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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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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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1859-1838
독일사람. 프로이드와 거의 동시대 사람, 전문 철학자.
현상학을 창시 pheonomenologe
19세기초 독일 관념론, 헤겔 철학이 붕괴 하면서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람; 마르크스.
19세기 중,후반의 유럽의 시대 배경; 사회적으로는 세계정복 등을 통해서 유럽은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성적이나 철학적으로는 혼란기였다.-여러 가지 사상이 혼재 상태.
대표적인 사상이 헤겔의 영향을 받은 두 사상
1) 역사주의; <역사는 발전 한다. 즉, 역사의 해체를 주장 하지는 않고 역사를 진보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의 진보는 이념적인 진보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진보를 말함. 경제가 갈수록 좋아진다는 것 등..>
2) 자연주의=과학주의 사고 방식 <모든 것이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둘의 철학 경향은 당시 유럽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다.
후설은 이 두 이데올로기를 모두 비판.
자연주의는 모든 사물을 물리학적인 것과 심리학적인 것으로 나누어 물리학 적인 것에 의해서 심리학 적인 것이 규정된다고 봄. 쉽게 말해 인간의 힘이나 인간적인 요소는 모두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 역사주의 역시 인간주의나 인간 이성활동에 목적을 설정하고 이런 모든 것이 진보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봄. 전자는 자연 과학적 이고 후자는 인문과학 적이지만 모두 실증주의에 입각해 있다.
후설은 실증주의를 비판하는데 전 생애를 바침. 실증주의 극복을 철학적 과제로 삼음.
실증주의는 현상은 잘 설명한다. 그러나 실증주의 자체의 뿌리, 자신의 기반은 명확하게 설명 하지 못한다. 후설은 철학은 가장 철저한 엄밀학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엄밀학이란 수학처럼 엄밀하게 하는 학문. 참고로 후설은 수학자 출신임. (나중에 나오지만 칸트의 인간의 예지계에 대한 경험은 인간 오성의 직관으로 가능 하다고 하는 비 과학적인, 비 실증주의 적인 엄밀하지 못한 설명에 대한 딴지를 건다.)
경험=인식이란 무엇인가? 경험을 경험 이도록 해 주는 것, 경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이냐? 후설은 인간이 사물이나 대상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경이 중의 경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경험=인식 이전의 것 다시 말해 선험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음.
그는 ‘유럽학문의 위대한 선험적 현상학’이란 책에서 매우 근원적인 경험=선험을 추구 하기위해 자신의 철학에 엄밀학을 도입함.
철학사적으로 데카르트가 일차적 경험을 했다면 칸트가 2차적 경험을 했고 자신 후설이 3차적인 경험을 한다고 하였다.
일차적경험;
테카르트는 철학을 하기위한 방법적인 회의. 즉 코기토의 법칙(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란 유명한 명제로 근대철학의 지평을 열었다. 이후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많이 부딪혔다. 영국의 경험론자 들은 ‘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경험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함. 나중에 흄, 버클리등-극단적 경험론이 나옴 예)네가 쓴 글씨를 네가 썼다고 증명해 보아라 같은 거
이차적 경험;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 칸트였다. 칸트는 세상을 현상계와 예지계로 나누고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예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현상계만 인정하지만) 현상계를 인식하는데 경험만이 유일한 원천이라 함.
경험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오성의 기본형식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간과 공간이고, 예지계는 물자체의 공간이다. (사물자체=플라톤 이데아=아리스토텔레스 형상=중세 유명론자 실체론=본원적인 것=인식이 안 되는 것=경험 이전의 것은 예지계에 속하는 것으로, 이런 사물자체는 이해 할 수 없다. 예) 앞집 개, 뒷집 개, 진돗 개, 땡칠이는 이해 할 수 있어도 이 모든 것들의 종합인 개의 본질 자체는 이해 할 수 없다.
칸트는 ‘모든 것은 현상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여기고, 반면 예지계의 것들은 인식 자체를 포기 함으로서 완벽하게 이원론을 주장함. 이 이원론이 실증주의의 싹이 된다.
