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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과 그 영향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과 그 영향 

아래자료는 쉐퍼의 책을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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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과 그 영향

목        차

  1. 중세에 있어서의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위치

  2.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인식론-영혼과 지성 개념을 중심으로
     1) 영혼 개념
     2) 지성 개념(능동/수동 지성)과 인식론
        (1)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
        (2) 물질적 실재에 대한 인식
        (3) 비물질적 실재에 대한 인식
        (4) 지성의 두가지 활동

  3. 아퀴나스 이후

1. 중세에 있어서의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위치
중세 철학을 크게 교부 철학의 시대와 스콜라 철학의 시대로 나누었을 때, 스콜라 철학 시대의 정점은 13C 경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역사적 사회적 조건들이 변화함에 따라 신학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받았는데, 이 시기에 출현했던 뛰어난 신학자, 聖 토마스 아퀴나스 ( Saint. Thomas Aquinas, 1225~1274)가 바로 그같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냄으로써 과거 교부 철학의 시대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랬던 것 처럼 교회는 다시 한번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아퀴나스의 인식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첫째로는 십자군 운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이 갖는 정치적 군사적 의미 때문에 중요했던 것은 아니고, 문화적 측면에서 끼친 영향 때문에 중요했던 것이다. 십자군 운동은 중세 기독교 문화가 유대교 문화, 이슬람교 문화 뿐만 아니라 아랍 철학자들에 의해 보존, 연구되어온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문화와 만나도록 해 준 사건이었다. 기독교 문화가 이 3 문화와 마주치게 되었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기독교 문화 내부에 변화가 초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간의 조우는 그 문화 안에서 자기 반성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탁발 수도회가 일반 민중에게로 침투하였던 사실을 들 수 있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평신도 운동이 그것인데, 이것 역시 중세 기독교 문화에 있어 새롭고도 위협적인 바람이었다. 왜냐하면 평신도 운동이란 말 자체가 폐쇄적이고도 정적인 카톨릭의 히에라르키아 (계층 체제)를 위협하는 혁명적 요소였을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수많은 反 교회적 종교 운동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배경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 전집의 발견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당시 이전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중세 기독교 세계에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이제는 완전한 하나의 체계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이 왜 특별한 의의를 가졌을까?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이성에 대한 이데아, 즉 신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철학이 신학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한에서만 유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달한 이슬람의 자연 과학의 유입 등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로 인하여 중세인들은 기존에 감히 의심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하나 둘씩 의심을 품게 되었고, 그 결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를 더이상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 전집이 발견되었다는 역사적 사건이 갖는 의의를 우리는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을 방법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체계라는 새로운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이 완전히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아퀴나스에 의해 새롭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가 신학을 지배하게 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과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긴장 관계를 더 자세히 살펴 보면 그것은 인식론에서 잘 나타나게 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 경험에서 출발하여 세계와 자연을 관찰하고, 여기에서부터 신적인 것을 추론해낼 수 있다고 보았으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직접 직관을 중시하여 자기를 신의 중심에서 보며 여기에서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신이 우리 인식의 맨 처음이냐(아우구스티누스) 아니면 맨 끝이냐(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로 귀결된다. 신이 우리 인식의 맨 처음이라고 보는 견해는 직관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모든 인식은 신적인 빛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이 입장은 프란치스코회의 입장과 상당히 일치한다. 후자, 즉 신이 우리 인식의 맨 끝이라고 보는 견해는 도미니코회의 아퀴나스에 의해 대표된다. 이것은 이성 혹은 지성 중심주의적 입장이며, 인식 행위에 있어 신의 직접성을 배제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인식은 신의 일(役事)인 유한한 세계로부터 출발하여 신으로 도달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프란치스코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유지된다. 즉 신에 대한 인식도 다른 모든 인식과 마찬가지로 감각 경험에서 출발해야 하고, 따라서 이성적 추론에 의해 신에게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각 체험에서 이른 귀결들은 교회의 권위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위의 두가지 입장은 결국 신율적 인식론과 교회의 권위로 보완되는 자율적 인식론과의 차이에 다름 아니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코회가 배출한 신학자로서 무너져가는 교회의 권위를 수호하라는 교황의 특명을 받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끌어들여,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용했던 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세의 봉건적 계층 질서가 변하기를 원치 않는 교회의 입장에 들어맞을 뿐더러 중세 신분 구조의 당위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함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질료의 상대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위계적 구조질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적 이성으로 실재론을 지키면서, 동시에 교회를 비판한 유명론에 대한 대응 논리를 만들고 새로운 호교적 전통을 창시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였던 것이다. 또한 동시에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서  신과 인간 이성간의 영역을 서로 분리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이 무모순 관계에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또 인간 이성이 본질적으로 비신앙적이지 않고 신에 대한 믿음인 신앙 역시 비이성적이지 않으므로 결국 신앙과 이성은 궁극적으로 최고의 존재자인 신 안에 공통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폴 틸리히는 이같은 아퀴나스를 두고 '조정적(調停的) 신학자'라고 파악하였다. ; 그때 그때의 역사나 교회사로부터 받은 이해 가능한 여러 범주들의 도움을 빌어서 부름의 메세지를 매개 혹은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던 신학자였다는 뜻에서인데, 이것은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의 아퀴나스의 역할을 적절히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2.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인식론(영혼과 지성 개념을 중심으로
1) 영혼 개념
아퀴나스는 창조된 것들, 즉 피조물들의 위계 구조 속에서 정점에 있는 것은 천사라고 보았다. 천사는 비물질적이며 비질료적이라는 단순성을 가지는 존재이다. 여기서 비물질적이란 말은 사실 비질료적이란 말과 동의어인데, 왜냐하면 질료와 형상의 합성은 오직 물질적 실체에만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성이라는 개념은 완전성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확실하게 신과 구분되어 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일 수 있는 근거는 천사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본질과 실존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위계 구조 상에서 볼 때 천사의 아래에 있는 인간 역시 영혼을 가지므로 비질료적 존재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 육체로 인하여 비물질계에 속하지는 못하고 물질계의 정상에 위치한다. 또한 천사와 마찬가지로 피조물인 인간은 당연히 본질과 실존이 구분되는 존재이다. 그런데 아퀴나스의 인간 영혼에 관한 이론은 기존의 해석과는 큰 차이가 있다. 플라톤으로부터 플로티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의 전통에서는 인간 영혼은 영적 실체라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수용하면서 인간의 영혼이 신체의 형상이자 능동성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영혼과 신체의 결합을 곧 형상과 질료의 결합으로 환원시킨 그의 인간 영혼론은 전통 신학의 대표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즉 영혼이 소멸할 수 있는 다른 질료적 형상에 동화되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영혼이 독립적 실체일 수 있는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과는 달리 아퀴나스는 인간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지 않았다.  

