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의 회심 이야기
프란시스 쉐퍼의 회심 이야기
http://blog.naver.com/joyintheo/10069013486
회심이란 분명히 매우 개인적이며 경험적인 성격을 갖기에, 모든 회심 사건은 각각의 고유성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회심이란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이며 대체로 한 개인이 복음을 접하게 되는 ‘영적 맥락’에 따라 일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들어 보면,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부모님 따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믿고 있다’, ‘부모님의 기도 때문에 믿게 되었다’(모태신앙형), ‘(특히 부활절․성탄절․전도집회 행사시)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친구따라강남가기형), ‘방언․신유․기적 등의 은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됐다’(기적체험형)(주1) 물론 이런 몇 가지의 유형만으로 모든 한국 교회 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된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 신자들의 경우 부모나 친구, 절친한 지인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거나, 부흥회나 은사집회 등에서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 교회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회심 이야기는 바로 ‘진리에 근거한 회심’일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회의가 들거나 궁금증이 생겨서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 경우는 가끔씩 보게 되지만, 불신자였던 사람이 진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교회를 찾거나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다가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를 믿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도 쉐퍼가 이야기하듯이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情)’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한국인들의 인간관계 중심의 생활방식, 복잡한 합리적 사고보다는 ‘체험과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적 사고방식과 종교성의 무속적 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란시스 어거스트 쉐퍼 4세(Francis August Schaeffer, 1912~1984)는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독일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인도 지성인도 아니었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프란시스 쉐퍼는 부모로부터 신앙도 지식도 배울 수 없는 처지에서 자라났다. 쉐퍼의 어릴 적 학교 성적은 모두 A를 받을 만큼 우수했지만, 기계나 전기, 토목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기 원하는 부모의 뜻에 따라 그는 적어도 회심을 경험했던 17세(주2)까지는 기술과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했다.
17세가 된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 철학 입문서』를 스스로 사서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쉐퍼는 삶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철학의 문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고, 교회에 나가 자유주의 목사가 설교하는 내용을 유심히 듣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는 철학이 유용했으나, 쉐퍼는 철학과 자유주의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스스로 정직하게 답을 찾아가려는 생각 속에서 자유주의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고 혼자 성경을 읽기로 결심을 했다. 적어도 다른 철학․종교․역사 서적을 읽는 만큼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6개월 동안(주3) 통독하는 가운데 “모든 문제들이 성경 속에서 통일된 사상체계로 연결되어 마치 실타래가 풀려지듯이 다 해결된다”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었다(성인경 엮음 1996, 13쪽에서 인용).(주4)
어떻게 쉐퍼는 성경 읽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L.G. 파커스트에 따르면, 쉐퍼는 “나에게 경종을 울렸던 것은 창세기였다. 내가 들어 보았던 어떤 종교의 가르침에서도, 철학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참된 해답을 창세기에서 찾았다.”라고 말했다(파커스트 1995, 33-34쪽에서 인용).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현대 철학의 난제 속에서 쉐퍼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모든 난제들을 해결해주는 가장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답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개혁주의를 따르는 프란시스 쉐퍼는 물론 자신이 믿게 된 과정에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고백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쉐퍼에게 열매를 맺은 방식은 기적의 체험이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바로 성경의 진리가 우리의 인생에 유일하고 참된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주5) 프란시스 쉐퍼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왜 예수를 믿었는가? 기독교가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그에게 의미가 있었고 논리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해답과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관해서 서로 대화하고 함께 나눌 수 있었던 합리적인 하나의 체계였다.”(파커스트 1995, 34쪽에서 인용)(주6)
