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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3

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3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95 
Francis And Edith
SCHAEFFER
Defenders of the Faith
Sam Wellman
- Barbour Books -
three
1931년 가을, 한 친구가 프랜을 햄프던-시드니로 데려다주었다. 그 대학은 필라델피아에서 남쪽으로 3백 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번잡한 볼티모어, 워싱턴 D.C. 리치몬드를 지나서 와야 했다. 도시에 펼쳐진 햄프던-시드니는 오아시스 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정돈된 잔디밭에는 군데군데 초가을 색을 띤 나무가 있다. 그러나 흰 플란넬 바지와 멋진 유니폼, 갈색과 흰색의 샌들을 신은 학생들의 모습은 프랜에게는 조금 적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들 비싼 가방을 들고 있었다. 돈많은 집 아이들 같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프랜은 그런 새로운 환경에 위축되었다. 그는 기도함으로 도우심을 구했다.
그의 방 배정은 그를 놀라게 했다. “In Cushing Hall(커싱 홀)!”
커싱홀은 그 대학의 본관으로 빨간 벽돌로 된 상자모양의 구조였다. 입구는 원모양의 현관으로 되어있었다. 4층짜리 커싱 홀은 미국식 건물의 훌륭한 본보기였다. 어떻게 프랜이 그렇게 화려한 방에 배정될 수 있었을까? 이제 그는 신이 났다. 그는 캠퍼스까지 데려다준 친구에게 고마워 했고, 그의 짐을 안으로 들여왔다.
그는 건물안의 광경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전탱터 같았다. 벽에는 여기저기 부딪힌 자국이 있었고 페인트도 벗겨져 있었다. 그의 짐을 위층까지 올리는데 꽤 힘이 들었다. 그의 방은 2층이었다. 그는 네번째 통로에 있는 방에 배정되었다. 대 선배 패트가 그에게 인사했다. 패트는 기숙사의 상담 교사였다. 패트는 프랜의 짐 가방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니?” 패트가 느린 말투로 물었다.
“쉐퍼에요.”
“어디서 왔니?”
“필리요”
“그렇군. 넌 이제 신입생이다. 너가 dink라는 사실보다 더 최악이지.” 그는 프랜에게 모자를 던지며 말했다. “ 이 모자 없이 밖에서 나한테 잡히지 말아라.”
곧 모든 사람이 프랜을 “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뜻밖의 사실은 네번째 통로 방에 있는 사람들은 165cm(5피트 6인치)인 프랜을 제외하고 대부분 유별나게 키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곧 명백해졌다. 이 네번째 통로는 운동 선수들의 기숙사였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콧대가 높고 운동선수 특유의 고집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프랜 같은 미숙아를 그런 곳에 있게 한다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프랜이 생각하기에 방배정은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결정된 것이라서 이런 결과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햄프던-시드니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건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그를 빼낼 방법은 무엇일까?
그곳에 있는 동안 프랜은 학생들이 시험기간이 아닐 때는 과음을 하며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방을 다니며 도둑질을 하기도 하고, 벽과 마루에는 탄자국이 났다. 그들이 발포를 한다는 핑계는 고작 바퀴 벌레나 쥐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프랜의 룸메이트인 스너프는 다른 학생들보다 큰 상급생이었다. 그는 프랜에게 늘 한결같이 대했다. Dink로서 프랜은 스네프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스터프가 담뱃불이 필요하면 프랜은 성냥을 찾아야 했다. 프랜이 굼뜨게 행동하면 스너프는 라켓으로 프랜을 쳤다. 그러나 프랜은 스너프가 옷걸이로 때리는 것에 익숙해 졌다. 폭력을 행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목록이 있었다. 그러나 스너프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프랜이 한빰을 맞으면 다른 빰을 돌려데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게 했다. 프랜은 거의 세번정도 맞은 것 같았다. 프랜이 크리스천이고 직업반 학생 출신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양키라는 이유때문이었다. 그 대학의 학생들은 남북전쟁때 양키와 대항해서 싸웠다. 그 전쟁동안 학생들은 공식적으로는 버지니아의 스무번째 연대의 G 중대에 속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아직도 전쟁중인 것 처럼 보였다. 스너프도 그중에 한명이었다. 프랜은 그런 폭력을 견딜 수 있도록 기도했다.