비단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은 육체의 형상으로서 영혼을 소유한 것으로 아퀴나스는 간주한다. 이때의 영혼은 고대 희랍의 프쉬케 개념을 연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개념 즉 영혼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극히 자연적인 실체에 다름아니라는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희랍에서는 프쉬케를 가진다는 말이 정신(mind)을 가진다는 의미보다는 생명을 가진다는 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은 육체의 본질적이고 유일한 형상으로서 존재하며 육체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지성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영혼 안에 자신의 고유한 지성을 소유하며, 그 영혼은 파괴되거나 소멸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슬람 철학자인 아베로에스의 이론, 즉 모든 사람을 위한 오직 하나의 지성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반박하고자 하였다. 아퀴나스의 이러한 반박은 각 인간 영혼의 고결함과 개별성을 보호하고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영혼 불멸을 위하여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다.

끝으로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이 갖는 힘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은 식물적인 힘, 감각적인 힘, 욕구하는 힘, 운동하는 힘, 그리고 지성적인 힘인데, 이 중에서 순수하게 지석적이고 의지적인 힘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도 영혼과 함께 남아서 영혼과 천사 등에 대해 직접적인 인식을 소유하는데 기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나머지 힘들은 영혼과 육체의 합성에 의존하는 힘으로서 인간의 육체가 죽으면 소멸해버릴 힘들이다.

2) 지성 개념( 능동 지성/ 수동 지성 )과 인식론
    (1)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퀴나스의 인간 영혼 개념은 필연적으로 지성과 인식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성( intellect ) 혹은 오성( understand ; intellectus )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흔히 영어의 이해하다( understand )로 번역이 되지만, 개념상으로는 생각하다( think )에 더욱 가깝다. 아퀴나스는 지성을 능동 지성( intellectus agens )과 수동 지성( intellectus  possibilis )으로 구분하여 그 활동을 설명한다.

      능동 지성은 개별적 감각 경험에서 보편적 관념들을 추상해내는 인간의 능력이며  수동 지성은 능동 지성을 통해 추상했던 관념들의 저장소이자 그 관념들을 사용하는 능력이다. 능동 지성 개념은 중세 철학사에서 보통 신비적이거나 신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아퀴나스에 와서는 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 아퀴나스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을 수용하지 않고, 항상 질료와 형상이 결합하여 실체를 이룬다고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인식론에 있어 능동 지성을 가정해야만 했다.(아퀴나스의 인식론에 있어 능동 지성은 매우 중요하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 모든 인간은 능동 지성을 영혼 안에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천사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연적인 힘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이 신체의 직접적인 형상인 탓에 인식 원리를 오로지 감관을 통해서만 구성할 수 있다. 즉 인간 지식은 질료적인 사물들과 그에 대한 감관, 또 그에 대한 지성 이 삼자간의 협력의 산물인 것이다.

