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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기독교세계관

[소비의 사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비의 사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비의 사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김유하  |  webmaster@veritas-a.com
[58호] 승인 2009.03.11  21:04:46
[필독서 따라잡기]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이상률 옮김∙문예출판사)
사물에 덧칠된 기호를 소비하는 소비사회의 매커니즘을 고발
소비의 소외문제, 물신으로 전락한 육체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20세기 서양 철학계의 큰 흐름이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성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1929년 프랑스 랭스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브레히트, 마르크스 등의 저작을 번역하기도 했다. 1958년부터 1966년까지 프랑스 국립고등학교인 리세에서 독일어 교사로 근무했다. 1968년 낭테르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 논문 <사물의 체계>를 발표한 이후 동대학에서 1987년까지 교수로 지냈다. <사물의 체계>(1968)를 시작으로 <불가능의 교환>(1999)에 이르기 까지 3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고 그 가운데 <소비의 사회>(1970),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1981)은 현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 사이버 문화의 매커니즘을 꿰뚫는 이론을 제시해 반향을 일으켰다. 2007년 3월 7일 지병으로 보드리야르가 타계하자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주 독자층인 ‘리베라시옹’은 그의 죽음을 톱기사로 다뤘다. 
 
보드리야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경제가 재건돼 부흥을 이뤘던 60년대 후반 학자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다. 프랑스 ‘6.8혁명’(1968)은 보드리야르의 사상적 지향점을 밝히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6.8혁명은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에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저항한 운동으로 현재의 자유분방한 프랑스의 모습을 구축하는데 밑그림으로 작용한 사건이었다. 또한 전 세계로 민주화 인권수호 운동을 전파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암기식 주입식 교수법과 열악한 대학 환경에 염증을 느꼈고, 드골정권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반발했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피로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6명의 대학생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무실을 습격했고 전원 체포됐다. 동료들의 처분에 반발한 8명의 대학생은 낭테르 대학 학장실을 점거했고, 정부는 무장경찰을 투입해 학교를 폐쇄했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환멸을 느낀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인권, 평등, 박애를 외쳤다. 그 속에 낭테르 대학의 조교였던 보드리야르도 있었다. 
 
이후 프랑스는 이성 간의 자유로운 동거, 낙태와 피임의 합법화, 사제 간 경어 사용이 폐지 등 억압과 절제를 중시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개인을 해방하는 사회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프랑스 지성계도 이성, 계몽과 도덕, 합리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학문에 목마르게 된다. 감정과 욕망의 자유로운 분출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을 받는다.
 
보드리야르는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다. 전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의 사상과 가치, 체계 등을 거부하고 방종 상태에 머무른 것에서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한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우리의 삶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규정한다. 시뮬라크르는 원본에서 벗어나 보다 실재와 가까운 복제품을 뜻한다. 시뮬레이션은 시뮬라크르를 만드는, 이를테면 실재를 시뮬라크르화(化)하는 과정을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1991년 걸프전 당시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주장으로 프랑스 지성계에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잔인한 살육전을 현실이 아닌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그의 선언은, 포스트모던의 현실에선 일상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자신의 학문적 믿음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소비의 연쇄작용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의 구조>는 소비가 현대인의 의식과 가치체계를 형성하고 지배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을 예리하게 분석한 책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사물의 형식적 의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비의 속성과 풍부함의 모순을 고발한다. 2부 ‘소비의 이론’은 에서는 인간의 행복이 계량화되어 소비를 부추기고, 소비가 기호의 차이 의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3부 ‘대중매체, 섹스 그리고 여가’에서는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상관관계를 짚는다.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사용가치에 의해 이뤄진다는 기존 경제학 이론을 비틀어 ‘행복’, ‘현대성’,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소비에 주목한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자본주의 생산체계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상품을 쏟아내고,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소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호가치’의 소비다. 
 
