㅖ"라고 표현한다.
24페지를 더 보면,
"강박적 성걱장애의 치료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쉼을 약속하신다.
성령님은 삶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신다."
첫문장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둘째도 맞는 말이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안식을 주시는가?이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쉼을 주시는가? 이며,
성령님께서 어떻게 삶을 회복시키는가 이다.
그 다음 문단으로 가보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찬양으로 익숙한 시편 46:10에 대해 70인역은
"너희는 여가를 가지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안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신다.
우리가 여가를 가질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신다.
일을 우리시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며 조급하고 피곤한 우리에게는 위로와 안식을 주신다.
그런데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고, 자기들이 영광을 차지하려 한다."
시편 46:10절에 대한 번역이 어디 70인역 뿐이겠는가?
다른 번역본들도 함께 살펴 보는 것이 성경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유익하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개역)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뭇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내가 이 땅에서 높임을 받는다.』(시 46:10, 새번역)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 세상 만민이 나를 높이 받들어 섬기리라."』(시 46:10, 공동)
『"Cease [striving]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시 46:10, NASB)
이 단어는 LXX(70인역)에서 3번이나 나타난다.
출애굽기 5:8/ 출애굽기 5: 17/ 시 46:10이다.
히브리어 raphah라파(BHS 4th는 샤바트)를 번역한 말이다.
라파의 뜻은 "to sink down, relax, be idle," 이다.
본문을 보면,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출 5:8, 개역)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출 5:17, 개역)
여기서는 바로가 히브리인들이 게으르다고 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개역)
시편에서는, 믿는 자들에게 "조용히 하고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라"는 뜻이다.
주석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시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 '가만히 있다' 의 정확한 의미는 '그만두다', '멈추다'인데, 삼상 15:16의 경우처럼 절대형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문자적 의미의 생략형이다. 즉 '너의 손을 약화시켜라', 곧 '너의 노력을 멈추어라'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일한 재판관 혹은 조정자로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만물의 통치자, 재판관으로서 세상의 나라들과 군왕들, 그리고 그 군대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얼마나 초조하고 안달겠는가 !
이것은 이 구절만 생각하지 말고, 그 앞 뒤 구절을 다 보면 알 수가 있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9]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 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46:8-11, 개역)
결국 저자가 책에서 70경을 사역한 "너희는 여가를 자기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말 속에 포함된, 이른바 "우리가 안식할 때"라는 그 의미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단순한 안식 혹은 쉼이라기 보다는
만왕의 왕이며 세상의 유일한 재판관이신 그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그 쓰잘데 없는 수고와 노력을 중지하라는 말이다.
시작하는 글에서 진단에서 나아가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모르면 결국 그 해결점을 바르게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어나오는 말을 보자.
"우리가 안식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되신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며 조급하고 피곤한 우리에게는 위로와 안식을 주신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을 잘 보면, 우리는 쉬고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일하셔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고 이해하면 그 이해가 잘못된 것일까?
신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안식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이요,
그 구원의 풍성함으로 나아갈 때에 안식을 누리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개역)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개역)
아버지도 일하시고 예수님도 일하시고 우리도 보냄을 받아 일한다.
그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헛된 것을 구하며 일하는 것이 잘못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초기에 수많은 교회를 순회설교자로 다니면서 목숨을 바쳐 일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강박적인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나간 시대의 부모님들은 죽어라고 고생했다.
그렇다고 그 부보들을 두고 강박증부모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왜? 그들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야 되겠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나오는 글을 보자.
"그런데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고,
자기들이 영광을 차지하려 한다."
조금 맞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혼동이 일어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단어로 강박적 단어라고 붙인다 하더라도,
보다 본질적으로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에 대해서 강박적이다 아니다 라는 접근보다는
그것이 언약적인 차원에서 하나님 중심적이냐 인간중심적이냐를 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죄냐 아니냐 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나온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진단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 대안이 더 중요하다.
비판이 중요하기는 해도 그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일 때는 더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23페이지를 더 보자.
"부모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자녀에게 강박적으로 다그치며 호통을 치기만 하는 것처럼,
교회도 안식 없는 성장만 외치며 일의 성공에 집착한다.
오늘날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부모와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만져 주기보다는 의무와 희생의 짐만 떠맡긴다.
