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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determinism, 決定論)

결정론(determinism, 決定論) 

결정론에 대한 참고용으로만 읽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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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determinism, 決定論):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因果) 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을 말한다.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앞서 일어난 원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처음에는 모든 일은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일어나도록 미리 정해졌다는 것을 종교적 계시에서 구하였으나, 19세기 고전물리학의 전성시대에 이르러서는 물리학이 결정론적 세계상(世界像)을 제시하여 '과학적 결정론'의 올바름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에는 양자역학이 대두하면서 강력한 의미에서 결정론은 반드시 모든 국면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일이 일어나는 확률만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확률론적 결정론'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과학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결정론적 사고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듯한 사람이 있어, 아인슈타인처럼 확률론적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물리학자도 있고, 양자역학에 결정론적인 해석을 다시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특수한 문제로서는 인간의 행동에 결정론적인 해석이 합당한 것인가 아닌가는 예로부터 대두된 문제였으나, 컴퓨터 모델에 의한 심리학의 발전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결정론적 해석이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중요한 것은 결정론이 절대적으로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국면에서 어느 정도 유효한가의 문제일 것이다.
(자료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59537&mobile&categoryId=200000003)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원래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결정의 주체가 초자연적인 신인 경우도 있으며, 또한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종교적 결정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예정설에는 세계의 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구제가 원래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점에서 일반 결정론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연법칙에 의해서 세계의 일이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주장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도 이미 배태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근대 후기이다. 일반적으로는 뉴턴역학(고전역학)적 자연상의 확립이 물리학적 결정론의 성립에 중복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지만, 뉴턴 자신이 그런 자연상의 지주였다는 것은 오해이다. 실제로 물리학적인 결정론의 프로그램은 데카르트가 쓰고, 그 프로그램 중에 뉴턴의 운동법칙이 도입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창조주로서의 신의 전지ㆍ전능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서, 이 자연은 창조된 시점에서 신의 전지ㆍ전능의 표현 결과, 이미 손질이 불필요한 형태로 완성되어 있는, 따라서 그 운행도 완전히 신의 계획대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소재와 그것이 행동하기 위한 법칙만 주어지면, 현 세계의 상태를 재현해서 보인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뉴턴은 오히려 이런 <기계론>적인 세계관에는 익숙치 않았다. 데카르트를 비판해서, <그는 가능하면 신없이 구원받고 싶었다>라고 언급한 것은 데카르트가 신의 작용을 창조의 시간에만 한정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명이기도 하였다. 뉴턴에게 신은 어떤 곳에도 <편재>되어 있으며, 어떤 때에 어떤 곳에도 명확히 현전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뜻에 반해서 그의 운동법칙이 데카르트의 프로그램 중의 <법칙>에 해석되자,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명확한 구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운동법칙은 운동에 관한 한 완전히 일의적인 인과연쇄를 보증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질점으로 환원되고, 그 운동이 모두 운동법칙에 의해서 일의적으로 묘사되는 이상, 이 세계에 생기하는 일체의 일은 결국은 결정되어 있다는 역학적ㆍ기계론적 결정론은 프랑스 계몽사상의 정점으로서의 <라프러스의 마(魔)>의 개념에 가장 잘 상징된다. 그중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 단순한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답도 포함해서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물론 20세기의 양자 역학은 미크로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뉴턴의 운동법칙 같은 일의적 결정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었다(불확정성 원리). 양자역학의 성립에 공헌하면서도 이런 비결정성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 등은 고전론적 결정성을 최종적으로 믿었는데, 일반적으로 미크로적인 비결정성은 오늘날 널리 수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미크로적 세계의 비결정성과 마크로적 세계의 결정성을 어떻게 연결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는데 이를 제시한 것이 <슐레딩거의 고양이>라는 우화이다. 한편, 상대성 이론에서 유도된 시간(또는 동시)의 상대성에서 새로운 물리학적 결정론이 탄생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논의는 많다.
(자료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28554&mobile&categoryId=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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