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현실주의-라인홀드 니버(Rheinhol Niebuhr)를 중심으로
기독교 현실주의-라인홀드 니버(Rheinhol Niebuhr)를 중심으로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ozialethik/22
니버의 신학사상의 출발점-인간론
니버의 신학사상의 출발점은 인간론이다. 니버에게 있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피조물이요 동시에 죄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이중적 모순 또는 역설 속에 니버의 인간론은 존재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피조물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한계성이 표출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점이다. 이는 루터의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는 사상이 니버의 인간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숙명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게 된다. 창조의 타락 이후에 인간에게 희망이 보여진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인간에게 의해 파괴된 질서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다시 인간들에 의해서 회복된다. 하나님의 은총의 극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해명되고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회개가 촉구된다. 회개는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인간들의 고백과 더불어 성령을 통한 도움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니버에 따르면 인간이 세우려고 하는 유토피아적이고 완전한 세상을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과 죄인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감상적이고 낭만주의적 유토피아 사상을 극복하고 현실에 기반한 윤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도 이런 인간의 피조물이며 죄인이라는 점에서 세워질 수 있다. 인간은 그래서 사회 갱신의 주역이기도 하고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니버의 유명한 저서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의 흥미로운 논제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가 점차 비도덕적으로 되어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을 받게 됨으로써 교회의 과제는 개인의 도덕성에만 관심할 것이 아니라 집단적 인격체로서의 사회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니버는 사회를 소위 ‘집단적 인격체’로 보고 있어 사회를 인간론에서 귀속시킨다. 아무리 도덕적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집단으로 구성되면 어디에서나 본능들을 지도하고 통제할 합리성이 떨어지고, 자기초월의 능력도 악해지며, 타인들의 필요를 인지할 능력도 부족해진다. 따라서 집단에서는 그것을 구성하고 또 인격적 관계에 있는 개인들에서 보다 이기주의가 더 통제되기 힘들다”
권력의지
개인으로서 인간은 소위 선한 일과 선한 양심에 따라서 사회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집단으로 인간은 그렇지 않다. 니버의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적 피조물로서 자의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주 속에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의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의식, 즉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인간의 비인간성과 타락의 요소가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통해서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이는 종교 집단이라도 해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
니버에 따르면 교회의 기능은 자기 초월을 경험하도록 한다. 자기초월을 통해서 갱신된 인간은 스스로 그가 속한 사회의 변혁을 가능하게 한다. 니버에게 있어서 인간은 “사회 안에 있는 인간 man-in-society”이다. 그래서 현실사회는 니버에게 있어 중요하다. 현실주의는 사회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사물의 사실을 따르는 것이다. 니버는 자신의 현실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현실주의란 …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요소, 특히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의 요소를 고려해 넣는 성향을 의미한다.” 니버가 주장하는 기독교 현실주의는 사회 속에서 윤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의 가능성을 달성하려는 정치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적 성격-아가페 사랑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국 기독교의 흐름은 경건주의에 영향을 받은 부흥운동이 주를 이루었고 비록 부흥운동에 비해 그 세력은 미비했으나,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hcenbush)의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운동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사회 복음 운동은 19세기의 복잡한 산업사회의 문제들을 “사랑의 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니버는 이런 사회 복음 운동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모순된 이중성 때문에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산상수훈은 아무리 인간이 거듭날지라도 이런 사랑의 법이 인간의 삶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거듭난 인간은 이러한 사랑의 법이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심한다. 이것이 니버의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이다. 니버의 이중적 모순에 따르면 사랑의 법을 인간이 완전히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참회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버는 이를 “불가능한 가능성 impossible possibility”라고 부른다. 니버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의 윤리적 요구들은 인간 실존의 현상태에서는 성취될 없다. 그것들은 본질적 현실성의 초월적이고 신적 일치에서 온 것이며 그것들의 최종적 완성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현재적 카오스를 최종적 일치로 바꾸어 놓을 때나 가능하다. … 하나님 나라는 항상 불가능한 것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현재적이며 역사의 주어진 순간들에서 새로운 현실들로 인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모든 실현은 사건 이후에 이상적인 것의 근사치 Approximation로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하나님 나라는 따라서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 윤리적 성격-정의
이런 “불가능한 가능성”에서 기인한 “근사치”적 실현이 니버에 따르면 정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법, 아가페의 사랑의 가치는 너무나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가까운 것, 인간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말이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니버는 교회의 중요성을 확인시킨다. 어차피 이중적 모순 속에 있는 인간들은 그 정의마저 실현시킬 수 없지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기초월성의 환상을 통해서 정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인간의 집합체인 사회에서 완벽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환상이 광적인 환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이다. 니버의 말을 들어보자: “현대 사회의 복합성 때문에 도덕적 목적은 예리한 지성의 안내를 받아야 된다. 그러나 도덕적 목적 자체는 초월적인 것에 기인한 것인데, 자칫 하면 도덕적 목적을 안내하는데 요구되는 바로 그 지성에 의해 그것이 파괴될 수도 있다. … 인류의 집단적 삶이 완벽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은 아주 큰 중요성을 지닌다. … 왜냐하면 그것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우리 영혼 안에 고상한 광기를 발동시키지 않으면 정의의 근사치적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기만이 악한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연약한 영혼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환상은 가공할 만한 광란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 환상은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종교적 환상이 본연의 구실을 하기도 전에 이성이 그 환상의 작동을 막아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뿐이다.”
