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밀레니엄기획 20세기위대한유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2235호] 1999년 08월 07일 (토) 00:00:00 [조회수 : 8] 기독공보
http://www27.ndsof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0
「논리철학논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언어와 세
계의 관계는 철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새로운 주제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의
뿌리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소급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천착하는 주제는 이처
럼 고전적인 것이지만, 그는 이 주제를 새로이 인식해 냄으로써 철학사에 공헌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는 명제들의 총체이다. 이 명제들 중 어떠한 기본적 명제로도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의미론적 최소 단위로서의 단순명제를 그는 요소명제라 한다. 요소
명제를 제외한 모든 명제(복합명제)들은 논리적 분석에 의해 요소명제로 환원되며 이 명제
들의 진리치는 요소명제의 진리치에 의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복합명제의 요소명제에 대한
이러한 관계를 진리함수적 관계라고 한다.
여기서 그는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을 설정한다. 이 가정에 따
르면 언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응하는 비언어적 세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가 언어에 의미를 주기 위해서는 세계도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조와 닮
은꼴이어야 한다고 추리해서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성의 단계에 상응하는 세계의 구성적 단
계를 설정한다. 즉 의미론적 최소 단위로서의 원자적 사실 개념이 도입되고, 언어가 요소명
제와 그것의 진리함수인 복합명제의 총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세계도 원자적 사실과 그것에
의해 구성되는 사실의 총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언어와 세계의 이러한 이
원론적 동형론이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맺어 주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언어·세계·양자의 관계
이제 언어, 세계,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보다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위의 고찰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명제, 원자적 사실, 그리고 세계가 언어에 의미를 주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
자. 우선 복합명제의 진리치가 논리적 분석에 의해 요소명제의 진리치에로 환원된다 함은
분석의 과정에 의해 명제의 의미가 명료하게 제시될 수 있으며 그 의미는 결국 단 하나의
정확한 의미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명제의 진리치가 명료해지면 명제의 의미도 명료해진다
는 해석이 가능하다.) 요소명제는 의미론적으로 가장 단순한 명제이므로 가장 명료한 단 하
나의 정확한 의미를 가져야 하며 요소명제에로의 환원적 분석이 가능한 모든 명제의 의미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1) 과연 요소명제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요소명제에 관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명제들 일반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 의해 도달된 요소명제는 명제로서는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최소 단위이나 그 구성상 최소한 주어와 술어의 두 요소를 포함하므로 논리적으로는
이 요소들로 더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요
소명제보다 논리적으로 더 단순한 것으로서 이름의 개념을 도입한다. 이름은 다른 정의에
의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원초적 기호로서 이들이 서로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2) 과연 이름이 지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
다. 이 문제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영역 안에서는 대답될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요소명제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이 지시하는 비언어적인 세계가
요청된다. 이에 관련하여 이제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였던 가정, 즉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을 도입하고자 한다.
앞서 우리는 이 가정을 토대로 세계가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조와 닮은꼴이며 의미론적 최소
단위인 요소명제에 세계의 구성적 최소 단위인 원자적 사실이 상응함을 살펴보았다. 이로부
터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첫 번째 문제, 즉 요소명제의 의미의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 “요
소명제는 원자적 사실에 의해서 그 의미가 주어진다.”
원자적 사실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세계의 존재론적 단순체이다. 그런데 이 원자적 사
실에 상응하는 요소명제가 의미론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최소단위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그 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이름으로 더 분석되므로 그에 닮은꼴인 세계의 구성
요소로서의 원자적 사실도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존재론적 단순체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
로는 더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논리적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
자적 사실들보다 논리적으로 더 단순한 것으로서 대상의 개념을 도입한다. 이름이 다른 정
의에 의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원초적 기호로서 이것들이 상호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하는 것처럼 대상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논리적 단순체로서 이
것들이 상호 결합하여 사실을 구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분석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믿었으므로 언어와 세계의 영역에서 무한 분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더 이상 분석되지
않는 논리적 단순체로서 이름과 대상을 설정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두
번째 문제, 즉 이름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 “이름은 대상을
지시한다.”
