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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간서치. | 2010/06/22 15:28 | 100
철학적시읽기의즐거움우리시에비친현대철학의풍경
카테고리 인문 > 철학 > 교양철학
지은이 강신주 (동녘, 2010년)

촛불집회 다중의 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모여들어 자본주의가 가진 직업의 위계가 무력해짐. 직업에 따라 사람들이 차별되지 않았기 때문. 참여자들은 '공통되기'를 경험, 서로에게 기쁨과 힘을 주면서 자본주의가 분리시키고 단절시킨 간극을 극복하고 공통적 연대의 가능성을 맛봄. 기쁨과 행복의 순간 강렬히 경험함. 
스피노자: 기쁨은 코나투스의 증가, 슬픔은 코나투스의 위축. 특정 타자와 마주쳤을때 느껴지는 것이 코나투스. 인간은 자기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타자와 만나고 연대하려고 할 것이다. 연대와 저항이란 나 자신이 우발적으로 얻은 기쁨과 행복을 지속하려는 주체의 노력. 자본주의나 정치권력은 자기 지배하의 사람들의 마주침과 연대의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애씀.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발달된네트워크로 세계화를 시도함으로써 마주침과 연대의 가능성또한 같이 열려버림. 한번 마주침을 통해 기쁨의 연대를 구성해본사람들이라면 그 연대를 가로막는 일체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길수밖에 없음.

네그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주권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함. 주권은 주인의 권리. 선거를 통해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양도하는데 실제로그 권력은 양도불가능한 것. 그게 양도가능한 것이면 대표자 임기동안 우린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해서는 안된다 주어진기간동안 우린 그 대표자를 주인으로 받아들여야만하기때문. 이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는 인드라망 구슬과도 비슷.

 비트겐슈타인: 전기에는 언어의 의미가 지시에있다고 했지만 후기에는 그 의미가 사용에 있다고 함. 같은 말이라도 상황 맥락따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때문

아이히만은 간수가 소설 롤리타를 권하자 다 보고 나서 아주 불건전한 책이라는 말과 함께 인상을 쓰며 간수에게 책을 돌려줌. 그는 일상적 윤리관에 충실한 도덕적 인물로까지 비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렌트의 사유: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이걸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리가 속한 전체가 전체주의적 괴물로 변질가능
전체주의의 위험성 극복방안: 1. 거대 규모 조직 축소 2. 조직 속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항상 사유 

알튀세르: 1980년 아내 교살. 정신착란 상태. 하지만 알튀세르는 82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함.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85년 자서전 씀. 우발성의 유물론.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에서 기인함. 마주침이 다른 마주침을 유발해 원자의 집합 탄생. 
바타이유: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한 욕망을 부여한다. 이 금지가 성적 대상에게 적용될 때 우리가 갖는 열망이 바로 에로티즘. 결혼은 성행위와 존경의 결합된 형태 한 번의 금기위반을 통해 영원히 다른 금기 위반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제도화하는 게 바로 결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걸려드는 내밀한 욕망의 성찰. 시인 유하는 그것을 오징어 집어등에 비유함.
벤야민: 그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할때 연구결과물 하나도 없었다. 사실 벤야민은 이미 자기 연구물을 바타이유에게 맡겨두고 파리를 떠난 상태였음. 나중에 아감벤에 의해 바타이유 문서고가 다시 조사됨
아케이드 프로젝트: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상부구조도 나름의 자율성을 지닌다고 판단.  문화와 관련된 인간의 복잡한 욕망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것. 19세기 파리의 시시콜콜한 일들 집대성. 패션, 박람회, 패션,매춘 도박.. 
백화점: 고가의 상품을 사는 이와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 자본주의적 욕망을 훈련하는 최초의 원형적 공간.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 상품을 자기 체면을 충족시키는 구호로 구매함.
자본주의적 욕망은 선천적인 게 아니라 만국박람회나 백화점 등의 특정 제도를 통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 

