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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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실존단계" 이르면 합리성은 죽어 버린다는 것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이 단계에서 인간은 그가 신에 의해 설정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신 앞에서 실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수용한다. 그는 스스로를 오직 무한한 실존으로써 신에 의해서만이 다가오는 자기 자신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종교적 인간의 목표는 신과의 실존적인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오로지 믿음 안에서만이 이루어진다. 절대자로써 신은 세계의 인과성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오성에는 알려지지 않은 자로써 빠져나간다. 신은 이성적으로는 알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믿음은 조건으로 "오성을 십자가에 밖는 것"을 요구한다. 오성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 비이성적인 것이 믿어질 수 없게 함으로 믿음을 수정하는 역할로 작용한다. 그리고 오성은 종교적 단계로 오르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되는 자기 반성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오성은 따라서 키에르케고르에게는 크고 무조건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오성은 유한하고 순수하게 내재적인 중재에 봉사하기 때문에 지성적인 신 인식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오성을 통해서는 신이 인식될 수 없다는 지점에서 부정신학과의 좁은 평행선이 드러난다. 특히 니콜라우스 폰 쿠자누스, 보나벤투라 폰 바뇨레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그에 해당된다.인식될 수 없음에 근거해 신의 모든 말씀은 부정적으로 머물러야 한다. 긍정적이고 기술적인 진술들은 기껏해야 지시적이고 도움이 되는 성격을 지니며, 자신의 다다를 수 없음이라는 한계를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오성의 실패이고 인간은 이것을 의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했을 때, 자신의 한계에 대한 앎으로 부터 나오게 되는 믿음의 길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인간은 오성으로부터 실제 불가능 한 것으로의 비약을 감행하게 된다. 믿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신이 스스로를 인식하게 함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rational 신에게 이를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기 때문에 Da der Mensch nicht in der Lage ist, rational zu Gott zu gelangen, 신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여야 한다. 즉 인간이자 동시에 신이라는 패러독스를 정립함으로써이다. 즉 시간안에 영원함을, 내재안에 초월을, 유한성에 무한성을 존재하게 함으로이다. 이 패러독스는 인간에 대해서 통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 지점 까지 마틴 루터 이후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전통에 나타나 있는 사유 방향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직 믿음으로의 비약만이 남게되는 것이다. 신 과의 실존 관계는 항상 순간적으로만이 발생될 수 있으며, 인간은 늘 다시 자신의 고유한 실존으로 되돌아 가고, 그로써 자신의 초월적 존재근거를 잃어버리게 되고 자기자신의 정당한 질서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새롭게 믿음 안으로 비약을 행해야 하고 믿음의 순간을 "반복"해야 한다. 이 믿음의 순간 안에서만이 자기는 자신과 그리고 실존적 근원과의 옳바른 관계에서 발견 되는 것이고 그럼으로 절망 없이 순간적으로 실존하는 것이다.(자료출처 http://sayubang.blogspot.kr/2013/01/blog-post_35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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