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 칸트
이 책을 산 이유는 퀄리티에 비해 책값이 싸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좋은 번역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카넷에서 나온 2권짜리 순수이성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권을 다 구입하면 6만원에 가까운 돈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순수이성비판 1,2권에 실천이성비판까지 구입하면서 15000원에 불과하다.
혹자들은 번역이 안좋다고 말하거나, 월드북에서 나온 시리즈물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값이 싸거나 시리즈물에 대한 편견일수 있다는 생각이다.
일단, 이 번역자(정명오)의 프로필로 봤을 때 믿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거의 일본판을 번역한 다른 책들보다는 훨씬 잘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논문을 쓸 때 이 책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해도 아무도 태클을 걸거나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이 책에서 '물자체'를 '본질체' 로 번역하고, 오성 을 '지성' 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 번역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아카넷에서는 '본질체'를 '예지체'라고 번역하고, '오성'을 '지성'으로 한 것은 똑같다는 것을 확인하고나니, 이 책의 번역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물자체와 오성으로 잘 알려진 것은 사실, 일본에서 먼저 그렇게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이성 사용시 주의사항" 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성을 잘못 사용함으로 인해 수많은 형이상학과 오판, 잘못된 상상을 해서 오류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서, 이성이 잘못사용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래서 이성은 잘못될수 있기 때문에 비판이 필요하고, 그래서 책의 제목이 순수이성비판이 되었다.
그런데 왜 '순수' 가 붙어있을까? 그것은 '선험적' 이라는 말과 똑같다. 선험적이라는 것은 경험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즉, 후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경험과 연관되지 않고, 그저 독립적으로,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이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순수감성도 있고, 순수지성(오성)도 있다. 순수감성이란 본질체(물자체)를 접하고 그것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현상' 이라는 것으로 만든다. 비로소 '현상'이 되어야 우리가 지각할 수 있다. 그 전의 본질체는 절대로 우리가 지각할 수 없다.
'현상'은 다시 순수지성(오성)에 의해 개념 또는 인식으로 바뀐다. 순수지성은 범주라고도 하는데, 자세한건 생략하고,
인지적인 크게 4종류의 범주로 인해 인간에게 인지되기 쉽도록 범주화시킨다.
마지막으로 개념 또는 인식은 순수이성의 작용으로 최종적인 사고로 바뀐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순수감성(직관) 순수지성(범주) 순수이성
│ │ │
물자체(본질체) --- ---> 현상 --- ---> 개념 --- ---> 생각, 판단
우리의 경험은 절대로 물자체를 알 수 없다. 일차적으로, 순수감성에 의해 시간과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만 알 수 있다.
물자체에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선험적인 관념의 산물이다.
이러한 생각은 물리학에 비추어 볼때 굉장히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시간과 공간은 관념의 산물일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관념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칸트에 따르면 감각기관의 산물이라고 한다.(순수감성의 경우) 여기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 (사실은 1권은 순수지성까지만 나온다. 순수이성은 2권부터 나온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제부터 핵심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핵심은 2권에 나온다. 1권까지 읽었을 때 '순수' 와 '선험적' 이라는 것은 '절대적' 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신에 의해, 운명적으로,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항상 옳은가?
2권에서 하는 이야기는 순수이성의 활동이 우리를 잘못된 오류로 이끌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칸트는 순수이성이 '선험적이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념' 이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데아는 경험에서 비슷한 것을 얻지만, 결코 이데아와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경험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초월적인 이데아를 상상한다. 그것이 순수이성이다. (물자체와 이데아는 다르다. 이데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물자체는 알 수 없으므로, 칸트에 따르면, 상상하거나 만들어서는 안된다.)
순수이성은 원래 개념들의 최대한의 체계적 통일성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그것은 감성과 지성의 다음 단계에 있으므로, 그것의 규제를 받는 '규제적 원리'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순수이성을 사용해 그 앞의 단계를 만들려는 '구성적'인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영혼' '신'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개념의 체계적 통일성을 위해서, 그것을 의인화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성질을 구성하려 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영혼의 산출, 파괴, 재생과 같은 문제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지성과 감성의 영역 내에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칸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다.
이 밖에 수학철학과 과학철학, 윤리학과 관련되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수학철학과 관련해서는 수학이 감성,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며, 그것은 선험적, 직관적인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였고, 과학에 대해서는 법칙을 추구하는 것과 경험을 따르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순수감성, 순수지성, 순수이성의 활동은 선험적이므로 객관적이고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윤리학과 관련해서는, 순수이성은 경험에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자유의지'를 갖게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험의 탓이 아니라, 그의 '자유의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이성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므로, 실천적 사용에서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칙이 된다. 이것은 후에 <실천이성비판>에서 이성적인 절대적 규칙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og-english/ZrgT/2?docid=1MTk7|ZrgT|2|20110117003607&q=%BC%F8%BC%F6%C0%CC%BC%BA%BA%F1%C6%C7%2B%C4%AD%C6%AE&srchid=CCB1MTk7|ZrgT|2|20110117003607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