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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 성립시키면서 와해시키는 작업

해체주의: 성립시키면서 와해시키는 작업


해체주의: 성립시키면서 와해시키는 작업   철학 강의록 / Philosophy 
2012/03/1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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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주의, 서강대학교 서동욱 교수
 제2강: 책의 종말과 에크리튀르의 시작(1)
 
 
 
2. 『그라마톨로지』의 목차

 『그라마톨로지』부터 강의를 시작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수업했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기본적인 개념과 아이디어들을 알아두기만 해도 일단은 충분합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그것들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그라마톨로지』 안에서도 중요한 내용들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본래 이 책은 67년에 출간되었는데, 요즘같이 편집이 간편한 시대라면 편집해서 솎아 냈을 지도 모르는 내용들이 당시에는 글을 곧바로 원고에 썼기 때문에 많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아마 책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익숙해 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먼저, 목차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라마톨로지』는 제1부와 제2부로 구분됩니다. 제1부의 글들은 별도로 다른 잡지에 먼저 발표가 되었던 글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처음부터 어떤 통일성을 지니고 작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제1부부터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제1부는 왜 서양철학에서 ‘로고스 중심주의’가 ‘음성 중심주의’이며, 이것이 왜 문자를 폄하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여러 서구적인 병폐라 하는 것들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론적인 차원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론적인 차원’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핵심들 중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그런 작업이 ‘범례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범례’를 선택해서 분석하기 이전에 이론적인 성찰이 먼저 전개되는 것이 제1부입니다.
 
 가령, 목차의 제2장 「언어학과 문자학」의 하위 제목 중에는 ‘바깥쪽은 안쪽이다.’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다’라는 말 위에 엑스 표가 가로질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만약 여러분이 철학에 익숙하시다면, 이러한 것이 굉장히 하이데거적인 발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엑스 표는, 데리다의 철학이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이라고 부르는 것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이데거 역시 서양철학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해체’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하겠지만, 서구적 사고방식을 성립시키면서 동시에 와해시키는 그러한 요소를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성립시키면서 동시에 와해시키는 요소, 바로 그러한 요소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해체는 양날의 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성립시킨다는 말의 철학사적 예로서 칸트의 철학을 들 수 있습니다. 칸트 철학은 경험의 가능 조건을 발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칸트가 말한 ‘경험’이라는 것은 ‘자연과학적인 법칙의 세계’, 즉 당시의 ‘뉴턴 물리학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대표적인 것이 ‘인과율’입니다. 모든 경우, 즉 ‘전칭명제’와 관련한 사건들이 특히 이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모든 경우에 물은 100도가 되면 끓는다.”, “모든 경우에 불이 붙으면 목재는 연소된다.” 등의 전칭명제들이 어떻게 모든 경우에 그럴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칸트의 의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무한한 개별 사례들을 다 조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들이 ‘모든 경우’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또 이러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를 칸트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인과율’이라는 범주가 선험적으로 우리의 이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를 구축시키는 그러한 조건’에 대한 탐구로서의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체’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고방식을 성립시키는 조건을 밝히면서, 이런 점에서는 칸트적인 사고와도 관련이 있는데, 동시에 이러한 조건 때문에 서구적인 사고방식이 와해된다는 것을 밝힙니다. 어떻게 이렇듯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이 작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문자의 폭력: 레비스트로스에서 루소로」라는 그러한 장(章)이 알려주는 것처럼, 루소의 인류학적 프로그램에 바탕을 두고서 연구를 해 왔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어떤 점에서 서구 중심주의적인 ‘로고스 중심주의’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그 다음에 루소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서구적인 작업의 전범을 보여줍니다. 분량 상으로 제2부가 『그라마톨로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데리다는 주로 루소의 『언어기원에 관한 시론』이라는 저작을 중심으로 이런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지만, 그 외의 『에밀』이라든지 기타 여러 저작을 통해 작업하기도 합니다. 또 제2부 목차에서 「이 위험천만한 대리 보충」이라는 제목에 등장하는 ‘대리 보충’이라는 것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보여줄 것입니다. ‘대리 보충’은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중요한 개념들 중 하나입니다.
 
