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면 지옥간다
자살하면 지옥간다
강종수목사
자료출처 http://www.kscoramdeo.com/bbs/list.html?table=bbs_1&idxno=2225&page=1&total=615&sc_area=&sc_word=
이렇게 말하면
1)성경적이지 않다(근거가 없다)고 한다
2)대안 없이 함부로 말하는 소리란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이 말은 성경에 있어서 말하
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고 하면 여러 면에서 문제 인
식으로 불편해 한다.
그러면 자살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자살한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인가?
혹은 성경신학적으로 사람이 가질 관심 밖의 일인가?
이 모든 질문을 역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자살을 할 수 있는가?” 를 묻고자 한다.
1)에 대한 이해
구원은 인간 회개에 앞선다. 칼빈주의식 예정론에 입각하면 믿
음이나 회개 이전에 작정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예
정된 자는 죄나 회개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견인의 은혜로 구
원됨을 신뢰한다.의지론자들은 견인을 무시하지만 여전히 정통
신학에서는 구원의 시작과 완성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있
음을 시인한다.
그래서 중생은 단회적이라 한다.그리고 그 효과는 영속성이 있
어서 번복될 수 없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의 영적 상태로 본다.
그래서 요13:8-10에서 들을 수 있듯이 온 몸을 씻은 자, 즉 중
생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하심은 매일의 자의적 죄를
회개해야 함을 교시하셨다.
성경상 자살은 영생구원을 논하기 전에 저주와 멸망을 간주하
려는 의도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자살은 가령, 계22: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
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
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 모든 죄악들
에 대한 결과로 성 밖에 있으리라, 즉 구원에서 제외된다함에
도 다른 죄들은 회개의 기회를 얻어서 회개가 가능하겠지만 살
인죄로 볼 수 있는 자살행위는 회개의 기회를 놓친다는데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도의적 죄의 범주로 설명된다 해도..
지옥을 가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절박한 행위가 아니라도 자연
사 후에도 예외없이 불신자는 지옥이다. 구원론적으로 인간의
한 생애를 이해하려 할 때에는 자살행위란 삶의 한 과정에 속
하는 마무리일 뿐이다. 동정이나 낭만적 해석으로 생명의 주께
의지하지 않는 불신에 대한 심령의 그 중심을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구원 받았다는 확신의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자살한 만큼이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 과연 구원받은 중생의 영혼이(필수적으로
중생해야 구원 받으니까,요3:3-8) 자살할 이유를 능가하지 못
하겠는가?
과연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은 새로운 존재의 자아가 죽음
의 문턱을 넘어 자살을 이길 수 없을까? 성경적으로 구원이 동
정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사실 앞에서 자살자만 아니
라 사실은 멀쩡하게 인생을 사는 자들이 죽음의 신(마귀)에게
매여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2)에 대한 고민
자살한 자의 유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건 앞에 생명에
관련하여 삶을 이해시키고 있는 목사로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또한 가능한 위로를 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자살을 방지하고 생명 경시를 막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하지만,성경을 보면 모든 일에 위로 받아야 할 모
든 인생이겠지만, 자살보다 더 무서운 말씀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가령 유다더러,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
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는 말씀을 얼른 보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이런 저주의 말씀을
할 수가 없는 피가 굳어버리는 말씀 아닌가! 이런 말씀이 예사
롭게 들리는가?
우리가 복음에 확신을 가지려면,본래 전하는 자가 구원이 확실
해야 하고 회개가 충분하고 연속되는 삶이 있어야 하며,회개가
연속되고 거룩이 충만해지면 기독교 역사가 그랬고 우리 설교
자들의 경험이 그러한데, 전달하는 말이 단순해진다.
미사려구, 무슨 위로하는 투의 말보다 상당히 힘이 있고 직언
으로 모아진다. 말씀의 위력으로 나아간다.물론 은혜를 끼친다
함에는 여러 형식의 설교와 권면이 있을 수 있으나 진실로 회
개하고 성결해지면 복음 자체의 위력에 의존하고 사심없이 외
치게 된다는 말이다.
자살을 막으려고 애쓰는 것은 이미 복음을 전하는 자체의 내용
이다. 왜냐면 예수 생명없이 사는 것이 자살하고 있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자살을 막는 것만 생명을 건지는 최선책이 아니라 일반적 생활
속에 살아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불쌍
하지 않단 말인가?
자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울케 하고 기분 상하게 하
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 자살한 자 깨울 수 있다면 다시 깨워
서 인적 상관은 없는 사이라도 분노하고 싶다. 아니 죽은 뒤에
도 나는 분노한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자살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살했다고 구원 못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면,
자살한 사람 오죽 힘들었겠는가, 그러니 지옥은 안 갔을거야,
이런 식이라면 자살해도 구원 얻을 만한 기회라도 있다면 죽을
사람 천지다.
기독교 자살 사이트가 이미 있는지 모르겠다. 저주보다 위로와
어떤 가능성의 자살 사이트 말이다. 끔찍하다. 어째 자살에 대
한 이해가 이런 식으로 신학자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지..
나의 성경적 이해가 불충하거나 신학적 견해가 짧겠지만, 심심
찮게 나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논제 앞에 자살한 사람보
다 더 분노가 치민다.조용기가 불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비치는
발언에 분노한 것보다 더 분노스럽다.