     (2) 물질적 실재에 대한 인식
       아퀴나스는 인식론에 있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대상 사물들로부터 출발하는데, 바로 이 점이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와 대조되는 점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1.에서 ) 말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식에 있어 직접적 직관의 가능성을 확신하여 그로부터 물질적 세계로의 인식으로 내려오는 하향적 관점을 취했기 때문이다. 다시 능동 지성으로 돌아가서 보면, 감관에 작용한 감각적 대상들은 신체적 질료는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질료성과 개별성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결과로 보여지는데 ,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기 자연 대상에 관한 지각은 물질적인 어떤 것이 영혼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저 형상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장미를 볼때, 장미가 내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장미의 像 혹은 에이도스가 지각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무튼 여전히 질료성과 개별성의 흔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부터 보다 보편적인 형상을 추상해내는 능력이 바로 능동 지성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학 대전의 제 84문 제 4조의 respansio 를 통해서 그같은 아퀴나스의 견해는 플라톤과 아비세나의 주장에 대한 반박임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의 경우, 감각적 실재의 형상은 질료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물질적 질료는 돌의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 돌이 되고, 우리의 지성이 그 돌의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 돌을 인식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같은 플라톤의 견해에 대해서 형상이 질료 없이 존속함은 감각적 사물의 본성에 어긋난다고 반박한 아리스토텔레스를 피해서 아비세나는 능동 지성으로부터 지성적 에이도스가 우리의 영혼 안으로 , 감각적 형상은 물질적 질료 안으로 흘러들어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비세나의 생각은 우리들의 지성적 에이도스가 질료로부터 분리된 형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플라톤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음을 아퀴나스는 간파하였다. 그리고  그같은 견해는 인간의 영혼이 신체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만약에 영혼이 이미 질료로부터 분리된 형상만을 받아들이고, 감각을 통해서는 에이도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혼과 신체가 결합해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플라톤-아비세나의 주장이 참이라면 선천적인 시각 장애자도 빨간 색이 어떤 색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논리를 통해 아퀴나스는 우리의 영혼이 지니는 지성적 에이도스는  감각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독립적 형상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즉 신성한 정신 내의 이데아들에 의해 영혼이 물질적 사물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비물질적 실재에 대한 인식
       아퀴나스는 인간의 비물질적 실재에 대한 인식 가능성에 대하여 과감하게도 부정을 하였다. 신학 대전의 제 88문 제 1조의 respansio 에서 말하기를, 비물질적 실재는 그것에 관해 심상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추상을 통해 인식되지 않으며, 능동 지성이나 수동 지성이나 모두 현세에서는 물질적 질료에로만 지향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인식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아퀴나스 인식론의 기본 개념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능동 지성은 물질적 질료로부터 현실태로 인식 가능한 것을 만들고, 수동 지성이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따라서 현세의 이 상황에서는 지성은 그 자체로 비물질적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혁명적인, 그러나 논리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성은 물질적 실재를 통해 비물질적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그는 제 2조에서 제기하고, 여기에 대해서도 부정을 한다. 그 이유는, 물질적 실재와 비물질적 실재의 본성은 전혀 다르고, 인간의 정신적 기능도 비물질적 실재를 파악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인간 영혼은 신체의 직접적 형상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비물질적 실재를 아예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분명 사랑이나 미움, 혹은 신에 대해 관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형상과 질료의 결합체인 인간이 소유한 영혼은, 완전히 비질료적인 순수 형상은 아니므로 비물질적 사물을 '완전하게는' 인식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인간이 비물질적 실재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신체 질료로부터 분리된 사후(死後)에야 가능할 것인데, 이때가서 인간 영혼은 물질적 실재 중 극히 일부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비물질적 실재 중 특히 신의 관념에 대해서는 1. 에서도 언급했듯이, 완전하지 못한 인식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보완받고 지지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

