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 어느 신관이 더 합리적인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 어느 신관이 더 합리적인가?
자료출처 2010.02.03 19:27:19 지성적영성 http://holyqt.com/xe/4058
삼위일체 하나님 개념은 비논리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논리적 모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하나의 하나님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다. 오직 논리적인 모순이 성립되려면, 하나님은 하나의 본성에 세 가지 본성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든지, 아니면 하나의 인격에 세 인격이 들어있다고 할 때 모순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일한 감각(sense)으로 A이면서 동시에 -A가 될 수 없다는 ‘비모순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세 인격(three persons)이면서 오직 하나의 본질(nature)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 할 수 없을 뿐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는 충분히 논리적입니다. 여러분,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 하나님은 반드시 완전한 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도덕적으로도 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사랑하는 분입니다. 사랑은 인격적인 행위로서 관계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만 합니다. 또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반드시 다른 인격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한분이고 한 인격만을 가지고 계신다면 과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교제의 대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다른 인격을 사랑해야하는 존재인데, 이슬람의 신과 같이 하나님이 한 인격만 가졌다면 그 하나님은 처음부터 본성적으로 사랑의 완전성을 유지할 수 없는 분이라는 논리적인 귀결에 이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의지의 결과이지 하나님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불변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 이전의 하나님은 사랑의 본성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하나님은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완전하게 사랑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내적으로 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인격이 복수(세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창조 이전에도 완전한 사랑을 본성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삼위일체는 한분 하나님이시지만 구분되는 세 인격을 가진 하나님께서 서로의 의견이 충돌되지 않고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고 교통되어 있어서 상호 마음을 알고 이해하며 서로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의견일치를 보이신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슬람의 알라처럼 한 인격(또는 의지)만을 가진 단일신이라면 그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격체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신은 오직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지요. 반대로, 만일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라 여러분(다신)이면 서로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이고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최고의 신이 될 수 없고 완전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신)은 그 정의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최고의 신이기 때문에 오직 한분 외에는 최고의 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최고의 한 분뿐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도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신은 본질적으로 오직 한분이면서 세 인격을 가진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뿐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초월자인 동시에 내재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의미에서 우주와 구별되는 창조주로서 초월자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서 지극한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구체적인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내재자입니다. 바로 이것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예수님), 성령 하나님, 이 분들은 본질적으로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직접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님과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실제적인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본성적으로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인간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초월자와 내재자가 되시고 본성적으로 완전한 사랑의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만이 인간의 유한성과 궁극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종교 시스템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유일한 하나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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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 개념은 비논리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논리적 모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하나의 하나님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다. 오직 논리적인 모순이 성립되려면, 하나님은 하나의 본성에 세 가지 본성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든지, 아니면 하나의 인격에 세 인격이 들어있다고 할 때 모순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일한 감각(sense)으로 A이면서 동시에 -A가 될 수 없다는 ‘비모순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세 인격(three persons)이면서 오직 하나의 본질(nature)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 할 수 없을 뿐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는 충분히 논리적입니다. 여러분,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 하나님은 반드시 완전한 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도덕적으로도 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사랑하는 분입니다. 사랑은 인격적인 행위로서 관계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만 합니다. 또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반드시 다른 인격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한분이고 한 인격만을 가지고 계신다면 과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교제의 대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다른 인격을 사랑해야하는 존재인데, 이슬람의 신과 같이 하나님이 한 인격만 가졌다면 그 하나님은 처음부터 본성적으로 사랑의 완전성을 유지할 수 없는 분이라는 논리적인 귀결에 이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의지의 결과이지 하나님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불변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인간 창조 이전의 하나님은 사랑의 본성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하나님은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완전하게 사랑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내적으로 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인격이 복수(세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창조 이전에도 완전한 사랑을 본성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삼위일체는 한분 하나님이시지만 구분되는 세 인격을 가진 하나님께서 서로의 의견이 충돌되지 않고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고 교통되어 있어서 상호 마음을 알고 이해하며 서로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의견일치를 보이신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슬람의 알라처럼 한 인격(또는 의지)만을 가진 단일신이라면 그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격체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신은 오직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지요. 반대로, 만일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라 여러분(다신)이면 서로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이고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최고의 신이 될 수 없고 완전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신)은 그 정의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최고의 신이기 때문에 오직 한분 외에는 최고의 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직 최고의 한 분뿐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도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신은 본질적으로 오직 한분이면서 세 인격을 가진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뿐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초월자인 동시에 내재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의미에서 우주와 구별되는 창조주로서 초월자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서 지극한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구체적인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내재자입니다. 바로 이것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예수님), 성령 하나님, 이 분들은 본질적으로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직접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님과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실제적인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본성적으로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인간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초월자와 내재자가 되시고 본성적으로 완전한 사랑의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만이 인간의 유한성과 궁극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종교 시스템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유일한 하나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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