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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6)  
자료출처http://www2.readersnews.com/sub_read.html?uid=25173&section=sc4
  
황선생 와이드 철학논술 
  
황인술   
 
 
탈레스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고대 그리스 소아시아 밀레투스에서 태어났으며, 밀레토스학파 철학자로 모든 사물의 본바탕에 있는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한 결과 세계는 따뜻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습기가 서로 다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탈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天球 : 천체의 시위치(視位置)를 정하기 위하여 관측자를 중심으로 하는 무한 반경의 큰 구면(球面). 모든 천체가 실지 거리와는 관계없이 이 구면 위에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 황인술 논설위원     ⓒ 독서신문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질이 존재하는 근원은 물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대립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은 불을 없애는 것으로 대립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물질은 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다른 물질과 ‘대립’되는 물은 다른 물질에 의해 양적으로 제한되고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모든 대립을 초월해 있는 만물의 근본물질은 양적으로 제한이 없으며, 다른 물질과 구별되는 물질이 아닌 공간성을 가지게 되며 이는 무한정하고(Boundless) 내부적으로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Indeterminate)이 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러한 무한정하고 내부적으로 규칙으로서 정해져 있지 않은 물질을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하였다. 아페이론은 공 대립자들 또는 규정되어 있는 것들은 바로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로부터 생겨나고, 그것으로 다시 사라지기 때문에,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는 대립자들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립하는 것들이 경쟁하여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 생기고, 별과 모든 생물이 탄생하지만, 이들이 규정과 질서를 지킨 후 마지막엔 경쟁의 죄를 보상하고 다시 아페이론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또한 천구(天球 Celestial Sphere)의 중심에는 버티는 기둥이 없고, 정지해 있는 원통형의 지구 주위를 해ㆍ달ㆍ별이 선회한다고 봤다. 

플라톤의 아페이론(apeiron)
 
키워드
하나(hen), 여럿(po11a), 형상 인식, 모음, 나눔
 
1) 플라톤 『필레보스』에 나타난 하나(一)와 여럿(多)에 대한 물음
 
플라톤과 필레보스 논쟁의 주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영혼의 상태와 배열’이 무엇인가이다. 즉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영혼의 모습이 쾌락인지 또는 지혜의 모습인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만약 두 가지 모습보다 뛰어나게 좋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쾌락과 행복 중 행복에  가까운 것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네들은 그것을 기뻐함(즐거워함의 쾌락)의 상태로, 우리는 그것을 슬기로움(분별력 있는 지혜나 이성)의 상태로 밝혀 보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이 이 둘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이 즐거움(쾌락)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진다면, 즐거움 쪽의 삶이 지혜(사려 분별) 쪽의 삶을 억누르고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필레보스』 11e~12a)
 
  그래서 프로타르코스는 ‘닮지 않은 여러 즐거움들이 있고, 닮지 않은 여러 지식들이 있다’는 소크라테스 생각에 뜻을 같이한다. 여기서 어떻게 ‘하나(hen)’가 ‘여럿(pol1a)’이 되고, ‘여럿(pol1a)’이 ‘하나(hen)’가 되는가 하는 물음이 시작된다.
 
  “나는 즐거움(쾌락)이 다양한 것이라고 알고 있네. 그리고 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무슨 본성(성질 : physis)을 지니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야 하네. 듣기에는 단순하게, 즉 한 가지 것으로 들리지만, 아마도 그것은 온갖 형태를 가지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야.”(12c)

2) 하나와 여럿에 대한 두 가지 물음 
 
1. ‘형상’에는 하나와 여럿에 대한 문제가 있으며, 본성을 알기 위해 중요하다. 
2. ‘개별자’문제에 있어 하나와 여럿에 대한 문제.
 
개별자들에 있어 하나(一)와 여럿(多)에 대한 물음은 ‘하나인 주어가 어떻게 많은 서술어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쉽게 말해질 수 있다. 여기서 서술어(predicate), 즉 보편자(universal)는 단순한 논리적 개념이 아니라 형상을 의미 한다. 보편은 예를 들면 빨강 등에 대한 속성이나 관계에 적용된다. 보편자와 함께 이야기 되는 것은 개별자이다. 보편자는 개별자들이 서로 공통적으로 갖는 어떤 것이다. 가령 빨간 집, 빨간 자동차, 빨간 연필 등에서 빨강은 개별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쾌락과 이성에 대한 물음은 하나와 여럿의 물음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필레보스에게 색(色)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모든 색이 고정되어 변동이 없다면 똑같은 색이지만, 검정색은 흰색과 다를 뿐만 아니라 명백하고 확실하게 반대이다. 그리고 그림의 모양이나 생김새들은 모두 한 종류이지만 그것의 부분들은 서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플라톤은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모든 것들을 하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빛깔(Chroma) 또한 빛깔에 대해 그러하다. 적어도 바로 이점에 있어서는, 즉 모두가 빛깔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렇더라도 검은 색이 흰색과는 다르다는 점에 더하여, 가장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림의 모양이나 생김새도 서로에 대해 마찬가지이다. 모든 그림의 모양이나 생김새는 종류에 따라 나누어 놓은 갈래(유 : genos /같은 종류에 속하는 것)로는 하나이지만, 그것의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에 대해 서로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인가 하면, 어떤 것들은 어쩌면 헤아릴 수 없는 차이를 가질 것이다. 다른 많은 것의 경우에도 이러함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12e)
  
