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상황에 관하여 (야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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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왜 한계상황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가
실존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휴머니즘적인 정치 저술가로이며 정신과 의사로도 활동했던 독일의 실존철학자인 칼 야스퍼스(1883-1969)는 자신의 철학을 <키에르케고르>와 <니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이해한다.
그는 나치 정권이 자기 아내가 유태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직을 박탈당한다. 그런데 자신의 친구 하이데거는 오히려 나치에 적극 협력하며 프라이부르크대학의 총장으로까지 출세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과 하이데거의 경우에서처럼, 학자의 절개 혹은 지식인의 변절이라고 쉽게 속단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이 있음을 절감하고 이를 <실존의 과제>로 발전시키게 된다.
1. 한계상황 Grenzsituation
야스퍼스가 지적한 <한계상황 Grenzsituation>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앞에 섰을 때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벽 같은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죽음>과 <투쟁>, 그리고 이에 관한 <고뇌> 등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가 매일의 생활세계에서 겪는 꿈과 젊음의 좌절, 질병, 타인으로부터의 거절 같은 것 등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한계상황 앞에 섰을 때, 인간은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든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그와 같은 한계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면, <하나 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야스퍼스의 개인적 삶에서, 확실히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나치에 협력하기를 거절하고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태계 부인과 결별하지 않았다는 삶의 진지함이 그가 말하는 한계상황의 전부를 의미하거나 그의 실존철학의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한계상황>은 이런 상황에서의 좌절을 직시함으로써 <초월자의 세계>로 나가려는 태도이다. 야스퍼스는 이 세계에는 결코 합리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초월자>를 강력히 요청한다.
잘 알려진 대로 20세기에 인류가 겪은 대부분의 비극은 <이성의 기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은 <가스>를 통한 살상이라는 과학적 산업 형태가 주조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원자폭탄은 태평양의 군도에서 일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 미군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적 성과의 주도하에 기획, 투하되었다. 즉 지난 세기의 중요한 결정들이, 이와 같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칸트에 의해 시작되고 헤겔에 의해 완성된 <독일관념론>은 <이성>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더라도 이런저런 식으로 지식의 진보를 이룩해 가다 보면 진리의 최종 형태인 객관적인 <물 자체 Dinge an Sich>까지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즉 이성은 진보를 통해 완전에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야스퍼스는, <이성적 세계>와 <비합리적인 세계>는 서로 단절되어 있어서 나치시대와 같은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존재>의 해명을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학문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을 통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전제이다. 오히려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비롯된 좌절을 통해서 비로서 이성의 진정한 한계를 자각하며, 아울러 존재 실현의 길을 열 수 있다.
야스퍼스는 자신의 실존사상 전체를 나타내는 첫 번 저서인 <철학 1932>에서 <세계가 모든 것>이며 <과학적 인식이 확실성의 전부>라고 하는 소위 <세계 내재적>인 기존의 학문적 인식이 가지는 한계를 통렬이 비판한다.
2. 실존 Existenz
“나는 학문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내부에서만이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철학의 과제는 그것 보다 <세계>로부터 <초월자>에게로 초월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주장은 <실존>의 과제로 파악된다.
야스퍼스에게서 <실존>은 우선 <자기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자아를 형성하는 모든 것이다. <인간 실존>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 <투쟁>, <고통> 그리고 <죄>와 같은 <한계상황>에 인간을 가두어 두고 스스로 절망하게도 하지만 아울러 <초월자>에게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본래적 자기존재>가 되살아나게도 한다.
<초월>은 실존적 자유의 근원이자 가능성이다. <실존>은 <초월>에서 방향을 찾는다. 즉 인간은 한계 상황 가운데서 <외적 생활 조건>에 전면적으로 의존해 있는 자신을 깨트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이 명백하다.
인간은 <현존재>로서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자연적, 문화적, 역사적인 기존의 제약에 묶여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결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은 혼자서는 자기 실현에 도달하지 못하고 <타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인간의 의사소통>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 Liebender Kampf>이다. <투쟁>은 인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상황이어서 누구를 막론하고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어 있으며, 이의 실현을 통해서 보편적 진리 형태가 드러난다. 즉 <실존간의 내적 평화>를 통해서 <외적 세계평화 조건>의 달성도 가능한 것이다.