“오, 주님, 저는 지금 시험당하고 있어요. 제가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러나 프랜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캠퍼스에는 많은 dink들이 있었다. 그들은 박해속에서 연합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신입생에 대한 호된 신고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믿음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프랜은 스너프가 언젠가는 그만 때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어느날 출입문에 패트가 스너프와 함께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공부중이던 프랜은 등을 가격당했다. 스너프는 단순히 패트에게 보이기 위해 프랜을 쳤다. 프랜은 스너프 손에 들린 옷걸이를 노려보았다. 프랜의 시선에 스너프는 움찔했다. 프랜은 발끈했다. 프랜은 강한 팔과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불독처럼 스너프를 붙잡았다. 두어명이 그 방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스너프는 비틀거렸고, 프랜은 그의 위에 올라탔다. 재빠를 고양이처럼 프랜은 사정없이 스너프를 흔들었다.(headlock) 두 사람은 씩씩거리며 싸웠다. 프랜은 스너프를 점점 조였고, 스너프는 풀려고 안달힘을 썼다.
패트가 말했다. “너가 가장 힘센 녀석인거 같다. 너 같은 애는 처음본다. 필리”
패트는 프랜이 스너프를 질식시키기 전에 싸움을 중단시켰다. 그게 스너프가 프랜을 건드린 마지막이었다. 프랜은 그런 승리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가 크리스천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회개했다. 공부에 열을 내고, 기숙사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물론 다른 기숙사에는 기독학생연합이 있어서 기도모임을 가졌지만 네번째 통로 방에는 프랜이 자원에서 주모임을 갖기까지는 기도모임이 없었다.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아마도 열심인 dink 프랜에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모임을 짧은 시간 안에 진행했다. 그는 성경구절을 좀 읽고, 해석한 후에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어떤 때는 한사람 또는 두사람이 기도를 했다. 그리고 프랜의 기도로 모임을 마무리 했다. 그 기도모임은 짧고 어려움이 없다는 소문이 났다. 프랜이 비록 스너프와 싸울 때 자제력을 잃긴 했지만, 다른 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과 자제력을 보였다. “끌(조각용 도구)”이라는 별명을 가진 상급생 한명이 프랜이 기도모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자 프랜에게 활석(talcum powder)을 던지며 화를 냈다.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프랜은 기도모임에 초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선배는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는 프랜이 데리고 가면 그 모임에 가보겠다고 했다.
“그럼 가자,” 프랜은 그를 그 모임에 끼게 했다.
종종 프랜은 약간의 교섭을 통해 그 모임에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프랜은 여러 번 선배들이 술을 깨는 것을 도와주었다. 만취한 상태로 기숙사로 들어올 때 프랜을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그들을 기도모임에 초청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교회에 가도록 설득했다. 그들의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는 동안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온순해 질 수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대학교회는 커싱 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교회도 빨간 벽돌 건물로 예배당 안에는 거대한 설교단이 있었다. 특별석에는 오르간이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굳이 프랜이 양키에 속한 군인으로 자신들의 부대에 피해를 입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들이 동의한다면 나는 Five Points의 거주자들을 요청할 거야,” 그는 그렇게 속삭였다.
1932년 1월 이래로, 프랜이 조니 모턴이라는 수위와 만날 때, 주일마다 나무 숲을 따라 Five Points라고 불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단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 있는 Mercy Seat 교회에서 10명정도 되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나서 조니 모턴의 집을 방문했다. 조니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프랜은 그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사실, 이런 방문은 조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프랜은 교회 마당에 있는 그의 묘에 꼭 들었다.
햄프던-시드니에서의 프랜의 첫해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프랜은 넘치는 힘이 있었다. 그는 결코 깨어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 학생 연합의 의원이 되었고, 성직회의 회원이 되었다. 프랜은 또 그 대학의 문학회에서 논쟁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그는 기숙사 선배들 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는 육상팀을 위해 낮은 허들을 넘었다. 어떤 날은 힘이 넘쳐서 수관을 올라타기도 했다.
여전히 그는 대학 교재보다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한번은 그가 성경을 읽지 않고 있을 때 Borden of Yale에 대해 읽었다. 윌리엄 보던(Borden)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상류층 젊은이였고, 부자였다. 그는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했다. 그러나 카이로에서 아라비아어를 공부하는 동안 그는 26세의 나이에 척수 수막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그의 목적을 깨닫지 못했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의 진실함과 자기 부정을 보인 훌륭한 예였다고 할 수 있었다. 저도 그처럼 살게 해주세요. 프랜은 기도했다. 자아와 싸우게 될때는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라고 프랜은 썼다. 사실 그는 그의 영적인 생각들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사랑은 이루어 진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같이 연약한 자들이
하나님과 비교될수 있으랴.
