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퍼의 서구사상과 문화이해[3]-쉐퍼의 문화관의 특징
쉐퍼의 서구사상과 문화이해[3]-쉐퍼의 문화관의 특징
http://cafe.daum.net/CPI2002/5m8A/3
이제 마지막으로 쉐퍼의 문화관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자.
⑴ 앞에서 제시하려고 한 것처럼 쉐퍼는 현대 세계관 조형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전망을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쉐퍼와 그의 지도를 받는 공동체 라브리의 이와 같은 작업은 교회의 많은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의 한 부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많이 있지만 (학문의 분업) 문화 전체를 이와 같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 흐름을 쉐퍼처럼 설득력 있게 읽어 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쉐퍼의 이런 시도를 기독교인은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는 (요 17:3) 우리들은 세계 전반에 대해, 문화의 모든 영역에 대해, 역사의 전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쉐퍼는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혹은 소위 세계관론자들과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⑵ 그러나 쉐퍼는 사상사 전문가나 전문적인 문화 비평가는 아니다.
그가 전문적으로 문화와 사상을 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면 그는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학회에 참여해서 토론에 힘썼을 것이다. 쉐퍼는 그런 일보다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강연을 하였으며 공개 토론을 벌이고 라브리에 찾아오는 사람이나 혹은 다른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쉐퍼는 자기의 사명에 대해 뚜렷한 자아의식을 갖고 있다. 이 점은 그가 자신의 작품의 뼈대로 여기고 있는 삼부작에서 잘 나타난다. 그것은 한마디로 소통의 문제, 즉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품은 변증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주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게 참 생명을 소개하신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필연적 귀결을 지적해 주면서 그 참된 해결책을 복음으로 소개하려는 것이다. 쉐퍼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제4부와 이 책 권말에 실려 있는 부록 "변증학의 문제"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쉐퍼의 작업은 {개혁교의학}의 유해무 교수의 주장과 비교할 볼 만하다.
그는 이 책 서론에서 <신학>을 정의하면서 신학의 방법을 기도(예배)와 전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전도하기 위해서 신학을 한다. 그런 한에서 신학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학문적인 체계 자체를 위해서 신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쉐퍼는 자신의 변증학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전개했다.
⑶ 참된 변증, 그리고 한국적 상황의 문제.
쉐퍼는 복음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 예비 작업으로, 앞에서 요약한 과정을 통해 20세기의 상황에 도달한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히 "객관적(또는 보편적) 진리와 같은 사실은 전혀 없다는 개념을 견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변증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변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사도들에게 말로 전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또 동시에 교회의 존재와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증시할 것을 명령하셨다.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후 교회가 진행하여 나간 길을 보면 바로 이런 방법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착한 행실을 교회 밖에 믿는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준다.
이에 비해 쉐퍼는 교회의 존재와 생활의 열매로서의 변증보다 논리적인 논변을 통한 변증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생활을 통한 변증이 가장 중요한 변증임을 모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지}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표지, 전 시대의 교회에 보편적이며, 그리스도인들만 낼 수 있는 표지는 사랑임을 옳게 논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궁극적인 변증(the final apologetic)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변증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것이 궁극적 변증이다. ({전집} IV 214쪽)
현상적으로 그가 힘쓴 일은 사상과 문화에 관한 논증을 통한 변증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가 라브리를 중심으로 힘쓴 일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은 그가 교회의 가르침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성경 공부를 통해 회심을 경험하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쉐퍼는 변증을 통해 서구 사상의 한계와 그 귀결점을 보이고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논증하려고 힘썼다. 그것은 전도를 위한 제1단계였다. 이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서구의 문화에서는 논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 전략이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쉐퍼는 우리 세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대의 지적 문제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변증론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반드시 쉐퍼의 변증 방법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쉐퍼는 20세기의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과 소통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의 변증을 개발하였다. 우리도 쉐퍼와 비슷한 방법으로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그보다 먼저 쉐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변증 방법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http://cafe.daum.net/CPI2002/5m8A/3
이제 마지막으로 쉐퍼의 문화관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자.
