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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가 신화적인가?

복음서가 신화적인가?
The world’s myths do not reveal a way to interpret the Gospels,
but exactly the reverse:
the Gospels reveal to us the way to interpret myth.
(Are the Gospels Mythical? by Rene Girard Copyright (c) 1996 First Things (April 1996)
http://cafe.naver.com/girard/102
 
복음서가 신화적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긍정과 부정의 대답 모두 가능하다.
분명히 복음서에는 신화적 요소가 있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 예수님의 이적 행하심,
그리고 지금껏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정작 중요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 전후의 사건,
그리고 그분의 부활까지
이 모든 것에 분명하게 신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화가 복음서를 해독하는 도구일까?
이 질문은 불트만은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신화적 요소를 복음서에서 제거하고
실존적으로 읽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묻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복음서가 신화적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기에 신화가 복음서를 해석하는 기준일까?
아니면 불트만 처럼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거기에 실존 철학을 투영하여 복음서를 해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 지라르는 이 두가지 방법 모두 비판한다.
복음서는 신화적이다. 하지만 복음서가 신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신화와 동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신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한 마디로 복음서가 신화적 요소, 즉 희생양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방법은 불트만처럼 비신화화 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트만에
비해서 지라르는 더욱 급진적이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더 신화적이다.
그렇다면 복음서의 신화적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만인의 일인에 대한 폭력 발생과
그 폭력에 대한 희생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보여지는 이 폭력의 전염성과, 폭력 이후의 사회적 평화이다.
폭력의 전염성은 베드로가 세번 부인한 것에서 그 극에 달하며
만인의 일인에 대한 폭력 이후의 회복된 사회적 평화는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인하여 친구가 된 것으로 복음서는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는 이 메커니즘을 인지 불능의 단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에
저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신다(눅 23:24). 이것은 아주 중요한 point이다.
희생양 메커니즘의 잔인한 폭력성은 인지 불능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상호 부정적
모방으로 짝패가 된 군중(mob)은 자신들이 행하는 잔인한 희생양에 대한 폭력이 폭력인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더욱이 서로가 짝패가 되어감을, 폭력을 서로 모방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는 이 모든 것을 폭로한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이것이 복음서의 계시이다.
즉 복음서는 이 메커니즘을, 누구나 걸려 넘어 질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베드로 마져도
전염되었던 그러한 것, '스켄달론'으로 지칭하고 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으로 하여금 베드로
자신을 모방하게 하려할 때 베드로로 하여금 스켄달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스켄달론은 또한 복음서는 사탄이라고 인격적으로 가르키기도 한다.
이렇게 희생양 메커니즘을 스켄달론이라고 명명하면서, 희생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복음서는 기록됨으로써 창조 때 부터 감추어져 왔던 문화의 초석적 폭력인, 희생양 메커니즘의
정체를 계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불트만에 대해 대답하자면, 복음서는 비신화화 해야 할 대상이기 보다 더욱 신화화
해야할 대상이 아닐까?
 
그리고 신화와 복음서의 차이를 무지로 인하여 알아 채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래서 신화가 복음서를 해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정확하게 그 반대임을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신화의 정체, 즉 희생양 메커니즘은
유대-그리스도교 문화의 꽃인 복음서에서 그 잔인한 정체가 폭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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