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 til의 전제론적 변증방식
Van til의 전제론적 변증방식
이태진 | 2002·04·06 13:46 | HIT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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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Van Til의 전제론적 변증 방식 설명
(변증학-코넬리우스 반틸의 6장을 중심으로)
이태진 목사
반틸은 제6장 그리스도교의 변증학(방법론)에서 개혁주의적 변증학의 방법론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그대로 반영하는 개혁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다른 공격
으로부터 옹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개혁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옹호한다 함에는 이미 자연이나 역사의 어떤 법칙이나 사실들, 즉 실재
의 어떤 일부분을 그리스도교가 견지하는 주요교리들의 조명 아래서 이해함 없이
임의대로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배격한다는 원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신론이 참인지
아닌지를 꼭 시험해 보아야만 한다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원칙에 동의하고 있으며,
하나의 중립적인 문제(a neutral matter)로 인식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반틸은 이러한 잘못된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그의 변증학에서 진리의 개념은
개혁주의적 전제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고히 한다. 반틸의 개념은 유추의
용어로 이해된 모든 지식과 함께 "스스로 확증하는 성경적 주장들
(self-authenticating biblical claims)"로 정리할 수 있다. 반틸의 진리의 틀은 성경
에서 드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만이 사실의 근원이
되며, 이런 사실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틀이라는 것에 대해 일관성 있
는 것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한다.
전제주의는 어떤 특정한 세계관의 의무적인 확정 혹은 실재하는 모든 것에 접
근하고 해석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반틸은 말하
기를 전제에 의한 추리방법은 직접적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신론에 있어 믿는 이와 불신자간의 문제는 그 본질과 특징이 이미 양자간에 합의
를 본 사실이나 법칙에 의해 정리 될 수 없다. 문제는 오히려 무엇이 사실과 법칙
을 알 수 있도록 만드는 최종의 관련점이냐하는 것이다. 반틸은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적 신앙에서 비롯된 전제들을 떠나서는 변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틸에
게 있어 성경의 확인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한 사실의 설명이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로마 카톨릭의 변증가들은 그들의 신학이 자연계시의 명료성을 가르
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인의 방법론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고 사용한다. 사물
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반쯤은 이교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지식의 방법론
에 대해서도 자연인들의 견해와 상당한 부분에 있어 일치하고 있다.
알미니안주의자들도 역시 어느 정도까지 인간의 자율성과 궁극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간을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인간적 서술의 궁극적 참조점(the final
reference point)으로 삼는 이들과 출발점 문제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의견을 같이
한다.
결국 이들은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간섭되며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을 얼마간 받아들이기 때문에 지식의 대상은 하나님
의 계획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방법론에 있어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개혁주의 입장은 자연인의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
다. 자기 자신을 궁극적인 참조점으로 삼는 자연인의 자기 해석과 불일치하는 개
혁주의적 입장의 변증가는 자연인과의 접점을 자연인의 식역(識 )아래 깔려서 자
연인에 의해 항상 억누름을 당하고 있는 신의식(the sense of deity)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접점은 결국 정면충돌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만일 자연인의
체계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없다면 자연인 내부의 신의식과는 아무런 접촉
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반틸은 끊임없이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주의를 반대하면서 자연과 역
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의 유일한 전 포괄적 계획 하에 움직임을
주장한다. 변증학자로서 반틸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의 신
론은 변증학뿐만 아니라 설명의 원리로서 모든면에 있어서 기초로 삼는다. "만일
하나님이 자족적인(self-sufficient) 분이라면 하나님은 자명한(self-explanatory)분
이시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만이 자명한 분이시라면 그는 모든 인간의 설명의 표
준의 설명의 표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반대는 인간이 궁극적인
표준이 되어 인간의 지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궁극적인 표준이 되어 인간의 지성
이 하나님의 계시를 궁극적인 권위로 복종할 필요가 없는 경우이다. 인간에게 필
