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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이란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couen_/60108704576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을 극복했는가의 문제는 역사가 판단할 문제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극복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
철학자는 계몽주의와 과학지상주의를 먼저 생각한다.
페미니스트에게는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회화에 있어서는 평면성과 자율성으로 협소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 혹은 부정적 부르주아 문화라고도 한다.
 
관람자들은 옛 거장의 작품을 접할 때 작품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기 이전에 작품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려는 경향을 띠는 데 반해 모더니스트는 회화는 우선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
이 그림 왜 그리셨어요? 라고 물어볼 때 그냥 그렸어요라고 답한다면 모더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감상법은  옛 거장의 그림이나 모더니스트 회화에 상관 없이 그림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그것만이 유일하고 필요한 방법이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서 거둔 모더니즘의 성공은 자기 비평의 성공이다.
(자기비평이란 이미지를 뒤집거나 거꾸로 보거나 거울을 통해 보거나 확대 축소를 말한다.)
시인이자 비평가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67)는 삶의 경험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에 예술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친구인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83)가 이를 받아들였다.
마네가 파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으므로 이로써 회화의 주제 변화가 일어났고 모네로부터 출발하는 인상주의에서 보는 양식의 변화를 가져왔기에 두 사람을 모더니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마네는 최초의 모더니스트이며 모더니즘의 시기는 1860년대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자연을 또는 사물을 제멋대로 모호하게 왜곡시키고 자기의 변덕을 강변한다.
스타일의 문제이다라고 설명해야 된다고 본다. 굉장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왜곡과 변형의 스타일이다라고만 정의한다면 19세기 초 중반의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을 구분할 근거가 모호해진다. 터너에게도 자연은 주관적이었고 멋대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터너의 자연에 대하 해석은 내면적인 삶에 대한 상징이었고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적체험 인 것이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이입이 일어난 것이다.  터너에게 일몰은 아련한 슬픔인 것이다.
낭만주의의 왜곡에는 목표가 있었다. 감정과 체험속에 진실을 찾고자 한 노력이었다.
워즈워드의 시를 보면 기쁨이란 우리가 자연과 결합하면서 선물로 받는 정신적 힘이다라고 되어있다.  19세기말의 모순은 이를 병적인 우울 파괴 어두움 에로티시즘으로 표현하였고 이런 회화들이 클림트와 뭉크 실레등에서 발견된다. 넓게 보면 클림트는 낭만주의의 다른 방식이다라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출발을 마네와 모네에서 보는 것은 이들은 낭만주의나 앞뒤의 다른 유파와 달리 현실을 그렸지만 그것은 감정의 개입이 없는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저항은 오직 기법상의 문제에 대한 것이지 체계, 철학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명료, 우연함. 쾌활함. 시간의 변화에 대한 관찰, 즉흥성으로 거칠지만 쉽게 정의한 마네와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니고 오직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사조는 야수파나 입체파로도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적어도 초기의 피카소의 큐비즘이란 그림을 해체하거나 혹은 기하학적으로 재조립하는 문제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1913년후의 콜라쥬나 게르니카 의 정치성까지를 포괄하는 해석은 아니다.)
작품을 매끄럽게 하고 윤이 나게 다듬지 않는다는 것은 낭만주의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격렬한 감정의 분출이라는 차원에서이고 (이런 점에서 고흐는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모더니즘에서는 예술적 자발성의 훼손을 막기 위함이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고갱은 이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색채의 빛과 음영을 배치하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인상이 생기는데 그것이 회화의 음악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폴 고갱
 
회화는 주제의 문제가 아니고 장식적 특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 고유의 스타일의 문제이다라는 주장이다.  모네에서 보여졌던 물감범벅은 이후 휘갈기고 뿌리고 색칠하기로 발전되었지만 그건 기술의 문제도 표현의 문제도 아니고 스타일로 해석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은 결국 의도를 지닌 화면이 있는 가의 문제로 보아야 된다. 모더니즘은 시각의 주관성에서 비롯된 해체였다면 포스트모던은 미술이 무엇인가라는  정의의 문제이고 여기에서 비롯되서 대중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1850년대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와 그 맥락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강조되는 차이는 모더니스트들의 주관성과는 다른 인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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