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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쉐퍼의 삶과 사역의 두 가지 교훈

프란시스 쉐퍼의 삶과 사역의 두 가지 교훈
http://blog.naver.com/joyintheo/10069013526
 
들어가며
프란시스 쉐퍼는 20세기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주1)에 손꼽히는 영적 거장이다. 1912년에 태어나 1984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7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았으며,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선교사로 건너가서 살았다. 그는 수많은 비판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진리에 대한 ‘기독교적 합의(또는 전제)’가 존재했던 중세로부터 기독교적 합의가 철저히 붕괴되는 ‘근대(the modern age)’로 넘어가는 시점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전환점’(주2)에 태어났다. 또, 196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이 기독교적 전통에서 벗어나 세속화된 사회로 진입한 탈기독교 시대(Post-christianity)를 살았고, 신학적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또 신정통주의와 신복음주의가 탄생하던 격동의 20세기를 모두 몸소 겪었던 사람이다.
 
마치 16세기의 종교개혁이 발생하기 직전의 시기를 기억나게 할 만큼, 사회가 급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이 달라졌던 시점. 전 세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을 때(이 시기야 말로 세대 차이라는 말이 참된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특유의 감각으로 읽어내며 우리가 전장에서 싸워야할 지점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깨닫게 해 주었던 선지자적 지도자가 바로 프란시스 쉐퍼였다. 또한, 그는 멀찍이 앉아 지휘 본부에서 최전방의 병사들이 진군하기를 명령하는 현대의 군사 지도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직접 칼과 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어 맨 앞에서 군대를 진두지휘하며 전투의 본을 보이던 중세의 용사와 같았다. 사람들은 쉐퍼의 삶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자 했으며, 그에게 들은 말을 쉐퍼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아가야할 근거와 방향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쉐퍼를 통해 그리스도께 돌아왔고, 쉐퍼의 삶과 사역의 열매는 쉐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지 30여년이 가깝게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예언자적인 목소리가 되어 사람을 깨워내고 있다.
 
단 두 단락의 글로 쉐퍼의 삶과 사역이 어떤 깊이와 폭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나의 느낌과 이해를 요약해 보았다. 이와 같은 거인의 삶과 사역을 과연 어떻게 이 한 편의 짧은 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글을 쓰기까지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자 부담이었다. 고민 끝에 프란시스 쉐퍼를 이 글에 모두 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의 삶과 사역이 우리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두 가지 핵심만을 성찰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결론을 가지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주3)
 
1. 쟁점 하나 : ‘진리’에 헌신한 인생
프란시스 쉐퍼의 인생은 한 마디로 ‘진리’에 헌신된 인생이었다. 지난 주 그의 회심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쉐퍼의 영적 일생은 진리를 깨달음으로 시작해서 진리를 믿고 순종하며 전하는 것으로 마쳤다.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특히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진리로 믿고 있는가?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리로 믿는다’는 것의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자, 지금 당장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지 물어보라. 십중팔구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진리로 믿는다는 것이 ‘너의 구체적인 삶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물어보라. 다시 말해서, 성경을 진리로 믿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반대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타협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말이다.
 