3. 『그라마톨로지』의 머리말

 다음으로 머리말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겠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표현들이 몇 가지 등장합니다. ‘검증’, ‘범례’, ‘루소의 시기’, ‘언어기원론’ 같은 것들이 그 표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바로 ‘문자’라는 것의 작동방식을 실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해 보이는 것이 데리다가 앞으로 수행할 방식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데리다는, 서양적인 사고방식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루소의 시기를 선택하겠다는 내용을 머리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문자’라는 것, ‘기록’이라는 것,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서의 이런 ‘문자’를 ‘그램(gramme)’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전신을 통해 전달될 때 ‘텔레그램(telegramme)’이라고 이야기되고, 또는 어떤 것을 성립시키기 위해 문자체계가 미리 준비될 때는 ‘프로그램(programme)’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문자’라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에 대한 학문이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라고 불리는 이 책의 제목입니다.
 
자크 데리다(Jaques Derrida)의 방, 출판된 그의 책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문자의 작동방식을 다루는 것, ‘글쓰기’라 일컬어지는 것, 다시 말해 프랑스어로 ‘에크리튀르(ecriture)’라고 하는 것, 또는 ‘흔적’이라는 의미의 ‘트레이스(trace)’라고 일컬어지는 것, 모두 다 이 책에서 같은 ‘문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가끔 ‘아키-에크리튀르(archi-ecriture)’라는 표현도 나타나는데, 즉 ‘근원적인 에크리튀르’라는 것, 그리고 ‘근원적인 흔적’이라는 것, 모두 다 동일한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문자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루어지겠지만, 단순히 ‘글쓰기’라고 표현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프랑스어를 그대로 가져와 ‘에크리튀르’라고 적어 두었는데, 우리도 앞으로 이렇게 ‘에크리튀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이 책은 문자에 대한 연구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우리가 ‘판단’이라는 것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발성’하다는 사실도 떠올려 보십시오.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성’으로서의 영혼의 표현이며 ‘판단’이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담지 한 ‘명제’의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목소리’를 통해서 영혼의 상태는 가장 잘 표현된다는 것이 거칠게나마 표현될 수 있는 ‘로고스 중심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로고스 중심주의’는 ‘이성 중심주의’와 ‘음성 중심주의’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실제로 다루는 것은 ‘문자’에 대한 연구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외면적인 형태를 가지고 일컬어지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성립시키는 데는, ‘음성 중심주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음성’이 아닌 ‘문자’의 작동이 숨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라마톨로지』가 보여주려고 하는 바입니다.
 
 이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마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 철학의 목표가 ‘하나의 사고방식을 성립시키는 동시에 와해시키는 요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사고방식이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조건으로서 드러난 것이 ‘로고스’가 아니라 ‘문자’라는 것을 밝힘으로서, ‘음성 중심주의’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와해되도록 하는 것이 ‘해체’라는 작업의 목표인 것입니다. 즉, ‘로고스 중심주의’는 자기가 전혀 사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문자’에 기대서만 성립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그것을 와해시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해체’와 관련해서 이야기하겠지만, 현대 철학자들 중에 가장 유명한 철학자는 하이데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라마톨로지』도 하이데거적인 프로그램에 속해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현대철학의 사유가 진행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 점들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모순율’이라는 것은 명제적인 차원에서 성립하며, 이것은 사유의 근본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차적인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학기에 제 강의를 들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정성’이라는 것은 명제상의 모순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생각입니다. 데리다의 목표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립시키는 동시에 와해시키는 요소’, 즉 보통의 형식 논리상으로는 ‘모순율’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요소, 그 요소를 근본적인 조건으로 밝혀내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철학의 스타일 가운데 하나이며, 그 중에 데리다의 작업도 하나의 예로서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모순되어 보이는 조건을 밝혀내는 것이 이 철학의 목표이며, 우리는 차차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강의를 계속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머리말은 ‘에크리튀르’를 실증적인 방식으로 검증하겠다는 내용이라 정리됩니다. 특별히 루소를 선택해서 검증하겠다는 계획인 것입니다. 10쪽의 마지막 문장처럼 “루소주의에 도전을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출처] 해체주의: 성립시키면서 와해시키는 작업|작성자 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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