책 위를 기어다니는 한 벌레
우리도 그와 다를바 없지만
그래도 우린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오 하나님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제가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알지 못하는 미래뿐 아니라
지금도 이곳도 밝히시고
내가 주님을 알게 하소서
오 하나님
당신을 향하여 범죄한 악한 자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오 하나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를 사용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에게 말할 힘을 주소서
주님 내가 그들에게 말하게 하소서
아멘
진실한 사랑으로 나의 마음을 채우소서, 오 하나님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사람들에게 그리하소서
내가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그러나 먼저 나로 하여금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그는 기도로 그의 일기장을 채워나갔다.
프랜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학교 식당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조금이나마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테이블 정리, 서빙, 설거지를 하고, 식사도 제공되었다. 어디에나 있는 학생들처럼, 햄프던-시드니의 학생들은 학생식당 메뉴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한 학생이 주방에 고구마를 던지며 항의를 시작했다. 곧 음식 소동이 일어났다. 프랜은 참여하는 것 보다는 기뻤다. 학교 당국이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물론 누가 시작했는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고무마는 단지 내 기억에서” 소동에 참여했던 한 학생이 말했다.
학생 식당 반란은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된 이런 장난들은 햄프던-시드니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특히 경건한 척 하는 학생들에게는 더 했다. 프랜의 성경 교사 제임스 메시 교수가 그 희생양이었다. 학생들은 일주일이 넘게 강의실에 소를 놓기도 하고, 가축 사료를 쌓아두기도 했다. 메시는 학생들의 그런 행동들을 묵살하는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잘못 걸린 학생들은 조심해서 걸어야 했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앉아 있어야 했다. 한시간 뒤에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비틀거리며 나갔다.
“이런!” 그들은 녹초가 되서 이런 말을 내뱉았다.
프랜은 성경 강의 시간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보다 악취에서 벗어난 것이 너무 행복했다. 메시는 프랜의 영성을 북돋아준 몇 명의 교수들중의 한 사람이었다. 진실한 신자로 학교를 이끌었던 조세프 이글스톤 총장과 마찬가지로 대학교회 목사인 트위맨 윌리엄스도 그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었다. 학문적으로 프랜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교수는 철학을 가르친 모리스 알렌이었다. 알렌은 당시 프랜이 그랬던 것처럼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알렌 교수는 프랜을 그의 집으로 초대해 난로가에 둘러앉아서 토론했다. 알렌은 프랜보다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 격앙된 토론중에 그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프랜의 기독교 변증법 기술을 갈고 닦게 했다는 점에서 참 다행한 일이었다. 프랜에게 논리학과 철학의 엄격함을 가르친 것은 바로 알렌 교수였다. 프랜은 어느 누구도 그 앞에서 그의 주장을 꺾지 못하는데 까지 도달했다. 그는 보통 몇분 안에 상대의 잘못을 파악하여 토론을 승리로 이끌었다.
프랜의 희생자 한명이 격분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차 치고 도망간 필리에서 온 녀석의 차 번호 알아?”
프랜은 처음으로 그의 장로교회에서 대 격변(great upheaval)을 알게되었다.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의 보루인 프린스턴 신학대학에서 좀더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신학자들은 독일에서 성경의 모든 부분에 도전하는 “비평운동”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었다. 도전의 결과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기초를 흔들었다. 갑자기 성경은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쓴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리스도의 삶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기적은 불가능 한 것으로 여겨졌고,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 신학이 삭제되었다. 결국 비평운동가들은 그리스도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결정했다. 그리스도가 허구의 인물이 된 것이다.
프린스턴의 보수적인 학자들은 이 같은 파괴적인 신학 운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J. 그래샴 매첸, 코넬리우스 밴 틸 그리고 로버트 윌슨은 그런 유물론자들의 어리석음과 연합하지 않고 프린스턴 신학대를 떠났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학 대학을 설립했다. 프랜은 성경을 모두 믿었으므로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하나님이 하신 일로 보였다. 성경은 그를 구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의 위치도 아주 좋았다.
“필라델피아라니..” 그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프랜은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프랜은 이제 높은 목표를 갖게 되었다. 1학년때 그는 최우등생 명부에 올라갔다. 그는 못하는 과목이 없어보였다. 그는 주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는 때대로 몇 마일 떨어진 팜빌리에 영화를 보러갔다. 유성영화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유성영화는 1927년 쯤에 나왔지만 기술은 광속처럼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연극과 소설등 소재들이 무궁무진 했다. 배우들도 매우 많았다. 당시 미국은 많은 아마추어 배우들과 프로 배우들이 무대에서 활동했다. 이런 갑작스런 유성영화의 성장은 지금까지도 기적적인 일로 기억되고 있다. 1932년까지 미국에서는 이미 영화 상영관에서 클락 게이블, 캐서린 햅번, 게리 쿠퍼, 베티 데이비스, 제임스 캐그니, 바바라 스탠윅, 로날드 콜맨, 존 크로포드, 스펜서 트레시, 빙 크로스비, 험프리 보가트, 존 웨인 등의 스타들이 꽤 오랬동안 지배했다.
