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지라르의 위상-인스부르크 박사과정인 신학자로부터
르네 지라르의 위상-인스부르크 박사과정인 신학자로부터
다음 글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분의 글입니다. 인스부르크 대학은 알다시피 고 슈바거 신부의 주도하에 현재 지라르 연구에 가장 활발한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밑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글쓴이가 부럽습니다.
1972년 "폭력과 성스러움" 한 권의 책으로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으로 받은 르네 지라르는 불문학자로서 출발해서, 문화인류학, 사회학, 철학, 신학, 거의 모든 인문과학 전체를 통합하는 이론을 제시한 20세기의 프랑스의 거목입니다. 1972년 폭탄과 같은 폭력과 성스러움이 출판되었을 때 르몽드지는 서구의 세속화된 지식계에 하얀 십자가가 등장했다고 평가했으며, "인류정신사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성스러움이라는 것 자체가 폭력에서부터 발생했다는 그의 발견과 주장은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지금까지의 낭만적인 종교이해의 허구를 폭로한 혁명과 같은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유대/기독교 전통 외의 원시종교, 고등종교에서의 신의 정체는 바로 제의적 폭력으로 살해당한 이후 신성화된 희생양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증명되고 확증된 것입니다. 지라르는 흔히들 인간제사, 인육제 등은 지극히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일부 원시부족의 범죄행위로 생각하고, 원시종교에서는 자연을 신성화해서 감사의 제물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바쳤다는 이 통속적인 종교관을 여지없이 해체했습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반기독교적 혹은 탈기독교적 낭만적 신원시주의, 신샤마니즘은 결정적으로 그 근거를 잃었습니다. 서구를 통해서 역수입된 불교, 샤마니즘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는 조작된 작품에 불과합니다. 불교와 타종교에 대한 진지하고도 예의바른 인격적 존중, 톨레랑스, 대화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자적인 비판정신과 지적인 정직성, 지적인 비판을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성이라는 것은 최초 살인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왜 최영장군이 이성계의 마지막 경쟁자로서 참형당한 이후 조선시대의 국가수호신이 되고, 그의 시체가 묻힌 개성 덕물산은 20세기 한국전쟁 당시까지 중부지방 무속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 최영장군은 희생양으로 살해 당한 이후 sacred하게 된 원시종교의 신성을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신화의 그 복잡한 세계는 해독이 이미 끝났습니다.
신의 정체는 이제 폭로되었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인류의 과학적 정신이 해독하지 못한 마지막 분야가 바로 종교, 신화, 원시제의의 수수께기였습니다. 르네 지라르 자신은 1972년 이후 스스로 이미 해독은 종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지도와는 달리 그가 1972년에 이미 기술하고 있듯이, 그의 발견이 가져다 주는 충격이 너무도 큰 것이기에 그의 이론은 점차적으로 수용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르네 지라르를 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그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고 3번 부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주장이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최선의 이론(저는 종교의 빅뱅이론이라 부릅니다)이지만, 그의 이론이 정말로 정답이었을 경우, 그 (정치적)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이기에 그는 프랑스 포스터모더니스트들 사이와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일종의 스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평신도 불문학자, 문화인류학자로서 지라르가 신학자들이 자신없이 포기한 복음서와 성경, 히브리적/기독교적 종교의 질적인 차이와 독특성을 1972년 이후 2003년 지금까지 일관되게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주장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종교에 대한 순진한 낭만적이고 이해는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진.선.미 이후의 최고단계로서의 고상한 성이 아니라, 피, 폭력, 살인으로부터 신이 제작되고 종교가 발생했다는 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료함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물리학자 Alan Sokal은 프랑스 포스터모더니스트(데리다, 라깡)의 공허한 언어유희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을 한 바 있습니다. 같은 프랑스 지식인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인문과학 전체와 생물학, 문화인류학, 인간핻동학, 동물행동학, 카오스 이론 등 자연과학 전체에까지 학제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자연과학적", "경험적"이기에 누구도 쉽게 인문과학에서 흔히 찾아볼수 있는 상대주의적, 패배주의적 "많은 이론 중의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새롭게 기독교 복음의 지적인 르네상스가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롭게 원시종교로부터의 인류종교사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불교, 흰두교, 샤마니즘에 대해서도 르네 지라르 학파는 새롭게 누군가 쓰줄 것을 기대합니다. 소위 고등종교라는 "정치적 고려"때문에, 또 서구인이기에 비서구적 세계, 특히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의 논문을 쓰는 것을 그 동안 꺼려해왔습니다. "Political Correctness"때문에 달라이 라마, 티벳불교, 불교 전체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제의적) 학문적 연구가 포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의 지도교수의 말은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로 서구의 지식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종교간의 낭만적, 피상적 대화가 아니라, 보다 급진적이고 정직한 대화, 만남, 연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http://blog.naver.com/jsk1350/80013083344 에서 인용했습니다
다음 글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분의 글입니다. 인스부르크 대학은 알다시피 고 슈바거 신부의 주도하에 현재 지라르 연구에 가장 활발한 대학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밑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글쓴이가 부럽습니다.
