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
------------------------------------ 인용 자료 시작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 전문 자료
자료출처 2011/08/11 15:15 http://blog.naver.com/kimhans/134908553
[유료] 해당 자료의 다운로드는 해피캠퍼스에서 가능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두 철학자는 시기적으로는 플라톤이 기원전 348년까지 살았고 아리스토 텔레스가 기원전 384년에 태어나게 되었다. 두 철학자다 그리스 철학자이며 각각의 사상을 펼쳤다. 우선 이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적인 차이를 말하기 전에 형이상학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형이상학이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경험 세계를 넘어선다고 주장되는 존재자의 본질에 관한 관념론적 이론으로 변증법적 사고 방식에 대립하는 사고 방식을 말한다. 라틴어로는 metaphysica. 영어로는 metaphysics가 된다. 라틴어 meta는 뒤라는 뜻이고 physica는 자연학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안드로키코스(Andronikos)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배열하는 과정에서 자연학에 관한 저술들 뒤에다 놓은 저술들에 대한 명칭이였다. 형이상학은 내용면에서 존재자에 관한 탐구를 목표로 삼는 학문이며, 자연학보다 높이 다다르는 학문이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의 핵심이 되는 것은 이데아 이론이다. 소크라테스는 개념이란 현상의 변화에서 고정되고, 모든 인간들에 의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개념만이 홀로 보편 타당성을 소유할 수 있으며 참다운 인식의 대상일 수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점이 전제되어 있다. 즉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성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된 인식 능력이며 따라서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만인 인식 주관에 의하여 개별 현상으로부터 추상된 개념(보편 개념)이 보편적인 지식을 표현한다면-플라톤이 추론하기에는-모든 지식에는 객관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 주관적 개념에 일치하는 객관적 실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찾아진 실재는 실로 개념(보편 개념)과 마찬가지로 확고하고 불변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이 실재는 다시금 변화하는 덧없는 개별 사물이 아니고 개별 사물과는 상관없이 개별 사물을 떠나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를 소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 개념에 일치하는 이러한 객관을 플라톤은 이데아로 나타내었다.
플라톤은 인식의 영역을 둘로 나누었는데, 우리의 감각이 불완전한 것이므로, 절대적인 지식의 대상은 현상계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다운 지식의 기원과 역을 감각과 감성계에 두지 않고, 이성과 예지계에다 둠으로써, 감성과 이성, 감성계와 예지계라는 이원론을 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우리는 감각이 인지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오직 불확실한 의견밖에 가질 수 없으나 이성을 통해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 확실한 지식은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아는 것이고,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하였다. ‘이데아(Idea)’는 ‘본다’는 그리스말에서 유래하며 ‘보여진 모습’, ‘나타난 모양새’ 즉 정신의 눈인 이성이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한 보편적 형상을 뜻한다. ‘이 꽃’과 ‘저 옷’의 색상은 다르지만 ‘빨갛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데아다. ‘이 삼각형은 저 삼각형보다 더 삼각형답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이데아다. 따라서 이데아는 보고 만지고 느끼는 등 육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참모습에 부단히 접근하여 파악할 수 있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삼각형을 칠판에 그렸을 때 그려진 삼각형은 참된 삼각형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참된 것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감각적인 실재적인 사물들은 모두 이 이데아들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순수한 삼각형을 생각하기 때문에 칠판에 그려진 삼각형을 삼각형으로서 이해하게 되듯이 이데아의 세계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과 세계를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 즉 존재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진리 인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고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는 항상 `현실을 초월한` 이데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데아는 어떤 개념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이 내용적․ 실재적 및 본질적 통일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이데아는 이들 모든 대상 각각의 기초가 되며, 이들 모든 대상을 표현한다. 이데아는 개념적 보편성의 원형(原型)이 되며 순수하고 객관적인 유개념(類槪念)이다. 그러므로 모든 유(類)의 사물들에는 그러한 이데아, 예컨대 말, 나무, 책상, 집 등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개별적인 감각 사물들에 대립하여 이데아는 온갖 감각적인 성질들을 소유하지 않으며 비 공간적․ 비물질적이다. 크기, 용기, 덕,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추상적인 개념들도 역시 그것들의 이데아 속에 자기들의 객관성을 소유한다.