프랜은 또 팜빌리의 어떤 선생님의 학교에서 소녀들과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랜은 소녀들에게 지나치게 진지하게 대했다. 심지어 꽤 진지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프랜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학과 학생들을 제외하고 햄프던-시드니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학년 말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프랜은 운동도 잘해서 육상부에서도 뛰었다.(여전히 그 안에서도 술취한 선배들을 자리에 눕히는 일을 해야했지만) 1932년 6월에 1학년을 잘 마치고 그의 고향인 저먼타운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당신의 자녀의 성실함과 훌륭한 학업성적 때문에 매우 기쁩니다.” 학장이 이런 편지를 써왔더구나. 프랜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시며 말씀하셨다.
프랜은 빨리 교회로 갔다. 그의 주일학교 선생님인 저먼타운 아카데미의 원장 샘 오쉬본은 프랜의 학교생활에 대해 듣고 싶어했다. 그는 프랜의 말을 신뢰했다. 6월 26일 밤에 그의 교회에서 열린 젊은 이들의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오래된 친구의 딕 옆에 앉았다. 그날 밤의 주제는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지 아는가, 또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였다. 프랜은 경악했다. 프랜의 교회가 이렇게 믿음이 없었던 말인가? 차라리 이 대화에 악마를 초대하는게 나을거 같았다. 프랜은 프린스턴 신학대의 자유주의가 빙산의 일각임을 깨달았다. 자유주의는 장로교회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단으로 비난 받던 사상들이 이제는 이성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앉아서 에드라는 청년의 논리를 메모해 가며 그 어리석은 신성모독을 들어보았다. 프랜은 에드가 만든 모든 요점들을 반박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너무 화가 났다. 그러나 에드의 말이 끝나자 마자 프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구식의 햄프던-시드니의 성경 교수한테 배운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쳤고, 저 또한 그 사실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안다고 말하고 싶군요. 그리고 그는 나의 구원주이시고, 내 삶을 바꿔놓았다구요. 저는 일년동안 이곳에서 떨어져 지냈고 여러분들도 제가 돌아온 후 저를 처음 보실 겁니다. 에드가 말한 모든 것에 대답할 수는 없지만, 당신도 나의 말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반론을 끝낸 후에, 검은 머리의 소녀가 일어서서 말했다. 그녀는 18살쯤 되어보였다. 그는 그녀가 J.그레샴 메첸과 딕 윌슨 같은 장로교회의 유력한 신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녀의 반박은 조직적이고 논리적이었다. 그녀는 참 총명했다. 그녀는 프랜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여자애가 누구야? 이 교회에 저런 여자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프랜의 질문에 친구가 대답했다. “이디스 세빌랴라고 해. 토론토에서 이사 온지 얼마 안됐어. 부모님은 중국에서 선교활동 하셨었고”
“그 여자애 나한테 좀 소개시켜주지 않을래?”
프랜은 회의 후의 시간에만 관심이 쏠렸다. 찬송가를 부른 후 축도가 이어졌다. 프랜은 의자들을 재치고 그녀에게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진정시켰다. 프랜과 딕은 군중을 해쳐가며 그녀에게로 갔다. 그 사이에 그녀가 없어진 것일까? 프랜은 자신이 몹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떤 여자를 만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곧 작고 단정한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날이 선 코와 각이 선 턱, 작은 입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은 없었지만 꽤 매력적이었다.
딕이 말했다. “이디스, 프랜 쉐퍼를 소개할게. 프랜, 이쪽은 이디스 세빌랴.”
귀여운 그녀는 프랜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솔직하고 밝아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프랜은 말했다. “집에 데려다 줘도 될까요?”
“죄송해요, 이미 데이트 약속이 있어요.”
“취소해보세요,” 프랜은 적극적이었다.
“글쎄요.. 그래요, 그렇게 하지요.”
프랜의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곧 그는 그녀가 약속을 취소하도록 한 것이 잘못이 아닐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디스의 데이트가 그녀의 여자친구인 엘리와의 약속인 것을 알고 곧 마음이 놓였다. 프랜은 이디스에게 엘리의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는 딕과 엘리도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차키가 어딨는지 알 수 없었다. 프랜은 몹시 당황했다. 딕과 엘리는 이 재밌는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그는 매력적인 그녀 앞에서 혼란에 빠졌다. 그녀는 신비해 보였다. 그리고 17살의 이디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신비감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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