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 결혼
[서평] 매릴린 엘롬의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17.03.06 09:15l최종 업데이트 17.03.06 09:15l이명옥(mmsarah)
"계약 결혼 어떻게 생각해요?"
한때 함께 살기를 꿈꿨던 남자가 어느 날 불쑥 이렇게 물었다.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계약 결혼 형태로 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망한 집안을 일으켜야 할 의무가 있었던 그는 종손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삼수 끝에 의대를 들어갔지만 해부학이 끔찍해 국문과로 전과한 그는 예민하고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었다. 가족사로 인한 개인적 내면의 상처가 깊어 결혼도 아이도 바라지 않았지만 성욕까지 없어진 것은 아닌 자신의 현실을 힘들어했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던 그와 나는 사회적 인식의 벽과 여러 조건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와 만나면서 자코메티 사진전에 가고, 산에 오르고, 같이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 함께 서점을 들르고 종로, 명동, 인사동 거리를 누볐다. 함께 오는 그의 친구들을 만나 폭음을 하기도 했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 절망하고 함께 웃었다. 하지만 끝내는 이별했다.
그는 내가 자신처럼 독신으로 남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이라는 굴레를 선택했다. 그는 여전히 독신으로 시를 쓰고 명상을 하며 살고 있다. 사실 그와는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은 사이여서 프랑스식 사랑으로 본다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몰리에르부터 사르트르까지 작품으로 엿보는 프랑스인들의 사랑이야기.
▲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몰리에르부터 사르트르까지 작품으로 엿보는 프랑스인들의 사랑이야기.
ⓒ 시대의 창
관련사진보기
비교문학을 전공한 매릴린 엘롬의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시대와 창)은 낭만적 사랑이 등장한 12세기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 속의 사랑과 실존 인물의 연애와 삶을 통해 사랑의 역사를 짚어 본 책이다.
결혼이 조건을 고려한 사회적 계약이라면 연애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분출에 충실한 관계다. 그것이 프랑스인들이 '진정한 사랑은 결혼이 아닌 연애관계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이유다.
저자는 '프랑스식 사랑'은 성적 쾌락을 솔직하게 강조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육체적 사랑을 꿈꾼다고 한다. 2010년 미국 은퇴자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 더 매거진의 설문에서 미국인들은 '활기찬 성생활이 없이도 진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에 83%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프랑스인들은 34%만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육체적 교감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상대에게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하니 사랑이 묘약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책 속에 소개되는 사랑은 성인과 성녀로 추앙되는 아벨라르와 앨로이즈라는 실존 인물부터 격정적인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던 양성애자 조르주 상드, 남자를 사랑한 작가들인 랭보, 베를렌, 앙드레지드, 프루스트, 레즈비언 작가인 콜레트, 스타인, 비올렛 르딕, 실존주의자로 50년 이상 계약 결혼에 충실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지인의 프랑스 친구와 현대 프랑스 작가들과 영화 속 사랑까지를 아우른다.
'사랑의 역사'의 문을 여는 이는 아벨라르와 앨로이즈라는 실존 인물이다. '라틴어로 주고받은 편지와 아벨라르의 자서전 <나의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는 프랑스 사랑의 역사에서 헌장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제 평생 하느님보다
당신을 언짢게 할까 더 두려웠고,
하느님보다 당신 마음에 더 들고자 했던 것을
하느님은 아십니다.
앨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1133년경/8쪽
아벨라르는 방랑 수사이자 학자, 철학자로 당대 가장 인기있는 선생이었다고 한다. 앨로이즈는 후견인의 조카딸이었고 아벨라르는 열다섯 살 소녀 앨로이즈의 개인 교사를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앨로이즈보다 스물두 살이나 나이가 많던 아벨라르는 앨로이즈를 만나기 전까지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었다.
"책을 앞에 편 채 독서보다 더 많은 사랑의 언어가, 가르침보다 더 많은 입맞춤이 우리 사이를 오갔다. 내 손은 책장을 넘길 때보다 그녀의 가슴으로 향할 때가 잦았다. 우리의 눈은 사랑의 힘에 끌려 책보다 서로를 볼 때가 더 많았다."
