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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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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는 어떤 사람인가?| 진시기 글모음
김진식|조회 37|추천 0|2012.02.12. 21:32
아이다. 용주야. 지라르는 절대 종교가 아이다. 그는 다만 아주 솔직한 학자일 뿐이다. 다음 르네 지라르 소개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좀 특별한 학자랄까. 아님 좀처럼 권위나 유행에 잘 넘어가지 않는 진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같다.
 
002.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
 
1. 르네 지라르 연보
 
Francois Lagarde의 󰡔르네 지라르 혹은 인문학의 기독교화 Rene Girard ou la christianisation des sciences humaines,󰡕 (Nez York, Peter Lang, 1994)에 있는 르네 지라르의 연보와 󰡔문화의 기원󰡕의 <1장 정신세계>의 내용을 연결한 르네 지라르 연보는 다음과 같다.
 
1923. 12. 25.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르네 노엘 테오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4남매 중 두 번째 아이였다. 아버지 조셉 지라르는 당시 42세였는데 아비뇽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을 했는데 뒤에는 교황청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파리 고문서 학교를 나온 아버지는 지방 사학자로서 미뉘 출판사에서 나온 󰡔옛날 아비뇽의 회상󰡕이란 그 교황의 도시에 관한 아주 진중한 책을 내기도 했다. 역시 지적이었던 어머니는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드롬 도에서 대학입학자격고사 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여자였다. (문화의 기원, 23)
 
1941년 대학입학자격고사 합격. 아비뇽 미스트랄 고등학교 졸업
 
1941년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을 희망. 입시 준비를 위해 의학 공부하던 형이 있는 리옹으로 갔지만 정말 힘든 일상이었다. 소위 비점령 지역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해서 아비뇽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자신의 모교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파리 고문서학교를 권유. 고문서학교의 강의는 대부분 사건의 건조한 나열일 뿐이라는 것이 지라르의 기억이다. (문화의 기원)
 
1943-1947, 파리 소르본 대학 안에 있던 국립 샤르트 학교(Ecole nationale des chartes) 일명 파리 고문서학교에서 중세역사 공부. 논문주제는 <15세기 후반 아비뇽의 사생활 La vie privee a Avignon dans la seconde moitie du XVe siecle">
 
참고로 파리 고문서학교(Ecole nationale des chartes)는 조르주 바타유, 로네 마르텡 뒤 가르가 졸업하였고 프랑수아 모리악이 수학했던 학교였다.
 
1947여름: 아비뇽 교황청에서 브라크, 샤갈, 피카소, 몽드리앙, 마티스 등이 참여한 <현대 화가 및 조각가전>을 공동 개최.
 
1947. 조교 제의를 받고 1년 예정으로 미국 인디애나 대학으로 유학. 그러나 반평생을 미국에서 보내게 됨.
 
1953년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박사 졸업. 졸업논문은 <1940-1943년 사이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여론 American Opinion of France, 1940-1943>
 
1953 인디애나대학 강사. 역사학 박사였지만 그에게 의뢰된 문학 강의를 진행하는 중에 소설 작품들의 공통점에 눈뜬다. “스탕달을 해석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스탕달의 허영, 프루스트와 플로베르에 들어있던 스노비즘 같은 것들의 유사점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돈키호테도 다른 것인 동시에 같은 것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문화의기원, 32)”
연구와 구상에만 몰두하다 정작 논문 발표를 소홀히 하여 인디애나 대학에서 교수 지위 사임.
 
1953-1957 듀크 대학, 브린 모어 대학을 거쳐서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
 
1961존스 홉킨스 대학 정교수. 출세작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발간.
 
1962 󰡔프루스트: 비평적 에세이 모음집 Proust: A Colllection of Critical Essays󰡕 르네 지라르 편집 (New York: Prentice Hall)
 
1963 󰡔도스토예프스키: 짝패에서 통일성까지 Dostoievski: du double a l'unite󰡕(Paris, Plon)
 
1966 10월 미국에 구조주의를 소개하게 된 계기가 된, <비평의 언어와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를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개최. 롤랑 바르트, 데리다, 라캉, 풀레, 골드만, 이폴리트, 토도로프, 베르낭 등이 참석.
 