강종수목사
자료출처 http://www.kscoramdeo.com/bbs/list.html?table=bbs_1&idxno=2225&page=1&total=615&sc_area=&sc_word=
이렇게 말하면
1)성경적이지 않다(근거가 없다)고 한다
2)대안 없이 함부로 말하는 소리란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이 말은 성경에 있어서 말하
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고 하면 여러 면에서 문제 인
식으로 불편해 한다.
그러면 자살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자살한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인가?
혹은 성경신학적으로 사람이 가질 관심 밖의 일인가?
이 모든 질문을 역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자살을 할 수 있는가?” 를 묻고자 한다.
1)에 대한 이해
구원은 인간 회개에 앞선다. 칼빈주의식 예정론에 입각하면 믿
음이나 회개 이전에 작정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예
정된 자는 죄나 회개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 견인의 은혜로 구
원됨을 신뢰한다.의지론자들은 견인을 무시하지만 여전히 정통
신학에서는 구원의 시작과 완성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있
음을 시인한다.
그래서 중생은 단회적이라 한다.그리고 그 효과는 영속성이 있
어서 번복될 수 없는 영원히 구원받은 자의 영적 상태로 본다.
그래서 요13:8-10에서 들을 수 있듯이 온 몸을 씻은 자, 즉 중
생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하심은 매일의 자의적 죄를
회개해야 함을 교시하셨다.
성경상 자살은 영생구원을 논하기 전에 저주와 멸망을 간주하
려는 의도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자살은 가령, 계22:15‘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
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
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 모든 죄악들
에 대한 결과로 성 밖에 있으리라, 즉 구원에서 제외된다함에
도 다른 죄들은 회개의 기회를 얻어서 회개가 가능하겠지만 살
인죄로 볼 수 있는 자살행위는 회개의 기회를 놓친다는데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도의적 죄의 범주로 설명된다 해도..
지옥을 가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절박한 행위가 아니라도 자연
사 후에도 예외없이 불신자는 지옥이다. 구원론적으로 인간의
한 생애를 이해하려 할 때에는 자살행위란 삶의 한 과정에 속
하는 마무리일 뿐이다. 동정이나 낭만적 해석으로 생명의 주께
의지하지 않는 불신에 대한 심령의 그 중심을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구원 받았다는 확신의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자살한 만큼이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 과연 구원받은 중생의 영혼이(필수적으로
중생해야 구원 받으니까,요3:3-8) 자살할 이유를 능가하지 못
하겠는가?
과연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은 새로운 존재의 자아가 죽음
의 문턱을 넘어 자살을 이길 수 없을까? 성경적으로 구원이 동
정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사실 앞에서 자살자만 아니
라 사실은 멀쩡하게 인생을 사는 자들이 죽음의 신(마귀)에게
매여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2)에 대한 고민
자살한 자의 유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건 앞에 생명에
관련하여 삶을 이해시키고 있는 목사로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또한 가능한 위로를 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자살을 방지하고 생명 경시를 막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하지만,성경을 보면 모든 일에 위로 받아야 할 모
든 인생이겠지만, 자살보다 더 무서운 말씀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가령 유다더러,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
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는 말씀을 얼른 보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이런 저주의 말씀을
할 수가 없는 피가 굳어버리는 말씀 아닌가! 이런 말씀이 예사
롭게 들리는가?
우리가 복음에 확신을 가지려면,본래 전하는 자가 구원이 확실
해야 하고 회개가 충분하고 연속되는 삶이 있어야 하며,회개가
연속되고 거룩이 충만해지면 기독교 역사가 그랬고 우리 설교
자들의 경험이 그러한데, 전달하는 말이 단순해진다.
미사려구, 무슨 위로하는 투의 말보다 상당히 힘이 있고 직언
으로 모아진다. 말씀의 위력으로 나아간다.물론 은혜를 끼친다
함에는 여러 형식의 설교와 권면이 있을 수 있으나 진실로 회
개하고 성결해지면 복음 자체의 위력에 의존하고 사심없이 외
치게 된다는 말이다.
자살을 막으려고 애쓰는 것은 이미 복음을 전하는 자체의 내용
이다. 왜냐면 예수 생명없이 사는 것이 자살하고 있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자살을 막는 것만 생명을 건지는 최선책이 아니라 일반적 생활
속에 살아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불쌍
하지 않단 말인가?
자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우울케 하고 기분 상하게 하
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 자살한 자 깨울 수 있다면 다시 깨워
서 인적 상관은 없는 사이라도 분노하고 싶다. 아니 죽은 뒤에
도 나는 분노한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자살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살했다고 구원 못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면,
자살한 사람 오죽 힘들었겠는가, 그러니 지옥은 안 갔을거야,
이런 식이라면 자살해도 구원 얻을 만한 기회라도 있다면 죽을
사람 천지다.
기독교 자살 사이트가 이미 있는지 모르겠다. 저주보다 위로와
어떤 가능성의 자살 사이트 말이다. 끔찍하다. 어째 자살에 대
한 이해가 이런 식으로 신학자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지..
나의 성경적 이해가 불충하거나 신학적 견해가 짧겠지만, 심심
찮게 나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논제 앞에 자살한 사람보
다 더 분노가 치민다.조용기가 불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비치는
발언에 분노한 것보다 더 분노스럽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