요소 명제의 의미
그런데 위에서 제기된 두 문제에 대한 이상의 답변이 보다 충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답변
과정에서 도입된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과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위해 그림
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사실을 그리는 경우에 주목한다. 이 경우 그
림은 실재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사실을 그리는 경우를 명제
가 사실을 묘사하는 경우에 비유한다. 그의 말을 빌면 명제가 사실을 묘사한다는 것은 명제
가 사실에 대한 논리적 그림을 그린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명제는 그림과 마찬
가지로 실재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비유에서 명제의 의미의 문제도 명확하게 해명된
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서 그 그림이 나타내려고 하는 상황을 알 수 있듯이 명제도 그림이
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제가 나타내려고 하는 사실을 보고서 그 명제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실재의 모델이 되려면 그것은 실재를 닮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이 실재의 모델이기 위해 실재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 방식을 그림의 형식이라 부
른다.
논리적 형식
마찬가지로 명제도 사실의 그림이므로 명제와 사실은 서로 닮아야 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명제를 구성하는 것은 그 명제의 요소들이 서로 특정한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
다는 것이다. 명제와 사실은 서로 닮아야 하므로 명제의 요소들이 서로 특정한 방식으로 관
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의 요소들도 명제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
는 것을 나타낸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와 사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 방식을 논리적
형식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논의된 그림과 언어와의 상관 관계를 논의의 단계에 따라 대조해보면 다음과 같
다.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은 표의 1, 2, 3에서 구체화되었다. 즉 언
어와 세계의 관계는 명제가 사실을 그리는 관계이며 명제의 의미는 그 명제가 그리는 사실
인 것이다. 한편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는 표의 4, 5, 6의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으
로 이해된다. 그림의 형식이 실재의 요소들이 그림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인 것처럼 논리적 형식은 사실의 요소들이 명제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런데 사실의 요소는 논리적 단순체인 대상이고 명제의 요
소는 논리적 단순체인 이름이므로 대상들이 결합하여 사실을 구성하는 논리적 형식과 이름
들이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하는 논리적 형식은 동일하다. 이로부터 언어와 세계 사이의 이
원적 동형성이 도출된다.
한편 명제와 사실 사이에는 명제가 사실을 그리는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명제를
구성하는 이름과 사실을 구성하는 대상 사이에도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데 그림의 관계는 명제와 사실 사이에만 국한되므로 이름과 대상 사이의 관계는 그림 관계
와는 달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를 도입
하여 양자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현대 영미철학의 여러 사조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과 비엔나 서클의 논리실증주의는 이 책에 개진된 사
상을 발전시킨 철학들이다.
◆ 이승종 연세대 철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버팔로)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
서로는 뉴턴 가버와 같이 쓴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민음사)이 있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5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4세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은 비트겐슈타인은 린츠와 베를린의 공고에서
공부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 공대에서 수학하였다. 공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때
수학 기초론으로 옮아가 이 분야의 대가인 러셀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된다. 1914년 1차 세
계 대전이 발발하자 비트겐슈타인은 탈장 때문에 징집에서 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
리아 군에 자원 입대, 최전선을 전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일기의 형식으로 노트해 두었다. 그
는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로 압송되자 그곳에서 자신의 일기를 편
집하여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주목받는 철학자가 되었고 또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
산까지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명예와 부를 마다하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직을 자
청, 청빈한 삶을 실천한다. 10년간의 공백 끝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강의와
저술에 몰두하지만 그에게 강단 철학과 대학교수직은 참다운 것이 아닌 인위적 격식으로 여
겨졌다. 비트겐슈타인은 소박한 삶을 찾아 다시금 상아탑을 나와 은거와 방랑을 거듭하다
1951년 작고하였다. 그가 남긴 3만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철학적 탐구」를 비롯한 여러 권의 유작으로 출간되었다.