3. 포괄자 Umgreifende
인간은 원래 칸트가 말한 대로, 세계 안에서 주관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객관적 존재이기도 하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주관으로서의 인간은 실존으로서, 현존재로서, 의식일반으로서, 정신으로서, 또한 현존으로서의 <포괄자>의 양태로 존재한다. 아울러 이 인간에 맞서 있는 대상으로서의 <세계>와 <초월>이 객관적 <포괄자>로 상정되어 있다.
포괄자의 양태는 다음과 같다.
1. <현존>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내에서의 나의 삶이다. <존재>를 위해서는 <현존>이라는 <경험 공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2. <의식 일반>은 보편 타당하고 객관적인 사유의 매체이다.
3. <전체>로서 이해되는 <정신>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4. 존재하는 모든 것이 드러나는 <대상 공간>으로서의 <세계>가 <정신>에 맞서 있다.
5. <포괄자>의 이 같은 내재적 양태들은 <실존>과 <초월>로 채워진다.
6. <초월>은 <포괄자의 포괄자>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7. <초월>은 <실존>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고 <내재>는 <초월>을 향해 더욱 자신을 드러낸다.
이 모든 통합된 진리를 추구하는 힘은 여전히 <이성>에게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포괄자>의 모든 양태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즉 각 양태들은 다른 양태들에 의존하는 데서 진리를 생산한다. 그러나 여러 양태 중의 하나가 고립되면 그 가운데 <비진리>가 생겨난다.
4. 마무리하며
야스퍼스가 이와 같이 인간이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초월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뜻 보아 <케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정태적인 <실존 조명>과 유사한 주장을 펴는 것 같지만 이미 언급한 실존의 사귐형태(의사소통)와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강조하는 데서 그의 철학은 사변이 아니라 즉 실존에 대한 탐구 를 사회변혁과 인간 구원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승화하려 했음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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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왜 한계상황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가
실존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휴머니즘적인 정치 저술가로이며 정신과 의사로도 활동했던 독일의 실존철학자인 칼 야스퍼스(1883-1969)는 자신의 철학을 <키에르케고르>와 <니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이해한다.
그는 나치 정권이 자기 아내가 유태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직을 박탈당한다. 그런데 자신의 친구 하이데거는 오히려 나치에 적극 협력하며 프라이부르크대학의 총장으로까지 출세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과 하이데거의 경우에서처럼, 학자의 절개 혹은 지식인의 변절이라고 쉽게 속단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이 있음을 절감하고 이를 <실존의 과제>로 발전시키게 된다.
1. 한계상황 Grenzsituation
야스퍼스가 지적한 <한계상황 Grenzsituation>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앞에 섰을 때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벽 같은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죽음>과 <투쟁>, 그리고 이에 관한 <고뇌> 등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가 매일의 생활세계에서 겪는 꿈과 젊음의 좌절, 질병, 타인으로부터의 거절 같은 것 등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한계상황 앞에 섰을 때, 인간은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든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그와 같은 한계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면, <하나 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야스퍼스의 개인적 삶에서, 확실히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나치에 협력하기를 거절하고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태계 부인과 결별하지 않았다는 삶의 진지함이 그가 말하는 한계상황의 전부를 의미하거나 그의 실존철학의 내용을 확실히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한계상황>은 이런 상황에서의 좌절을 직시함으로써 <초월자의 세계>로 나가려는 태도이다. 야스퍼스는 이 세계에는 결코 합리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초월자>를 강력히 요청한다.
