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서 시간-공간
칸트에서 시간-공간
자료출처 http://ask.nate.com/qna/view.html?n=363101
칸트는 감각적 수용 능력을 감성이라고 하고, 개념적인 사유 능력을 오성이라고 구별하는데요.
감각적 수용이란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이 빨간 연필을 만나고 저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를 만납니다.
반면에 개념들은 감각을 통해서 만나진 개체들에 적용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개체들은 아닙니다.
예컨대, "조용필은 사람이다"라는 문장에서 '사람'은 보편적 개념이지요. 조용필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감각적 특징들을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낸 거지요.
따라서 개념적 사유는 보편자를 만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유명론의 입장을 지지해서 보편자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개념적 사유란 보편 개념들을 도구로 구사하는 그런 인식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개체를 만날 때에는 어느 시점에 어느 곳에서 만나잖아요. 그렇지요? 우리는 시간적, 공간적 규정을 초월해서 개체를 만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란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감성의 형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칸트에서 시간-공간이 보편자의 문제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아마도 시간과 공간이 개념이 아니라 직관의 형식 감성의 형식인데, 그 이유가 시간, 공간이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뜻같습니다. 시간-공간이 감성의 형식이라는 선언에 개체와 보편을 구별하는 철학사적 전통이 들어 있다는 거지요.
자료출처 http://ask.nate.com/qna/view.html?n=363101
칸트는 감각적 수용 능력을 감성이라고 하고, 개념적인 사유 능력을 오성이라고 구별하는데요.
감각적 수용이란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이 빨간 연필을 만나고 저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를 만납니다.
반면에 개념들은 감각을 통해서 만나진 개체들에 적용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개체들은 아닙니다.
예컨대, "조용필은 사람이다"라는 문장에서 '사람'은 보편적 개념이지요. 조용필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감각적 특징들을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낸 거지요.
따라서 개념적 사유는 보편자를 만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유명론의 입장을 지지해서 보편자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개념적 사유란 보편 개념들을 도구로 구사하는 그런 인식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개체를 만날 때에는 어느 시점에 어느 곳에서 만나잖아요. 그렇지요? 우리는 시간적, 공간적 규정을 초월해서 개체를 만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란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감성의 형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칸트에서 시간-공간이 보편자의 문제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아마도 시간과 공간이 개념이 아니라 직관의 형식 감성의 형식인데, 그 이유가 시간, 공간이 우리가 개체를 만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뜻같습니다. 시간-공간이 감성의 형식이라는 선언에 개체와 보편을 구별하는 철학사적 전통이 들어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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