현대인의 진리에 대한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근대)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A가 진리라면, A가 아닌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전통적 진리관이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A가 진리이면서, A가 아닌 것도 동시에 진리’일 수 있다고 믿는다.(주4) 따라서, 성경을 분명한 진리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성경과 어긋난 사상과 생활방식들을 아무런 갈등과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을 믿기 때문에 세상에서 ‘무엇을 반대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며 고민하지도 않고 있다. 단지, ‘교회’에서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고, 세상에서는 ‘착하게’(주5)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착하게’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는, ‘세상의 질서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순응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직장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튀거나 모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이나 교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남들이 취업하고 결혼을 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보다 더욱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즉, 더 좋은 일자리, 더 빠르고 성공적인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모습들이다. 결혼이 늦어지거나, 직장 생활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그래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실패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경을 진리로 믿는다는 고백이 사회의 일반적 흐름 속에서 다른 비기독교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프란시스 쉐퍼가 성경을 진리로 믿는다는 의미는 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성경의 진리와 다른 것에 반대하고 저항’하며 ‘성경의 진리가 말하고 있는 삶과 사고방식을 지키고’ 그것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첫째, 프란시스 쉐퍼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싸웠다. 신학적 자유주의는 1950년대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을 지배하던 신학적 사조였다. 대다수의 신학교들이 자유주의에 점령당했고, 자유주의를 수용하거나 최소한 자유주의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면 목회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보장된 통로를 포기해야할 수도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에 의해 쉐퍼가 다니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점령당하자,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적 관점을 지키려던 메이첸 교수가 정직을 당했고 결국 일단의 교수들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페이스(Faith) 신학교라는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프란시스 쉐퍼는 메이첸 및 일단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따라 페이스 신학교로 이동하여 첫 졸업생이 되었다. 또한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배했던 북장로교단을 떠나 성경장로교회라는 새로운 교단(복음주의 교단)을 세우는 등 거대한 자유주의적 신학 흐름에 맞서 복음주의 신학을 변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둘째, 프란시스 쉐퍼는 복음주의와 싸웠다. 이 말은 매우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1950년대 이후 신정통주의와 신복음주의의 등장으로 기존의 (구)자유주의의 주류 세력이 쇠퇴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유주의 세력이 물러나고 복음주의 흐름이 새로운 부흥을 맞게 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할지 모른다. 그러나 쉐퍼는 자유주의 흐름 속에 존재했던 암초가 복음주의 내부에 들어와 ‘복음주의의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정통주의(칼 바르트)적 신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신학 사조였다. 이것은 복음주의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복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복음주의적 ‘용어’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개혁주의자/복음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따라서 20세기 후반의 복음주의는 복음주의라는 껍데기를 지닌 자유주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복음주의 세력과의 전투를 벌여야 했다. 쉐퍼 스스로 복음주의 내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역시 제 살을 도려내는 어려운 작업일 수 밖에 없었다.
 
셋째, 프란시스 쉐퍼는 복음주의 영성과 싸웠다. 20세기 후반 복음주의의 중심 진리가 신정통주의로 인해 왜곡되자, 전통적인 복음주의 영성 또한 변질되게 된다. 특히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오순절주의 영성’, 근대 이후 세대주의와 신정통주의에 의해 발생한 ‘이원론적 영성(플라톤적 영성)’, 근본주의 운동에 의해 초래된 ‘반지성주의적 영성’, 동양 사상의 서구 세계 침투로 인해 생겨난 ‘동양적 영성’(신비주의) 등 복음주의의 진리관과 성경관, 교리적 기초가 무너지면서 변질된 수많은 종류의 영성에 대해 프란시스 쉐퍼는 싸워야 했다.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아는 것과 믿는 것, 살아가는 것의 괴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삶의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 성경을 진리로 믿는다는 의미는 쉐퍼에게 혼란스러운 수많은 생각과 삶의 방식들에 대해 분별하여 반대하고 저항하면서 ‘참된 영성’, ‘참된 진리’를 분명하게 지켜내는 것이었다. 최근에 데이비드 웰스가 우리에게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참되게’ 성경을 믿고 살아가려면 바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들에 대해 민감하게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이것만큼 현대인들에게 어렵고 불편한 일은 없다).
 
