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장인
르네상스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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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장인
유럽의 지적 생활은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라틴 문헌의 발굴과 재발견에 의해서 크게 변화되고 자극을 얻었다. 그러나 유럽 지식인들은 과거의 그리스인들과는 다른 질문을 했으며, 다른 지적, 도덕적 기대를 가지고 이 새로운 문헌을 대했다. 즉 그들은 자연에 대한 다른 견해,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다른 견해, 다른 신학적 배경, 다른 지리학적인 경험, 다른 경제체계, 기술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절대적 권위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한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르네상스의 장인-예술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지식 계층과 사회적으로 하층인 장인들과의 결합에 의해서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수작업, 실험, 실제적 행위 등은 사회적인 특혜를 얻게 되었다. 이런 공동체의 형성으로 기술자들의 투시법, 지도제작법, 항해술, 광학, 자기학 등이 지식세계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되었다. 즉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아르키메데스의 저작, 헤론의 『기체 역학』(Pneumatica), 에우클레이데스와 비트루비우스의 저작 등 고대의 기술적 교과서가 발굴, 번역됨으로써 이를 접하게 된 따라 장인들도 자신들의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물 |
이러한 일들이 가장 일찍 그리고 현저하게 나타났던 곳은 이탈리아의 건축기사들에게서였다.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당시의 전형적인 장인-예술가였는데, 그는 금세공 기술, 조각, 건축, 원근법, 성체 건축, 수리공사, 역학 및 기구 제작에 능했다. 또한 그는 당대의 인문주의 학자들과 접촉했는데, 그의 원근법 연구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연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브루넬레스키로 대표되는 이들 새로운 부류의 건축가들이 짓게 된 건물들은 그 전처럼 그냥 많은 사람들이 덤벼들어서 세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설계를 하고 구조 등에 대한 고려를 한 후에 한 사람의 지휘하에 지어졌다. 르네상스기에 와서 처음으로 건물과 개인건축가의 이름이 연관되게 된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길드에 속했었지만 점차로 개인적인 힘과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길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건축활동을 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 |
그리고 이러한 일은 건축가들만이 아니라 기계의 생산이나 이용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포나 총 등의 무기제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이유들에서 수학, 역학의 문제들을 공부하고 과거의 전통을 찾기도 했으며 책들도 쓰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 '학문적 기술자'(academic engineer)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기계가 자연에 역행하거나 자연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움직임을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에서 더 잘 보여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자연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변형을 가해서 그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 그는 화가, 발명가, 기술자, 해부학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자신이 살던 시대의 경제적 요구를 앞서간 수많은 설계를 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낙하산(1485), 대기압 화약 엔진(1508), 방적기계, 선반, 천공기, 바람방아, 새의 비행을 연구해서 다양한 근육력을 이용한 비행기 구상 등을 들 수 있다. 니콜로 타르탈리아(Niccolò Tartaglia, 1500?∼1557) 역시 장인으로서 갈릴레오가 반세기 뒤에 연구하게 되는 포탄의 궤도 문제를 연구했다.
아그리콜라의 De re metallica 1621년판의 표지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 |
자연에 변형을 가하는 인공적 과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비단 건축, 기계, 포술 등만이 아니고 노동과 실용적 기술 전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자라나서 16세기가 되면서 실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도공이었던 팔리시(Bernard Palissy, 1510∼1560?), 항해사노먼(Robert Norman, 16세기 말), 외과 의사 베살리우스, 철과 금속 제련에 관한 책인 『불꽃제조술』(Pirotechnica, 1540)을 집필한 바노치오 비링구치오(Vanoccio Biringuccio), 광산업과 제련업에 관한 책인 『금속에 관해서』(De re metallica, 1556)를 집필한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Georgius Agricola) 등에게서 잘 보여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실용적, 기술적 지식이 훌륭한 지식임을 강조하고 나아가서는 그러한 지식의 방법이 자연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고 과학에서도 사용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과학이 진실을 얻기 위해 실생활과 초연해 책을 읽고 사고하고 명상에 잠기는 데서 벗어나서 실제 자연을 관찰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 변형을 일으키는, 즉 실험을 하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은 실제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만이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 대학과 상류사회의 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특히 앞에서 본 것 같은 목적에서 이들이 저술한 책들에 이런 생각이 나타나게 되자 과학자나 철학자들 중에서도 이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실험적 방법을 중요시한 사람들일수록 동조하는 정도가 깊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르네상스 동안에 점차로 생기기 시작한 사상적인 요구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즉 이 시기에 와서는 대학 내에서도 논리적 방법이나 수사학, 선험적 논의 등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힘이 없고 그 대신 계속해서 학문을 세분화시키고 비생산적으로 만들어서 쇠퇴로 이끌 따름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이런 비생산적인 논의를 대신해서 실제 현상의 관찰, 실제 과정과 조작의 이해, 경험적인 연구 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실제적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태도와 아주 잘 부합되는 것이었다.
(자료출처 http://www.postech.ac.kr/press/hs/C06/C06S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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