레비나스: 전체주의의 기원이 일자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서양철학의 전통속에 이미 있다. 그 일자가 플라톤의 이데아든 하이데거의 존재든. 그런 시도에 맞서기 위해 타자라는 개념 중시. 
전체와 무한: 전체가 나의 의식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알수있다는 입장이라면 무한은 이 세계엔 내 의식으로 알수없는 타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 전체는 오만하며 유아론적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기내면에 머물러있을 뿐이므로. 
기억능력과 기대능력과 지각능력이라는 인간의 내면이 과거, 미래, 현재를 가능케 한다고 인식되었으나 이와 전혀 달리 우리 의식에 전혀 사로잡히지 않는 현재의 존재라는 것도 가능하다. 타자와 마주침으로 인해 시간이 와해된다. 

니체: 망각-불행한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인 힘, 어둡고 우울한 정서의 감옥으로부터벗어나려는 투쟁. 모래성을 애써 쌓고 무너뜨리는 아이는 부서진 모래성만을 기억하면 행복할 수 없을 것. 하지만 다시 만들 수 있다 생각하기에 즐거워할 수 있음. 
관점주의: 하나의 생명체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뱀에게는 냄새, 열로만 구성된 세계가 존재하며 박쥐에게는 초음파로 이뤄진 세계가 존재한다.
낙타: 의무 복종. 사자: 부정과 자유 어린아이: 망각과 창조 , 들뢰즈를 키운 것이 니체

4.19혁명의 낭만주의적 열정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낭만주의적 열정은 오래지속되지 못한다. 독재자를 정치적 열정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면 4.19혁명 주도세력들은 독재자가 재등장할수도있는 주권의 장소자체를 냉정한 이성으로 판단해 폐기해나갔어야 했다.  결국 비어있던 주권의 자리에 독재세력이 들어설여지를 남겨두고말았던것 4.19혁명 주도세력들은 자신들이 권력에 훈육돼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낭만주의적 열정이 시들었을때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혁명을 완수했다는 착각아래 일상으로 되돌아감. 일상으로 돌아가자마자 미시적권력과 싸워야했으나 결국 패배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지배의 논리를 몸속깊이각인시키려는 권력과 싸워야 함
처음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은 간수들이 볼때 안 볼때 행동을 달리하겠지만 그런 복잡한이중행각은 경제적이지 못해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대개의죄수들은 간수가 안보는 상황에서도 복종. 감시의 메커니즘은 어느사이에 죄수내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식
주체의 계보학: 사람들이 어떻게 수동적 주체로 구성되어왔는지 보여주려함

단독자: 단독적인 것은 교환불가능한 것을 의미
타자: 자기 생각과 의도를 좌절시키면서 우리 삶에 개입하는 존재. ex) 학생들은 선생이 진지하게 말해도 웃고 농담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만약 선생님과 학생이 아무 오해없이 알아듣는다면 학생은 이미 학생이 아니다. 
'가르치고-배우는' 관계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규칙과 학생이 말하는 규칙의 차이 때문에 학생이 선생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다. 만약 알아들었다면 선생님이 전제하는 규칙을 받아들였다는 얘기. 대화라는 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을 때 생겨나며 둘다 같은 규칙을 공유하고 있는대화는 겉으로만대화로보일뿐 사실은 그냥 수다. 
고진"타자는 언어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런 타자와의 관계는 비대칭적인 것이다"
공동체: 하나의 언어게임으로 닫혀있다 사회: 두 가지 이상의 언어게임이 마주치는 공간
사랑은 타자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며 내가 정확히 알수없는 타자에 대한 위험한 도약을 감행하는 것이므로 사회에서만 발생한다. 연애가 사회적인 것이라면 결혼을 공동체적인 것.
고진: 트랜스크리틱에서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가르침이 맑스가 꿈꾸었던 코뮤니즘이라고 논증하는 탁월함을 보여줌

