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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



자료출처 http://blog.daum.net/goodking/235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3~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플라톤(Platon, B.C. 428~348) 철학을 계승한 철학자들의 입장을 일컫는다. 신플라톤주의는 물질적 세계보다는 영적 세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즉, 물질적 세계는 영적 세계에 의존적임을 강조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One)'에서 파생된 것이며, 인간의 영혼은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세계에서 영적이며 영원한 ‘하나’, 즉 신(God)에 도달하려는 충동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신플라톤주의에서 공부와 수행의 목적은 인격 수양이며, 인격 수양의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 철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그 철학에 종교적 색채를 가미시킨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암모니우스 사카스(Ammonius Saccas)로 알려져 있다. 사카스는 자신의 입장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그의 제자인 플로티니우스(Plotonius)는 로마를 거점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플로티니우스의 제자 포르피리(Phorphyry)는 스승의 글들을 모아 6권의 책(Enneads)으로 남겼다. 포르피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 차이가 크지 않다고 여겨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 플라톤적 해석을 시도했다. 프로클루스(Proclus)는 세상의 질서가 하나의 신에서 방사된 것이라는 입장, 즉 ‘방사(emanation)설’을 주장했다. 빛의 원천을 신에, 그리고 빛을 신성에 유비시키는 사고방식은 방사설에 빚지고 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뉴턴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알렉산드리아의 신플라톤주의자 이암블리쿠스(Iamblicus)는 플라톤, 피타고라스, 그리고 이집트의 종교가 근본적으로 하나의 가르침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여러 종교들에 함축된 전제들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이라고 여긴 인물이었다. 그는 신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해석했다. 그러나 ‘신의 육화(incarnation)’로서의 예수의 개념, 예수의 부활과 같은 개념은 신플라톤주의 전통에는 없었다. 신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는 경우, 인성(人性)과 신성(神聖) 모두 예수에 구현되어 있다는 관점을 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례로 예수를 유령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가현설(docetism)'도 신플라톤주의와 양립 가능하다. 알렉산드리아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예수에게 인성과 신성 모두 구현되어 있다는 관점을 ’하층민들의 기복적 혹은 물질적 욕망‘과 결합된 미신으로 간주했다.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통합을 시도한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  5세기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the Areopagite)가 거론된다. 디오니시우스는 프로클루스의 제자였지만 바울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디오니시우스의 저술은 신플라톤주의에 바탕을 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 입장은 후세에 디오니시우스가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와전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디오니시우스의 영혼 불멸설은 중세 기독교의 절대적 교리가 될 수 있었다.

 

디오니시우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초자연적인 것’, 즉 신에서 방사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성은 두 측면을 갖는다. 그 한 측면은 자기 보존과 관련된 반면, 다른 한 측면은 신과 하나가 되려는 영혼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자기 보존과 관련된 육체는 소멸하지만, 신과 하나가 되려는 영혼의 본질은 파괴되지 않는다. 디오니시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력 아래 중세 기독교의 절대적 교리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디오니시우스에게 영혼 불멸설은 사후 구원에 대한 필요조건이 아니며, 육체 또한 원죄설과는 무관하다. 원죄설을 바탕으로 영혼 불멸설을 사후 구원과 연관시킨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의 연구가 중세에 권위를 누리면서,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중재하려는 시도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저술들은 일부만 라틴어로 번역된 상태였다. 그들의 저술들이 번역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독교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이 일어났다. 특히 사후 구원의 전제처럼 여겨진 영혼 불멸설을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해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일어났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정함으로써 기독교 교리와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대안으로 신플라톤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자 페트라크(Petrach)는 플라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기독교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크리솔로라스(Manuel Chrysoloras)와 그의 제자들은 플라톤의 <국가>를 번역했다. 그들 외에도 브루니(Leonardo Bruni), 필렐포(Franesco Filelfo), 폴리찌아노(Angelo Poliziano), 그리고 그리스인 게오르그(George of Trebizond) 등이 플라톤의 저술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데 기여했다.

 





- 피치노 학파를 묘사한 그림 -

 

그러나 플라톤의 저술뿐만 아니라 신플라톤주의와 연관된 대부분의 저술들을 번역한 인물은 피치노(Marsilio Ficino)였다. 그는 메디치(Lorenzo de’Medici)의 재정적 후원 아래 플라톤의 저술들을 번역했으며, 그의 번역은(Platonis opera omnia, 1484) 18세기까지 권위를 누렸다. 그는 플라톤뿐만 아니라 플로티니우스, 헤르메스(Hermes Trismegistus), 디오니시우스의 저술들을 번역했다.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한 피치노 학파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Zoroaster), 이집트의 헤르메스, 피타고라스, 천사 개념을 만든 시리아의 예언자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Cabalists) 등의 글을 번역하고 주해를 달았다. 여기에는 동일한 신적인 지혜가 그들의 글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피치노의 관점이 깔려 있다. 피치노는 과거의 현자들과 예언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밝힐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교도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피치노에 따르면, 지구가 우주의 물질적 중심이라면, 인간 영혼은 영적인 모든 것의 중심이다. 따라서 인간은 물질적 세계의 중심이자, 영적 세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우주는 그러한 두 세계의 합성이며, ‘하나’인 신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간 영혼은 신과 하나가 되려는 불멸의 정신과 다름없으며, 그 정신이야말로 인간 본성이다. 인간 본성은 합리적 지식 혹은 자연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 아니라,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곧 ‘플라톤적 사랑(platonic love)’을 통해서 구현 가능하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선(善) 자체’이기 때문에, ‘플라톤적 사랑’은 절대 선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플라톤적 사랑’에 대한 이러한 피치노의 관점은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한 시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16세기 르네상스 말기를 장식한 예술가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실례로 카스티글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 에브레오(Leone Ebreo),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등을 들 수 있다.

 

 

피치노 자신의 저술들

 

De Christiana religione, 1476.

Theologia Platonica,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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