⑴ 앞에서 제시하려고 한 것처럼 쉐퍼는 현대 세계관 조형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전망을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쉐퍼와 그의 지도를 받는 공동체 라브리의 이와 같은 작업은 교회의 많은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의 한 부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많이 있지만 (학문의 분업) 문화 전체를 이와 같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 흐름을 쉐퍼처럼 설득력 있게 읽어 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쉐퍼의 이런 시도를 기독교인은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는 (요 17:3) 우리들은 세계 전반에 대해, 문화의 모든 영역에 대해, 역사의 전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쉐퍼는 카이퍼의 신칼빈주의, 혹은 소위 세계관론자들과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⑵ 그러나 쉐퍼는 사상사 전문가나 전문적인 문화 비평가는 아니다.
그가 전문적으로 문화와 사상을 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면 그는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학회에 참여해서 토론에 힘썼을 것이다. 쉐퍼는 그런 일보다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강연을 하였으며 공개 토론을 벌이고 라브리에 찾아오는 사람이나 혹은 다른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쉐퍼는 자기의 사명에 대해 뚜렷한 자아의식을 갖고 있다. 이 점은 그가 자신의 작품의 뼈대로 여기고 있는 삼부작에서 잘 나타난다. 그것은 한마디로 소통의 문제, 즉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품은 변증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주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게 참 생명을 소개하신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필연적 귀결을 지적해 주면서 그 참된 해결책을 복음으로 소개하려는 것이다. 쉐퍼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제4부와 이 책 권말에 실려 있는 부록 "변증학의 문제"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쉐퍼의 작업은 {개혁교의학}의 유해무 교수의 주장과 비교할 볼 만하다.
그는 이 책 서론에서 <신학>을 정의하면서 신학의 방법을 기도(예배)와 전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전도하기 위해서 신학을 한다. 그런 한에서 신학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학문적인 체계 자체를 위해서 신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쉐퍼는 자신의 변증학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전개했다.
⑶ 참된 변증, 그리고 한국적 상황의 문제.
쉐퍼는 복음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 예비 작업으로, 앞에서 요약한 과정을 통해 20세기의 상황에 도달한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히 "객관적(또는 보편적) 진리와 같은 사실은 전혀 없다는 개념을 견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변증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변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사도들에게 말로 전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또 동시에 교회의 존재와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증시할 것을 명령하셨다.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후 교회가 진행하여 나간 길을 보면 바로 이런 방법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착한 행실을 교회 밖에 믿는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준다.
이에 비해 쉐퍼는 교회의 존재와 생활의 열매로서의 변증보다 논리적인 논변을 통한 변증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생활을 통한 변증이 가장 중요한 변증임을 모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지}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표지, 전 시대의 교회에 보편적이며, 그리스도인들만 낼 수 있는 표지는 사랑임을 옳게 논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궁극적인 변증(the final apologetic)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변증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것이 궁극적 변증이다. ({전집} IV 214쪽)
현상적으로 그가 힘쓴 일은 사상과 문화에 관한 논증을 통한 변증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가 라브리를 중심으로 힘쓴 일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은 그가 교회의 가르침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성경 공부를 통해 회심을 경험하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쉐퍼는 변증을 통해 서구 사상의 한계와 그 귀결점을 보이고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논증하려고 힘썼다. 그것은 전도를 위한 제1단계였다. 이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서구의 문화에서는 논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 전략이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쉐퍼는 우리 세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현대의 지적 문제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변증론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반드시 쉐퍼의 변증 방법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쉐퍼는 20세기의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과 소통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의 변증을 개발하였다. 우리도 쉐퍼와 비슷한 방법으로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내용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그보다 먼저 쉐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변증 방법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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