실증주의;
영국의 경험론에 가장 큰 뿌리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안 믿음.
19세기 중반까지의 자연 과학적 태도를 지배한 흐름.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적 무기는 사물의 대상화 임.
대상화; 나(인식하는 주체)와, 사물(인식하는 대상)의 관계 방식->나라는 존재는 사물이란 존재를 인식 한다. 나는 대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존재. 주체인 내가 사물을 대상화하고 사물을 관찰, 경험을 하고. 사물을 이론화하는 것->실증주의적 태도. 대상화는 지금도 과학의 방법으로 많이 쓰이고. 또 사물을 대상화하는 방법론은 지금도 근본적인 비판을 하기 어렵다.
실증주의자들은 딴지를 잘 건다. 실험으로 증명해 봣냐? 직접 보았냐? 해봤냐? (그 책) 읽어 봤냐? 등등.. 그래서 독일 관념론은 실증주의(주로 영미 철학자)하고 배치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은 실증주의와 친화력 있음). 흄 같은 사람도 당시 남들은 당연시 하는 것에 딴지를 거는 등 철학적 인간성은 별로 안 좋았다. 사실 네 노트의 글씨가 네 글씨라는 것을 증명해 봐라! 실증해라! 라고 물으면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설명하기가 어렵지 질문하기는 쉽다. 그런 관계에서 실증해 봐라!라고 묻는 것은 얄밉다. 어쨌든 경험론자들은 독일의 관념론자들을 싫어 한다
삼차적 경험
후설은 자연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신이나 인간을 설명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성향에서 출발한다. (후설은 이 말을 명확하게 설명 하지는 않았고 이 말은 나중에 실존철학자 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현상학은 나중에 실존철학과 연관이 된다.)
후설은 확실하게 인간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인간 의식이나 인식을 자연과학주의로 설명하는 것에 굉장한 적의를 나타낸다.
어쨌든 이 자연주의 라는 것은 후설이 죽을 당시 까지도 철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가, 그가 죽고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확실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 한다.
자연주의 비판;
19세기 후반에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고, 트로이가 발견 되는 등 인간학 인류학 고고학 등 학문이 생겨난다, 1870년대 당시에는 제국주의의 시대가 한창인 때인데 유럽이 자신들의 문명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시기이다. 더불어 지식인 사이에 다른 세계의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다. 아프리카 유적의 유물, 토산품을 사 모으는 것이 유행 하고, 오리엔탈리즘의 싹이 생긴다. 이런 시대배경으로 인하여 자연주의를 비판하기 시작 한다.
참고)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하여; 서양이 동양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아니고 단순한 지적 호기심정도로이해 하여야 한다. 미국에서 한자 우리말이 들어있는 티 셔츠, 젠 티셔츠가 팔리는 것에 기분 좋을 필요는 없다. 사물놀이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 된다고 우리 것이 서구에도 보편적 메시지로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저 동양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거리(오리엔탈리즘)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오리엔탈리즘을 잘 이용해서 르까르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 실제로 그 영화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애매한 영화-> 동양의 신비감을 자극
19세기 유럽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 자신감이 배경이 되어 3세계 문화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임 예)자포니즘; 모네-마누라한테 게이샤 옷을 입히고 그림을 그림, 고호-일본의 판화를 그대로 흉내내 그림. 특히 인상주의자들은 일본 예술에 대해 광분함.
어쨌든 고고학과 더불어 이런 것들이 지적 토양이 되어 인간학의 발달에 영향을 미침.
후설도 인간을 실존적으로 생각을 하였고 자연주의=실증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의 인간에 대한 실존적 사고에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실증주의에서 가장 확실한 특징은 주관과 객관의 분리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실증주의는 많은 자연과학적 성과를 낸다. 주관이 객관을 과학적 분석 관찰하면 객관을 파악 할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객관은 완전히 파악 할 수 있다.
