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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퍼_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⑥

쉐퍼_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⑥
http://blog.naver.com/joyintheo/10069013720
 
들어가며
지 난 시간까지 나는 프란시스 쉐퍼의 <거기 계시는 하나님>과 <이성에서의 도피>를 개괄하여 제시함으로써 근대와 탈근대라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특히 신앙과 이성을 어떻게 철저히 분리시켜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 과적으로 현대인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과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확신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세속적 영역으로 보이는 직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공적 공간)에 대해서는 종교를 관련짓지 않으며,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사적 공간)에 종교를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는 합리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비약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근거 없이 믿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신앙은 비합리적 신앙이며, 주관주의적 신앙이다. 쉐퍼가 볼 때, 이것은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며, 잘못된 신비주의에 불과하다. 우리의 믿음은 철저히 합리적이며 객관적 근거를 가진 것으로, 사적 영역 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도 일관되게 적용되어야한다.
 
여 기까지 쉐퍼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질문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기독교적 믿음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적 영역을 지배하고 싶은 교회의 권력 욕구 때문에 주관적 믿음에 불과한 것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근거 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믿음과 기독교의 믿음이 다르며, 기독교의 믿음만이 유일한 답변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기독교의 믿음이 ‘합리적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기독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합리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주1)
철 학에서 다루는 것처럼, 인간이 진리에 대해 묻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것인가? 둘째, 도덕이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셋째, 우리는 진리를 ‘어떻게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을 ‘존재론’ 또는 ‘형이상학’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질문을 윤리학이라고 부르며, 세 번째 질문을 인식론이라고 한다. 쉐퍼는 이 세 가지 영역의 질문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루며, 가능한 대답들을 모두 살펴볼 때 유일하게 ‘현실 적합적’으로 대답을 주는 것은 기독교의 설명 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선 이번 시간에는 쉐퍼의 형이상학과 윤리학에 대한 답변을 살펴보고, 다음 글에서는 인식론에 대한 답변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존재론적 딜레마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첫 번째 질문을 다루어 보자.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질문의 출발점이다. 만약 이 세상에 신도 인간도 자연도 우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과연 존재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할 때, 크게 두 가지의 답변이 가능하다. 첫째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만물은 비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관되고 합리적인 설명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쉐퍼가 사용한 용어는 아니지만, ‘포스트모던적’ 시대인 현대 사회는 쉐퍼가 설명한 바로 이와 같은 가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장은 불가능한 입장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외부 세계는 어떤 형태와 질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질서’가 있다는 것은 ‘규칙’이 있다는 것이며, ‘규칙’이 있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이다.(주2)
 
쉐퍼가 소개한 예를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외부 세계에 비합리적이므로 규칙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은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문을 열고 나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라면 고작해야 뚫려있는 창문을 통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외부 세계는 비합리적이며 일관된 규칙이나 체계, 즉 질서는 없다고 믿는다고 해도 이 사람이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는가? 즉, 물리적인 규칙을 거스르며 이동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 시 말해, 이 사람이 머릿속으로 아무리 ‘이 세상에 합리성이란 없어, 질서란 없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이 사람은 자연 세계의 물리적 질서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이 세상에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다. 따라서 쉐퍼는 사람들이 이 세상은 본래부터 비합리적이고 혼돈스러운 공간이므로 합리적으로 질서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사람들은 질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
 
따 라서 인간은 존재론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하나의 대답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류가 제시하는 존재에 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답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쉐퍼가 볼 때, 인류가 주장하는 존재에 대한 대답들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으며, 다른 답변은 없다.(주3)
 
첫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절대적인 의미의 ‘무(無, nothing)’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쉐퍼는 ‘무의 무(nothing nothing)’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즉 태초에 에너지, 질량, 운동, 인격 등이 존재했고, 이것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세계가 나왔다고 하는 설명을 철저히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저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에서 어느 날 지금과 같은 우주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세상에 어떤 종교인, 철학자, 과학자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인 무에서 유가 탄생한다는 설명을 해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둘째, 그렇다면 우리는 태초에 무언가 존재했었고 그로부터 지금과 같은 우주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태초에 존재한 그 무엇이 ‘비인격적’인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비인격적인 기원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비인격적 근원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면,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만물은 ‘비인격적인 것+시간+우연’이라는 공식에 의해 탄생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과 우주는 어떤 의미에서도 ‘목적’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도 ‘의미’는 발견할 수 없다. ‘목적’이라는 것은 ‘우연’과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세상이 우연하게 존재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목적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 ‘존엄한 인간성’을 가진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공식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비인격적인 근원에서 시작된 것이 우주라는 대답의 핵심은 쉐퍼가 볼 때 범신론(pantheism)이다. 범신론이란 만물이 곧 신이라는 말인데, 쉽게 말한다면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의미의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궁극적인 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물’ 또는 만물에 내재한 원리나 힘일 뿐이다.
 