[2235호] 1999년 08월 07일 (토) 00:00:00 [조회수 : 8] 기독공보
http://www27.ndsof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0
「논리철학논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언어와 세
계의 관계는 철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새로운 주제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의
뿌리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소급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천착하는 주제는 이처
럼 고전적인 것이지만, 그는 이 주제를 새로이 인식해 냄으로써 철학사에 공헌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는 명제들의 총체이다. 이 명제들 중 어떠한 기본적 명제로도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의미론적 최소 단위로서의 단순명제를 그는 요소명제라 한다. 요소
명제를 제외한 모든 명제(복합명제)들은 논리적 분석에 의해 요소명제로 환원되며 이 명제
들의 진리치는 요소명제의 진리치에 의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복합명제의 요소명제에 대한
이러한 관계를 진리함수적 관계라고 한다.
여기서 그는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을 설정한다. 이 가정에 따
르면 언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응하는 비언어적 세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가 언어에 의미를 주기 위해서는 세계도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조와 닮
은꼴이어야 한다고 추리해서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성의 단계에 상응하는 세계의 구성적 단
계를 설정한다. 즉 의미론적 최소 단위로서의 원자적 사실 개념이 도입되고, 언어가 요소명
제와 그것의 진리함수인 복합명제의 총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세계도 원자적 사실과 그것에
의해 구성되는 사실의 총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언어와 세계의 이러한 이
원론적 동형론이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맺어 주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언어·세계·양자의 관계
이제 언어, 세계,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보다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위의 고찰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명제, 원자적 사실, 그리고 세계가 언어에 의미를 주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
자. 우선 복합명제의 진리치가 논리적 분석에 의해 요소명제의 진리치에로 환원된다 함은
분석의 과정에 의해 명제의 의미가 명료하게 제시될 수 있으며 그 의미는 결국 단 하나의
정확한 의미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명제의 진리치가 명료해지면 명제의 의미도 명료해진다
는 해석이 가능하다.) 요소명제는 의미론적으로 가장 단순한 명제이므로 가장 명료한 단 하
나의 정확한 의미를 가져야 하며 요소명제에로의 환원적 분석이 가능한 모든 명제의 의미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1) 과연 요소명제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요소명제에 관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명제들 일반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 의해 도달된 요소명제는 명제로서는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최소 단위이나 그 구성상 최소한 주어와 술어의 두 요소를 포함하므로 논리적으로는
이 요소들로 더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요
소명제보다 논리적으로 더 단순한 것으로서 이름의 개념을 도입한다. 이름은 다른 정의에
의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원초적 기호로서 이들이 서로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2) 과연 이름이 지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
다. 이 문제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영역 안에서는 대답될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요소명제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이 지시하는 비언어적인 세계가
요청된다. 이에 관련하여 이제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하였던 가정, 즉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을 도입하고자 한다.
앞서 우리는 이 가정을 토대로 세계가 언어의 진리함수적 구조와 닮은꼴이며 의미론적 최소
단위인 요소명제에 세계의 구성적 최소 단위인 원자적 사실이 상응함을 살펴보았다. 이로부
터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첫 번째 문제, 즉 요소명제의 의미의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 “요
소명제는 원자적 사실에 의해서 그 의미가 주어진다.”
원자적 사실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세계의 존재론적 단순체이다. 그런데 이 원자적 사
실에 상응하는 요소명제가 의미론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최소단위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그 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이름으로 더 분석되므로 그에 닮은꼴인 세계의 구성
요소로서의 원자적 사실도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존재론적 단순체이기는 하지만 논리적으
로는 더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논리적 요청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
자적 사실들보다 논리적으로 더 단순한 것으로서 대상의 개념을 도입한다. 이름이 다른 정
의에 의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원초적 기호로서 이것들이 상호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하는 것처럼 대상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가장 단순한 논리적 단순체로서 이
것들이 상호 결합하여 사실을 구성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분석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믿었으므로 언어와 세계의 영역에서 무한 분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더 이상 분석되지
않는 논리적 단순체로서 이름과 대상을 설정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두
번째 문제, 즉 이름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 “이름은 대상을
지시한다.”