예)파스퇴르 ‘주관=나, 객관=대상=병균. 내가 병균을 관찰하고, 파악하면=인식, 병균을 억제 통제 할 수 있다.’는 식의 인식,
후설은 테카르트가 주관과 객관을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오류를 지적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철학다운 철학이 시작 되었지만, 이 말에서 보듯이 의심하는 ‘나’, 회의하는 ‘나’만은 의심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는(=주체) 응고화 결정화 실체화 된 ‘나’이다. 이제 까지는 ‘생각하는 나, 의심하는 내가 있고, 그런 내가 세계를 경험(인식)한다’라는 사고방식으로 발전 했다. 데카르트는 대륙의 합리론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실증주의는 영국의 경험론자와 친화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주의의 기본적 뿌리는, 테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의심한다.’.에서 생각하는 나, 의심하는 나를 실체화 시킴으로 대상과 나를 완전히 분리시킴 그래서 내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의심하므로 나와 대상이 완전히 나뉘어 지게 된다.
이렇게 나(=주관)를 응고화 시키고 실체화 시킨 것이 실증주의의 기본적 잘못이라 보았다. ((이 대목에서 객관(대상)은 응고화 객관화 된 사물이 명백함으로 논란의 여지 없음))
이것은 한창 실증주의가 잘 나가고 있던 18세기에 주장 하였어도 씨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그러나 19세기만 해도 이런 실증주의적 자연 과학이 흔들리기 시작 한다.
‘(현미경이 발달 하면) 주체는 객체를 100% 관찰이 가능하다’ 에서 -> ‘모든 관찰은 이론이 게제된 관찰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선입견, 관이 개입된 관찰 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우리는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 만 본다.’ ‘(실증주의적 관찰은) 굉장히 엄밀하고 객관적 관찰 같지만 근본적으로 이론이theory 내재ladden되어 있는 관찰을 할 수 밖에 없다.’ 등등의 문제가 19세기 중반부터 지적되기 시작함.-> 인간의 주관은 인식 할 수 없는 객관인 예지계(이데아 같은 거)를 파악 할 만큼 완벽 하지 않다.->후설의 이론이 먹힐 수 있는 배경이 형성 됨
그럼 후설은 이런 주관과 객관을 어떤 관계로 설명 하느냐? 이것이 후설이 평생을 걸쳐 설명하는 현상학의 중요한 테마가 된다.
실증주의나 후설이나 객관(코기토=인식하는 주체=subject)은 사물의 존재 이므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단지 주관이 문제가 되는데 실증주의자들은 주관과 객관이 존재하는 방식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즉 주관과 객관 모두 실체와 되어있다. 그런데 실증주의자 들이 주장하듯 주관이란 것이 닫혀진 실체 응고화 된 실체라고 보면 해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 그래서 후설은 주체에 志向性의 개념을 내세운다. 의식-주체는 志向点을 가지고 있다. 의식-주체의 존재 방식은 사물,사건-객체의 존재 방식과 다르다. 의식이라는 것은 사물,사건을 인식=경험 하는 것인데, 경험하는 주체와 경험되는 주체의 존재방식이 똑 같을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의식은 그릇이고 사물은 그릇에 담기는 내용에 해당 된다. 그릇과 내용물의 존재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즉 ‘의식은 그 자체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의식은 항상 어떤 사물/사건에 대한 의식일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한다. 즉 의식은 실체가 아니다. 여태까지는 응고화 된, 결정화된, 크리스탈라이즈 된, 완전 무결화 된((가치적인 의미에서 완전 무결 하단의미가 아니라 하이데거의 즉자적(그 자체로 존재 한다는)이란 의미)) 실체가 아니라 대자적인 존재이다. 의식은 사물을 지향하므로(=주관은 객관을 지향하므로)써 존재하는 것이지 의식 자체로만 순수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의식은 결정화 된 닫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기본적으로 미완성된 존재이다.
