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적 진리(propositional truth)'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존 피셔
명제 진리 - 존 피셔
'명제적 진리(propositional truth)'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 용어는 주로 시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일련의 진리 또는 명제들을 통해 배우고 알 수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절대 진리 논쟁에 사용된다.
오늘 나는 명제적 진리, 또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다른 명제를 붙임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통해 살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전까지는 이해될 수 없다."
이 명제에 빠진 것이 있는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다. 이것은 우리가 가치 있고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증거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운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가장 엄청난 개념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신다. 다른 어느 곳에서든 의미를 찾는 건 실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열망하시는데 왜 다른 곳으로 가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있어 우리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다른 존재'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이해하며, 서로에게 관계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 분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셨고, 우리의 형상(예수님)은 이제 육체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계신다.
'하나님께' 돌려드리다. 일단 모든 것이 하나님이 중심이시고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생에서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을 것이다.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은 그저 모든 것을 그 근원으로 돌리는 행위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7:28)
"하나님을 통해" 살다. 그 분의 성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 성령을 통해 죄를 이기고 보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성령의 임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동행할 수 있는 '친구'다. 타락 이전에 하나님은 선선한 아침에 아담과 함께 걷곤 하셨다. 하나님과 아담은 둘 다 그 시간을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타락 이후에도 에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세기 5:24) 하나님은 에녹과 동행하시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셔서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과정을 생략하시고 바로 그를 하나님 곁으로 데려가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 없이 존재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명제 진리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이제 알 수 있겠는가?
http://cafe.daum.net/fomission/2L6Z/593?docid=BJ|2L6Z|593|20090608205519&q=%B8%ED%C1%A6%C0%FB%20%C1%F8%B8%AE&srchid=CCBBJ|2L6Z|593|20090608205519
'명제적 진리(propositional truth)'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 용어는 주로 시공간 안에 존재하면서 일련의 진리 또는 명제들을 통해 배우고 알 수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절대 진리 논쟁에 사용된다.
오늘 나는 명제적 진리, 또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다른 명제를 붙임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통해 살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전까지는 이해될 수 없다."
이 명제에 빠진 것이 있는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다. 이것은 우리가 가치 있고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증거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운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가장 엄청난 개념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신다. 다른 어느 곳에서든 의미를 찾는 건 실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열망하시는데 왜 다른 곳으로 가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있어 우리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다른 존재'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이해하며, 서로에게 관계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 분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셨고, 우리의 형상(예수님)은 이제 육체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계신다.
'하나님께' 돌려드리다. 일단 모든 것이 하나님이 중심이시고 우리가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생에서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을 것이다.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은 그저 모든 것을 그 근원으로 돌리는 행위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7:28)
"하나님을 통해" 살다. 그 분의 성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그 성령을 통해 죄를 이기고 보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성령의 임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동행할 수 있는 '친구'다. 타락 이전에 하나님은 선선한 아침에 아담과 함께 걷곤 하셨다. 하나님과 아담은 둘 다 그 시간을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타락 이후에도 에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세기 5:24) 하나님은 에녹과 동행하시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셔서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과정을 생략하시고 바로 그를 하나님 곁으로 데려가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 없이 존재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명제 진리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이제 알 수 있겠는가?
http://cafe.daum.net/fomission/2L6Z/593?docid=BJ|2L6Z|593|20090608205519&q=%B8%ED%C1%A6%C0%FB%20%C1%F8%B8%AE&srchid=CCBBJ|2L6Z|593|2009060820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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