박경리, 유치환, 유치진, 김춘구, 윤이상은 모두 통영출신
하이데거: 인간을 다자인, 즉 현존재로 정의함. there-is의 뜻, 어떤 사물을 생각하고 말한다는 건 내가 어떤 사물에 대해 개방돼 있음을 의미. 그의 실존주의는 탈존주의로 번역해야 정확함.  바깥에 대해 열려있는 채로존재한다는 의미이므로.
어두운 방에서 촛불을 켠다고 할 때 촛불이 열어놓은 밝음의 공간이 존재라면 그 공간에서 드러나는것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존재자를 상징함 
방안이 밝아지는 것이 마치 어떤 밝음이 방안으로 건너오는것처럼 보이므로 존재는 '밝히면서 건너오는 것' 또한 밝음 때문에 사물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므로 '밝음 안으로 도래하는 사물들은 각자 스스로를 간직하고 있다' 
존재와 존재자는 서로에 의지해 있지만 동시에 구별되는 것. 존재자의 드러남은 우리가 터-있는(현존재) 존재이므로 드러날 수 있다. 우리가 만일 밝은 공간에 대해 터-있지 않다면 그 밝은공간에서 발견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는 촛불이 연 밝은 공간인 존재를 잊어버리고 발견된 존재자에게만 신경을 쓰기 쉽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 망각의 상태라고 하며 반면 존재자에만 신경쓰느라 사유하지 못했던 존재를 사유하게 되는 것을 알레테이아(망각의 강 레테+알이라는 부정)의 상태라고 한다.
니체와 황동규가 망각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반면 하이데거와 김춘수는 망각을 부정적으로 다룸. 망각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조건임을 생각할때 하이데거와 김춘수가 기본적으로 세상을 변혁하기보다 관조하는데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두석의 성에꽃: 새벽버스안에서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것. 
들뢰즈: 아장스망(배열, 배치) 중시함. 기병은 말과 연결된 군인. 기병은 승마에 익숙하고 그에 맞게 발달됨. 반면 보병은 보병나름대로 발달. 이처럼 군인의 기능 혹은 능력은 동일 상태로 머무는 게 아니라 부단히 변하는 것. 어디에 연결되느냐에 따라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됨.
주름: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흔적 기병의 다리근육은 말과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주름.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보면 낯설어보이는 건 그 친구를 못 만난사이 그가 다른 사건, 인물과 마주치면서 새로운 주름을 만들었기 때문. 그러나 우리는 그 주름을 만든게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지못함 이럴때 우리는 친숙한 친구에게 낯섦을 느낌. 친구의 새로운 주름에 대해 알기 위해 우리는 그 주름을 펼쳐 보아야 한다. 친구의 주름을 펼쳐 보아야만 그 친구와 함께 새로운 주름을 만들수있다. 
들뢰즈는 인간의 사유를 둘로구분. 리좀과 나무. 나무는 절대적 일자를 상징한다면 뿌리줄기인 리좀은 나무와는 전혀 다른 구죠. 땅속에서 증식하면서 다른 뿌리줄기와 연결되거나 분리되거나 하면서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는게 리좀. 
들뢰즈: 철학이란 개념을 창조하는 것. 개념은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그물망 같은 것이기 때문.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무'는 인간에게 주어진 본질이 없고 그 본질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임을 의미. 인간은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존재. 의자가 의자로 머무른 것과 달리 인간은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존재 인간이 자유를 가지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이 때문에 나의 사랑이 타자의 사랑을 강제하지 못함.
존재: 주어진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책상이나 의자
사르트르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 특별한 조건에 얽매이는 사랑은 상대에게 상처를 줌. 공감 이게 내가 원하는 것 
하지만 이는 이뤄질 수 없는 소망. 상대방이 어떤 조건에서도 날 버리지 않길 원하지만 상대방은 자기 자유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연인 사이는 불안. 타자는 언제든 날 떠날 수 있고 나를 보면서도 제 3자를 꿈꿀수있기 때문
애무: 타자의 정신 혹은 자유를 육화시키려는 노력. 내가 타자의 몸을 애무하면 타자는 나의 손결에 정신집중할거고 그걸 몸으로 표현할 것이기 때문. 그 표현이 몸의 뒤틀림이든 신음소리이든. 어쨌든 자신의 육체적 느낌이 몸으로 고스란히 표현되는 순간 타자의 육체는 살로 변함 이 순간만큼은 타자는 나의 손길에만집중해 다른선택을할수없는 수동적상황에 빠짐