이와 같은 회심 과정은 필자가 보기에 프란시스 쉐퍼의 평생의 삶과 사역을 어느 정도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히 기독교와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이 처한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며 객관적인(또는 쉐퍼의 용어로 말하면 명제적인) 진리라고 평생에 걸쳐 믿었다. 따라서 그의 평생의 사역은 이 진리를 변호하고 이 진리에 근거하여 살며 이 진리에 따라 믿고 살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전도와 선교)하는 일이었다.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회심은 대체로 ‘체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끌어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을 느끼도록 부흥회가 진행되거나 짧은 설교 또는 유머러스한 간증 설교에 즐겁고 재미난 찬양 집회 및 이벤트 중심의 전도 집회가 기획된다. 또는 교파를 초월한 은사주의적 흐름 속에서 방언과 신유, 예언 등의 기적적 체험을 통해 회심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유도한다. 길고 논리적인 설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어렵기 때문에 전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사실 설교가 길면 ‘진리에 무관심한’ 불신자들은 교회에 오기 싫어한다), 감정적 요소 보다 말씀이라는 지적 요소를 강조하는 교회는 요즘 세대에 외면당하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부흥(?)하려면,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에 따라 살도록 요구하기보다 감정을 고양시키고 즐거움을 주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무언가를 ‘생각’하기보다 ‘체험’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전도와 교회 성장에도 한국적 방식이 있는 것일까? 프란시스 쉐퍼가 추구한 신앙의 형태가 반드시 우리의 신앙의 모습과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각자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의 신앙이 ‘진실’하고 ‘열심’이 있기만 하다면 함부로 비판해선 안되는 것일까?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서도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프란시스 쉐퍼는 ‘객관적으로 명확한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기독교는 유일하고 참되게 ‘그 진리’를 말하고 있기에 기독교를 믿었다. 따라서 그에게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데 매우 핵심적인 문제였고, 그러한 구별을 위해서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일생을 바쳐야 했다. 단순히 마음 자세가 ‘진실’하고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면 모든 게 용납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프란시스 쉐퍼의 회심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 왜 하필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가? 그것도 왜 하필 개혁주의 신앙인가? 당신은 정말 인간이 처한 모든 비정상적 문제(타락과 심판)에 대한 유일하고 참된 (객관적) 해답이 기독교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왜 당신은 지금 여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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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이란 분명히 매우 개인적이며 경험적인 성격을 갖기에, 모든 회심 사건은 각각의 고유성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회심이란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이며 대체로 한 개인이 복음을 접하게 되는 ‘영적 맥락’에 따라 일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들어 보면,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부모님 따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믿고 있다’, ‘부모님의 기도 때문에 믿게 되었다’(모태신앙형), ‘(특히 부활절․성탄절․전도집회 행사시) 친구 따라 교회 갔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친구따라강남가기형), ‘방언․신유․기적 등의 은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됐다’(기적체험형)(주1) 물론 이런 몇 가지의 유형만으로 모든 한국 교회 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된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 신자들의 경우 부모나 친구, 절친한 지인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거나, 부흥회나 은사집회 등에서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 교회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회심 이야기는 바로 ‘진리에 근거한 회심’일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회의가 들거나 궁금증이 생겨서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 경우는 가끔씩 보게 되지만, 불신자였던 사람이 진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교회를 찾거나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다가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를 믿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도 쉐퍼가 이야기하듯이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정(情)’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한국인들의 인간관계 중심의 생활방식, 복잡한 합리적 사고보다는 ‘체험과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적 사고방식과 종교성의 무속적 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란시스 어거스트 쉐퍼 4세(Francis August Schaeffer, 1912~1984)는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독일계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인도 지성인도 아니었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프란시스 쉐퍼는 부모로부터 신앙도 지식도 배울 수 없는 처지에서 자라났다. 쉐퍼의 어릴 적 학교 성적은 모두 A를 받을 만큼 우수했지만, 기계나 전기, 토목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기 원하는 부모의 뜻에 따라 그는 적어도 회심을 경험했던 17세(주2)까지는 기술과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했다.