(4) 지성의 활동
이제 지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우선 지성의 첫번째 활동으로서 추상 활동은, 능동지성이 가지적인 형상을 추상해내고 수동 지성에 의해 이 가지적 형상이 받아들여지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지성의 추상 활동은 참도 거짓도 아닌 단순한 파악 또는 개념의 산출을 결과한다. 이 추상적 인식은 우리가  보편적인 것에 의해서 비로소 개별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감각을 통해 형성되는 지성적 에이도스 개념'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구체적 대상물을 감각함으로써 지성적 에이도스를 형성하지만(즉 구체적 대상물이 지성적 에이도스에 우선하지만), 그렇게 하여 관념 혹은 지식의 형태를 갖추게 된 자료로써 다시 구체적 대상물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이처럼 우리의 인식이 개별적인 것을 감각하여 보편적인 것으로 지성이 인식한 후 그것으로부터 다시 개별적인 것을 파악한다는 이론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겼던 과제-개별자로부터 보편자를 파악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개별자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동물을 불명확하게 아는 것은 동물을 동물인 한 아는 것이다( 구체적 대상물로부터 지성적 에이도스를 형성하는 단계-필자註). 그런데 동물을 분명히 구분해서 아는 것은 동물을 이성적 동물이거나 비이성적 동물의 명목으로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인가 사자인가 분명히 구분해서 아는 것이다.(형성된 관념을 다시 구체적 대상물에 적용하는 단계-필자註) 우리들의 지성은 인간을 알기 전에 동물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들에게 개별적인 것의 인식은 보편적인 것의 인식에 선행한다. 이것은 감각적 인식이 이성적 인식에 선행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감각에서나 이성에서 보다 일반적인 대상이 덜 일반적인 대상의 인식보다 선행한다.'  (신학대전 제85문 제 3조 respansio)

        다음으로 지성의 두번째 활동은 판단 활동으로서, 이것은 동사 be ( ~이다 )에 의해 단순한 파악을 연합하거나 구별하는 것이다. 즉 사태들이 실재로 연결 또는 분리되어 있는 그대로 한 판단이 본질적 개념들을 연결 또는 분리시킨다면 그 판단은 참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판단 결과와 실재와의 일치 여부가 진리의 기준이 된다. 이를 두고 아퀴나스는 '진리란 사고와 존재의 일치다( vesitate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 , 신학 대전 1, 16-1)' 라고 간결하게 정의하였다. 이같은 지성의 판단 활동에 대해서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의 제 85문 제 5조의 respansio 에서 대략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인간의 지성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과정에 놓여있는 탓에, 한번만에 (추상 활동) 현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 그래서 추상 활동을 통해서 대상 사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다음에 속성과 우유성, 존재 방식, 상황 등을 알게 되는데 여기에서 지성이 요소간의 결합-분리와 긍정-부정적 판단을 하고 다른 판단으로 추리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판단 활동이 요구됨).'

3. 아퀴나스 이후
아퀴나스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속해 있던 도미니코회와 전 카톨릭 교회에서는 토미즘을 둘러싸고 처절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한다. 특히 아퀴나스 이론과 대립관계에 있던 프란치스코회는 아퀴나스의 주된 적대 세력화 하였으며 특히 1277년의 대정죄 (Condemnation)에서 정죄받은 217개 명제 중 아퀴나스의 명제도 몇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 의해 '교회의 빛'에 비유되었던 그의 사상의 진가는 머지 않아 발휘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1322년 교황에 의해 諡聖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1879년에는 마침내 토미즘이 전체 카톨릭 교회의 공인된 철학으로 격상되었으며, 1931년 교황청의 지시에 의하여 철학 및 사변 신학은 아퀴나스의 학설과 원리를 따라야만 한다고 명시되었다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20C의 토미즘은 新 스콜라 학파를 중심으로 네오 토미즘이라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시적인 측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평가하는 것 못지 않게, 철학사에 있어서는 그의 사상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살펴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우선 아퀴나스의 인식론은 경험주의적이다. 아퀴나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중세의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진리의 인식을 내면에서 추구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위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인간 인식은 인간의 외부, 특히 경험될 수 있는 물질적 사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던 그의 인식론은 어떤 형태로든 근대 경험론에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아퀴나스의 인식론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으로 우리는 그를 통해 칸트 철학의 예비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지성이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사물의 인식에서 보편적 개념을 추출하는 단계를 거쳐 다시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던 점은 칸트 인식론의 기본적 태두리가 이미 잡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즉, 칸트는 인간 정신은 감성에 의해, 외부에서 초래된 것을 재료로 현상을 만들고, 구상력을 중개로 하여 오성에 의해 하나의 규칙 하에 정리하여 판단한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아퀴나스의 인식론과 기본 틀에 있어 매우 흡사한 것이다.

** 참고 문헌
중세 철학사 (에띠엔느 질송 저, 김기찬 역, 문학과 지성사)
중세 철학사 (J.R.와인버그 저, 강영계 역, 민음사)
서양 철학사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역, 이문 출판사)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잉게베르크 C. 헤넬 저, 송기득 역,한국신학연구소)
인간과 사고 (토마스 아퀴나스 저, 박전규 역, 서광사)

  --인간과 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중 제84~88문까지의 발췌본임
(자료출처 http://phillox.com.ne.kr/pdata/tomas.htm)
------------------------------------ 인용 자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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