이것이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데카르트나 영국 경험론자들 모두 의식이 미완성된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칸트만이 이 문제에 대해 의심하였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의 고민은 주관이 객관을 의식=인식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경험(주관)이 객관을 인식 한 결과가 ‘참’이란 것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같은 경험론적 고민 이었는데, 이에 대하여 칸트는 ‘인식할 수 있는 객관이 있고 인식 할 수 없는 객관이 있다.’라고 설명. 결과적으로 칸트는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한 것으로 생각하나 후설은 이건 해결이 아니라 회피한 것이라고 함. 왜냐하면 칸트 역시 (응고화 된) 의식하는 주관자체는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
후설은 의심하는 나(=주관)를 최초로 의심한 사람이고, 칸트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향성으로 설명 한다. 의식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지향성에 있다.
칸트는 지향성이라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관이 객관을 의식(인식)하는 방식을 다음처럼 설명 한다. 즉 예지계와, 현상계를 인식 하는 것이 참이란 것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오성에 인식의 형식(시간과 공간)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주관은 직관적으로 객관을 인식 할 수 있다(=순수직관으로 객관을 인식)’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주관과 객관의 문제를 해결 했다고 보았다. 칸트는 인식의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사물의 본질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후설의 지향성이란?
서양철학의 근본적 문제는 (플라톤, 데카르트, 중세의 유명론, 칸트… 모두) 인식=경험이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 것은 참인가? 참인 것을 어떻게 보장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이어져 내려온 명제이다. 왜? 서양 철학은 보이지 않는 것의 진리를 찾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리스 사람들 이었다. 예)세계의 본질은 아르케다 - 물이다, 불이다 등등- 이렇듯 ‘눈에 보이는 현상계의 배후에 있는 것이 진리다’ 라는 막연 한 생각에서 철학이 출발했다. 기독교도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인간의 경험으로 잡히지 않는 뭔가-하나님 같은 거-가 있다. 이는 같은 시기 중국의 철학자들과 너무 다른 생각이다. 중국은 세상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도’라 할 것인가?하는 등 동양은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의 철학을 한 것에 비해 서양철학은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플라톤의 이데아, 기독교의 하나님 …- 인간이 어느 만큼 인식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인간이 인식 할 수 있는 한계인 주관과 그 너머 인식 할 수 없는 객관인 절대자의 영역, 물자체 이데아의 세계인 객관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한 사람이고 칸트이고, 섯부르게 매개한 사람이 헤겔 같은 사람이다. 지난 1500년간 서양철학은 이 문제 안에서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탁월한 해결책을 냈다고 할 수 있다. 후설은 인식할 수 있는 영역만을 다루고 인식 할 수 없는 영역은 포기했다. 그러나 칸트처럼 ‘오성으로 직관적 인식이 가능하다’ 가 아니라, ‘인식 할 수 없는 물자체로서 숨어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 한 것은 당연 한 것으로 여기고, 다만 인식 할 수 있는 세계에서의 앎이 참이냐? 우리의 인식이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제대로 담아 냈느냐? 이것 만을 논의 하였다. 주관과 객관이 모두 실체화 되어 있고 응고화 되어있다고 가정 하면 우리 인식이 참이냐에 대한 대답이 불가능 하다. 예를 들면 흄 같은 극단주의 자가 ‘네가 쓴 글씨를 네가 쓴 것 이라고 증명해 봐라 라고 하면 할 말 자체가 없어진다.
그래서 후설은 지향성이란 개념에서 주체와 객체 모두가 우리의 의식 내부에 들어와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든다면 강아지가 있는데 이 강아지의 물자체, 이데아가 이미 내의식 속에 들어와 있고 이미 들어와 있는 이 것만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현상학 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후설이 말하는 현상phoenomena이란 본질을 완전히 배제한 껍데기 같은 것 이라기보다, “칸트가 말한 사물자체(이데아, 예지계)는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눈을 가져라 라는 것 밖에 안 된다. 철학은 이데아나 예지계의 인식을 살짝 포기하고 사물 자체가 주는 메시지(개별 사물의 실체에 살짝 드러나서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이데아) 즉 우리 의식 속에 들어온 객체의 현상을 말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함
후설은 주관(=인식하는 나)과 객관(인식할 수 없는 사물=이데아= 예지계)의 일부를 하나로 묶었다.