니버는 정의를 이루는 데 있어서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굳게 확신하는 종교적 이상주의적 환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숭고한 종교적 광기가 종교적 광란으로 발동하지 않도록 예리한 이성의 통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창조적 상대주의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니버의 윤리는 상대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윤리적 판단은 그래서 상대적인 현실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자기의 완벽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것을 추구할 수 없고 단지 현실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대답에서 현실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니버는 상황윤리의 가능성을 열어준 신학자라고 불릴 수 있다.
역사와 제도
니버는 윤리적 결단의 상황성을 강조하면서 인간 실존의 두 가지 주된 구성 요소들, 즉 역사와 제도들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니버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의 활동의 총체적 결과를 말한다. 제도들은 인간이 대처해야 할 세력들을 말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인간이 추구해가는 궁극 이전의 활동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은 혼돈이다. 또 제도들은 인간이 자기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들로 인해서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된다. 법을 예로 들면, 법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억압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이중적 모순의 논리와 유사하다.
종말론적 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니버는 기독교 인간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묻고 대답을 찾고 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또 하나의 모순적 논리-“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의 존재는 아니다”를 근거로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은 역사 저편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역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니버는 주장한다. 이런 종말론적 지평에서 현실을 개혁하고 변혁하는 준칙들과 대답들을 찾는 것이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이다. 이중적 사고의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그래서 날마다 이중적 모순의 현실 속에서 기독교 윤리적 결단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참고문헌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대한기독교서회 2003
고범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대화출판사 2007
고재식, 기독교윤리의 유형론적 연구, 대한기독교서회 2005
박도현, 고범서가 본 라이홀드 니버의 기독교사회윤리, in: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편, 기독교사회윤리 제16집, 선학사 2009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대한기독교서회 1998
이장형, 기독교의 정치참여 방법론과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현실주의, in: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편, 기독교사회윤리 제16집, 선학사 2009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ozialethik/22
니버의 신학사상의 출발점-인간론
니버의 신학사상의 출발점은 인간론이다. 니버에게 있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피조물이요 동시에 죄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이중적 모순 또는 역설 속에 니버의 인간론은 존재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피조물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한계성이 표출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점이다. 이는 루터의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는 사상이 니버의 인간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숙명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게 된다. 창조의 타락 이후에 인간에게 희망이 보여진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인간에게 의해 파괴된 질서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다시 인간들에 의해서 회복된다. 하나님의 은총의 극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해명되고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서 회개가 촉구된다. 회개는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인간들의 고백과 더불어 성령을 통한 도움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니버에 따르면 인간이 세우려고 하는 유토피아적이고 완전한 세상을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과 죄인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감상적이고 낭만주의적 유토피아 사상을 극복하고 현실에 기반한 윤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도 이런 인간의 피조물이며 죄인이라는 점에서 세워질 수 있다. 인간은 그래서 사회 갱신의 주역이기도 하고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니버의 유명한 저서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의 흥미로운 논제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가 점차 비도덕적으로 되어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을 받게 됨으로써 교회의 과제는 개인의 도덕성에만 관심할 것이 아니라 집단적 인격체로서의 사회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니버는 사회를 소위 ‘집단적 인격체’로 보고 있어 사회를 인간론에서 귀속시킨다. 아무리 도덕적 인간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집단으로 구성되면 어디에서나 본능들을 지도하고 통제할 합리성이 떨어지고, 자기초월의 능력도 악해지며, 타인들의 필요를 인지할 능력도 부족해진다. 따라서 집단에서는 그것을 구성하고 또 인격적 관계에 있는 개인들에서 보다 이기주의가 더 통제되기 힘들다”
권력의지
개인으로서 인간은 소위 선한 일과 선한 양심에 따라서 사회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집단으로 인간은 그렇지 않다. 니버의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적 피조물로서 자의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주 속에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의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의식, 즉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인간의 비인간성과 타락의 요소가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통해서 가장 분명히 나타난다. 이는 종교 집단이라도 해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