http://mybox.happycampus.com/blessed84/2239152
[출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작성자 입춘대길
------------------------------------ 인용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 인용 자료 시작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 전문 자료
자료출처 2011/08/11 15:15 http://blog.naver.com/kimhans/134908553
[유료] 해당 자료의 다운로드는 해피캠퍼스에서 가능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두 철학자는 시기적으로는 플라톤이 기원전 348년까지 살았고 아리스토 텔레스가 기원전 384년에 태어나게 되었다. 두 철학자다 그리스 철학자이며 각각의 사상을 펼쳤다. 우선 이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적인 차이를 말하기 전에 형이상학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형이상학이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경험 세계를 넘어선다고 주장되는 존재자의 본질에 관한 관념론적 이론으로 변증법적 사고 방식에 대립하는 사고 방식을 말한다. 라틴어로는 metaphysica. 영어로는 metaphysics가 된다. 라틴어 meta는 뒤라는 뜻이고 physica는 자연학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안드로키코스(Andronikos)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을 배열하는 과정에서 자연학에 관한 저술들 뒤에다 놓은 저술들에 대한 명칭이였다. 형이상학은 내용면에서 존재자에 관한 탐구를 목표로 삼는 학문이며, 자연학보다 높이 다다르는 학문이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의 핵심이 되는 것은 이데아 이론이다. 소크라테스는 개념이란 현상의 변화에서 고정되고, 모든 인간들에 의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개념만이 홀로 보편 타당성을 소유할 수 있으며 참다운 인식의 대상일 수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점이 전제되어 있다. 즉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성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된 인식 능력이며 따라서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만인 인식 주관에 의하여 개별 현상으로부터 추상된 개념(보편 개념)이 보편적인 지식을 표현한다면-플라톤이 추론하기에는-모든 지식에는 객관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 주관적 개념에 일치하는 객관적 실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찾아진 실재는 실로 개념(보편 개념)과 마찬가지로 확고하고 불변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이 실재는 다시금 변화하는 덧없는 개별 사물이 아니고 개별 사물과는 상관없이 개별 사물을 떠나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를 소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 개념에 일치하는 이러한 객관을 플라톤은 이데아로 나타내었다.
플라톤은 인식의 영역을 둘로 나누었는데, 우리의 감각이 불완전한 것이므로, 절대적인 지식의 대상은 현상계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참다운 지식의 기원과 역을 감각과 감성계에 두지 않고, 이성과 예지계에다 둠으로써, 감성과 이성, 감성계와 예지계라는 이원론을 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우리는 감각이 인지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오직 불확실한 의견밖에 가질 수 없으나 이성을 통해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 확실한 지식은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아는 것이고,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하였다. ‘이데아(Idea)’는 ‘본다’는 그리스말에서 유래하며 ‘보여진 모습’, ‘나타난 모양새’ 즉 정신의 눈인 이성이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한 보편적 형상을 뜻한다. ‘이 꽃’과 ‘저 옷’의 색상은 다르지만 ‘빨갛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데아다. ‘이 삼각형은 저 삼각형보다 더 삼각형답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이데아다. 따라서 이데아는 보고 만지고 느끼는 등 육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참모습에 부단히 접근하여 파악할 수 있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삼각형을 칠판에 그렸을 때 그려진 삼각형은 참된 삼각형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참된 것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감각적인 실재적인 사물들은 모두 이 이데아들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순수한 삼각형을 생각하기 때문에 칠판에 그려진 삼각형을 삼각형으로서 이해하게 되듯이 이데아의 세계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과 세계를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 즉 존재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진리 인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고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는 항상 `현실을 초월한` 이데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데아는 어떤 개념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이 내용적․ 실재적 및 본질적 통일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이데아는 이들 모든 대상 각각의 기초가 되며, 이들 모든 대상을 표현한다. 이데아는 개념적 보편성의 원형(原型)이 되며 순수하고 객관적인 유개념(類槪念)이다. 그러므로 모든 유(類)의 사물들에는 그러한 이데아, 예컨대 말, 나무, 책상, 집 등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개별적인 감각 사물들에 대립하여 이데아는 온갖 감각적인 성질들을 소유하지 않으며 비 공간적․ 비물질적이다. 크기, 용기, 덕,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추상적인 개념들도 역시 그것들의 이데아 속에 자기들의 객관성을 소유한다.
http://mybox.happycampus.com/blessed84/2239152
[출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 형상 질료 형이상학|작성자 입춘대길
------------------------------------ 인용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