예)세상의 모든 실체로서 개 안에는 개의 이데아가 있으며, 우리는 어떤 개를 보던지 그 안에 들어 있어서 우리에게 살짝 보여주는 이런 개의 이데아를 인식하고 개로 판단(경험) 한다. -> 즉 우리는 우리 의식 안에 들어온 개의 현상을 통해 개를 인식 한다. -> 즉 객체의 현상을 이야기 한다.
후설은 이 현상이란 말을 사용하므로 사물자체(이데아,예지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 나게 된다.
물자체=이데아가 살짝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현상 그런 것을 객체라고 말 한 것이다.
그래서 주체란 것이 (요철의 오목한)’요’ 모양이라면 객체는 (요철의 볼록한)’철’ 모양이 라 설명 할 수 있다. 이렇게 ‘요’모양-주체-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뭔가 끼워 맞춰 져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구를 맞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지향성의 개념이다.
주관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뭔가 끼워 마추어져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의식 속에 살짝 이데아가 들어와 있고 거기에 지향성의 개념을 도입 하니 주체와 객체가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 한다.->주체와 객체는 완전히 독립되어 서로 떨어져 있고, 주체가 객체를 관찰, 인식 하는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 -> 지향성의 개념 하에 주체와 객체는 살짝 하나로 묶이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원론적인 색체를 타파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상태다.-> 그래서 이것을 사유라는 의미에서 ‘노에시스’라고함(이 용어는, ‘주체’라는 말 대신 사용 함으로 객체로부터 완전하게 분리 되어있는 의미에서 ‘주체’란 의미를 피해 가겠다는 의도에서 사용 하게 된다.) 또 사유되는 것이란 의미에서 노에마’라고 한다. 즉 노에시스란 주체는 주체이나 그냥 주체가 아니라 현상학적 주체다. 또 (상대적으로) 객체 역시 현상학적 객체로 이해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라는 것이 영원히 같은 식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간다면 풀 수 없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단 초월하고 서양철학을 2000년 동안 괴롭혀 왔던 (이데아, 물자체, 기독교의 신 같은) 인간의 경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수용 할 것 인지에 대한 어법을 개발 한 것이 아니고 의식 속에 살짝 들어와 있는 현상자체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현상 속에서의 노에시스(현상학적 주체)와 객체는 과거처럼 분리된 딱딱하게 응고화 된 주,객체가 아니라 상당히 소프트 하고 말랑말랑 한 것으로 본다.
판단중지;
사건((철학적으로는 사물도 사건(=event=객체)으로 본다))은 주체를 사랑하지 않지만. 주체는 사건=객체를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 이다. 주체는 영원히 결핍된 존재이다.
후설은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적인 존재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인습이라 하고 이 인습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에겐 인습적으로 주체와 객체로 나누어 사고를 하는 경항이 있는데 이런 인습을 깨야 한다고 한다. 이 인습을 깨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판단중지라고 말한다.
후설 왈 우리는 (인식과 경험의 기본 구성인 주체와 객체에서) 객체를 자기(주체)와 분리시켜서 보려는 자연 주의적인 (운명적)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문명에서 나온 습관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본연의, 문명 이전의 인간으로 돌아가서 먼저 객체를 규정 하려는 태도를 판단을 중지(데포케) 하여 지향성이 배제된 사고를 하라고 함. -> 그렇게 해야만 주체와 객체의 본원적인 관계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함.