하지만 주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의무뿐 아니라 위로와
(24페이지)
안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롭게 부여되는 의미 또한 항상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고 성장 위주로 갈려고 하니까,
교인들이 그 짐을 떠맡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그 대안이 문제다.
본문에서 "대안"이라는 말은 안하지만,
다른 말로, "치료ㅖ"라고 표현한다.
24페지를 더 보면,
"강박적 성걱장애의 치료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쉼을 약속하신다.
성령님은 삶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신다."
첫문장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둘째도 맞는 말이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안식을 주시는가?이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쉼을 주시는가? 이며,
성령님께서 어떻게 삶을 회복시키는가 이다.
그 다음 문단으로 가보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찬양으로 익숙한 시편 46:10에 대해 70인역은
"너희는 여가를 가지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안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신다.
우리가 여가를 가질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신다.
일을 우리시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며 조급하고 피곤한 우리에게는 위로와 안식을 주신다.
그런데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고, 자기들이 영광을 차지하려 한다."
시편 46:10절에 대한 번역이 어디 70인역 뿐이겠는가?
다른 번역본들도 함께 살펴 보는 것이 성경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유익하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개역)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내가 뭇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내가 이 땅에서 높임을 받는다.』(시 46:10, 새번역)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 세상 만민이 나를 높이 받들어 섬기리라."』(시 46:10, 공동)
『"Cease [striving]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시 46:10, NASB)
이 단어는 LXX(70인역)에서 3번이나 나타난다.
출애굽기 5:8/ 출애굽기 5: 17/ 시 46:10이다.
히브리어 raphah라파(BHS 4th는 샤바트)를 번역한 말이다.
라파의 뜻은 "to sink down, relax, be idle," 이다.
본문을 보면,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출 5:8, 개역)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출 5:17, 개역)
여기서는 바로가 히브리인들이 게으르다고 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개역)
시편에서는, 믿는 자들에게 "조용히 하고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라"는 뜻이다.
주석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시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 '가만히 있다' 의 정확한 의미는 '그만두다', '멈추다'인데, 삼상 15:16의 경우처럼 절대형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문자적 의미의 생략형이다. 즉 '너의 손을 약화시켜라', 곧 '너의 노력을 멈추어라'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일한 재판관 혹은 조정자로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만물의 통치자, 재판관으로서 세상의 나라들과 군왕들, 그리고 그 군대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얼마나 초조하고 안달겠는가 !
이것은 이 구절만 생각하지 말고, 그 앞 뒤 구절을 다 보면 알 수가 있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9]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 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46:8-11, 개역)
결국 저자가 책에서 70경을 사역한 "너희는 여가를 자기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말 속에 포함된, 이른바 "우리가 안식할 때"라는 그 의미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단순한 안식 혹은 쉼이라기 보다는
만왕의 왕이며 세상의 유일한 재판관이신 그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그 쓰잘데 없는 수고와 노력을 중지하라는 말이다.
시작하는 글에서 진단에서 나아가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모르면 결국 그 해결점을 바르게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어나오는 말을 보자.
"우리가 안식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되신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며 조급하고 피곤한 우리에게는 위로와 안식을 주신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을 잘 보면, 우리는 쉬고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일하셔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고 이해하면 그 이해가 잘못된 것일까?
신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안식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이요,
그 구원의 풍성함으로 나아갈 때에 안식을 누리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개역)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개역)
아버지도 일하시고 예수님도 일하시고 우리도 보냄을 받아 일한다.
그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헛된 것을 구하며 일하는 것이 잘못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초기에 수많은 교회를 순회설교자로 다니면서 목숨을 바쳐 일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강박적인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나간 시대의 부모님들은 죽어라고 고생했다.
그렇다고 그 부보들을 두고 강박증부모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왜? 그들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야 되겠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나오는 글을 보자.
"그런데 강박적 성격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일을 이루고,
자기들이 영광을 차지하려 한다."
조금 맞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혼동이 일어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단어로 강박적 단어라고 붙인다 하더라도,
보다 본질적으로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에 대해서 강박적이다 아니다 라는 접근보다는
그것이 언약적인 차원에서 하나님 중심적이냐 인간중심적이냐를 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죄냐 아니냐 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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