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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기독교세계관

제2강 [조광제] 후설과 현상학 Ⅱ

제2강 [조광제] 후설과 현상학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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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조광제] 후설과 현상학 Ⅱ
  <강의 자료> 

현상학, 무슨 책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1. 책 소개

필자가 현상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신학적인 고민 때문이었다. 필자의 대학 시절은 박정희 군사 독재 말기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련에 길들여져 찌들은 상태에서 삶의 근본을 찾아 택했던 신학교 대학 시절, 나와 현실 세계의 존재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무의미로 다가왔다. 이를 근본에서부터 해결해 줄 토대로 신의 존재를 추구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와 현실 세계의 무의미함은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에 눈을 돌리게 했다. 당시 무의미의 원천적인 근거로 여겨졌던 필연적인 죽음이 하이데거에서는 의미 충만의 실존적 삶을 위한 적극적인 계기로 돌변하는 것으로 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나름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면서도, 결국 학사학위 논문 제목은 ‘실존 개념의 해명’(1982)이었다. 
그 논문을 쓰기 위해 읽었던 중요한 책이 Herbert Spiegelberg의『The Phenomenological Movement』(Mrtinus Nijohff, 1960) 1권과 2권이었다. 확실하게 통독을 한 것은 아니었고,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후설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후설에게 영향을 미친 브렌타노와 스툼프의 사상을 먼저 다룬 뒤, 후설 이후의 독일 현상학자들과 프랑스 현상학자들의 사상을 정말 체계적으로 개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현상학 일반을 공부하는 데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삶 전체가 현상학에 ‘절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최경호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동학 박인철이 함께 이 책을 잘 번역해 1991년 이론과실천사에서 출간했다. 현상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필독서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면, 국내 현상학계의 바탕을 놓으신 한전숙 선생님의 역저인 『현상학』(민음사, 1996)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의 사상을 그의 여러 주요 저서들에 담긴 주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정돈한 책이다. 평소 원문을 치밀하게 따지고 천착하는 연구 태도에 의해 후설의 사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를 위해 불가피한 자기 나름의 주체적인 관점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저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이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출판사에서 하루속히 재판을 발간하기를 촉구한다. 후설 현상학의 사상의 원리와 실제를 최대한 체득하지 않고서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의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후설 현상학을 공부하려면 친절하게 우리말로 직접 저술한 이 책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전숙 선생님과 함께 한국현상학계를 일구신 윤명로 선생님의 저서 『현상학과 현대철학』(문학과지성사, 1987)을 읽은 것이 좋다. 이 책은 후설 현상학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논의 거리들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후설 현상학을 카르납, 해석학, 생철학, 과학 정신 등과 결부시켜 그 의의를 논의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서이다. 
그런 다음, 만약 후설의 현상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제 후설의 원전을 직접 읽어야 한다. 후설의 현상학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그의 원전은 『데카르트적 성찰과 파리 강의』(Cartesianische Meditationen und Pariser Vortrage)이다. 이 책의 본론에 해당되는 「데카르트적 성찰들」이 이종훈 교수에 의해 『데카르트적 성찰』(철학과현실사, 1993)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후설이 죽기 10년 전쯤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그가 1913년에 써서 선험적 현상학을 확실하게 구축하게 되는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이후 여러 가지로 난해하게 전개된 그의 현상학적인 사상을 중간 점검해서 정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후설의 현상학의 기초가 되는 근본 개념들과 방법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후설 나름의 ‘모나드적 자아’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상호주관성’에 관한 이야기가 잘 정돈되어 있다. 이 책을 일단 읽고 나면, 후설 현상학의 정신을 후설 자신의 ‘음성’으로 체계적으로 듣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앞서 말한 흔히 ‘이데엔 아인스’(『이념들 I』)라고 지칭하는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Ideen zu einer reinen Phanomenolgie und phanomenologischen Philosophie, erstes Buch)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무척 난해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칸트로 치면 『순수이성비판』에 해당될 정도로 후설의 현상학을 근원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책이다. 현상학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최경호 선생님에 의해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순수현상학의 입문 일반』(문학과지성사, 1997)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후설 현상학의 근본 개념인 ‘선험적 환원’, ‘에포케’, ‘형상적 환원’, ‘지향성’, ‘노에시스-휠레-노에마 삼각 구도’, ‘절대 의식’, ‘순수 의식’, ‘선험적 주체성’ 등이 고안되고 설명되고 있다. 이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나면, 후설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책인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Die Krisis der europa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anomenologie)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이종훈 교수에 의해 이론과실천사에서 1993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유명한 후기 사상의 개념들인 ‘생활세계’, ‘생활세계적 환원’, ‘과학주의적 태도와 그에 대한 비판’, ‘이념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후설 사상을 특히 그의 후기 사상에 맞추어 알고 싶으면, 『경험과 판단. 논리학의 발생론에 대한 연구』(Erfahrung und Urteil. Untersuchungen zur Geneologie der Logik)을 읽는 것이 좋다. 