김춘수의 꽃에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그는 다만 하나의 몸 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가 후설과 현상학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꽃을 의식하기 전 까지는- 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김춘수가 꽃을 인식 하기 전에도 꽃이란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의식 속에 박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빈 들판에 홀로 핀 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것은 (내게)의미가 없는 것이다. 후설이 말한 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에게는 빈들에 홀로 핀 꽃이나, 내가 마당에 가꾼 꽃이나, 화병의 꽃이나 모두 등가적인 가치가 있지만. 현상학에서는 인간의식에 포함하고 있지않은 꽃(가치)은=예지계, 이데아, 하나님….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후설의 현상학적 객체와 실증주의적 객체는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관념론 임에도 불구하고 (관념론은 탁상공론 같은 면이 있는데도) 여기서 나온 주체의 이미지가 실증주의 경험론에서 나온 실사 구시 같은 객체의 이미지 보다 훨씬 실천적인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매우 실천적인 냄새가 난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실천적이고 실용적이란 개념이 바뀐 것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자연주의는 모든 사건(=객체)의 자연주의적 객관적 관찰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 하지 않았는데 이런 관점이 변하기 시작 하는 것이 19세기 후반의 과학적 태도이다. -> ‘관찰이란 과정이 단순 한 것이 아니다.’ ‘좋은 현미경을 만든다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증명된다. -> 그래서 독일 관념론 이란 것이 관념적이지 않다.
2500년 동안 서양 철학에선 사물의 본질 이 있느냐 없느냐? 그 본질을 인식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인식이 참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팽팽한 씨름을 했는데 후설은 이것을 타파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타파 했다고 믿는다. 즉 인습적인 태도를 버려야 하고 이 인습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이 판단 중지 란 것이다.
괄호치기
후설은 수학자답게 ‘주체를 x 객체를 y로 하고 이 둘을 괄호로 묶어(x+y)라’ 라고함.
이렇게 둘을 하나로 괄호를 치고->자연주의적인 인습을 극복하고->지향성을 통한 현상학적 주체가 현상학적 객체를 인식하는 것이->선험적=초월적인 인식이다.
다시 말해 주체와 객체를 실증주의적으로 보지 않고 두 항을 하나의 항으로 괄호를 치고=인습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나누려 하는 현상학적 사망=판단중지 시키고 원래의 의미로 돌아가는 현상학 적 환원(=x와 y를 한 항으로 파악) 할 수 있는 인식이 참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가능 하면 현상학적 인식이 된다.라고 함.
지향성=괄호치기= 현상학적 사망=판단중지=현상학적 환원은 모두 같은 말
후설은 ‘일상 생활에서도 이렇게 인식 해야한다.’라고 하며 현상학적 분석 태도를 생활 주의에 까지 밀고 나간다. 그러나 판단중지를 하라는 것은 철학적 훈련을 쌓으라는 것인데, 쉽지 않다. 지향성의 개념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헤겔에서 형이상학이 완성 되었다고 하지만 (경험을 경험이게 해주는 선험적) 인식론에서는 후설이 더 끝까지 밀고 나갔다고 할 수 있다. 후설 이후 아직 까지 근원적이고 선험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철학 풍토는 오지 않았다.
후설은 인식의 참을 추구 하는 마지막 철학자다.
니체는 ‘참이란 것이 뭔 놈의 참이냐?’ 라고 빈정거리지만 후설은 정말 진지하게 참(=진리)을 마지막으로 몰고 나간 철학자 다운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경계선에 살았다. 이미 근대와 탈 근대(탈 현대)에 살았던 철학자이고, 모더니즘의 최고봉이고 마지막 끝 자락을 잡고 있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초를 연 사람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상학의 신세를 굉장히 많이 진다. 현상학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탈각시켜 버리면 구조주의가 나온다.
후설의 직계제자 ->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직계 제자->데리다. 후설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공교롭게 마르크스 헤겔 후설 모두 유대인임
현상학의 주체와 현상학적인 객체(주체가 짝사랑하기 딱 좋은 살짝 우리 인식에 들어와 있는 객체)가 있는데 참된 인식을 얻는 구조에서는 객체(칸트의 물자체 이데아…)가 있는지 없는지 중요하지 않다. 주체가 짝사랑하기 딱 좋은 이것이 살짝 인식에 들어와 있는 현상학적인 객체로 경험은 어떻게 가능 한가? 어떻게 그 경험을 경험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을 후설식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면..