1972󰡔폭력과 성스러움󰡕 출간 프랑스 아카데미상 수상.
 
1974-1993 스탠포드 대학 프랑스 학과 교수.
 
1976󰡔지하실의 비평 Critique dans un soutterain󰡕 (Lausanne: L'Age d'Homme) 출간
 
1978 󰡔세상 설립 이래 감추어져 온 것들󰡕 출간
 
1981 스탠포드 대학에서 <무질서와 질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움 개최
 
1982󰡔희생양󰡕 출간 (Paris, Grasset)
 
1985󰡔옛 사람이 걸어간 사악한 길 La Route antique des hommes pervers󰡕(Paris: Grasset) 출간
 
1990 1991년에 출간될 󰡔선망의 연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A Theater of Envy: William Shakespeare󰡕(New York, Oxford: Oxford Univ.Press)의 프랑스어판 󰡔셰익스피어, 선망의 불꽃 Shakespeare, Les Feux de l'envie󰡕(Grasset). 출간
 
1994 󰡔이것들이 시작될 때는Quand ces choses commenceront ...󰡕 (Arlea) 출간
1990“문화의 기원과 존속에서의 폭력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모방적 모델을 탐구하고 비판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폭력과 종교에 관한 콜로키움 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 (COV&R)> 이라는 르네 지라르 사상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학회 결성. 이 학회는 모방 이론과 희생양, 폭력, 종교에 관한 주제로 해마다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이 학회의 명예의장으로 추대됨. 공동설립자이자 초대 회장은 로만 가톨릭 신부인 고 레이문트 슈바거 신부.
 
1995년 스탠포드 대학 정년퇴임
 
2005. 3. 17 프랑스 지성계의 최고 권위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종신회원으로 선출됨.
 
 
2. 르네 지라르의 학문적 여정 
 
자연인 르네 지라르의 일대기가 아닌 학자로서의 르네 지라르 학문적 여정의 특징은 <웹진문지>에 실렸던 <놀랄 줄 아는 리얼리스트, 르네 지라르>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과 󰡔문화의 기원󰡕의 <1장. 정신세계>를 연결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독학의 리얼리스트, 지라르
 
르네 지라르의 사상가로서의 면모, 그 중에서도 학자의 자세를 읽어낼 수 있는 글은 지라르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밝히고 있는 󰡔문화의 기원󰡕의 다음 대목일 것이다.
 
저는 글 읽는 것을 혼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나 대학에서 결코 대단한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독학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항상 어깨 너머로 다른 영역을 훔쳐보는 제 버릇이 생겨난 데에는 어쩌면 이런 스타일도 한몫했을 겁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파리 고문서학교도 제대로 이용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글 읽기를 혼자 배우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학교에서 대단한 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강의는 대부분 사건의 건조한 나열일 뿐’이라고 보았던 정규수업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어깨 너머로 다른 영역을 훔쳐보는 버릇’은 스스로의 의문을 해소할 때는 다른 영역으로까지 넘어가서 파고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라르의 학문태도는 철저히 ‘스스로의 문제제기와 스스로의 연구’로 점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지라르를 그의 말대로 ‘독학의 학자’라고 능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니, 학자들의 궁극적인 연구는 자시 스스로 하는 독학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하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라르의 학문태도를 독학이라고 부른 것은 연구 진행 방법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학은,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인디애나 대학의 프랑스어 조교 제의를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지라르가 문학 강의 제의를 받고서 지금껏 한 번도 본격적인 대상이 아니었던 문학작품으로 들어가던 그런 독학을 말한다. 그때의 일화를 보자.
 