17세가 된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 철학 입문서』를 스스로 사서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쉐퍼는 삶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철학의 문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고, 교회에 나가 자유주의 목사가 설교하는 내용을 유심히 듣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는 철학이 유용했으나, 쉐퍼는 철학과 자유주의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스스로 정직하게 답을 찾아가려는 생각 속에서 자유주의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고 혼자 성경을 읽기로 결심을 했다. 적어도 다른 철학․종교․역사 서적을 읽는 만큼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6개월 동안(주3) 통독하는 가운데 “모든 문제들이 성경 속에서 통일된 사상체계로 연결되어 마치 실타래가 풀려지듯이 다 해결된다”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었다(성인경 엮음 1996, 13쪽에서 인용).(주4)
어떻게 쉐퍼는 성경 읽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답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L.G. 파커스트에 따르면, 쉐퍼는 “나에게 경종을 울렸던 것은 창세기였다. 내가 들어 보았던 어떤 종교의 가르침에서도, 철학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참된 해답을 창세기에서 찾았다.”라고 말했다(파커스트 1995, 33-34쪽에서 인용).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현대 철학의 난제 속에서 쉐퍼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모든 난제들을 해결해주는 가장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답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개혁주의를 따르는 프란시스 쉐퍼는 물론 자신이 믿게 된 과정에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고백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쉐퍼에게 열매를 맺은 방식은 기적의 체험이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바로 성경의 진리가 우리의 인생에 유일하고 참된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주5) 프란시스 쉐퍼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왜 예수를 믿었는가? 기독교가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그에게 의미가 있었고 논리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해답과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관해서 서로 대화하고 함께 나눌 수 있었던 합리적인 하나의 체계였다.”(파커스트 1995, 34쪽에서 인용)(주6)
이와 같은 회심 과정은 필자가 보기에 프란시스 쉐퍼의 평생의 삶과 사역을 어느 정도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히 기독교와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이 처한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며 객관적인(또는 쉐퍼의 용어로 말하면 명제적인) 진리라고 평생에 걸쳐 믿었다. 따라서 그의 평생의 사역은 이 진리를 변호하고 이 진리에 근거하여 살며 이 진리에 따라 믿고 살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전도와 선교)하는 일이었다.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회심은 대체로 ‘체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끌어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을 느끼도록 부흥회가 진행되거나 짧은 설교 또는 유머러스한 간증 설교에 즐겁고 재미난 찬양 집회 및 이벤트 중심의 전도 집회가 기획된다. 또는 교파를 초월한 은사주의적 흐름 속에서 방언과 신유, 예언 등의 기적적 체험을 통해 회심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유도한다. 길고 논리적인 설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어렵기 때문에 전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사실 설교가 길면 ‘진리에 무관심한’ 불신자들은 교회에 오기 싫어한다), 감정적 요소 보다 말씀이라는 지적 요소를 강조하는 교회는 요즘 세대에 외면당하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부흥(?)하려면,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에 따라 살도록 요구하기보다 감정을 고양시키고 즐거움을 주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무언가를 ‘생각’하기보다 ‘체험’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전도와 교회 성장에도 한국적 방식이 있는 것일까? 프란시스 쉐퍼가 추구한 신앙의 형태가 반드시 우리의 신앙의 모습과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각자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의 신앙이 ‘진실’하고 ‘열심’이 있기만 하다면 함부로 비판해선 안되는 것일까?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서도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프란시스 쉐퍼는 ‘객관적으로 명확한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기독교는 유일하고 참되게 ‘그 진리’를 말하고 있기에 기독교를 믿었다. 따라서 그에게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데 매우 핵심적인 문제였고, 그러한 구별을 위해서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일생을 바쳐야 했다. 단순히 마음 자세가 ‘진실’하고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면 모든 게 용납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프란시스 쉐퍼의 회심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가? 왜 하필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가? 그것도 왜 하필 개혁주의 신앙인가? 당신은 정말 인간이 처한 모든 비정상적 문제(타락과 심판)에 대한 유일하고 참된 (객관적) 해답이 기독교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왜 당신은 지금 여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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