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② 무(無), 무화(無化)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② 무(無), 무화(無化)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② 무(無), 무화(無化) 2004/09/24 21:54 http://blog.naver.com/heepom/6041240한편, 종전의 자기 존재를 부정(否定)(n gation)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무화(無化, n antisation) 시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무화(n antiser)란 어떤 것을 완전히 죽여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것을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간주하거나 또는 그것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의식의 운동성은 매순간의 무화 작용이다. 이와같은 매순간의 무화작용에서 무가 발생한다. 앞으로의 어떤 존재를 지향하여 종전의 자기 존재를 무화했을 때, 그리고 자기가 지향하는 그 존재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을때 거기에는 미세한 틈새가 발생한다. 아무것도 아닌 (rien)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 균열과도 같은 미세한 틈새, 구멍, 아무것도 없이 텅빈 이 공간이 바로 무(無)이다. 그런데 무화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화만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무화도 있다.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의식과 자기의식의 두가지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내가 그러했던 과거의 내 의식」에 대한 무화와 마찬가지로 대상에 대한 무화도 대상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 대상을 내 의식이 지향하는 세계에서부터 제거한다는 뜻이다. 마치 현실에 있지 않는 듯이 간주한다는 것으로, 비현실화(irr aliser)와 비슷한 의미이다. 대상에 대한 무화의 예를 우리는「존재와 무」의 한 에피소드에서 볼수 있다. 그것은 친구 피에르를 찾아 카페에 갔다가 피에르가 없음을 확인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의식은 피에르라는 하나의 형상을 찾기 위해 탁자, 의자, 거울, 그리고 피에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모두 차례로 무화시켜 그것을 희미한 배경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기가 찾고 있는 피에르가 없음을 확인한다. 이것이 대상에 대한 무화이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할것은, 내가 대상을 무화할 때 나와 대상이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 대상이 아니고, 그 대상 또한 내가 아니다. 이 탁자는 내가 아니고, 나는 이 탁자가 아니다.그러나 나의 과거를 무화할 때, 나는 과거의 나의 모습과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하튼 그것은 나의 존재이다. 그리고 대칭적으로 나의 미래도 아직 내가 미래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것은 나의 존재이다. 나는 끊임없이 무화를 통해 변화생성되지만 그 분산 속에서도 어떤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사르트르가 대자의 성격을 디아스포라(diaspora-유태민족의 이산과 그들의 깊은 결집력을 뜻하는 말)로 규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여기서 시간성(temporalit )의 문제가 제기된다. 자기가 되고자 하는 총체성을 향해 스스로를 투사하는 대자의 운동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현재, 과거, 미래라는 세 차원에 의해서이다. 시간성이란 칸트적 의미의 범주가 아니라, 나타남과 무화의 한 형태이다. 대자의 실존이 탈자(脫自, ek-sistence)이듯이 시간성은 탈정지(脫停止, ek-stase)이다. 시간성이란, 앞으로 또는 자기 뒤로 끊임없이 자신을 지양해 가는 대자, 그 자체이다. 시간성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대자에 의해서이다. 항상 똑같이 자기와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 즉자에 의해서는 결코 시간성이 올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즉자와 대자란 무엇일까? 우리는 대자(對自, pour-soi)에 대한 성격 규명이 없이 앞에서 몇번 이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가 대자라는 말을 쓴 부분들을 상기해 보자.우선 의식의 초월성을 말할때, 「대상을 향해 가는 대자 존재의 운동」이라고 했고, 무(無)에 대해서 말할때, 「무에 의해 대자 구조가 생긴다」거나, 또는 「우리의 의식은 한 가운데에 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세계안에서 무를 분비하는 어떤 존재인데, 이것이 대자존재」라고 말했다. 이어서 분산속의 통일성이라는 의미로 사르트르가 「대자의 성격을 디아스포라로 규정」했다고 했고, 「대자의 운동은 시간성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앞으로 또는 자기 뒤로 끊임없이 자신을 지양해 가는 대자」라고 했다. 이어서 「시간성이 세계에 오는 것은 대자에 의해서」라고도 했다. 대자의 반대말인 즉자(卽自, en-soi)에 대해서는 「항상 똑같이 자기와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대자와 즉자의 성격을 본격적으로 규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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