청년 지라르는 인디애나 대학의 프랑스어 강의를 맡는다. 그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문학 강의를 부탁받게 되면서 문학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당시 그는 문학에 대해 명쾌하게 알지 못하던 때였다. (…)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던 그였다”
 
역사학자가 갑자기 문학을 강의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모험일 것이다. 위의 지적은 르네 지라르의 일생을 정리한 James G. Williams라는 타인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타인의 시선이 본인의 시선보다 더 객관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라르가 기억하는 문학과의 만남은 기존의 문학연구자들은 보지 않고 지나치던 것에서 큰 감동을 받을 줄 아는 그런 만남이었다. 감동을 받아들일 줄 아는 그였기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있는 것을 있다고 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있는 것을 있다고 보는’ 이런 태도를 지라르는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하지만 알다시피 일상의 우리는 얼마나 리얼리스트가 아닌가!
 
언제나 리얼리스트였던 저는 ‘외부의 세상’과 그것을 경험할 가능성을 항상 믿었습니다. 어떠한 학문도 올바른 리얼리즘에 근거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제가 리얼리스트이다 보니 지식인들이 그 정도로 리얼리스트가 아닌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의 기원>, 38)
 
리얼리스트 지라르의 눈에 보인 것은 바로 지라르 사상의 출발점인 ‘모방적 욕망’이다.
 
뒤에 소설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저의 첫 지적 모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스탕달을 해석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스탕달의 허영, 프루스트와 플로베르에 들어있던 스노비즘과 같은 것들의 유사점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돈키호테󰡕도 다른 것이면서 동시에 같은 것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때에 저는, 해체주의와는 달리 동일한 것 안에서 그 동일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차이를 규정할 수 있게 해주는, 모방이론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 유사점을 느낀 지라르의 통찰력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프루스트를 읽기 시작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물론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말입니다. 어려웠지만 그 글은 단숨에 저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한 작가가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해 어쩌면 이토록 깊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로서는 정말 경탄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저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모든 것을 같이 행하고 욕망도 똑 같은, 그래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짝인 친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같은 여자, 친구들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러자 이들은 단숨에 경쟁자가 됩니다. 여기서 희극적인 상황과 비극적 상황이 같이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제가 모방적 경쟁관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인데, 가장 사랑하고 동시에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같은 것을 더 많이 욕망하고 그리고 모방적 경쟁관계에 더 많이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성을 중시하던 18세기의 휴머니즘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것은 지금 우리와 같은 경쟁세계에 있어서는 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 말의 최악과 최선의 의미에 있어서 모방적인 존재입니다. 모방은 때로는 배우는 능력과도 관계가 있으며 또 때로는 같은 것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욕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경쟁자를 인정하면 할수록 왜 그런지 그 까닭을 설명하기가 더 어려운 그런 경쟁관계와도 이 모방은 관계가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아주 문제가 많은 것으로 만드는 이 모방의 메커니즘이야말로 나르시스적인 상처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얼리스트인 지라르는 눈에 비치는 것을 그대로 파고들어간다, 그야말로 천착한다. 기존 학문영역의 학자들은 이런 순간 이른바 대가들의 견해부터 살피려드는 게 일쑤일 것이지만 지라르에게 있어 기존 연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독학을 위한 참조 문헌일 뿐, 주된 골자는 항상 자신 스스로의 탐색에서 얻는다. 이런 지라르의 태도는 당연히 기존 학계의 입장에서는 달가운 존재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령 “뛰어난 이론의 특징으로 그 이론의 단순함을 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물론입니다. 어떤 문제를 연구하다가 어떤 복잡한 가설로도 해결하지 못하던 중에 아주 단순한 가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때, 그것을 두고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르네 지라르의 담백한 대답 또한 ‘있는 것을 있다고 보는’ 소박한 리얼리스트 르네 지라르의 면모가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탈 영역의 지라르
 
“학자들을 스스로 가두어버리는 칸막이 구획을 절대 믿지 않는 성향이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르네 지라르는 영역과 구획을 중시하는 기존 학계 옹호자들이 볼 때는 그야말로 발칙하고도 무례한 존재였을 것이다. 한 영역의 학문을 총괄적으로 정리하는 최근에 나온 프랑스의 󰡔철학사전󰡕에서 르네 지라르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지라르의 글에는 “정확히 프로이트가 부인되고 프로이트의 개념들도 거칠게 폄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학계의 최고 권위라 할 수 있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종신회원에 선출되는 등 2010년 현재 프랑스 지성계의 지라르 평가는 격세지감이 들 정도이다. 다음 기사가 보여주는 불과 몇 년 전의 프랑스 지성계의 지라르 평가는 위의 󰡔철학사전󰡕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라르 현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시중에서는 지라르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 전문가라는 작은 집단 내에서는 사정이 정반대이다. 지라르가 협잡꾼으로 매도되는 것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지식인에 대한 동료들의 도편추방이 이렇게 끔찍이 자행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누벨 옵세르바퇴르」, 1994.08.18)
 