후설 현상학을 흔히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으로 구분하는데, 이 책은 발생적 현상학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지각 체험에서 일어나는 발생적인 선술어적 과정을 지평, 주의, 관심, 욕망, 기억, 몸 등의 개념들을 통해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논리학적인 술어적인 구조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를 고찰하는 책이다. 이 책 역시 이종훈 교수에 의해 『경험과 판단, 논리학의 발생론 연구』(민음사, 1997)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이와 아울러 『현상학적 심리학 강의』(신오현 역, 민음사)를 읽게 되면, 후설의 후기 사상으로 넘어가는 대목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Phanomenologische Psychologie. Vorlesungen Sommersemester 1925]이다. 아직 번역은 되지 않았지만, 후설의 후기 사상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수동적 종합에 대한 분석』(Analysen zur passiven Synthesis. aus Vorlesungs- und Forchungsmanuskripten)이다. 이 책은 부정, 의심, 가능성 등의 양상들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실제로 일어나는 지각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밝히고, 그 과정에서 지향과 충족, 직관의 유형들, 수동적인 지향과 수동적인 종합, 연상 등을 발생적인 지각 과정을 분석해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 지점에서 특별히 지적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특히 자신이 본격적으로 철학 연구에 일생을 바치고자 할 경우, 반드시 원전을 읽을 수 있도록 어학 공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후설 현상학, 또는 현상학의 연구에 나름대로 일생을 바치고자 한다면 우선 후설의 저작들을 원전으로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 번역본들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원전의 깊은 뜻을 번역본들이 제대로 새겨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 저자의 사상에 대한 해석 입장에 따라 동일한 개념이나 문구 혹은 문장이 전혀 다르게 번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만약 번역본에만 기대어 공부한다면, 그 번역본을 낸 역자가 원전을 해석하는 입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꼴이 된다. 요즈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전문으로 하려는 학생들이 원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원전을 읽는 세미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번역본은 참고만 될 뿐 그 자체 원전처럼 여겨질 수는 결코 없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제 이렇게 후설 현상학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가 되고 나면,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혹은 메를로-퐁티 혹은 데리다나 레비나스 등의 사상가들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상학 대가들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감해 보려고 한다거나, 어느 현상학 대가 예컨대 하이데거에 집중해서 연구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연구를 전략상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전숙 교수님의 『현상학』과 후설의 『이념들 I』또는 『데카르트적 성찰』을 읽는 정도로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후설 현상학과 메를로-퐁티 현상학 연구에 경도되어 있는 탓에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연구에 관해서는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이에 관해서는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하이데거 사상에 관해서는 박찬국/이수정 두 교수가 쓴 『하이데거. 그의 생애와 사상』(서울대학교출판부, 1999)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하이데거의 전기와 후기 사상을 아주 읽기 쉽게 잘 쓴 책이다. 그런 다음 『존재와 시간』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다. 그 중 소광희 교수님께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번역을 위한 세미나를 거쳐 내놓은 번역본이 좋다. 이 책을 어느 정도 소화하고 나면, 혹은 읽는 중에라도 하이데거의 사상적 글쓰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예술철학의 근원』(오병남/민형원 공역, 예전사)을 읽기를 권한다. 필자도 이 책의 원전들을 읽은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역자들이 나름대로 하이데거의 예술에 관한 중요한 문헌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목마다 후기 하이데거의 깊은 사유가 배어 있다.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에 관해서는 『기술과 전향』(이기상 역, 
사르트르 사상은 물론 『존재와 무』(손우성 역, 삼성출판사, 1977)을 읽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신오현 교수님이 쓴 『자유와 비극 - 사르트르의 인간존재론』(문학과지성사, 1979)를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사르트르 사상 연구에 불을 지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아더 단토의 『사르트르의 철학』(신오현 역, 민음사, 1992)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사르트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사르트르가 극단적 이원론자로서 그리고 총체성에 의거한 관념론적인 변증법자로서 취급되면서 특히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외면당한 것이 큰 이유인 것 같다. 
후설의 순수 현상학에서 하이데거 실존론적 현상학을 거쳐 메를로-퐁티의 구체적인 현상학으로 넘어오게 되면, 의식 중심의 현상학이 몸 중심의 현상학으로 정확하게 바뀌게 된다. 메를로-퐁티 현상학에 관련해서 읽어야 할 후설의 저작으로 우선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I』를 읽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앞서 지적한 후설 후기 사상에 관한 책들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메를로-퐁티 현상학에서 중시되는 몸, 지각, 지평 등에 관한 발생론적인 탐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제 메를로-퐁티의 『행동의 구조』, 『지각현상학』,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눈과 정신』등의 순서로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중 『지각현상학』과 『눈과 정신』을 제외한 다른 두 책은 아직 번역이 되지 않고 있다. 번역된 것들도 약간씩 문제를 안고 있다. 『눈과 정신』은 오병남 교수님께서 편역한 『현상학과 예술』(서광사, 1987)에 포함되어 있는데, 영어로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각현상학』은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본 잡지 <아카필로> 다른 글에서 밝힌 것처럼 오역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메를로-퐁티 사상을 원전을 통해 접하게 되는 데에는 이들 역서들이 정말 긴요하다. 아울러 메를로-퐁티 저작 중 그의 여러 발표 글들을 모은 책인 『의미와 무의미』(권혁면 역, 서광사)는 메를로-퐁티의 사유의 일단을 포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트앤스터디 강의노트 (www.artnstudy.com)
2. 현상학 공부의 기초