그러나 쉐퍼는 범신론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이 용어에 인격성을 내포하는 ‘신’이라는 말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마치 이 세상에 만물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범신론이 곧 인격성이나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은 ‘환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의미론적 신비주의). 따라서 범신론이라는 것은 없고, 범만물주의(paneverythingism)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만물 밖에 없다. 그 이상의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신은 없다. 이것이 범만물주의다.(주4) 범만물주의는 따라서 인간이 왜 다른 존재들과 다르게 고귀하고 존엄하며 의미있는 존재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만물의 일부일 뿐이며, 도대체 차이가 없다. 인간이 존귀하고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가 존귀하고 의미 있는 것과 차이가 없다. 따라서 범만물주의로는 절대로 진정한 ‘인간됨’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그렇다면 마지막 가능성은 하나의 인격적인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능성 이외에 다른 기원은 불가능하다. 절대적인 무, 비인격적 기원, 인격적 기원의 세 가지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간됨’을 참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인격적인 기원에서 출발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인 격적인 기원을 전제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가로 생각할 수 있다. 인격적이지만 유한한 존재, 인격적이지만 무한한 존재라는 가능성이다. 그리스의 신들은 인격적이지만 유한한 신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세상을 포괄하여 무한하고 절대적인 기초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 동양의 신들은 무한하지만 인격적이지가 않다. 이 세상에서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신을 전제하는 것은 유대-기독교 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을 다른 존재와 다른 고귀한 인간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과 우주가 일관된 법칙 아래에 속하게 만들 수 있는 보편자, 즉 무한한 존재는 동서양을 통틀어 유대-기독교의 하나님 밖에는 없다. 인격적이며 무한하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전역사와 전세계를 다 고려할 때 유대-기독교에만 존재한다.
 
그 렇다면 왜 유대교가 아니고 기독교의 답변만이 유일한 해답이 되는가? 이 세상은 일관된 원리로 움직이는 통일성 아래에 다양성이라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즉, 우주는 통일성이 있지만, 획일적이지는 않다. 우주가 통일성이 있기 위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규정할 수 있는 인격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이 필요하며, 동시에 획일적이지 않기 위해서는 본래적인 다양성이 존재의 속성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다. 다시 말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무한한 존재로서 유일하지만, 삼위(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갖고 계신 존재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하나님을 기원으로 하는 이 세상도 통일성 속의 다양성이라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대교의 일신론은 통일성은 설명할 수는 있지만, 다양성은 설명할 수 없다. 인격적이며 무한하신 하나님, 그리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전제될 때에만 우주의 존재적 속성이 온전하게 설명된다. 기독교의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와 같은 설명은 없다. 성경의 하나님의 존재만이 이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2.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
이 제 윤리학의 문제를 다뤄 보자. 이 세상에는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우리들은 모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또는 상대적이고 특수한 의미에서 도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마저도 동의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도덕 감정’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도 덕의 문제를 고려할 때, 존재의 문제를 살펴보았던 것처럼 비인격적인 기원에서 출발해 보자. 도덕이 비인격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범만물주의의 경우처럼,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뿐이며 그 이상의 무한하고 인격적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비인격적 기원+시간+우연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간과 다른 만물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도덕의 문제에서도 인간과 다른 만물은 차이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비인격적인 기원에서 출발할 때, 인간이 다른 만물과 차이가 나는 존엄성과 도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이 때 인간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인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도덕 감정’이 존재한다. 무언가 인간 내부에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우주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으며, 인간과 다른 만물 사이에 도덕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다시 말해,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와 개를 키우는 인간 사이에 아무런 도덕적 차이가 없다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도덕 감정은 잘못된 감정이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도덕 감정을 가진 인간은 도덕적이지 않은 우주 속에서 평생 괴로워하며 살아가야하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우주에 도덕적 구조가 없다면 최근에 일어난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을 보고 전혀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이와 같은 사건을 보고 도덕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인간 자신이 이 우주에 부적합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비인격적 기원을 전제로 할 때, 인간이 처한 도덕적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현 대 사회는 비인격적 기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을 설명할 수 없다. 도덕이란 모두 사회학적 도덕일 분이다. 사회학적 도덕이란, 인간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 규칙이라는 말이다.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용적 의미에서(누구나 죽거나 다치기는 싫기 때문에) 서로 합의하여 도덕이라 불리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강제력을 부과했을 뿐이다. 따라서 사회적 처벌을 피할 수만 있다면, 본질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로크의 ‘사회 계약론’ 이후 현대 사회의 법과 도덕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학적 개념에 근거해 있다.
 
지 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비인격적 기원을 전제로 할 때 인간은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기계적 인과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 또한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이는 모든 행동들은 사실상 심리학적․사회학적․화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없다. 모든 것은 매우 복잡한 인과 관계를 거쳐 결정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격이 아니라 기계다. 따라서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지 그것은 결정되어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존재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라는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의 말의 의미다. 정말 우리가 비인격적인 기원에서 출발하였다면 이 말을 반박할 방법은 없다.
 
