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_그때...지금 44. (소통에 대해)
들뢰즈_그때...지금 44. (소통에 대해)
그때...지금 44. (소통에 대해)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는『차이와 반복』(Difference et Repetition)을 통해 기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이상학의 기초를 마련코자 했다. 들뢰즈는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이 일반성(gener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를 중시했다고 보고 자신은 단독성(singularity)에 입각, 새로운 철학을 만들려고 했다.그에 따르면, 인간을 일반성이란 도식(圖式.틀)에서 볼 경우, 철수와 영희는 일반성에 포함되는 개개인으로서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자본주의다. 사람이나 물건이 모두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은 일반성을, 사람이나 물건은 특수성을 상징한다.일반성과 특수성이라는 도식에 입각한 사유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일반성에 포괄되는 특수한 것들은 서로 교환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반성이 특수성을 지배한다는 지배와 위계의 논리가 탄생한다. 들뢰즈는 이 같은 지배와 위계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단독성을 들고 나왔다. 단독성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립성과 개체성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모든 개체나 사건들이 다른 것과 교환 불가능하다면, 이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겠는가 하고 고민을 한 끝에 일반성과는 다른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원리를 고안, 지극히 단독적인 것만이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예컨대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과 철수와 영희의 사랑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보편성으로 말하자면 같은 것이지만, 각각의 사랑을 단독적인 것으로 본다면,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사랑은 단독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두 커플의 사랑에는 사랑의 보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들뢰즈는 보편성에 입각, 사람이나 사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장스망(agencement)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아장스망은 다양한 것들의 마주침과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흔적이나 주름 또는 그것들의 배열, 배치, 합성 등을 의미한다. 그는 모든 것들이 어떤 마주침의 흔적, 또는 결과라 생각했다. 예컨대, 추운 겨울날 새벽 버스 차창에 핀 성에꽃은 다양한 사람들이 뿜어낸 입김과 한숨 그리고 열정 등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만든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것들의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난 하나의 흔적이 바로 성에꽃이라는 것이다.들뢰즈는 다양한 것들의 우연한 마주침과 그로부터 생기는 흔적이나 주름을 배열, 배치, 합성 등을 의미하는 아장스망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했다. 그는 아장스망을 다중체(multiplicite)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multiplicite란 단어가 많다는 뜻의 multi와 주름(fold)을 의미하는 pli의 합성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주름이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흔적이었다.들뢰즈는 아장스망과 주름 개념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리좀(rhizome)으로 상징된다는 선언을 했다. 기존의 철학이 뿌리와 줄기로 상징되는 수목형의 나무관계(부자관계)였다면 자신의 철학은 뿌리줄기를 의미하는 리좀형으로 나무와는 전혀 다른 구조로 작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리좀형과 수목형이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리좀형에 좀 더 많은 규정들이 들어갈 경우 수목형으로 변하고, 반대의 경우(규정성을 줄어들 경우) 리좀형으로 변한다. 즉 리좀형과 수목형은 상관적 정도(correlative degree)를 형성한다. 리좀형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보다 자유로운 쪽으로 갈 때 성립하고, 수목형은 관계 맺는 방식이 이항대립적(binary) 방식으로 갈 때 성립한다. 리좀형은 수목형의 잠재성의 방향이고, 수목형은 리좀형의 현실성의 방향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리좀의 활동이 마주침과 그 마주침의 흔적을 상징한다는 점이었다.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 융합행정 등 낯설고 새로운 개념의 정치적 수사가 나오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박대통령의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지배하고 복종하며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일 게다. 견강부회일지 모르나 들뢰즈가 말한 리좀의 철학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정치란 소통이다. 소통은 주름을 펴는 것이다. 주름을 펴는 작업(노력)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관계(망)일 때 가장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박대통령의 말이 겉으로는 수평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수직적인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소통에 대한 이해와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면 들뢰즈의 리좀 철학에 대한 공부를 좀 하면 어떨까.(자료출처 http://blog.daum.net/ex-nihilo/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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