예를 들어, 원뿔을 원뿔이라고 하는 물자체를 생각 하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다양한 원뿔이 있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의자도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의자가 있다. 다양한 의자를 의자로 알 수 있는 것은 이데아 의자를 모방한 의자가 때문에 의자로 아는 것이다.’이고, 칸트의 말은 ‘물자체를 누가 알 수 있냐? 물자체는 물자체의 어법이 나올 때까지 거론하지 말자’이다.(포기)
이렇게 사물자체의 개념이 생길 때 철학이 어려워 지는 것이다.
후설은 플라톤 같이 ‘원뿔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원뿔로 인식 가능하다.’가 아니라, ‘원뿔을 원뿔이라 증명하라면 할 방법이 없다. 단지 우리는 원뿔의 삼각형과 원의 모습을 다 알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인식 속에 들어와 있어서,-> 이런 경험을 조합하여->그 현상학적 객체를 원뿔이라고 인식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견해이다.
같은 시대엔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피카소(1879- )는 큐비즘=입체파를 창시.
1900년대 초창기에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사람의 앞 모습, 옆 모습 등을 한 화폭에 섞어 그려서 얼굴을 이상하게 입체화 시킨다. 그가 사람을 이렇게 이상하게 그린 의도는 이렇게 그린 그림이 ‘더 사실적이다.’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각형과 원을 조합해서 원뿔로 인식 하는 것 과 같이, 사람의 옆 모습, 앞 모습 등을 조합해서 한 화면에 넣은 그림이 더 사실 적이고 사물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의 시기가 바로 후설의 시대이고 피카소와 후설이 서로 알지는 못했을 텐데 같은 시대에 활동한, 같은 식의 정신세계라는 것은 이처럼 놀랄 만큼 유사성을 보인다.
구조주의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후설이 창시한 대륙의 현상학=실존철학과, 영미의 논리실증주의=언어철학=분석철학이 서구 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1900년부터 1950년대까지 50년간 이어져 온다.
언어철학 분석철학은 실증주의를 극복 했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철학의 과제를 인식 불가능 한 것에서는 찾지 않았다. (현상학과는 대척점으로 갔는데) 즉 이천년 동안 철학은 큰 착각 속에 있었다.-> 삶이란 무엇 인가? 인식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식의 쓸모 없는 철학적 문제의식이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의 일상 언어가 잘 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많이 제기 했다-> 언어분석을 함->비트켄슈타인 진위표를 만들어 언어 분석. 일상언어 자체가 (참과 안non참으로) 혼용 되어 있기 때문에 쓸데 없는 질문이 나온 것 이다. 그래서 언어철학은 ‘참과 안non참이 혼용된 언어에서 더 이상 철학적 문제를 삼으면 안된다’라고 함-화이트헤드 같은 사람들-
우리나라에는 현상학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실존철학이 들어 왔다. 우리나라의 70년대 까지 사회운동의 이념도 실존주의였다. ->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경향, 개인적 결단을 요구.-> 사회운동에 투신하는 것도 개인적인 결단에서, 운동도 투신 분신 등의 방법으로-> 80년대 맑스주의가 도입 되면서 실존주의가 극복되고 개인적 결단으로 사회운동을 하지않음 -> 그러다 보니 인성론이 많이 문제가 됨.
(실존 철학자 야스퍼스, 키엘케고르) 실존철학이 가장 실존철학적으로 된 것이 현상학과 결합 되면서부터다. 하이데거에와서는 실존 철학은 현상학에서 이론적 기반을 얻고 현상학은 실존철학을 통해 현실에 참여 하게 되는 동업구조가 벌어짐
포스트모더니즘, 큐비즘은 모두 현상학적 인식이 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thomasleigh/11655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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