프란시스 쉐퍼에게 라브리 공동체(주6)는 이와 같은 정직한 고민을 하게 하는 곳이었으며, 정직한 고민에서 나온 정직한 질문에 대해 정직한 대답을 주고자 하는 곳이었다.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누구나 라브리에 올 수 있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이것을 편협한 복음주의자들은 ‘의심’이라고 일컬으며,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로 그들의 정직한 진리 추구를 틀어 막아버린다)이 무엇이든지 거기에 대해 충분한 열린 토론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2. 쟁점 둘 : 진리를 삶의 전 영역에서 실천하기
프란시스 쉐퍼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에 서서, ‘성경의 진리’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며 바로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실제적인 대답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따라서 우리가 추상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난 후 내가 신앙을 고백하기 이전과 신앙을 고백한 이후에 삶이 다르지 않다면 그 신앙 고백은 거짓된 것이었다. 여기서 삶이 다르다는 의미는, 교회에 나오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 나오고,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고, 전도하지 않던 사람이 전도하며, 성경 말씀을 읽지 않던 사람이 성경을 읽는 ‘종교적’ 영역에서의 변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매우 중요하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를 믿는다는 것은 쉐퍼에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세상 속에서의 삶’에서 분명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쉐퍼는 성경은 한 사람이 장애인이건 힘없고 쓸모없는(것 같이 보이는) 노인이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여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살인을 감행하는 ‘낙태’와 ‘안락사’, ‘영아살해’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시위와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와 그것을 선하게 관리할 책임에 대한 진리를 믿었기 때문에 현대 사회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대해 경고하고 반대하였다. 하나님이 국가의 주인이며 세상을 도덕적 질서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정치와 법이 성경과 다르면 경고하고 저항하였다.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써서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성경의 진리에 따라 저항하며 참된 진리를 알리는 데 힘썼다. 쉐퍼에게 진리란 삶의 특정한 영역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한국의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어떤가? 소수의 예외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성경을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진리와 반대가 되는 생각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회 문제를 결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무감각하며 무관심하다. 특히 교회는 성경의 교리를 ‘추상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에 멈추어 있으며, 분명하게 성경의 진리에 위배되는 세속적 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즉, ‘추상적으로 성경을 적용’하고 있는 데 그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주일에는 교회에서 성경을 진리로 고백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직장과 사회 속에서는 불신자의 논리(무신론)를 삶으로 고백하는 엄청난 우상 숭배(주7)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둘 사이의 괴리와 이중성(주8)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데이비드 웰스에 따르면, 이미 현대 복음주의 교회에는 그 추상적인 ‘교리’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며,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주9)
 
우리가 이 혼탁한 시대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자, 참된 복음주의자로 살아가려면 데이비드 웰스의 말처럼 참된 교리를 회복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의 말처럼, 참된 교리 위에서 참된 삶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크고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현대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교회로서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 참고문헌
성인경 엮음. 1996. 『프란시스 쉐퍼 읽기』. 예영커뮤니케이션
주도홍.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 (강의안)
Parkhurst, Louis Gifford. 1985. Francis Schaeffer. Kingsway Publications [국역: 성기문 옮김. 1995. 『프란시스 쉐퍼』. 두란노]
Francis A. Schaeffer. 1968. The God Who Is There. Inter-Varsity Press, England [국역: 김기찬 역. 1994. 『거기 계시는 하나님』. 생명의말씀사]
 

1) 20세기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로는 일반적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빌리 그래함, 그리고 프란시스 쉐퍼를 일반적으로 일컫는다.
2) 이 시기를 쉐퍼는 ‘절망선’이라 부른다. (이후 연재에서 소개될 쉐퍼의 사상편을 참고)
3)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읽고자 하는 분들은 지난 주 한재술 형제님이 자신의 탁월한 글솜씨로 훌륭하게 소개해 주었던 여러 가지 프란시스 쉐퍼의 저작들과 전기, 연구서들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4)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은 앞으로 이어질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 분석에서 소개하겠다.
5) 착하게 = 모범적으로, 성실하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누가 보아도 부러워하게, 성공적으로,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게
6) “ 라브리(L'Abri Fellowship)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 및 학숙(學宿)입니다. "라브리"는 불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며, 라브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의 대답을 찾기 위해 누구나 잠시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영적 피난처입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 부부 (Francis & Edith Schaeffer)가 1955년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기슭 위에모(Huemoz)란 동네에서 라브리를 시작한 이래로 현재는 전 세계에 여덟 군데의 학숙과 두 군데의 자료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한국 라브리 홈페이지에서 인용, www.labri.kr)
7)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종교혼합주의
8) 이것이야말로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위선이다.
9) 이와 같은 논의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나, 여기서는 짧게 줄이고 차후 연재와 웹사이트 상에서의 여러 성도들과의 토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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