니버에 따르면 교회의 기능은 자기 초월을 경험하도록 한다. 자기초월을 통해서 갱신된 인간은 스스로 그가 속한 사회의 변혁을 가능하게 한다. 니버에게 있어서 인간은 “사회 안에 있는 인간 man-in-society”이다. 그래서 현실사회는 니버에게 있어 중요하다. 현실주의는 사회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사물의 사실을 따르는 것이다. 니버는 자신의 현실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현실주의란 …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요소, 특히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의 요소를 고려해 넣는 성향을 의미한다.” 니버가 주장하는 기독교 현실주의는 사회 속에서 윤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의 가능성을 달성하려는 정치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적 성격-아가페 사랑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국 기독교의 흐름은 경건주의에 영향을 받은 부흥운동이 주를 이루었고 비록 부흥운동에 비해 그 세력은 미비했으나,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hcenbush)의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운동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사회 복음 운동은 19세기의 복잡한 산업사회의 문제들을 “사랑의 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니버는 이런 사회 복음 운동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모순된 이중성 때문에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산상수훈은 아무리 인간이 거듭날지라도 이런 사랑의 법이 인간의 삶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거듭난 인간은 이러한 사랑의 법이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심한다. 이것이 니버의 기독교 윤리의 출발점이다. 니버의 이중적 모순에 따르면 사랑의 법을 인간이 완전히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참회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버는 이를 “불가능한 가능성 impossible possibility”라고 부른다. 니버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의 윤리적 요구들은 인간 실존의 현상태에서는 성취될 없다. 그것들은 본질적 현실성의 초월적이고 신적 일치에서 온 것이며 그것들의 최종적 완성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현재적 카오스를 최종적 일치로 바꾸어 놓을 때나 가능하다. … 하나님 나라는 항상 불가능한 것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현재적이며 역사의 주어진 순간들에서 새로운 현실들로 인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모든 실현은 사건 이후에 이상적인 것의 근사치 Approximation로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하나님 나라는 따라서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 윤리적 성격-정의
이런 “불가능한 가능성”에서 기인한 “근사치”적 실현이 니버에 따르면 정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법, 아가페의 사랑의 가치는 너무나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가까운 것, 인간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말이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니버는 교회의 중요성을 확인시킨다. 어차피 이중적 모순 속에 있는 인간들은 그 정의마저 실현시킬 수 없지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기초월성의 환상을 통해서 정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인간의 집합체인 사회에서 완벽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환상이 광적인 환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이다. 니버의 말을 들어보자: “현대 사회의 복합성 때문에 도덕적 목적은 예리한 지성의 안내를 받아야 된다. 그러나 도덕적 목적 자체는 초월적인 것에 기인한 것인데, 자칫 하면 도덕적 목적을 안내하는데 요구되는 바로 그 지성에 의해 그것이 파괴될 수도 있다. … 인류의 집단적 삶이 완벽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은 아주 큰 중요성을 지닌다. … 왜냐하면 그것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소망이 우리 영혼 안에 고상한 광기를 발동시키지 않으면 정의의 근사치적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기만이 악한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연약한 영혼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환상은 가공할 만한 광란으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 환상은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종교적 환상이 본연의 구실을 하기도 전에 이성이 그 환상의 작동을 막아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뿐이다.”
니버는 정의를 이루는 데 있어서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굳게 확신하는 종교적 이상주의적 환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숭고한 종교적 광기가 종교적 광란으로 발동하지 않도록 예리한 이성의 통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창조적 상대주의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니버의 윤리는 상대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윤리적 판단은 그래서 상대적인 현실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자기의 완벽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것을 추구할 수 없고 단지 현실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대답에서 현실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니버는 상황윤리의 가능성을 열어준 신학자라고 불릴 수 있다.
역사와 제도
니버는 윤리적 결단의 상황성을 강조하면서 인간 실존의 두 가지 주된 구성 요소들, 즉 역사와 제도들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니버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의 활동의 총체적 결과를 말한다. 제도들은 인간이 대처해야 할 세력들을 말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인간이 추구해가는 궁극 이전의 활동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은 혼돈이다. 또 제도들은 인간이 자기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들로 인해서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된다. 법을 예로 들면, 법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억압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이중적 모순의 논리와 유사하다.
종말론적 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니버는 기독교 인간들은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묻고 대답을 찾고 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또 하나의 모순적 논리-“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의 존재는 아니다”를 근거로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은 역사 저편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역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니버는 주장한다. 이런 종말론적 지평에서 현실을 개혁하고 변혁하는 준칙들과 대답들을 찾는 것이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이다. 이중적 사고의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그래서 날마다 이중적 모순의 현실 속에서 기독교 윤리적 결단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참고문헌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대한기독교서회 2003
고범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대화출판사 2007
고재식, 기독교윤리의 유형론적 연구, 대한기독교서회 2005
박도현, 고범서가 본 라이홀드 니버의 기독교사회윤리, in: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편, 기독교사회윤리 제16집, 선학사 2009
손규태, 개신교 윤리사상사, 대한기독교서회 1998
이장형, 기독교의 정치참여 방법론과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현실주의, in: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편, 기독교사회윤리 제16집, 선학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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