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자. 개념주의conceptualism
보편자. 개념주의conceptualism
자료출처http://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51586&page=17&bbs=
보편자를 단지 개념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보편자의 존재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편자를 개념으로 환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보편자 개념의 존재여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보편자 개념은 철학이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
우리는 보편자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문장들은 상당부분 보편자 개념을 포함한다.
"이명박은 포유류다"(포유류), "용기는 덕이다."(용기, 덕)
문제는 '이 보편자 개념이 미리 주어져 있는지, 아니면 생겨난 것인지'이다.
전자는 실재론자의 입장으로서, 미리 주어진 보편자 개념을 가지고 언어활동(특히 술어활동)을 설명한다.
후자는 유명론자의 입장으로서, 언어활동(특히 술어활동)을 가지고 보편자의 개념을 설명한다.
후자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직관에 호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해오면서 이것, 저것, 그것을 가리키며 "파랗다." 라고 불렀고,
그에 따라서 파랑의 보편자 개념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적 순서를 따진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어 활동을 하는 개체들 > 일반용어(술어)가 나타남 > 보편자의 개념이 생겨남 > 보편자의 존재에 개입함.
(실재론자의 설명은 역순 : 언어 활동(predication) < 보편자 개념 < 보편자 존재)
이렇게 보편자의 개념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해 내는 것이 하나의 문제고,
"문장의 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의미론적으로 보편자의 존재에 개입해야 하지 않느냐?"
는 실재론자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료출처http://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51586&page=17&bbs=
보편자를 단지 개념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보편자의 존재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보편자를 개념으로 환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보편자 개념의 존재여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보편자 개념은 철학이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
우리는 보편자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문장들은 상당부분 보편자 개념을 포함한다.
"이명박은 포유류다"(포유류), "용기는 덕이다."(용기, 덕)
문제는 '이 보편자 개념이 미리 주어져 있는지, 아니면 생겨난 것인지'이다.
전자는 실재론자의 입장으로서, 미리 주어진 보편자 개념을 가지고 언어활동(특히 술어활동)을 설명한다.
후자는 유명론자의 입장으로서, 언어활동(특히 술어활동)을 가지고 보편자의 개념을 설명한다.
후자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직관에 호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해오면서 이것, 저것, 그것을 가리키며 "파랗다." 라고 불렀고,
그에 따라서 파랑의 보편자 개념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적 순서를 따진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어 활동을 하는 개체들 > 일반용어(술어)가 나타남 > 보편자의 개념이 생겨남 > 보편자의 존재에 개입함.
(실재론자의 설명은 역순 : 언어 활동(predication) < 보편자 개념 < 보편자 존재)
이렇게 보편자의 개념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해 내는 것이 하나의 문제고,
"문장의 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의미론적으로 보편자의 존재에 개입해야 하지 않느냐?"
는 실재론자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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