서울시내교차로 교통사고 사망자 안내판은 우리에게 슬픔을 주지 않지만 어제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가 죽었고 숫자판이 그걸 말한다면 우린 아무 감정없이 사망자 숫자판을 응시할 수 없을 것이다. 
벤야민의 후원자이자 지지자였던 아도르노의 말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개념의 동일성 앞에서 물러나는 것'-이를테면 하리수의 경우처럼 남녀로 정의될 수 없는 것, 우리의 이성을 당혹스럽게 하는것
아도르노에 의하면 이것이 과거 철학에서 억압당해왔고 그것이 아우슈비츠로 이어짐. 과거 철학에 숨겨져있던 편집증적 억압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맥락.  아도르노에 따르면 앞으로의 철학은 이성, 개념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비개념적인것에 관심을 두어야 함.  이는 프랑스의 해체론적 경향의 선취
자본주의는 동일시의 원칙에 근거. 개별 존재들은 상품으로 변질되며 교환 가능한 존재로 취급됨. 아도르노는 이렇듯 보편자또는 개념에 의해 억압된 개별자 혹은 비개념적인 것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방시키려함. 이는 동일성의 사유를 넘어서려는 것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면 육신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 죽음을 느끼는 순간이 동시에 삶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평상시에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강한 느낌을 의식한적이 별로없지만 죽음에 직면해 그것을 느낀다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데리다: 차이가 모든 것의 의미를 구성한다.
남자라는 개념에는 여자가 전제되어있고 죽음에는 삶이 전제되어있다.
재난현장에서 어떤 사람이 말한 '나는 살아있다'는 표현에는 죽음이 하나의 흔적처럼 새겨져있다. 죽을 수있는 가능성이 전제되지않았으면 이렇게 외치지도 않을테니까.
만약 친구가 전화로 '나는 살았어'라고 하면 십중팔구 무슨일인지 다급하게 묻는다. 이 친구가 죽음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
나는 살아있다는 표현이 순수하게 현전할 수없다고보는게 데리다의 입장. 이 표현에는 조금전 내가 죽을뻔했다는 시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 현재가 순수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과거 미래와 구분되면서 비로소 존재한다. 데리다는 현전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이 강조한 모든 개념들도 절대적 근거가없다고 비판.
현상학은 사태 그대로를 성찰하지만 데리다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해 현상학을 해체함. 후설이 붕괴되면 그를 뿌리로 삼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레비나스마저 흔들수있다.

아감벤 '호모 사케르': 살해는 가능해도 희생으로 바칠수없는 존재들. 이로 지목받은인간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 이는 사회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함을 의미. 예를 들면 종군위안부 노숙자 이주노동자 광주시민 아우슈비츠 유대인등등...
인간은 원래 태어날때는 벌거벗은 생명이었다가 정치화된다. 
벌거벗은생명-정치적존재(조에-비오스) 이를 구분하는 것은 압도적 정치권력. 전자는 보호못받고 후자만 받는다. 자신의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정치권력이 요구하는 주체 형태로 자신을 구성하는 일. 
슈미트는 예외상황에서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이라고 말한바있으나 아감벤은 이게 상례적인 것으로 말함. 
정치권력은 정치적 존재로 훈육될 필요를 각인시켜왔고 외부적 적을 설정해 정치적통합을달성하는 게 쉬운 이유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되돌아가는것에대한 공포감.
고대 민주주의에선 외부의 조에와 내부의 비오스가 적대관계였다면 근대민주주의에선 그것이 한 개체 내부에 함께 각인시키는 식으로 이행됨.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푸코의 생명정치에서 영향을 받음)
조에의 권리 주장과 해방으로 나아가는 민주주의. 그것이 올바로 기능하기 위해선 정치권력이 제안한 정치적존재라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함. 조에-비오스 이분법에 포획되는 순간 우리는 근대 민주주의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됨.