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인간보다도 더 위대한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틸은 오직 하나님의 자족과 인간의 완전한 의존에 근거할 때만이
기독교적인 관점과 비기독교적인 관점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지
적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두가지 체계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그들의 전제에
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이 차지하는 위치를 비기독교인의 전
제(즉 인간이 궁극적인 표준)에서는 인간이 그 위치를 차지한다. 비기독교인 전
제에 의하면 사실들이란 인간에 의해서 해석되었을 때에 비로소 "합리성을 갖게
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틸은 기독적 논쟁 방식은 오로지 전제에 입각한 추론일 수밖에 없
음을 입증한다. 전제에 입각하여 논쟁을 이끌어간다 함(to argue by
presupposition)은 논쟁자의 방법론 밑에 깊숙이 숨어 있어 그의 방법론 자체를 좌
우하는 인식론적 원리와 형이상학적 원리의 근본성격을 드러내 보이는 방식을 의
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유신론의 여러 교리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교리는
스스로 완전하신 하나님(the self-contained God) 곧 외부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존재론적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교리이다. 실제로 기독적인
방법론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이 존재론적 삼위일체 하
나님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인식론적 전제와 형이상학적인 전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
식론적 전제에서 인식론은 인간의 지식과 함께 그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는 철학
의 한 분파이다. 본질적으로 인식론의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것
이다. 그러므로 인식론적 질문들은 어떤 기준이 지식을 얻는데 사용되어야 하며,
지식에 대해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반틸에게 있어 역사적인 사실
에 관하여 전제가 없는 것은 성경에 담겨진 기독교적 신론의 체계의 부분으로써
이것이 공개될 때까지 참으로 그것일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스스로 확증하는
예수는 반틸의 사고의 모든 체계를 위한 출발점이다. 절대적인 진리와 성경의
권위는 모든 토론을 짜고 모든 지식을 형성하는 것에 의해 개념적 틀로 전제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지식의 기초이다. 성경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의
진실들은 성경이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은 불
공정하며 의미 없는 것이다. 오직 유일한 지식인 하나님의 지식밖에 존재하는 진
리나 중요한 지식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이 스스로 진실성을 주장하기에 성경은
진리이다.
이러한 진실성의 본질에 대해 반틸은 사실로써, 절대진리, 무오한 축자영감의
성경을 근거로 한다. 성경에 있어서의 명백한 모순에 관해, 반틸은 이것들은 단지
모순으로 보일뿐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반틸은 창조자-창조물의 구별에 기초를 둔 세 가지 인식론적 의식을 주장한다.
(1)아담적인 인식-아담이 비유적인 기초 하에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의 제도를
수용적으로 재구조화하고 재해석하던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상태를 말하며, (2)갱
생되지 않은 의식-하나님의 계시를 버리고 자신의 독립적인 제도를 세우려고 시
도한 인류의 잘못과 그 결과를 암시하며, (3)갱생된 의식-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계
시 아래 실재를 재해석하는 아담적인 의식이 개건된 믿는 이의 사고이다. 반틸
은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밖에 있는 것만 아니라 성령에 의해 할 수 있게된 계
시에 응답하는 인간에게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며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유기
적 일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초월적 내지는 선험적이라고 부를 수 있
다.
둘째로 형이상학적 전제에서 형이상학은 문자적으로 물체 너머를 의미한다. 이
것은 궁극적 실재에 관심을 두는 철학의 한 분파이다. 형이상학적 질문은 모든 결
정은 스스로의 결정들인가 하는 것에 연관되어 있다. 기독교 신학의 진리의 전제
없이 어떤 사실로부터 구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지성의 전제는 기독교 신학의 하나님의 실제적인 존재와 성
경의 무오성에 의해 전제된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이해는 창조자-구속자로서 그리
스도가 바르게 연관되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반틸에게 존재론
적 삼위일체는 모든 것들과 인간의 모든 사고의 최종의 관련점을 위한 해석의 범
주를 만든다. 그래서 성경과 성경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최종적 권위로 자
리를 잡고 있다.
반틸에게 인간의 타락은 삶뿐만 아니라 생각과 태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반틸에게 이성은 하나님께 반항하는 죄에 의해 더럽혀졌고 그 결과 하나님의 성
경적 계시로 부터 분리되었다. 반틸은 여기서 더 나가서 기독교의 전제와 함께 시
작하지 않고 이성의 원리와 함께 시작하는 인식론은 실패를 맛보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보았을 때 참된 방법론이 이끌어내게 되는 결론은 기독교의
유신론이 말하는 진리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권위주의의 가장 두드러
진 증거로 보일 뿐이다. 여기서 권위주의는 미리부터 어떤 권위가 부여하는 방법
론을 받아들여 그대로 추론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변증가라면
비그리스도인의 중립성(neutralitya)에 관한 주장에 굴함 없이, 모든 방법론은 그
방법론이 다른 것보다 중립적이라고 주장되더라도 그리스도교 유신론은 진리라
고 전제하지 않으면 그것을 거짓으로 전제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해야만 한
다. 곧 반틸에게 있어서, 특히 하나님에 대해 증명할 때 중립적인 방법론은 있
을 수 없다.