쾌락은 하나이지만, 쾌락들 간 서로에 대해 따로따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쾌락에는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쾌락, 생각이나 행동이 건실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쾌락, 그리고 알아서 깨달음 없이 사실과 어긋난 판단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쾌락과 사유하는 사람들의 쾌락이 있다. 왜냐하면 쾌락은 유(類)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그것의 부분들은 서로  간 정반대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서로 다른 점들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서로 어긋나거나 반대되는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그러한 주장은 어쨌든 믿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즐거움들에 반대되는 어떤 즐거움들을 발견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13a)
 
즉 ‘쾌락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으며,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쾌락들은 쾌락이라는 용어로 대표된다’는 언어적 이중성이 이성적인 부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레보스는 쾌락은 결코 대립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왜냐하면 필레보스에게 쾌락이란 서로 다르지 않으며, 모든 쾌락은 똑같기 때문이다.

3) ‘이데아계’와 ‘현상계’의 관계
  
하나는 여럿이고, 여럿은 하나라는 법칙이다. 하나(一)와 여럿(多)의 물음이 거짓 없이 참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생성•소멸하는 개별적인 사물의 하나가 아니라, 생성•소멸하지 않는 하나인 조건에서이다.
  
하나와 여럿의 물음은 한 개별자가 여러 반대되는 성질들을 갖는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 개별자가 형상들에 관여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본성상 하나와 여럿의 문제는 생성과 소멸하지 않는 것들의 일자(to hen)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 생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누군가가 사람을 하나로 소를 하나로 아름다움을 하나로 그리고 좋음을 하나로 보려고 할 때 이 하나인 것들 및 이와 같은 것들과 관련된 대단한 열의는 그 나눔과 함께 논쟁거리가 되네.”(15a)
 
즉, 사람을 하나로, 아름다움을 하나로, 그리고 좋음을 하나라고 할 때, 일자들과 그러한 종류의 것들에 대해서 나눔과 함께 매우 중대하고 절박한 의견들이 있게 된다. 예를 들면 하나와 여럿이 자세하게 말해짐에 의해 동일시되는 것은 자세하게 말해지는 것들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다. 사유의 훈련이 되지 않은 젊은이들은 이것을 논하여 다툼으로 이용하여, 모든 논의를 혼란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래서 일과 다의 문제와 관련된 혼란을 순조롭게 제거할 나눔 의 방법이 제시 되는 것이다.

 ‘하나’란 구분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다. ‘여럿’은 구분될 수 있고 구분된다. 발생학적 순서에 따르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 이전에 의미나 단서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감각적 인식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성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본성상 다중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성의 질서에 따르면 분명 하나가 여럿에 앞선다. 왜냐하면 후자가 전자를 먼저 내세우기 때문이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존재자에 영향을 미치고, 구분에 예속되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이미 존재자 자체는 그 구분을 벗어나 있다. 그래서 온전히 존재자에 의존하고 있는 하나가, 무엇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있는 것의 원리이자 원인’인 실체와 연관 지어 고찰해야 한다. 결국 ‘하나’는 실체가 규정화와 형상들의 다수성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상당히 오래된 문제이며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보다 뛰어나고 신(神)에 더욱 가까이 살았던 선현들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와 여럿으로부터 유래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정할 수 없는 것(apeiron)과 한정할 수 있는 것(peras)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一)와 여럿(多)의 질문은 모든 것에서 항상 회전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 이 회전을 맛보게 되면 마치 지혜의 보고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고 열광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혼란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다른 것들을 둘러싸면서 하나로 묶었다가, 그것을 다시 풀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이와 같은 하나 및 여럿과 관련된 질문들로, 제대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에는 온갖 난문(難問 : aporia)의 탓들이 되지만, 제대로 합의를 보게 될 경우에는 쉽게 풀림의 탓들이 되는 것들이지.”(15c)
 
하나(一)와 여럿(多)의 질문은 하나(一)가 어떻게 여럿(多) 일 수 있고, 반대로 여럿(多)이 어떻게 하나(一)가 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하나와 여럿의 질문은 실재하는 ‘이데아계’와 있다가 없어지는 ‘현상계’와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여럿(多)에서 보편적인 하나(一)로 나아가는 것은 다양한 감각적 현상에서 보편적인 하나를 찾아 나서는 ‘진리 인식작용’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보편인 하나를 알고서 이를 다양한 현상 설명에 적용하는 일은, 진리를 알고서 이를 현상계에 적용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즉 현상계에 대한 지각작용이 중요하며, 로고스를 포함한 옳은 판단이 참된 인식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생각 찾아보기

■ 다음 글을 읽고 아낙시만드로스와 플라톤의 아페이론에 대해서 쓰시오.(500~600자)
 
 “있다고 보통 말하게 되는 것들은 하나와 여럿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이것들은 한정(한도, 한정자 : peras)과 한정되지(한도 지어지지) 않은 상태(apeiria)를 자기들 안에 본디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이 이와 같이 질서 지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늘 그 때 그 때마다 모든 것과 관련해서 ‘하나의 이데아’를 생각하고 찾아야 한다.”(16c)
 
여기서 항상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一)와 여럿(多)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유한(한계)과 무한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내재’는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재’는 우주의 영원한 체계의 부분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물들에게 귀속하는 내재적인 속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하나와 여럿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 자체에는 내재적으로 ‘수적인 한정성과 무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계는 한정된 수의 종(種)들을 의미하며, 무한(apeiron)은 무수한 개별자들을 의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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