앨로이즈에게 두 사람의 사랑은 마음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황홀한 낙원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나눈 사랑의 기쁨이 너무나 달콤해 물리칠 수도,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도 없습니다."/10쪽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앨로이즈의 삼촌에 의해 둘은 헤어지게 되지만 이미 임신한 앨로이즈로 인해 둘은 삼촌과 증인 몇 사람 앞에서 비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비밀 결혼이 성에 차지 않던 삼촌은 앨로이즈를 폭행하고 학대한다. 아벨라르는 아르장퇴유 수녀원으로 그녀를 피신시킨다.
앨로이즈를 없애려 수녀원으로 쫓아냈다고 생각한 삼촌은 한밤중에 아벨라르를 거세시켜버린다. 그들은 타인에 의해 강제로 사랑을 잃어버리고 수도자로 평생을 살아간다. 어쩌면 아벨라르가 사랑을 위해 사회적인 명성과 출세를 포기하지 못한 대가였겠지만 말이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해명한다.
내가 수도원으로 피신하게 된 까닭은 두터운 믿음에서 나온 소망보다는 수치심과 당혹스러움 탓이었네. 앨로이즈는 내 소망에 따라 수녀가 되기로 이미 동의했지. 그래서 우리 두 사람 모두 수도자가 되었네. 나는 생 드니 수도원에서 앨로이즈는 아르장퇴유 수도원에서 말일세./14쪽
아벨라르의 뜻에 따라 수녀가 된 앨로이즈는 수녀가 된 뒤에도 아벨라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앨로이즈는 수녀원장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성애를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아벨라르는 결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 자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앨로이즈는 육체의 갈망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수도자로 남은 생을 살아 성인과 성녀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두 사람은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고 이후 수백 년 동안 두 사람을 수호성인으로 받드는 열렬한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절단되거나 훼손된 신체부위는 때때로 성인의 징표였으므로 아벨라르의 거세는 분명 신성한 아우라를 더했을 것이다. 화살이 관통한 *성 세바스티앙의 가슴이나 **성 아가타의 잘린 가슴을 생각해 보라. 그러니 신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아벨라르와 마음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은 앨로이즈, 이 유명한 연인을 사랑의 순교자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7쪽
*로마시대 황제의 근위병이었으나 몰래 기독교로 개종하여 기독교인들을 돕다가 순교한 성인. 성화에서 주로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태생으로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로마 총독의 청혼을 거절하다가 양 가슴이 잘리고 화형에 처해졌다.
아벨라르는 1144년 파라클레트 수도원에 묻혔고 20년 후인 1164년 5얼 16일 앨로이즈가 그 곁에 묻혔다가 1817년 파리의 페레 라세즈 묘지에 안치됐다고 한다. 그들의 무덤은 연인들의 순례지가 되어 수많은 연인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고 한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은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을까. 내게 아벨라르와 앨로이즈의 비극적인 사랑은 남성에 의해 파괴된 여성의 일방적인 무한 희생으로 읽힌다. 앨로이즈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양육하지도 못했고, 아벨라르가 시키는 대로 수녀가 되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며 살았다.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의 대상이던 아벨라르는 그녀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연인이었고 그녀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존재였다. 앨로이즈의 비극적인 사랑은 연인을 잃은 모든 여성들에게 투사되어 문학으로 시로 다시 태어났을테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
사랑과 결혼 연애의 주도권이 남성 중심이던 시대를 지나 낭만적인 사랑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랑의 주도권은 여성에게로 무게 중심이 옮겨진다. 귀족 여성들은 살롱을 열어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도록 후원하고 자신들의 재능을 꽃피우기도 한다, 필연적으로 연애 사건과 사랑의 도피 행각, 간통 등의 사건도 생겨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사랑을 문학 작품이나 음악, 미술 등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음유시인들의 시, 클레브 공작 부인의 품위 있는 사랑, 몰리에르와 라신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희극적인 사랑, 여성적인 아름다움 대신 지성과 재치 매력으로 달랑베르를 비롯해 수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쥘리 드 레스피나스, 신념과 사랑을 지켜낸 엘리자베스 르 바와 로랑 부인의 사랑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여성의 사랑과 연애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사랑의 상처로 아파하는 상대는 여성이 더 많았다.