현상학 공부의 가장 큰 특징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현상 자체가 공부의 근본 텍스트가 된다는 점이다. 후설은 에포케(판단중지)를 하기 위해서는, 즉 현상학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모든 사상들을 괄호로 묶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제 스스로의 눈으로 주어지는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치고 들어가 분석 또는 종합의 칼을 들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직관적인 사유의 차원을 풍부하게 하고 깊이 있게 해서 숨겨져 있는 현상의 본질적인 구조들을 찾아내어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상학적 사유를 강화하고 높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향적 분석력이다. 지향적 분석은 주어지는 현상을 그저 그것을 지각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혹은 우리 인간들 자신)과 처음부터 무관하다고 보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저기 바라보이는 풍경이 있을 때, 그것이 나의 봄(vision)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아울러 나의 봄이 저기 바라보이는 풍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럴 경우, 그렇다면 나의 봄과 저기 보이는 풍경이 도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문제의 얼개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봄과 보임의 관계로, 나아가 만짐과 만져짐의 관계로, 나아가 생각함과 생각됨의 관계로, 또 더 나아가 봄과 생각함과 존재함의 삼자 관계로 문제의 얼개들이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발전하여 전체적인 문제의 얼개로 연결되고 열려지는 일이 없이 이루어지는 사유는 도대체 철학적 사유가 아니다. 
요컨대 현상학적 사유는 나의 봄에 나의 생각함에 나의 존재함에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태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함으로써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상학적이라 한다. 예컨대 눈으로 보는 지각을 생각해 보자. 내가 몸을 움직이니까 저쪽에서 주어지는 휴지통의 모습이 바뀐다. ‘어라! 이건 뭔가 중요한 일일세.’라고 느끼면서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가 저 휴지통의 전체 모습을 결코 단 한번도 한눈에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런데 나는 저 휴지통의 전체 모습을 모른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내가 직접 볼 수 있는 저 휴지통의 모습은 분명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부분적인 모습인데, 어떻게 해서 저 휴지통의 전체 모습을 안다고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일까?’, ‘그러고 보면, 그저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과 생각을 통해 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 아닌가?’ ‘저 휴지통의 전체 모습은 직접 눈으로 볼 때 주어지는 부분적인 모습들에 비하면 영속성이 엄청 크다. 그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모습들은 무한 다양한 것들인데, 전체 모습은 단 하나가 아닌가.’ 이를 통해 사물의 변화와 영속성, 사물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물의 지각됨과 존재함 등에 관한 생각들을 일구어 내게 된다. 
또 예컨대 나의 몸을 쳐다보고 생각해 본다. 우선 내 몸을 생각하는 나가 있다. 그 나가 내 몸을 생각할 때, 주어지는 내 몸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내 몸을 보는 나가 있다. 그 나가 내 몸을 볼 때 주어지는 내 몸이 있다. 나에 의해 생각되는 내 몸과 나에 의해 보이는 내 몸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내 몸을 생각하는 나와 내 몸을 보는 나도 다른 것인가? 애매하다. 내가 내 몸을 보지만 내 몸이 결코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 몸 말고 주변의 다른 사물들은 내가 이렇게 저렇게 돌려보기도 하고, 그 사물들 주위를 맴돌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던 부분들을 볼 수 있는데 반해, 내 몸은 내가 아무리 돌아보아도 죽을 때까지 결코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각하는 주체인 나를 중심으로 해서 볼라치면, 주위 사물들과 내 몸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혹시 내 몸을 보는 나를 나는 보이지 않는 내 몸을 바탕으로 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보는 자아가 팔이나 다리에 위치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결코 내가 볼 수 없는 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보이는 몸은 대상이고 보이지 않는 몸은 자아란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내 몸을 보는 것도 내 몸이고, 보이는 내 몸도 나인 것이 아닌가? 등등. 그저 단순하게 주어진 듯한 현상들을 파고들면서 이런 물음들을 던지게 되면, 물음들의 얼개는 이미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온갖 문제들을 낳는다. 그렇게 되면, 그 문제들을 갖고서 다시 현상들을 분석해 들어간다. 
이처럼 현상학 공부는 무엇보다 주어진 현상들을 바탕으로 물음을 찾고, 그 물음을 담아내는 문제틀을 만들고, 그 문제틀을 통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어가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서 거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거기에 매설되어 있는 본질적인 구조들을 개념들로 정식화해 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언어 현상을 고찰하면 언어 현상학이, 권력 현상을 고찰하면 권력 현상학이, 사물 현상을 고찰하면 사물 현상학이, 물질을 고찰하면 물질 현상학이, 그리고 넓혀서 존재의 현상을 고찰하면 현상학적 존재론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쪼록 현상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친다.
(자료출처 http://www.artnstudy.com/PLecture_new/jwLee04/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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