흔히 르네 지라르를 문학연구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애초의 르네 지라르는 역사학자였던 것이다. 문학평론가라는 꼬리표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내고난 뒤에 붙여졌듯이 “󰡔폭력과 성스러움󰡕을 끝내고 나니 저는 인류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라는 그의 말대로 인류학자라는 꼬리표도 뒤늦은 그의 독학에 붙은 이름표였던 것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르네 지라르의 이런 태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웃사이더 지라르
 
이처럼 한 동안 모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르네 지라르한테는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한 주변인의 면모가 있다. 프랑스인이면서 대부분을 미국 대학에서 보낸 그의 이력을 볼 때 지라르는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지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이 모두 당시 프랑스의용군 대령이던 르네 샤르를 우상처럼 경배하고 있을 때 그 경배 대열에 참가하지 못하거나, 주변 친구들은 소설을 아주 낡고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보고 있을 때 자신은 프루스트 소설에 탐닉해 있던 소년 지라르를 떠올리면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이런 태도는 지라르에게는 일종의 기질 같은 것으로 보인다. (<문화의기원>,28) 지라르는 “스스로를 주변인으로 간주하”였는데, 그의 희생양 이론이 군중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인 만큼 “동원된 군중과 사르트르가 꿈꾸던 하나로 뭉친 군중에 저항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지라르도 이 맥에 닿아있다 하겠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물론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에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라르는 어떤 권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상을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학자로서는 아웃사이더라는 신분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지식인 사회에서 주변부에 있다는 상황은 항상 이로운 것 같다”는 지라르의 말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간적인 지라르
 
존스 홉킨스 대학 재직 시 피부암 비슷한 것에 걸렸지만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서 위험을 모면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던 중에 “미국 의료계는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하면서 순식간에 주머니를 터는 산적 때를 연상시켰다. 그들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완전히 쾌유되었지만 길거리에 나앉는 형편이 되었다.”고 말하는 르네 지라르의 모습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석학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 중의 하나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느끼게 된다.
 
‘놀랄 수 있는 능력’ 지라르
 
이상과 같은 르네 지라르의 면모를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그의 말대로 ‘놀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놀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학문의 첫 번째 감동”이라고 주장하는 지라르에게 “무감각한 태도는 반학문적인 태도”로 보인다. 그래서 르네 지라르의 이런 지적은 학문은 왜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너무 이상합니다. 분명 호기심과 이해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제 삶 전체를 전복시킬 것 같은 기분을 항상 느끼고 있었습니다.” (<문화의 기원>,46)
 
오늘날 가장 독특한 사상가 르네 지라르
 
르네 지라르에 대한 비판 중에 가장 흔한 것이 그의 이론은 너무나 단순한 체계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는 <모방욕망 이론>과 <희생양 이론>은 일단 가까운 두 사람 사이에 모방이 작동하면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이중모방으로 이어지면서 짝패의 갈등을 일으키고, 이 짝패 갈등이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폭력을 낳고 이 폭력을 극심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소멸하는 차이의 위기를 낳게 되고 이 무차별의 위기는 사회 전체의 존폐 위기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 순간 사회를 구원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 중의 한 사람에게 폭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다시 화해와 평온을 되찾게 된다는 희생양을 통한 사회 화해의 복원이라는 르네 지라르의 생각은,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도식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http://cafe363.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KdTA&fldid=MHvp&contentval=0000t0000uzzzzzzzzzzzzzzzzzzzz&nenc=&fenc=&from=&q=%B0%E6%C1%A6%B8%A6&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list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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