이 책은 보드리야르의 초기 저작이다. 마르크스 이론에 영향을 받고 있지만 나아가 기호학과 구조주의를 응용하고 있다. 소비사회가 인간의 비인간화를 부추긴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산업화의 폐해를 벗어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속에 있다. 
 
보드리야르는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풍부함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파노플리(panoplie)”로 규정한다. 본래 파노플리는 기사의 갑옷과 투구 등 무구를 뜻하지만 현대에는 소꿉놀이, 병원놀이 등 어린이 장난감 한 세트를 가리킨다. 자본주의 생산체계는 소비자에게 견본을 제시한다. 화장에 필요한 스킨, 로션, 클렌징 등을 묶어 ‘세트’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각각의 부속물이 하나라도 빠지면 화장이 불가능하다고 강요한다. 소비자는 어떤 하나의 사물에 손을 뻗으면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사물로 소유물을 확장한다. 소비의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사물과 소비자의 관계가 변했다고 주장한다. 소비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구입하는 형태를 뛰어넘어 단일한 범주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그 특수한 유용성에서 이러저러한 사물과 관계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적인 의미 속에서 사물의 세트와 관계하는 것이 된다.”
 
영화관, 은행, 의료시설, 스포츠 센터, 쇼핑 센터 등이 밀집돼 있는 ‘드럭스토어’는 소비활동의 종합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드럭스토어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교묘하게 조작된 생산체계에 현혹돼 지갑을 연다. “남편되시는 분과 자녀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매일매일의 식료품, 아파트와 전원의 별장을 위한 물품, 의류, 꽃, 신간 소설이나 가제트를 구입하실 수 있으며, 그 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기호의 소비
 


보드리야르는 행복이 평등의 신화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는 사물이 주는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과거에는 출신성분에 따라 평생 소유할 수 있는 부가 한정되어 특정 사물에 접근하기 어려웠고 생산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풍요로워야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어 평등해진다고 보았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과 19세기에 걸친 정치혁명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끌었다. 기계의 출현으로 사물은 대량 생산됐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됐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행복을 “계량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행복해졌을까?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계층간 갈등과 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이지만 소비 사회는 동일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파는 문제, 즉 소비를 유도하는 행위가 중요하다. 이 지점이 보드리야르가 생산보다 소비를 주목한 단초를 제공한다.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현대사회를 규정한다고 본다. 개인이 사물의 풍요 속에 존재하고, 누구나 사용가치 앞에서 평등한 상황이어도 자본주의 생산 체계가 소비를 촉진하려고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재생산해 불평등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장 자체가 불평등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평등한 사회질서, 즉 특권계급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가 자신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전략적인 요소로서 성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상품은 기능이나 필요성 등을 뛰어넘어 사회 구조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희소 가치가 높아 소수 계층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을 규정하는 하나의 기호로써 존재한다. 기호는 나와 남을 구별하는 잣대다. 세계 3대 명문 스포츠카로 일컬어지는 ‘람보르기니’ 를 예로 들어보자. 글자로 이뤄진 ‘람보르기니’라는 말은 ‘기표’이고 그러한 기표가 상장하는 ‘부와 젊음’은 ‘기의’다. 기의는 고정되지 않고 사회적 이해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각각의 기호는 모여서 기호의 질서를 형성한다. ‘값비싼, ‘귀족적인’ 등의 기호가 모여 ‘상류문화’라는 코드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품의 도구적 유용성에만 혹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상품에 덧칠된 의미를 소유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려고 한다. 람보르기니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행위는 차의 성능이 좋아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사람들은 상류층의 사물을 소비해 그들과 같은 계급에 속하는 평등을 추구하면서 자신보다 소비여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자신을 차별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계급적 제도”로 보고 사회적 차이화의 논리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결코 사물 자체를 (그 사용가치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 이상적인 준거로서 받아들여진 자기집단에 대한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서든, 아니면 보다 높은 지위의 집단을 준거로 삼아 자신의 집단과 구분하기 위해서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을 구별짓는 기호로서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물을 항상 조작한다.”
 