정신적 샴쌍둥이처럼 독특한 사랑을 하고 동등한 사랑을 한 커플로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들 수 있다. 아벨라르와 앨로이즈처럼 살아있는 동안에도 상징적인 커플이었던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내 사랑, 당신과 나는 하나예요.
나는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이라고 느껴요.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장 폴 사르트르에게, 1939년 10월 8일
우리의 사랑을 빼면 우리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본 적이 없소.
장 폴 사르트르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게, 1939년 11월 15일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 이면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가정이라는 형태로 한 지붕에서 살아간 적이 없다. 나는 계약결혼도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것으로 알았다. 둘은 십여 년간 섹스를 하는 육체적 사랑을 했지만 자식은 두지 않았다.
서로에게 재정적 짐을 지우지도 않았고 각자 양녀를 두고 그들을 돌봤다. 각자 다른 상대와 열렬한 연애도 했고 심지어 삼각관계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새롭게 계약을 하며 50년 이상 계약 결혼의 삶을 이어갔다. 개방 결혼의 효시로 부르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 결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그들의 삶과 사랑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이 50년 간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이 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반자적 사랑을 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소울 메이트를 만난 것이다.
사르트르는 내가 열다섯 살부터 꿈꾸던 동반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는 나의 또 다른 반쪽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내 모든 뜨거운 열망을 발화점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는 언제든 그와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9월 초에 그를 떠났을 때 나는 그가 다시는 내 삶을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393쪽
그가 말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본질적' 사람이오. 하지만 우연한 연애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우리는 동류에 속한 두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우리가 지속하는 만큼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속적인 관계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얻게 되는 순간적인 풍요로움을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393쪽
그들은 서로를 서로에게 속박시키는 대신 서로의 삶과 감정을 존중하기로 결정한다. 결혼이라는 계약에 따르는 원치 않는 의무는 최소화하는 대신 감정의 정화작용 역시 개인 책임의 몫으로 나눈 것이다. 그들이라고 서로를 향한 질투와 상처가 없었을까.
그들은 낮에 함께 글을 쓰고 식사를 하고 함께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두 사람이 각각 연애를 하고 다른 상대와 잠자리를 할 때도 둘의 '본질적 사랑'은 지속되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죽음으로 자신들이 갈라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자기 밖의 또 다른 자기로 살았던 셈이다.
저자는 둘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면서 서로에게 진심으로 헌신했고 평등한 관계로 여성운동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짚어준다.
그렇다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사랑의 역사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두 사람은 삶의 여러 다른 측면뿐 아니라 사랑에서도 자유를 옹호한 사람들이었다. 이 둘은 전통적인 개념의 법적, 종교적 결혼의 속박 없이 말 그대로 자유롭게 서로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한다면 다른 부차적인 성적 관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생각해도 놀라운 관계이다.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프랑스의 전통에서 배우자의 애인을 묵인하는 관행이 있긴 했지만 이처럼 무조건적으로 그 권리를 표현하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사랑의 계약을 맺은 사례는 없다. 이 점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보부아르는 1970년대 여성운동이 그녀를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하나의 집단으로 뭉친 여성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본 적이 없다./407쪽
책을 덮으며 오래 전 "계약 결혼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었던 한 사람을 다시 떠올린다.
계약 결혼 대신 책과 명상과 시를 짓는 일로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긴 사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식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애하고 사랑할 대상을 찾았기를.
덧붙이는 글 | 프라읏식 사랑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강경아 옮김/ 시대의 창/ 22,000원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