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하나님을 두렵고 멀게 느끼는가?!
나는 왜 하나님을 두렵고 멀게 느끼는가?!
- 기자명 허찬주 입력 2026.07.16 07:03
수정 2026.07.16 07:04
부모와의 애착 경험이 형성하는 하나님 이미지
상처 입은 마음이 만들어낸 왜곡된 하나님의 모습
복음 안에서 다시 만나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가 교회 안에서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러나 정작 각자가 ‘가슴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어떤 이에게 하나님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하신 심판자이시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멀고 냉담한 존재이시다. 반면 어떤 이에게는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는 따뜻한 아버지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도 우리는 왜 하나님을 이토록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기 이전에 한국교회의 빈약한 교의적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러한 교의 교육 부재의 문제점 보다 다른 관점을 다루고자 한다. 교의 교육 부재는 신학자들과 현장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께 맡기겠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아동발달학자 존 볼비(Johm Bowlby)는 이를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으로 설명했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가 아이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민감성), 적절하게 돌보며(반응성), 일관성 있게(일관성) 반응해 줄 때, 아이는 세상과 타인을 신뢰하는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을 형성한다. 이러한 안전기지를 가진 아이는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탐색한다. 반대로 양육자가 거부적이거나 일관되지 못할 경우, 아이는 늘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불안정 애착(Insecure Attachment)’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애착은 단순히 부모와의 관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렌즈가 된다. 문제는 어린 시절 형성된 이 심리적 애착의 틀이 성인이 된 이후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이를 '하나님 이미지(God Image)'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보다,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조건적 사랑에 익숙한 사람은 하나님을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고 증명해야만 기뻐하시는 엄격한 율법주의적 하나님’으로 오해한다. 이것이 불안형 애착의 특징과 닮아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언제 자신을 떠나실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종교적 행위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은혜를 누리는 기쁨보다 인정받기 위한 노력으로 변질되기 쉽다. 반대로 어린 시절 반복적인 거절과 정서적 거리감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멀고 냉담한 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는 회피형 애착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들은 하나님께 깊이 의존하는 것을 불편해하며,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의무나 지적 동의 수준으로 제한한다.

결국 애착의 상처는 하나님을 왜곡되게 만들어낸다.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는 우리를 참된 안전기지(Secure Base)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안전기지를 찾는다. 성공, 성취, 인간관계, 평판 등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체 안전기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거리감의 상당 부분은 실제 하나님의 모습이라기보다 어린 시절 상처 입은 영혼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수 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복음에는 소망이 있다.
복음은 우리의 과거 경험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말한다. 우리의 부모 경험이 곧 하나님의 실체는 아니다. 우리의 부모 경험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규정하는 기준이 결코 될 수 없다. 우리의 상처가 하나님의 성품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새롭게 교정 받을 수 있다. 복음은 우리의 행위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칭의(Justification)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셨으며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영원한 안전 보장 선언이다. 따라서 신앙의 성숙이란, 단순히 종교적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내 과거가 만들어낸 ‘왜곡된 하나님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성경이 증언하는 참된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을 바르게 경험해 가는 과정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육신의 부모보다 더 완벽한 ’궁극적 안전기지’로 소개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
하나님은 인간 부모가 제공하는 모든 좋은 애착 기능의 궁극적 근원이시다. 육신의 부모는 연약하기에 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작은 신음조차 외면하지 않으시며,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실함으로 응답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안전기지가 되신다. 애착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더라도 이후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 깊이 유대를 맺으면 안정적인 정서 회복이 가능하다. 이를 ‘획득된 안정 애착(Earned Secure Attachment)’ 이라고 부른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 안에서 ‘획득된 안정 애착’을 경험하게 되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십자가는 우리가 결코 하나님 앞에 거절당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구원의 사건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완전한 수용과 용납을 반복해서 경험할 때, 우리 마음속의 불안과 냉소는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 과정 속에서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는 깨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된다.
복음은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13:5)고 말씀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시는 영원한 약속이다. 과거 옛사람이 가지고 있던 깨진 렌즈를 내려놓고, 이미 하나님 안에서 새사람을 입고 있다는 모습을 자각하며(골 3:9-10),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 부모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부모는 우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안전기지이시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사랑임을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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