이러한 소비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각 기호의 차이는 소비를 유발한다. 수 많은 커피 중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선택하는 것은 몇 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보다 스타벅스 커피가 고급스럽다는 차이에 의한 행위의 결과다. 스타벅스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은 자판기 커피를 찾지 않는다. 기호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닌 기호의 질서다.
 
소비는 “위에서 아래로” –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 전파된다. 희소가치가 있어 상류층에서만 향유되는 사물은 점차 일반화되어 대중에게 확산된다. 루이뷔통 가방은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주고객층이 중년의 귀부인이었지만 현재는 사용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기의가 상품이 보편화되면서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물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상류층은 희소가치가 높은 다른 사물을 소유하려고 한다.
 
소외된 인간
 

“당신이 꿈꾸는 육체, 그것은 당신 자신의 몸입니다” 광고와 쇼인도 등은 개인에게 자신의 육체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도록 요구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개인은 차이를 소비하고 기호를 소유한다. / 뉴시스

현대사회의 인간이 상품(사용가치)이 아닌 기호를 소비한다면, 기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보드리야르는 ‘르시클라주(recyclag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새로운 지식이나 방법을 배우는 ‘재교육’을 뜻한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때때로 적응해야 하는 것으로 주기(週期)가 있다. 르시클라주는 대중문화를 지배한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전원주택은 “유통과정에 재투입된 자연 기호의 소비된 모습된 르시클라주된 자연”이다. 사람들은 전원주택을 친환경적, 여유로운 삶 따위로 인식한다. 사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위협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고 전원주택 자체도 자연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문화는 본래 모습을 숨기고 보기 좋게 포장한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르시클라주된 사물의 모습을 학습한다. 
 
현대의 모든 생산물은 르시클라주의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광고는 소비를 유도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매스미디어다. 최근의 아파트 광고는 화려하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광고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와인을 마시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삶은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소비자로 하여금 그 아파트를 소유하면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셈이다. 보드리야르는 광고의 교활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도처에서 시장의 논리를 ‘카고(Cargo)’의 주술(미개인들이 꿈꾸는 완벽하고 기적적인 풍부함)로 대체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강타한 얼짱, 몸짱 신드롬부터 최근의 S라인 V라인에 이르기 까지 소비사회 속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꾼다. 미용, 성형수술, 날씬해지기 위한 식이요법 등은 소비를 촉진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도한 몰입은 “물신(또는 소비대상)으로 육체를 취급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비사회에 이르러 육체는 “향유의 도구”로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기호로 조작되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책의 결말 부분에서 악마에게 자신의 거울 속 이미지를 팔아 부와 명예를 얻은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프라하의 학생’이라는 1930년대의 독일 영화를 소개한다. 학생은 자신의 분신이 악마에 의해 살아서 돌아다니다가 사람까지 해치자 분신을 제거하려고 한다. 방 안에 있는 거울 앞으로 분신이 지나가자 총을 쏜다. 그 순간 분신은 사라지고 학생은 쓰러진다. 죽은 것은 그 자신이다. 
 
“상(像)을 잃어버리는 것은 세계가 불투명하게 되고 또 우리의 행위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시각도 없는 것이 된다. 이 시각이 없으면 더는 어떠한 자기 인식도 불가능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하나의 타자(他者)가 된다. 즉, 소외된다.”
 
기호의 질서 속에 편입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나는 어떤 사물을 소유한 사람인가’라는 명제 아래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장하는 상황은 인간을 소외시킨다. 상품에 현혹돼 자아와 개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 소비사회의 함정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서 소외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외는 “악마와의 거래의 구조 그 자체, 상품 사회의 구조 그 자체”라는 것이다. 책은 소비사회의 병리에 대한 해결책을 언젠가는 “이(소비의) 하얀 미사(messe blanche)”를 때려부수자는 식으로 뭉뚱그린다. ‘포스트 모던’한 끝맺음이다. 그렇지만 현대 소비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해 경각심을 심어준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보드리야르가 차린 밥상을 어떻게 먹을 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자.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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