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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주의, 기독교현실주의, 성경적현실주의 그리고 자끄 엘룰

승리주의, 기독교현실주의, 성경적현실주의 그리고 자끄 엘룰


승리주의, 기독교현실주의, 성경적현실주의 그리고 자끄 엘룰 <2004/05/27>
 김강기명 | 2004·12·23 23:25 | HIT : 881 | VOTE : 187 |
 
승리주의, 기독교현실주의, 성경적현실주의 그리고 자끄 엘룰

승리주의, 기독교현실주의, 성경적현실주의는 기독교가 사회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이다. 승리주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 혹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실현될 수 있으며, 기독교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상의 권세와 죽음을 이겼으므로, 세상의 주권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다고 믿는다. 천년왕국주의자들, 아브라함 카이퍼, 미국의 근본주의 우파, 중세카톨릭 등은 각자의 교리에 있어 상이한 점이 있지만, 교회의 세상에 대한 승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현재의 승리주의자들은 보통의 경우 세상에 대해 ‘전투적’이고 ‘정복적’인 자세를 취한다. 세속적 가르침으로 물들어 있는 사회를 성경적 가르침으로 정복하여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는 왕으로 섬겨져야 하며 기독교인들은 역사 발전의 주체이자, 세상의 주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자들이다. 

그러나 승리주의자들은 세상을 너무나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들의 낙관적 전망과 세상의 현실은 괴리가 있기에 그 간격을 매우기 위해 이들은 율법주의, 형벌주의, 국가주의 같은 일련의 보수적 사상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세상을 지나치게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비기독교인들과의 공존과 소통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된다.(아브라함 카이퍼 등의 신칼빈주의는 이러한 비판에서 살짝 비껴간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현실주의는 세상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본다. 즉, 타락 이후의 세상은 기본적으로 악한 원리에 따라 다스려지고 있으며,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현실 가능한 최대한의 실천을 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기독교적 실천을 세상 가운데서 해야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것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선지자적 비관주의’도 이러한 기독교현실주의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현실주의자들은 성경을 현실의 입맛에 맞춘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실을 택할 때 기독교는 끊임없는 왜곡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말하는 현실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성경적현실주의는 좀 더 세상의 실재적 악을 깊이 사유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의 가르침(이를테면 산상수훈이나 희년)이 ‘교회’를 통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는 세상에 실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성경은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의 관심은 교회 공동체를 향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의 ‘대조 사회’이다. 즉, 교회는 단순한 영적 공동체가 아니며 희년의 가르침이 선포되는 비폭력적인 급진 제자도 위에 세워진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이다. 교회는 세속 사회와는 ‘다른 사회’를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세상 한 복판에서 실천한다. 

전쟁과 군대와 관련하여 세 입장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승리주의적 입장은 군대 역시도 적극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입장은 보통의 경우 국가주의와 결탁하여 자국을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군대는 많고, 강해야 한다. 미국의 근본주의 우파 정치집단이나 중세 십자군은 대표적인 예이다.(물론 모든 승리주의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독교현실주의가 주로 채택하는 입장은 ‘정당한 전쟁론’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군대란 필요악으로 존재해야 하며, 군대의 사용은 신중하게 ‘기독교적 가르침’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부름에 순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신중한 선택이어야 한다.

반면, 성경적현실주의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군대를 움직이는 것 자체를 악한 행위로 여기며, 기독교인들은 거기에 동참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성경적현실주의자들은 군대에 대한 거부를 넘어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평화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전행동에 참여한다. 그것은 교회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세상에서 드러내는 것이며, ‘평화’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위의 세 입장 중 어떤 것을 지지하는가? 뭐라고 쉽게 말하기가 어렵지만 확실히 승리주의는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성경현실주의를 가장 올바른 교회의 실존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하며, 초대교회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또한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담그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성경현실주의의 공동체주의만이 해답일 수 있는가는 아직 나에게 있어서 미해결의 질문이다.

자끄 엘룰은 이런 나에게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레알리즘’은 위에서 언급한 기독교현실주의와는 조금 다른 기독교의 실존방식을 제공한다. 엘룰 역시 성경현실주의의 대조사회적 해법을 올바른 기독교의 모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는, 아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의 긴장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그는 신격화된 세상-세상은 종교를, 자본을, 권력을, 기술(현대사회)을 신으로 섬긴다.-을 거부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는 맑스주의적인 사회학과 아나키즘적인 정치 행동을 채택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복음만이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혁명적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이 복음을 사회학으로 대치하려 해서도 안되며 사회학을 복음화해서도 안된다.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존재는 그런 면에서 ‘대조사회’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엘룰의 사상은 ‘성경현실주의’와 ‘현실’ 또는 ‘복음’과 ‘사회학’의 실존적 변증법인 것이다.(그는 ‘합’을 제시하는 헤겔적인 변증법을 거부한다. 양자는 끝까지 화합하지 않고 긴장하며 존재한다. 심판의 그날까지!) 나는 그의 사회 사상이 한국교회를 위한 건전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료출처 http://www.dawndews.com/zboard/view.php?id=studentcolumn&page=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PHPSESSID=dc5add14ab39df5d4eed75c2f7cf0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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