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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기독교세계관

한나 아렌트_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_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라이사이야기 , 2011/02/05 14:51 ) by 라이사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한나 아렌트" 는 
점차 심해지던 나치의 유대인 억압과 박해를 피해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2차대전 종전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던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아이히만" 이 
모사드에 체포,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자 한나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 재판의 보고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을 쓰게된다.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면서 
뉴요커 잡지에 다섯 차례로 나뉘어 게재되었던 보고서 형식의 이 기사는 
후일 한권의 책으로 묶여 간행되었는데, 

예루살렘의 재판의 부적절함과 한계성등 여러 오류를 고발한 아렌트의 기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아닌 인류를 상대로 한 범죄 차원으로 재판 하지 못한 
이스라엘과 법원의 단견, 
이른바 인류사에 있어서 또 다시 자행될지 모를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단호한 경계로 경종을 울리지 못한 점을 지적함으로 
학술서 아닌 대중성을 띤 책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학술적 논쟁을 불렀다. 

출판 되기도 전에 
'유대인이 스스로를 살해했다고 주장 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 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이미지에 함몰된 논평자들의 결론에 의해 반유대 변절로 찍혀 엄청난 저항에 시달려야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이히만의 무사유, 사고의 불능, 악의 평범성, 
역지사지의 무능력에서 기인한 천박성 등등에 촛점을 맞춘 서평이나 독후기는 흔한 만큼, 
동어반복을 피하고자 나는 다른 문제에 주목한다. 


나는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궁금했다. 
왜, 왜 나치는 유대종족을 멸절시키고자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수백만 유대인들은 왜 저항않고 그토록 자신의 죽음에 순종했는가, 
또, 수백만 유대인의 멸절을 가리키는 최종해결책에 왜 이웃은 방조했고, 
그리고 유대지도자는 왜 최종해결로의 이주에 적극 협조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1) 왜 멸절을 시도했는가.. 

히틀러의 주요 정책인 유대인 이주 및 소개의 목적은 
독일인들의 이주를 위한 동부의 빈 공간 확보, 에 있었는데, 그것은 히틀의 주요 정책인 
포괄적 인구 정책의 일부, 였다. 


2)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 

인류역사상 초유의 사건인 만큼, 누구도 사실이라 믿지 않았던것 같다. 


3) 왜 유대지도자 계급은 협조했는가.. 

새로운 권력을 즐겼다, 라는 해석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치 적극협조세력인 유대위원회의 지시에 저항했으면 절반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4) 이른바 소수 엘리트들의 언어규칙.. 

최종 해결책, 완전 소개, 특별취급, 재정착, 동부지역 노동, 등등 
그들의 언어엔 일정한 규칙이 존재했는데, 이것은 현실에 대한 감각의 마비를 통해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는 효과를 노린것이다. 


5) 왜 이웃은 방조했는가.. 

주변국들의 의지가 매우 중요했는데, 
만만한데는 강압과 강제로 친위대 투입 직접 해결하고 덴마크 스웨덴등 저항국에는 협조를 구했으니 
대량 이송 포기와, 이 지역에 배치된 나치 친위대의 사보타주를 불러 
결국 나치로 하여 포기라는 현실적 타협까지 끌어냈다. 
이와 반대로 
방조 내지 적극 협조한 주변국들의 의지는 히틀러와 같았는데, 
그들의 자리를 비워 약탈하기, 전리품 챙기기, 였다. 


6) 히틀러의 궁극적 인구정책은 무엇인가.. 

이민족은 물론 독일인까지 망라해 
장애자, 노약자, 미숙아, 심지어 심장병까지 멸절계획을 세웠는데, 
이들을 안락사시키는 것이 최종 해결책의 일부였다. 



"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 , 이라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성실성과 합리적인 일처리를 자랑하며 

모든 사람이 행위를 시작하는 그 순간 입법자이다, 라며 칸트를 들먹이자, 
아이히만에게 실천이성이란 원천은 그 자신이 배제된 총통의 의지였다, 
한마디로 순수를 뺀 어린아이의 정신세계, 즉 미성숙한 세계일 뿐이라며 일축한다. 

그리고 아렌트는 그것이 왜 범죄인가, 에 대해 
무사유와 악의 이상한 상호 연관성을 들어 말하고 있다. 

옳고 그른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손상된 곳에서는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느끼지 않지만, 
개인을 폭력도구화 하는 범죄 국가에 대한 저항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금지라는 불복종 명령을 스스로에 내리게 하는 경고를 담은 깃발을 펄럭이게 해야하는 책임인 
개인의 양심이 작동해야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아이히만이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다고.. 

개인의 양심이 작동되지 않을때, 우리는 엄청난 복수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그것은 지구의 복수, 라고.. 


만만찮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20세기 정치사상의 최고봉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은 
결국 
인류의 연대를 말하는건 아닌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범죄권력에 맞서기 위해 불가결한 연대의 메시지를 던진건 아닌가, 생각한다.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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