그 러나 인격적인 기원에서 출발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인격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이 출발되었다고 할 때,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은 본래 잔인하고 악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격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은 잔인하고 악한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했던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만일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악마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런 입장에서 출발한다면, 인간은 악과 싸울 수 없다. 악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만든 것이므로, 유한한 인간이 악과 싸운다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악은 근본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다.
 
조 금 더 생각해 보면, ‘인격적’이라는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격적이라는 것은 자유롭고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인간에게 존재하는 잔인성은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선택된 것이며 출발된 상태에서 달라졌다는 것이다. 즉,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인격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이 인격적이고 유한하게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악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은 악하지 않으며 동시에 인격적으로 창조된 인간은 악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 존재론적이고 도덕적인 딜레마에 대한 유일한 대답
인 류가 고려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답들을 하나씩 살펴보았을 때, 인격적이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다른 만물과 다르게 창조했다는 유대-기독교의 주장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현실(reality)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쉐 퍼는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러 네 가지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악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인간은 악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잔인성의 문제(악의 문제)는 본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변질된 것이기 때문에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무한한 하나님께 맞서지 않고 악과 싸울 수 있다. 셋째, 따라서 사회악과 불의를 포함하는 모든 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넷째, 하나님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참된 의미에서 도덕적 절대 기준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중심과 절대는 없다고 외치는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관점이 된다.
 
모 든 가능한 입장들을 논리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인간의 악과 도덕의 문제, 인격의 문제, 인간 존재의 존엄성의 문제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쉐퍼가 다시 한 번 강조하듯이, 이것은 제일 좋은 답변이 아니고, 유일한 답변이다. 다른 답변은 불가능하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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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경 엮음. 1996. 『프란시스 쉐퍼 읽기』. 예영커뮤니케이션
성인경. “프란시스 쉐퍼의 교훈.” (한국 라브리 홈페이지 문서자료)
이우재. “칸트, 헤겔, 그리고 쉐퍼의 진리관.” (한국 라브리 홈페이지 문서자료)
윌리엄 에드가. “모더니티, 포스트모던, 그리고 복음.” (한국 라브리 홈페이지 문서자료)
주도홍.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 (강의안)
Middleton, J. R./Walsh, B. J. 1995. Truth Is Stranger Than It Used To Be:Biblical Faith In A Postmodern Age. InterVarsity Press [국역: 김기현․신광은 역. 2007.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살림]
Parkhurst, L. G. 1985. Francis Schaeffer. Kingsway Publications [국역: 성기문 역. 1995. 『프란시스 쉐퍼』. 두란노]
Schaeffer. F. A. 1968. The God Who Is There. Inter-Varsity Press, England [국역: 김기찬 역. 1994. 『거기 계시는 하나님』. 생명의말씀사]
_______________. 1968. Escape from Reason. Inter-Varisty Fellowship, England [국역: 김영재 역. 1970. 『이성에서의 도피』. 생명의말씀사]
_______________. 1972.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Tyndale House [국역: 허긴 역. 1973.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생명의말씀사]
_______________. 1976. How Should We Then Live? Fleming H. Revell [국역: 김기찬 역. 198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생명의말씀사]
 
* 이 주 일 : 청년부 2교구 간사, 예수 대학 <기독교 문화관> 강사
이 성 근본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 '모더니즘'과 중심과 절대는 없다고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즘' 앞에서도 복음의 진리성과 절대성, 그리고 그 능력을 자신 있게 확신하지만, 모더니티를 신앙고백으로 삼아버린 현대 복음주의 교회 앞에서 '성령의 탄식'을 느끼기 시작한 정통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
 

1)쉐 퍼의 지적은 이렇다. 복음주의자들의 약점은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합리적’인 답변을 갖고 있지 않은 채로, 다시 말해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맹신, 또는 교조주의(dogmatism)라고 비판한다. 또한, 우리는 믿어야 구원받기 때문에 억지로 믿기는 하면서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는 세상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쉐퍼가 <로마서 강해>에서 지적했듯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롬1:16,17)고 말할 때 그는 단지 합리적인 근거는 모른 채 그저 ‘하나님을 뜨겁게 믿는’ 맹신적 열정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명인이었던 로마인들 앞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유일한 답변’이 되는 복음을 확신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로마서’라고 하는 위대한 논증적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세속 지성들 앞에서도 복음은 절대 지적으로 부끄러운 내용이 아니다.
2)본래 합리성 또는 논리성이란 일관된 규칙에 따라 설명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비합리성이란 규칙이나 법칙, 일관된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3)물론 쉐퍼는 세부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근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 가지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4)범 만물주의는 폐쇄 체계(closed system)를 전제하는 자연주의적 과학, 신학적 자유주의자, 근대주의자, 인본주의자, 합리주의자 등이 귀결되는 결론이자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사상의 특징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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