잘 알려진 대로 20세기에 인류가 겪은 대부분의 비극은 <이성의 기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은 <가스>를 통한 살상이라는 과학적 산업 형태가 주조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원자폭탄은 태평양의 군도에서 일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 미군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적 성과의 주도하에 기획, 투하되었다. 즉 지난 세기의 중요한 결정들이, 이와 같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칸트에 의해 시작되고 헤겔에 의해 완성된 <독일관념론>은 <이성>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더라도 이런저런 식으로 지식의 진보를 이룩해 가다 보면 진리의 최종 형태인 객관적인 <물 자체 Dinge an Sich>까지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즉 이성은 진보를 통해 완전에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야스퍼스는, <이성적 세계>와 <비합리적인 세계>는 서로 단절되어 있어서 나치시대와 같은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존재>의 해명을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학문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을 통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전제이다. 오히려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비롯된 좌절을 통해서 비로서 이성의 진정한 한계를 자각하며, 아울러 존재 실현의 길을 열 수 있다.
야스퍼스는 자신의 실존사상 전체를 나타내는 첫 번 저서인 <철학 1932>에서 <세계가 모든 것>이며 <과학적 인식이 확실성의 전부>라고 하는 소위 <세계 내재적>인 기존의 학문적 인식이 가지는 한계를 통렬이 비판한다.
2. 실존 Existenz
“나는 학문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내부에서만이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철학의 과제는 그것 보다 <세계>로부터 <초월자>에게로 초월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주장은 <실존>의 과제로 파악된다.
야스퍼스에게서 <실존>은 우선 <자기 존재>로서 본질적으로 자아를 형성하는 모든 것이다. <인간 실존>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 <투쟁>, <고통> 그리고 <죄>와 같은 <한계상황>에 인간을 가두어 두고 스스로 절망하게도 하지만 아울러 <초월자>에게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본래적 자기존재>가 되살아나게도 한다.
<초월>은 실존적 자유의 근원이자 가능성이다. <실존>은 <초월>에서 방향을 찾는다. 즉 인간은 한계 상황 가운데서 <외적 생활 조건>에 전면적으로 의존해 있는 자신을 깨트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이 명백하다.
인간은 <현존재>로서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자연적, 문화적, 역사적인 기존의 제약에 묶여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결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은 혼자서는 자기 실현에 도달하지 못하고 <타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인간의 의사소통>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 Liebender Kampf>이다. <투쟁>은 인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상황이어서 누구를 막론하고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어 있으며, 이의 실현을 통해서 보편적 진리 형태가 드러난다. 즉 <실존간의 내적 평화>를 통해서 <외적 세계평화 조건>의 달성도 가능한 것이다.
3. 포괄자 Umgreifende
인간은 원래 칸트가 말한 대로, 세계 안에서 주관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객관적 존재이기도 하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주관으로서의 인간은 실존으로서, 현존재로서, 의식일반으로서, 정신으로서, 또한 현존으로서의 <포괄자>의 양태로 존재한다. 아울러 이 인간에 맞서 있는 대상으로서의 <세계>와 <초월>이 객관적 <포괄자>로 상정되어 있다.
포괄자의 양태는 다음과 같다.
1. <현존>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내에서의 나의 삶이다. <존재>를 위해서는 <현존>이라는 <경험 공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2. <의식 일반>은 보편 타당하고 객관적인 사유의 매체이다.
3. <전체>로서 이해되는 <정신>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4. 존재하는 모든 것이 드러나는 <대상 공간>으로서의 <세계>가 <정신>에 맞서 있다.
5. <포괄자>의 이 같은 내재적 양태들은 <실존>과 <초월>로 채워진다.
6. <초월>은 <포괄자의 포괄자>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7. <초월>은 <실존>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고 <내재>는 <초월>을 향해 더욱 자신을 드러낸다.
이 모든 통합된 진리를 추구하는 힘은 여전히 <이성>에게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포괄자>의 모든 양태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즉 각 양태들은 다른 양태들에 의존하는 데서 진리를 생산한다. 그러나 여러 양태 중의 하나가 고립되면 그 가운데 <비진리>가 생겨난다.
4. 마무리하며
야스퍼스가 이와 같이 인간이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초월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뜻 보아 <케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정태적인 <실존 조명>과 유사한 주장을 펴는 것 같지만 이미 언급한 실존의 사귐형태(의사소통)와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강조하는 데서 그의 철학은 사변이 아니라 즉 실존에 대한 탐구 를 사회변혁과 인간 구원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승화하려 했음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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