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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흐라프 목사와의 대담

드 흐라프 목사와의 대담
김헌수  (대전 성은교회 목사)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7303 
 
일시: 2005년 2월 20일
장소: 드 흐라프 (B. de Graaf) 목사 사택  
대담자: 김헌수 (대전 성은교회 목사) 
 
* S.G.De 흐라프와는 다른 분입니다.

대담자: 이번 10월에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가 남아프리카에서 열립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드 흐라프 목사님께서 의장으로서 봉사하실 것인데, 독립개신교회에서도 방문 대표를 파송하려고 합니다. 그 모임을 앞두고 의장으로 수고하실 목사님을 만나서 몇 가지 주제로 대담하고 그것을 독립개신교회의 소식지에도 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대담의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역사이고, 둘째는 네덜란드 교회들의 현재의 형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교회적 상황에서 ICRC 모임이 갖는 의의에 대한 것입니다.
 

드 흐라프 목사: 독립개신교회에서 ICRC에 방문 대표를 파송하기 전에 그 모임에 대하여 교회 소식지에 싣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ICRC는 교회가 회원인 교회적인 모임이기 때문에 모든 교우들이 그 모임에 대해서 미리 알고 대표를 보내는 것이 교회적인 모임의 성격에도 맞는 일이 되겠습니다.
 

먼저 제가 봉사하는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the Christian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라는 이름에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기독개혁교회’라는 말은 ‘기독교회’이고 ‘개혁교회’라는 말입니다. ‘기독교회’라는 말은 모든 시대의 교회들과 하나임을 표시하고, ‘개혁교회’라는 말은 16세기에 칼빈으로부터 시작한 ‘개혁’에 속했음을 나타냅니다. ‘네덜란드’는 개혁 신앙고백서와 일치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의해서 네덜란드에서 세워졌음을 표시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는 세 신조,’ 곧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을 고백합니다. 교회 정치는 도르트 총회(1618-19)에서 택한 도르트 교회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17세기에 택한 도르트 교회법도 부분적으로 개정되었지만, 말씀이 선포되는 ‘지역 교회’가 ‘보편 교회’라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네덜란드에 있는 개혁교회가 곧 기독교회라는 정신을 우리의 이름이 표시합니다.
 

물론 네덜란드에는 기독개혁교회 이외에도 개혁 신앙고백서와 개혁 교회법을 따르는 교회들[교단]이 여럿 있기 때문에 기독개혁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네덜란드는 16세기 말에 스페인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면서 종교적으로도 자유를 얻었고, 네덜란드 개혁교회(de Nederlandse Hervormde Kerk, 민족 교회)가 성립하였습니다. 18세기에 계몽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신앙고백적 성격’이 다소 뒤로 물러나는 경향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성경적 원칙을 따라서 신령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19세기에는 정부가 도르트 교회법을 무시하고 정부 훈령을 내려서 적극적으로 교회의 일에 간섭하였습니다. 동시에 신학적으로 자유주의 사상을 용인하고, 개혁 신앙고백서가 교회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들이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1834년에 1차 분리(Afscheiding)가 일어났습니다. 1840년까지 더 많은 교회가 분리해서 하나의 교회로 연합하였고, 여기에서부터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가 성립되었습니다.
 

1886년에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주도로 두 번째 분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민족 교회 안에서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서 나왔는데, 이것은 ‘애통’(Doleantie)이라고 불립니다. 1차와 2차 분리는 모두 민족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두 교회의 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카이퍼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1892년에 1차와 2차에서 나온 교회가 연합하고 네덜란드 개혁교회(de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the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1차 분리에서 나온 세 교회의 900명의 회원이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이지만 그들은 계속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로 남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복 주심으로 지금은 185개 교회에서 75,000명의 신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대담자: 세 회중이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는데, 100년이 지나면서 거기에서부터 185개 교회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세 교회가 1892년에 함께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드 흐라프 목사: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정치와 관련된 것인데, 통합 과정이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졌습니다. 총회에서 토의해서 결정하고 지역 교회에 하달되었습니다. 지역 교회끼리 이야기하지 않고 총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식이었는데, 이것은 개혁교회의 정치 원리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언약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유아들이) 중생했다고 추정’하였고, 이것에 근거해서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언약의 자녀들이 중생했다고 추정하는 것은 목사의 설교에도 영향을 끼치고, 그에 따라 목회 활동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그것은 사변적인 이론이고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카이퍼의 문제점은 그의 후계자들이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언약에 대한 그들의 주장에 서명하기를 요구하는 데서 드러났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데서 1944년의 ‘해방’이 일어났습니다. 카이퍼주의자들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총회파’가 되고, 거기에 반대한 사람들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해방파’가 되었습니다.
 

대담자: 1944년에 분리된 해방파 교회와 기독개혁교회는 카이퍼의 언약관에 반대한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두 교회는 많은 것을 공유하리라고 생각하는데, 두 교회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드 흐라프 목사: 1944년 이후 많은 접촉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교회가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째, 해방파에는 1차 분리에 속하지 않고 2차 분리 때에 나온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슴보다는 머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대비했지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두 교회가 접촉할 때 그 미묘한 강조점의 차이가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참된 교회’에 대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의 구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통합을 위한 이야기가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실제적인 접근이 이루어졌고, 몇 교회에서는 강단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두 교회는 여전히 두 가지의 차이점을 놓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을 어떻게 누리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개인이 얻는 것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회중이 그리스도의 회중이지만 동시에 믿을 것을 설교하고 회개할 것을 설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중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설교해야 합니다. 둘째는 ‘경험적 설교’에 대한 것입니다. 설교에서 신앙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두 교회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고 목사들 사이에서도 강조점이 다릅니다.
 