메를로퐁티: 의식에는 반성적인 의식과 비반성적인 의식(육화된 의식)이 있다. 반성적 의식은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않고 그냥 지나쳐버릴때 생겨남 .
 우리가 버스를 지각하는 건 육체가 가진 자연적 능력이 전제되어 있으며 개인적 나의 역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것(그 버스를 이용할수밖에없는 곳으로이사온 사실, 직장결정하는데영향끼친 대학 학과의 선택) 투명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 지각에도 불투명한 육체와 역사가 개입되 있다. 인간은 함몰이나 주름 같은 것.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가 마음의 현상학에 기울어있을때 퐁티는 몸의현상학에 집중.

명동 미쓰코시백화점을 찬미한 이상. 스스로 모던하다 생각한 이상.  그러나 원래 모던은 새로운이란 뜻을 담은 형용사. 
근대사회: 현대사회에 비해 낡은 시대로 이해되지만 모던이란 말은 특정 시대를 가리키는 특수용어가 아니라 자기 삶이 과거보다 새로울때 언제든 다시 쓸 수있는 개념. 
리오타르: 모던이 산업자본과 분리불가능한 것. 산업자본은 기본적으로 시간적 차이, 즉 유행을 만들며 잉여가치를 얻는 체계. 공간적 차이를 이용해 잉여가치를 얻는 상업자본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  새 상품을 만들어 기존 상품을 낡은것으로 만들며 산업자본이 크기 때문에 산업자본은 기존의 가치나 통념 해체하고 새로운세계를 만들수밖에없는 것. 포스트모던 역시 모던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새로움을 반복해야 할 강박증적 운동. 자신마저 낡은것으로 뒤로 보낼 수 있어야 새로움은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단어는 모던이 아니라 포스트다. 이상이 모던 보이인 이유: 새로움에 대한 강박증으로 미쓰코시를 찾고 결국은 동경까
지 갔다.
 
헤겔-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주인과 노예사이에 숙명적인 인정투쟁 전개됨 주인은 노예에게 주인으로 자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과 마찬가지고 자유로운 인격으로 해방시켜야만 함. 노예가 주인과 마찬가지로 자유인이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자발적 존경을 보낼 것이므로.. 그러나 자유로워진 노예가 도망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 발생. 그럼에도불구하고 주인은 노예에게 자유를 줄 수밖에없다. 그럴때에만 주인이 노예에게 진실한 인정을 받을수있는 가능성열리기때문.

루카치-우리는 물화된 세계에서살고있다. 물화란 인간적관계가 사물적관계로대체되는 현상.

호네트-물화를 인정이 망각되는 상태로봄. 망각을 부정적으로본다는 점에서 하디에거같은 보수적관점. 인정투쟁을 중시함. 

우리는 서양 대도시보다 우리의 시골을 더 낯설게 여김-들뢰즈식으로 말해 자본주의 대도시 대의제가 삶의 주름으로 각인되버린 현상.

코나투스의 윤리학: 타자의 기쁨을 위해 내 슬픔을 참아서도 안되고 나의 기쁨을 위해 타자를 슬픔에 빠뜨려서도 안된다. 그런 기쁨은 모두 슬픔으로 바뀜. 기쁨의 윤리학은 모두의 기쁨을 지향함. 자유라는 개념이 어떤의미를 지니는지 분명해진다. 나의 기쁨을 가로막는타자와 싸우고 타자의 기쁨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 자유.
인문학은 바로 기쁨과 자유가 존재이유이자 궁극적 목표
가족 민족 혹은 국가를 위해 기쁨을 희생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발상 등이 기쁨과 자유에 대한 억압.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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