전제에 입각한 추론방식은 직접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간접적인 추론방
식이라 할 수 있다. 간접적인 방법은 증거를 해석함에 있어서 기독교적 전제들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직접적인 방법은 그렇지 않다. 이 방법은 성
경적인 틀에 비추어서 증거들을 제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그러한 "증거들"이 성경적인 틀에서 벗어날 때 실제적으로 증거가 갖는 본래의 의
미를 증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죄인들은 사실상 증거들이 바르게 예시
하는 것과 거리가 먼 해석을 경험에다 부여한다. 불신자들은 진리들로부터 하나님
께서 부여하신 의미들을 제거시킴으로써 진리를 헛되이 잡으려고 시도한다. 그러
한 작업은 끝없이 계속된다.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격을 끊임없이 알려 주지
만, 죄인의 마음은 계속해서 사실들이 말해 주는 바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설명을
부여한다.
반면에 간접적인 방법은 사실들뿐만 아니라 사실들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섭리
하시며 해석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고려한다. 반틸이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듯이,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전제가 없이는 어떤 한 가지 사실조차도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 증거들에 대한 간접적인 호소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사실들의 하
나님과 대면하도록 해줌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사실들의 본래의 의미에로 돌이키
도록 시도한다. 또한 간접적인 호소는 성경의 자증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행
하는 변증학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러한 반틸의 방법론은 많은 반대자를 만난다. 클라그 핀난은 반틸이 하나님
은 존재하시며 성경경은 진리라고 하는 공리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비난하는 데,
이 공리에는 기독교의 다른 모든 신앙들이 연역적으로 첨가되어진다는 것이다.
분명히 핀난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반틸의 전제를 가정 이전의 것(a
pre-supposition)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기독교의신빙성을 검토하기 전
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틸의 출발
점을 주의주의(主意主義)이요, 신앙의 실존주의적 도약이라고 까지 비난했다. 반틸
의 변증학을 "일종의 비이성적인 경건주의와 동일시했다. 핀난은 반틸이 신적 계
시의 객관적인 자료들을 비기독교인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성경의 내용들을 그의 인식론을 통해서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반틸의 방법
론은 사실을 설명하지만 그 사실과 일치하는 견해를 가졌다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일관된 이론을 가졌다고 했다.
이에 대한 반틸의 답변은 일관되게 기독교 교리들은 "몇몇 주된 개념으로부터
추론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기독교를 맹목적인 신앙으로 간주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하는 사실
을 분명히 한다.
반틸은 신앙에 대해 이유들이나 증거를 숙고하기도 전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강요한 적이 결코 없다. 반틸에 따르면 만일 누군가가 기독교를 어떤 조건들하에
서 믿는다면, 그러한 조건들은 공허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주변에서 하나
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으로는 무엇보다도 일반계시를 들 수 있다. 이 일반
계시에 덧붙어진 것이 바로 하나님의 표현된 구원계시이다. 반틸은 죄인들이 신앙
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계시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틸은 맹목적인 주의주의(voluntarism)이기는커녕, 분명하게 알려지고 권위 있
게 입증된 것에 대한 수용을 강조한다. 분명한 반틸의 입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반역을 버리고 의지의 자율적인 노력과 허탄한 사색들로부
터 돌이켜서 계시된 주님의 수중에 순복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에 입각한 전도자는 자연인들을 향하여 죄 가운데 빠져 있으
므로 구세주를 찾아야만 한다고 외칠 때는 오로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한다. 자연
인이 자기의 말에 귀를 귀울여줄까 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양보하거나 절충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인이 자기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를 왜곡시
켜서는 안된다. 자연인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항상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반틸은 성경에 계시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재의 전제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틸은 전능한 하나님 위에 그 어떤 것도 놓지 않으려고 그
의 사고의 구조 안에서 놀랍도록 노력하며 칼빈주의에 대해 일관적인 전제론적
변증 방법에 대해 일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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