해방파는 캄펀에 신학 대학이 있고 기독개혁교회는 아펠도른에 신학 대학이 있는데, 두 학교에서는 함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은 공동으로 운영합니다.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와 같은 어학 과정은 공동으로 운영합니다. 그러나 교의학이나 성경 해석에 대해서는 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담자: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2004년 5월 1일에 네덜란드 개신교회(PKN)가 형성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민족 교회, 총회파, 복음주의적 루터교회가 연합하였습니다. 연합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드 흐라프 목사: 이미 1970년대에 세 교회가 ‘공동의 길’(samen op weg, together on the way)을 모색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세 교회의 회중이 점차 감소했습니다. 독자적으로는 서기 어렵기 때문에 연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연합은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2004년 5월에 네덜란드 개신교회가 성립했는데, ‘연합’이 아니라 ‘분열’이 더 깊어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민족 교회에서도 우익에 속하는 ‘개혁 동맹’에서는 여러 교회가 거기에 가입하지 않았고, 총회파에서는 8-10개 회중이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통일을 위한다고 했는데 또 다른 분열이 일어난 셈입니다.
 

네덜란드 사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세속화하고 있는데, 그 흐름이 교회에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 공백의 상태에서 회교도의 영향이 점차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회교도들이 자기들의 종교 신념에 기초한 학교를 세우려고 할 정도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은사 운동의 영향이 강력한데, 그 사람들의 교회 생활을 보면 마치 스포츠를 즐기듯이 자기 종교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성(靈性) 운동을 강조하지만, 그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종교적인 면에서 자기의 만족을 추구합니다. 여러 가지 운동을 바꾸어서 즐기는 것처럼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자기의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담자: 세속화의 문제는 교회에 근본적인 도전이 되고, 교회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 됩니다. 영성을 이야기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듯이 교회를 옮겨 다니는 것은 실질적으로 ‘포스트 모던’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종교 다원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주제인데, 이처럼 세속화의 영향이 강한 이 시점에서 ICRC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ICRC의 역사를 간략히 말씀해 주시고 이어서 의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십시오.
 

드 흐라프 목사: ICRC는 대륙의 개혁교회 전통과 영미권의 장로교회 전통이 서로 교류하면서 ‘참된 교회 통일’(true ecumenicity)을 위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1980년대에 몇 차례 예비 모임을 가졌고, 1985년부터 매 4년에 한번씩 모이고 있습니다. 1985년에는 스코틀랜드, 1989년은 캐나다, 1993년은 네덜란드, 1997년은 한국, 2001년은 미국에서 모였고, 이번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모입니다. 여러 대륙에서 번갈아 모이는 것이 우리 모임의 국제적인 성격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ICRC는 ‘국제적인 모임’만은 아닙니다. 국제적인 모임은 다른 곳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로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를 명실상부하게 택하는 교회들끼리 교제를 갖습니다. 따라서 국제적이지만 신앙고백적이지 않은 교회는 우리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 교회 협의회(WCC)나 그와 비슷한 조직에 참여하는 교회는 우리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헌장 4조 4항).
 

ICRC의 헌장 3조에 따르면, 개혁교회들이 택하는 신앙고백서를 택하는 교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고 있는 믿음의 통일성을 표현하고 증진하는 것, 교회적인 사귐을 격려하는 것, 선교의 명령을 협력하여 수행하는 것, 회원 교회들이 당면한 공동의 주제를 연구하는 것, 세상에 대하여 개혁의 증언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ICRC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나누고 격려하는 모임이고 제도적인 결속력을 갖지는 않기 때문에 ICRC가 상회(上會) 재판정으로 다른 교회적인 문제들을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2001년에 스코틀랜드 자유교회(the Free Church of Scotland)가 나뉘었는데, 우리는 그 자세한 사정을 잘 모릅니다. ICRC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결정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합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번에 분열된 교회에서도 회원권을 신청했습니다. 두 교회가 ICRC에 와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고 서로에게 격려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회교도들이 교회를 공격하여 불 지르기도 하고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회교도의 위협이 점차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형제의 이야기가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신자들에게도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담자: 이번 ICRC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드 흐라프 목사: 전체 주제는 ‘그리스도의 왕권’(the Lordship of Christ)입니다.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에 대해서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교로 부름을 받은 비셔(A. J. de Visser) 박사가 ‘신자의 삶에서의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서 발표하고, 아펠도른 신학 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는 마리스(J. W. Maris) 박사가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의 왕권’을 발표합니다. 인도네시아의 데단(Y. Dethan) 목사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로버트슨(D. A. Robertson) 목사가 ‘세상에서 선포된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서 각각 발표합니다.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각각 발표에 참여하고, 주제 발표 후에는 작은 분과로 나누어서 서로 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려고 합니다.
 

대담자: 바쁘신 중에도 여러 가지 유익한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있는 교인들에게도 ‘교회의 참된 통일성’에 대해서 생각할 자료가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10월에 남아프리카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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