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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정립을 위한 1단계 공부

기독교 세계관 정립을 위한 1단계 공부<창1-12장>②  

“영원세계와 역사세계를 바르게 인식하자”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자 한다면, 성경에서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목적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경륜(經綸)을 파악하는 것이어야 한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 창조로 말미암은 우주와 인간의 시작과 변질 등을 계시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 1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알아야 하며, 그 창조주 앞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경륜을 계시해 주신 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세상을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를 쉽게 달성하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본의에 합당한 생활,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한 성경의 기록목적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욕(私慾)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경을 공부한다면 가장 신성한 것을 사취(詐取)하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창세기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그에 합당한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해 보자.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에서 “태초에”의미를 알아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영원 자존자로 계셨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에 대한 신적(神的) 계획을 가지시고, 그 계획에 따라서 창조사역을 시작하셨다. 여기서 ‘태초에’라는 말은 천지창조의 ‘시작점’이라는 뜻이다. 이 ‘태초’가 있기 전에는 영원 자존 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영원세계만 있었다. 그런데 바로 ‘태초’라는 시작점에서 하나님의 창조로 시공간의 역사세계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자존 자이신 하나님 외에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영원 자존 자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자 비로소 우리가 경험하는 천지와 만물이 생성 되었다.

그렇다면 영원세계와 시공간의 역사 세계와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시공간의 세계는 무엇이고 영원세계는 무엇인가? 영원세계에 대한 그동안의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견해는 영원세계가 시공간의 세계의 시작으로 일단락되고 시공간의 세계가 끝나면 다시 시작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원세계는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더불어 있는 하나님의 세계이다. 시공간의 3차원의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의 세계, 즉 인간을 위시하여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관련이 있는 세계이다. 즉 우주와 만물이 다 시공간의 세계에 속해있다. 물론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가운데 충만하시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시공간의 제약 안에 존재하시는 분은 아닌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시공간의 세계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 영원세계라고 본다(endless time; Oscar. Cullmann). 

그러나 이 견해도 성경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 견해에 의하면 시공간의 세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영원세계가 없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세계는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 있는 문자 그대로 영원한 세계이다. 이를 모세는 시편 90:2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다.” 

이 시공간의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보존되고 통치되어지다가, 하나님의 인간구원역사가 마무리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극치에 이르게 되면, 마지막 심판 직전에 완전히 없어지거나 갱신(更新)된다고 성경은 말한다(벧후 3:7,10,13; 계 21:1-2). 따라서 천지창조로 시작된 시간이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 영원세계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세 번째 견해는 영원세계의 영역 안에 시공간의 세계가 얼마동안 진행되다가 하나님의 작정하신 경륜이 이루어지면 끝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영원세계는 ‘초월적 시간’(timelessness; J. Barr), 즉 초시간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초에 창조된 시공간의 세계는 영원세계의 존립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커다란 큰 원 안에 아주 작은 원이 부분 집합처럼 일정기간 동안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 큰 영원세계 영역은 무한하기 때문에 시공간의 역사세계가 잠간 동안 머문다고 해서 그 하나님의 영역이 축소되거나 제한 받지 않는다. 이 견해가 가장 합리적이며 성경적이다(참고. 시 90:4; 벧후 3:8).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작정하신 목적을 이루시려고 이 시공간의 역사세계를 창조하셨고(창 1:1), 그 하나님의 경륜이 완성되면 이 시공간의 역사는 일단락되며(참고. 슥 14:7),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세계 영역가운데 극치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계 21:1). 학자들 중에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 계 21:1)을 지금 이 땅의 갱신으로 보기도 한다. 즉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 우주가 새롭게 변화될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시공간의 제한적 영역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극치 상태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시공간의 제한 없이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무한히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의 영역인 영원세계 안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로 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그래야 시공간의 제한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다른 성도들과도 제한 없이 교제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원세계와 시간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를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경에서 ‘하늘’(heaven)은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언급된다(스 1:2; 느 1:4; 히 11:16; 참고 벧전 1:12). 그리고 신자가 육신 사망 후 부활 할 때까지의 중간기 상태에서 머무는 곳도 하늘 또는 낙원이라고 말한다(고후 5:1-6; 빌 1:23; 참고 눅 16:23). 따라서 우리는 ‘하늘’이 시공간의 역사세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원세계의 영역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2. “영원”에 대한 바른 인식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의 역사 전체를 동시에 보실 수 있으며, 항상 현재로 보신다. 그래서 창세전에 계획하셨던 영원한 경륜을 완벽하게 성취하신다(참고 사 60:19; 시 90:4; 벧후 3:8).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매여 있는 분이 아니며 시간의 주인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역사 전체의 모든 과정이 언제나 현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매일 수행하는 모든 일을 영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개인의 삶의 모든 정황에 대해서도 주권을 가지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라고 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모든 행위는 이런 점에서 영원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와 시공간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모세와 같이 기도 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우리가 시간을 바르게 사용하는 지혜를 소유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는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성취하는데 삶의 우선권을 두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만약 우리의 활동의 동기와 결과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악한 세대 가운데서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종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엡 5:16). 

그리스도인은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교회 가운데서 서로를 돌아보아 권면하여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데서 태만하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히 3:13).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시대 가운데 나타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된다(고전 10:31).
자료출처 http://www.cfocus.co.kr/n_news/news/view.html?page_code=&area_code=&no=608&code=20110907081809_9610&s_code=20110907081913_7172&ds_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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