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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와 개별자

보편자와 개별자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anywhereis/149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시작한 이 명제는 보편자와 개별자는, 2600여년의 서양철학사를 꿰뚫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명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 두 철학자로부터 시작한 존재론적 도구이자, 동시에 의문점인 이러한 보편자와 개별자는, 고대 그리고 중세의 철학자들이 존재에 대해 논할 때, 항상 등장했던 주제였고, 많은 시대와 학자를 거쳐 폭넓게 토의(특히 보편논쟁을 통해)되었지만, 근대 이후에 들어선 이러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실존여부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강해졌고, 이러한 학문적 경향에 따라서 지금은 보편자와 개별자의 실존 여부에 대해선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느정도 단정짓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렇다면 이 보편자와 개별자는 대체 어떤 녀석들인가? 어쨌길래, 이 두 개념이 서양철학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수수께끼로서 남아있는가(혹은 있었는가)? 이제 이 보편자와 개별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보편자와 개별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그로부터 비롯된 개념이니, 그의 철학에 대해 무지하다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겠지요?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선 고대 자연 철학 카테고리에 자세히 올려두었으며, 다른 철학자들의 철학적 내용도 각각의 카테고리에 올려두었으니,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매니데스, 그리고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그의 철학에 대해선 논의된 것으로 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지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대로라면, 세계는 항상 변합니다. 판타레이의 의미, 즉 '만물은 변한다라'에서 알 수 있듯, 이 세계는 고정된 것이 없고, 모두가 변해가는 것이며, 따라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 중에서, 앞으로도 지금도 영원히 동일한 개체는 없지요. 가령, 완전히 동일한 의자들이 세상에 있을 수 없듯이요. 비슷한듯 보여도 분명 각각의 의자 어딘가에는 차이점이 있게 마련이며, 이는 물론 의자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계 전 존재에 해당되는 사실이지요. 이것이 바로 개별자로서의 존재가 가지는 특징입니다. 개별자는 각 존재의 개체를 의미하며, 따라서 개체로서의 존재는 제각각 다 다르며, 그 각각 다른 존재는 스스로 조차도 끊임없이 변해가지요. 이렇듯 개별자로서의 존재는, 각 개체만의 특수성을 띄며, 따라서 타 개체와의 동일성을 가지지 않게 되지요. 심지어 스스로에게서도 지속적인 동일성을 찾을 수 없지요.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서, 그 개별자에 선행해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가령 어째서 이 물도 100%에 끓고, 저 물도 100%에서 끓을까? 어째서 이 사람도 늙어가고, 저 사람도 늙어가는 것인가? 어째서 어김없이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낮이 될까? 어째서 봄여름가을겨울이 매번 동일하게 돌아올까? 만일 존재에 미리 선행해있는 어떠한 보편적인 존재가 있지 않다면, 저러한 보편적인 변화, 생성의 과정은 설명될 수 없습니다. 가령 죽지 않는 사람도 생길 것이며,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오로지 겨울만 있는 해도 있을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보편적인 공통점대로 사건이 발생하며, 흘러가며, 소멸되며,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존재의 보편성에 착안해, 존재에 깃들어 있는 공통적인 법칙이자 존재인 것을 발견해냅니다. 바로 그것이 로고스이자, 보편자이지요. 이러한 로고스는 불변의 존재이며, 보편자이며, 이러한 불변의 존재가 각각의 구체적인 존재, 즉 개체로서 현실화 된 것이 개별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보편자와 개별자는 구분될 수 없으며, 개별자 속에서 불변의 보편자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보편자 - 개별자의 관계이지요.
 
이러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개념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들어 더욱 폭넓게 발달됩니다. 소-플-아 카테고리에 실려있는, 플라톤 관련글을 읽어보시면, 이 보편자와 개별자가 어떠한 것인지 보다 쉽게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물론 읽어보셨다고 가정하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보편자란 곧 이데아이지만, 플라톤은 그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특성상, 이데아인 보편자와, 개별자인 현상계를 구분시키기 됩니다. 즉, 완벽한 이데아로부터 파생된 존재로서의 현상계가 곧 이 지상세계이며, 따라서 현상계는 이데아로부터 나왔을 뿐, 그 둘간은 이어져있지 않은 셈이므로, 보편자와 개별자가 제각기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데아와 현상계를 굳이 나눠야 했을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점과 선의 개념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 최소한의 한 점만이 찍힌 존재', 그 최소한의 한 선만이 그려진 존재'가 곧 점과 선의 개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점과 선의 개념은, 이 세계, 즉 현실세계에서 보자면 '점과 선의 개념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이성적으로 포착만이 가능할 뿐, 실제할 수는 없지요. 제아무리 작은 점이라도 확대해보면 결국 면이고, 제아무리 얇은 선이라도 역시 확대해보면 결국 같은 면에 불과하지 않지요. 이렇듯, 완벽한 의미에서의 점, 선, 원, 네모 등등의 개념은, 현상계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러한 개념의 기원지인, 이데아에서만 가능하므로, 현상계인 현실세계 속에서 보편자를 가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 되는 셈이었지요. 따라서 플라톤은 보편자와 개별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었고 따라서, 분리된 보편자 - 개별자의 관계를 가지게 되지요.
 