1972년 "폭력과 성스러움" 한 권의 책으로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으로 받은 르네 지라르는 불문학자로서 출발해서, 문화인류학, 사회학, 철학, 신학, 거의 모든 인문과학 전체를 통합하는 이론을 제시한 20세기의 프랑스의 거목입니다. 1972년 폭탄과 같은 폭력과 성스러움이 출판되었을 때 르몽드지는 서구의 세속화된 지식계에 하얀 십자가가 등장했다고 평가했으며, "인류정신사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성스러움이라는 것 자체가 폭력에서부터 발생했다는 그의 발견과 주장은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지금까지의 낭만적인 종교이해의 허구를 폭로한 혁명과 같은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유대/기독교 전통 외의 원시종교, 고등종교에서의 신의 정체는 바로 제의적 폭력으로 살해당한 이후 신성화된 희생양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증명되고 확증된 것입니다. 지라르는 흔히들 인간제사, 인육제 등은 지극히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일부 원시부족의 범죄행위로 생각하고, 원시종교에서는 자연을 신성화해서 감사의 제물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바쳤다는 이 통속적인 종교관을 여지없이 해체했습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반기독교적 혹은 탈기독교적 낭만적 신원시주의, 신샤마니즘은 결정적으로 그 근거를 잃었습니다. 서구를 통해서 역수입된 불교, 샤마니즘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는 조작된 작품에 불과합니다. 불교와 타종교에 대한 진지하고도 예의바른 인격적 존중, 톨레랑스, 대화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언자적인 비판정신과 지적인 정직성, 지적인 비판을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성이라는 것은 최초 살인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왜 최영장군이 이성계의 마지막 경쟁자로서 참형당한 이후 조선시대의 국가수호신이 되고, 그의 시체가 묻힌 개성 덕물산은 20세기 한국전쟁 당시까지 중부지방 무속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 최영장군은 희생양으로 살해 당한 이후 sacred하게 된 원시종교의 신성을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신화의 그 복잡한 세계는 해독이 이미 끝났습니다.
신의 정체는 이제 폭로되었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인류의 과학적 정신이 해독하지 못한 마지막 분야가 바로 종교, 신화, 원시제의의 수수께기였습니다. 르네 지라르 자신은 1972년 이후 스스로 이미 해독은 종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지도와는 달리 그가 1972년에 이미 기술하고 있듯이, 그의 발견이 가져다 주는 충격이 너무도 큰 것이기에 그의 이론은 점차적으로 수용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르네 지라르를 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그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고 3번 부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주장이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최선의 이론(저는 종교의 빅뱅이론이라 부릅니다)이지만, 그의 이론이 정말로 정답이었을 경우, 그 (정치적)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이기에 그는 프랑스 포스터모더니스트들 사이와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일종의 스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평신도 불문학자, 문화인류학자로서 지라르가 신학자들이 자신없이 포기한 복음서와 성경, 히브리적/기독교적 종교의 질적인 차이와 독특성을 1972년 이후 2003년 지금까지 일관되게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주장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르네 지라르 이후 종교에 대한 순진한 낭만적이고 이해는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진.선.미 이후의 최고단계로서의 고상한 성이 아니라, 피, 폭력, 살인으로부터 신이 제작되고 종교가 발생했다는 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료함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물리학자 Alan Sokal은 프랑스 포스터모더니스트(데리다, 라깡)의 공허한 언어유희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을 한 바 있습니다. 같은 프랑스 지식인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인문과학 전체와 생물학, 문화인류학, 인간핻동학, 동물행동학, 카오스 이론 등 자연과학 전체에까지 학제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자연과학적", "경험적"이기에 누구도 쉽게 인문과학에서 흔히 찾아볼수 있는 상대주의적, 패배주의적 "많은 이론 중의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새롭게 기독교 복음의 지적인 르네상스가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롭게 원시종교로부터의 인류종교사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불교, 흰두교, 샤마니즘에 대해서도 르네 지라르 학파는 새롭게 누군가 쓰줄 것을 기대합니다. 소위 고등종교라는 "정치적 고려"때문에, 또 서구인이기에 비서구적 세계, 특히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의 논문을 쓰는 것을 그 동안 꺼려해왔습니다. "Political Correctness"때문에 달라이 라마, 티벳불교, 불교 전체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제의적) 학문적 연구가 포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의 지도교수의 말은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로 서구의 지식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종교간의 낭만적, 피상적 대화가 아니라, 보다 급진적이고 정직한 대화, 만남, 연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http://blog.naver.com/jsk1350/80013083344 에서 인용했습니다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