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_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자료출처 http://blog.daum.net/ok9195/15100089
철학자들은 삶의 문제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기 위해 골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죽음만큼 모두에게 예외 없이 해당되는 문제도 드물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도, 성공하는 인생을 산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열외가 있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는 죽음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며 있는 것들을 소멸시키는 대자연에 맞서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상징과 의미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영생(永生)을 추구해 왔다. 아마도 이러한 인간의 의지는 인류 문명을 건설하고 지탱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일 것이다. 종교 또한 죽음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시도 가운데 하나다. 영원한 세계,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늙고 병들어서 죽어 가는 삶의 과정을 겪으면서 느끼는 공포와 공허함을 잠재워 줄 수 있다.
반면, ‘실존주의자’로 불리는 일단(一團)의 철학자들은 철학적인 진단과 처방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오히려 삶의 활력으로 바꾸려고 했다. 우리가 이달에 살펴볼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생애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는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자수성가한 상인의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는 쉰일곱, 어머니는 마흔셋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아버지는 키에르케고르가 뒷날 ‘나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다.’라고 할 만큼 아들에게 신앙에 따른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엄숙함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 자신의 죄의식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죄의식에 시달릴 만한 일을 두 가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키에르케고르의 어머니와 결혼한 일이었다. 원래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하녀였는데, 아버지와 혼인한 뒤 두 달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는 이를 강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혼이라 보기도 한다.) 더군다나 그 당시 교회법은 재혼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 결혼은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이었다. 교회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두 달 만에 낳은 아기는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다.
다른 하나는 그가 젊은 시절 양치기를 할 때 추위와 배고픔에 못 이겨 하늘에 대고 신을 저주한 일이다. 아버지는 이 사건이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재앙’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무려 여든두 살까지 살았는데, 그 긴 생애 동안 2명의 부인이 죽고, 7남매 중 6명이 죽는 것을 차례로 바라보며 괴로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것이다. 나중에, 코펜하겐 대학교의 신학과 학생이던 스물두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경멸하면서 방탕과 절망의 길로 빠져 들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한 신의 저주가 자신의 집안과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확신했다. 그 뒤로 그의 삶에는 항상 ‘죄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러한 방황은 1837년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에게 나중에 목사가 되겠노라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건전한 생활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무렵 열여섯 살 난 소녀 레기네 올센(R. Olsen)과 사랑에 빠졌다. 2년 뒤, 그는 목사 시험에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올센과도 약혼을 하였다. 방탕했던 젊은이가 비로소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될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주저하며 물러서고 말았다. 자신의 집안 내력과 ‘방탕한’ 과거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순결하고 명랑한 올센과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결심한 것이다. 결국 그는 올센과 파혼하고, 베를린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파혼한 서른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맹렬한 속도로 창작 활동에 몰입했다. 불과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 『공포와 전율』(1843), 『반복』(1843), 『철학적 단편』(1844), 『불안의 개념』(1844) 등 수많은 굵직한 책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책들은 대부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데다, 글이 간명하고 대중적이어서 알아듣기 쉬운 편이었다. 따라서 그는 점점 문필가로서 명성을 얻어 갔다.
1846년, 서른세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적 단편에의 완결적 비학문적 후서(後書)』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아마도 그는 이로써 저작 활동을 마무리 짓고 지방으로 내려가 목사로서 활동하며 살려고 했던 듯싶다. 그러나 이 무렵 그를 거리의 논쟁으로 내모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으로 본다면 가판대에서 파는 삼류 신문 정도에 가까운 <코르사르>라는 신문의 편집장이 그의 책 중 하나를 비열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몹시 화가 나 다른 신문을 통해 이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화(禍)를 불러오고 말았다. <코르사르>는 그 뒤 지속적으로 키에르케고르를 ‘거리의 소크라테스’라고 조롱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아울러, 1854년 당시 존경받던 교회 감독의 죽음은 교회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교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교회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리고 단순한 관습과 제도로 굳어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는 교회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소책자를 직접 펴내는 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재산을 쏟아 부었다. 교회와의 격렬한 논쟁은 급기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1855년 10월의 어느 날, 키에르케고르는 교회와의 싸움 때문에 기진맥진하여 거리에서 쓰러졌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결국 병원에서 마흔두 해의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 안광복,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이야기』(신원문화사)에서 발췌·요약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사상
키에르케고르에서 연원(淵源)을 찾을 수 있는 실존주의 사상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그 의미가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 ‘절망’, ‘염려’ 등 실존 철학의 핵심 개념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탐구한 것은 ‘존재’ 자체다. 이 존재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하이데거는 인간을 연구했다. 세상에는 돌, 꽃, 나무, 동물 등 수많은 존재자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에 대해 곧 ‘있음’과 ‘없음’에 대해 구별할 수 있으며, 왜 자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존재자, 곧 ‘현존재(Da-sein)’라고 보았다. 그리고 존재에 대해 밝히려면 바로 존재를 알고 있는 존재, 곧 현존재인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은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한 개, 개 한 마리가 존재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에 존재한다. 나무나 돌멩이, 동물 등은 그냥 주어진 대로 있을 뿐이지만, 인간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실현해 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가능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아간다. 자신이 대학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가니까 나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댄스 음악이 유행하니까 자기도 댄스 음악을 좋아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의 삶을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삶’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본래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최종적인 가능성인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 이것 때문에 ‘본래적 삶(실존)’을 살 수 있다. 이는 사형수가 매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다. ‘불안(Sorge)’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이 주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의 쾌락, 다른 이들과의 관계 등에 몰두하면서 계속 비본래적인 삶을 이어 간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오히려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러한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적인 실존을 찾을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 안광복,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이야기』(신원문화사)에서 발췌·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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