하지만, 이러한 플라톤의 보편자-개별자간의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를 보기 먼저 소-플-아 카테고리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차이를 적은 글을 읽어 주세요) 이분법적인 플라톤과 달리, 일원론적인 특징을 가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자신의 철학이 가지는 특징에 맞게끔 세계의 보편자와 개별자를 하나로 합치게 되며, 이는 온 세계에 가득한 기원적 존재인 형상과, 그것의 현실적 재료가 되는 질료를 묶음으로써 가능해지게 되지요.
 
플라톤의 주장대로, 순수형상인 보편자의 세계는 보편자 그자체로서 그러하게 존재하는 것이라 설명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개별자인데, 이것은 질료와 - 형상의 관계를 통해 설명이 되어질 수 있지요. 형상은 보편자로서, 대상의 그러한 보편적 형태를 의미합니다. 가령, 점, 선, 면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개념이 곧 형상인 세이지요. 질료는 개별자로서, 각 개체마다 구분되는, 자신만의 특징을 담고 있는 특수한 존재자이며 현실적인 존재자입니다. 가령, 철, 나무, 물, 불 등...현실세계에서 관찰될 수 있는 존재물들이 바로 이러한 질료이지요. 이러한 개별적인 존재는 상호간에 동일한 존재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령 같은 자작나무라고 해도 그 모양이 다다르며, 같은 불이라고 해도 그 일렁이는 구체적인 모습은 시시각각 다 다르지요. 이렇듯 현실적인 존재물인 질료는 동일할 수 없는 특수한 존재자로서 , 현상세계 모두를 가득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료와 형상, 즉 개별자와 보편자의 관계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 방향에서 생각했습니다. 과연, 형상과 구분된 질료가 존재하는가? 다시말해 보편자와 구분된 개별자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엔 형상없이, 즉 보편적 존재자 없이, 오로지 질료로서만 구성된 존재물들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플라톤의 논리 대로라면, 현상세계의 존재들은 보편자 없이 존재해야 하며, 이렇듯 보편자 없이 존재하는 개별자로서의 질료, 즉 '그 무엇도 아니지만,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 무엇도 아닌 것이' 어째서 이런 공통점들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수 밖에 없었지요. 다시 말해 어째서 그 어떤 보편자도 가지지 않는 개별자가, 이러한 보편의 범주에 해당하는 어떠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나무의 질료는 나무의 그러한 공통성, 즉 보편성을 가진채 그러한 개별자가 되는가? 어째서 금의 질료는 금의 그러한 공통성을 가진채 그러한 개별자가 되는가? 플라톤의 철학은 이러한 문제를 풀 수 가 없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플라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보편자와 개별자를 묶게 됩니다. 즉, 질료와 형상을 묶은 것이었지요. 그는 형상없는 질료란 있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가령 나무라는 질료는, 나무의 보편자가 있기에 그러할 수 있으며, 철의 질료또한 철의 보편자가 있기에 그러한 속성을 지닐 수 있다고 그는 본 것이었지요. 만일 이러한 형상, 즉 보편자가 없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질료라면, '그것이 그것으로서' 성립, 즉 존재로서 성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형상없는 질료는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본 셈이었지요. 생각해보세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나무', '그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무라면 나무에 해당하는 어떠한 보편성이 있어야 나무라 불릴 수 있는 건대, 그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에도 어떻게 그것이 나무라는 질료라 주장되어질 수 있을까요? 이렇듯 보편자와 개별자는 나뉠 수 없으며,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세계에도 보편자가 있다고 주장했었지요.
 
물론, 이러한 질료-형상은, 현상세계에만 적용되는 논리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형상을 순수형상 그 자체로서 설명을 했습니다. 순수형상 즉 완전한 의미로서의 보편자는, 개별자인 실체와 엮일 필요 없이, 보편자 자체로서 이미 충분한 존재의 보장을 받게 되는 셈이었고, 따라서 순수 그자체인 보편자인 순수형상을 설명하기 위해 질료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가져올 필요가 없었지요.) 따라서 형상-질료의 결합논리는, 현상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만 써먹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하네요.(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형상-질료의 논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모두에 해당하는 논리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각각의 형이상학에 따른 보편자 - 개별자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 - 개별자 속에 포함된 의미로서의 보편자. 하지만 초월계와 현실계를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모두 현실세계안에서만 설명
 
플라톤 - 초월계와 현실계를 분리. 초월게는 보편자이자, 현실계는 개별자.
 
아리스토텔레스 - 개별자 속에 포함된 의미로서의 보편자. 하지만 플라톤의 순수형상에 해당하는 초월계를 인정하고, 현실계만 이러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결합으로써 설명.
 
이런 헤라클레이토스-파르메니데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립된 보편자와-개별자의 개념은 고대-중세의 형이상학을 꿰뚫는 핵심적인 존재론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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