요소 명제의 의미
그런데 위에서 제기된 두 문제에 대한 이상의 답변이 보다 충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답변
과정에서 도입된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과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위해 그림
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사실을 그리는 경우에 주목한다. 이 경우 그
림은 실재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사실을 그리는 경우를 명제
가 사실을 묘사하는 경우에 비유한다. 그의 말을 빌면 명제가 사실을 묘사한다는 것은 명제
가 사실에 대한 논리적 그림을 그린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명제는 그림과 마찬
가지로 실재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비유에서 명제의 의미의 문제도 명확하게 해명된
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서 그 그림이 나타내려고 하는 상황을 알 수 있듯이 명제도 그림이
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제가 나타내려고 하는 사실을 보고서 그 명제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실재의 모델이 되려면 그것은 실재를 닮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이 실재의 모델이기 위해 실재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 방식을 그림의 형식이라 부
른다.
논리적 형식
마찬가지로 명제도 사실의 그림이므로 명제와 사실은 서로 닮아야 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명제를 구성하는 것은 그 명제의 요소들이 서로 특정한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
다는 것이다. 명제와 사실은 서로 닮아야 하므로 명제의 요소들이 서로 특정한 방식으로 관
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의 요소들도 명제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
는 것을 나타낸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와 사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 방식을 논리적
형식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논의된 그림과 언어와의 상관 관계를 논의의 단계에 따라 대조해보면 다음과 같
다.
언어의 의미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해명된다는 가정은 표의 1, 2, 3에서 구체화되었다. 즉 언
어와 세계의 관계는 명제가 사실을 그리는 관계이며 명제의 의미는 그 명제가 그리는 사실
인 것이다. 한편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는 표의 4, 5, 6의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으
로 이해된다. 그림의 형식이 실재의 요소들이 그림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인 것처럼 논리적 형식은 사실의 요소들이 명제의 요소들과 공통된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런데 사실의 요소는 논리적 단순체인 대상이고 명제의 요
소는 논리적 단순체인 이름이므로 대상들이 결합하여 사실을 구성하는 논리적 형식과 이름
들이 결합하여 명제를 구성하는 논리적 형식은 동일하다. 이로부터 언어와 세계 사이의 이
원적 동형성이 도출된다.
한편 명제와 사실 사이에는 명제가 사실을 그리는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명제를
구성하는 이름과 사실을 구성하는 대상 사이에도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데 그림의 관계는 명제와 사실 사이에만 국한되므로 이름과 대상 사이의 관계는 그림 관계
와는 달라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름이 대상을 지시한다는 원리를 도입
하여 양자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현대 영미철학의 여러 사조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과 비엔나 서클의 논리실증주의는 이 책에 개진된 사
상을 발전시킨 철학들이다.
◆ 이승종 연세대 철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버팔로)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
서로는 뉴턴 가버와 같이 쓴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민음사)이 있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5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4세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은 비트겐슈타인은 린츠와 베를린의 공고에서
공부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 공대에서 수학하였다. 공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때
수학 기초론으로 옮아가 이 분야의 대가인 러셀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된다. 1914년 1차 세
계 대전이 발발하자 비트겐슈타인은 탈장 때문에 징집에서 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
리아 군에 자원 입대, 최전선을 전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일기의 형식으로 노트해 두었다. 그
는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로 압송되자 그곳에서 자신의 일기를 편
집하여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주목받는 철학자가 되었고 또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
산까지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명예와 부를 마다하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직을 자
청, 청빈한 삶을 실천한다. 10년간의 공백 끝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강의와
저술에 몰두하지만 그에게 강단 철학과 대학교수직은 참다운 것이 아닌 인위적 격식으로 여
겨졌다. 비트겐슈타인은 소박한 삶을 찾아 다시금 상아탑을 나와 은거와 방랑을 거듭하다
1951년 작고하였다. 그가 남긴 3만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철학적 탐구」를 비롯한 여러 권의 유작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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