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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쉐퍼(C.S. LEWIS & F.A. SCHAEFFER)

루이스와 쉐퍼(C.S. LEWIS & F.A. SCHAEFFER)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121 
성인경 총무(L'Abri Fellowship)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요즈음, 금세기가 낳은 대중적인 전도자이며 사상가이며 변증가였던 루이스와 쉐퍼의 사상을 살펴보고 그들이 깨달은 진리와 지혜의 옷장 문을 나란히 열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 글의 제목이 풍기듯, 그 두 사람의 옷의 취향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즐겨 입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와 쉐퍼의 닮은 점
내가 알기로 루이스와 쉐퍼는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루이스가 옥스퍼드대학생들의 주선으로 토론회에 쉐퍼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쉐퍼의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쉐퍼는 루이스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라브리의 학생들에게 그의 책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루이스와 쉐퍼는 다른 점보다는 닮은 점이 훨씬 많겠지만 각각 세 가지씩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루이스와 쉐퍼는 기독교가 주관적 체험에 근거한다기보다 객관적인 사실과 진리에 근거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루이스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나무를 기어 오르내리고 놀고 있을 때에 책으로 사방이 꽉찬 공부방에 틀어박혀 동화책을 읽었고 그 후에는 헬라 고전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스승때문에 무신론에 노출되었지만 기독교가 절대적인 진리이며 자신이 찾던 기쁨(Joy)은 하나님밖에 줄 수 없다는 확신을 얻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쉐퍼도 무신론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불가지론에 사로잡히기고 했으나 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성경이 헬라사상보다 타당한 진리라 생각하고 철학 책을 덮고 스스로 기독교인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영국 등에서 수많은 복음주의 권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사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장 영향을 많은 사람들이 루이스와 쉐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특히 젊은 기독교 철학자들 중에 상당수가 루이스나 쉐퍼 혹은 그 두 사람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 서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철학자들의 에세이를 엮은 [God and the Philosophers](Edited by Thomas Morris)의 집필자 절반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나 혹은 두 사람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둘째, 루이스와 쉐퍼는 전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루이스와 쉐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발견한 인간의 최대 문제는 죄, 즉 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에 구원의 진리를 교회 안에만 가두지 않고 비기독교들에게까지 읽히고 깨닫게 해 주려고 부단히 애섰다는 것입니다. 특히 쉐퍼는 자기 집에 라브리선교회(L'Abri Fellowship)를 설립하고 인생의 정직한 질문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개방하고 그들과 전제에 의한 정직한 토론을 주도했습니다.
 
루이스도 학교 강단이나 그의 책과 편지 그리고 옥스포드대학교에서 시작한 소크라틱 클럽(Socratic Club)도 마음껏 공개 토론을 펼 수 있는 열린 대화의 장이었습니다. 특히 소크라틱 클럽은 바울사도가 섰던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언덕이었던 것입니다. 루이스는 그 모임의 책임자였고 언제나 토론과 강의를 이끌었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신론과 불가지론에 빠졌던 수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루이스의 사상에 설득되었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기독신앙을 갖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셋째, 쉐퍼와 루이스는 비기독교적인 사상과 싸웠습니다
. 그들은 절대적이고 성경적인 세계관만이 그들이 직면했던 인본주의와 범신론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신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에서 과시했습니다. 쉐퍼는 “절망의 경계선” 이후에 통일적 지식이 상실된 시대, 기독교마저도 ‘신앙은 단지 체험’이라는 자유주의에 함몰되어 가고 있었던 “이성에서 도피”하는 시대에,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기독교 지성이 회복되고 절대적이고 성경적인 “참 진리”로 돌아갈 것을 외쳤습니다
 
루이스도 쉐퍼 못지 않게 하나님의 존재, 합리성과 도덕성, 악의 문제 등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고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두뇌”가 포함된 전인격이 변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두뇌”는 신비성과 합리성을 포함하는 성경적인 인식론에 근거한 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련의 이런 작업을 변증학이라고 하는데 쉐퍼는 전제주의적 변증학으로, 루이스는 합리주의적인 변증학으로 기운듯하지만 둘 다 한 가지 변증학적인 방법에 매이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 각자에게 알맞는 문화적인 변증학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루이스와 쉐퍼의 다른 점
내가 처음 읽은 루이스의 책은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라는 동화책이었습니다. 그 후로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가 깨달은 진리와 지혜의 옷장을 여는 감흥에 젖곤 했습니다. 특히 쉐퍼와 닮은 점뿐만 아니라 다른 점을 발견할 때가 더욱 그랬습니다.

첫째, 쉐퍼와 루이스는 인생의 여정이 같지 않았습니다.
쉐퍼가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 루이스는 벌써 열 세살이었고 아일랜드의 한 중학교 기숙사에서 쓸쓸한 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쉐퍼는 가난한 집안에서 기술자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으나 루이스는 현명한 어머니의 기질을 닮아 늘 공부하는 분위기에 자랐습니다. 쉐퍼는 일찍 결혼을 하고 네 자녀를 낳아 평생을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루이스는 독신자였으며 57세에 미국인 이혼녀 조이 그레샴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그 행복도 잠깐뿐이었습니다.
 
쉐퍼는 평생을 목사와 선교사 그리고 그가 설립한 국제적인 공동체이며 연구센터인 라브리선교회에서 간사로 보냈지만 루이스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쉐퍼는 기독교인이 된지 20년, 목사가 된 지도 13년, 그리고 선교사로 일한 지도 벌써 3년이 된 마흔 한 살에 생애 최대의 영적 위기를 겪었으나 루이스는 서른 세 살에 회심한 후에는 지성의 전당으로 소문난 캠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한 평생을 보내면서도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둘째, 루이스와 쉐퍼는 복음의 전달 방법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들은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의 다리, 즉 복음의 접촉점과 전달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 종류는 달랐습니다. 루이스는 풍부한 상상력과 수려한 문장력으로 아름다운 현수교를 놓았는가 하면, 쉐퍼는 다양한 지식과 튼튼한 신학으로 사장교를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진수를 담은 루이스의 [단순한 기독교]는 영국공영방송인 BBC를 통해 전달된 깔끔한 전도 메시지이며, [나르니아 연대기]는 문학적 은유와 상상으로 전달된 동화 중의 동화로서 누가 읽어도 재미있으면서도 기독교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명작입니다.
 
쉐퍼의 [이성에서의 도피]도 사상사를 분석한 책인데 서양의 미술, 철학, 신학이 어떻게 성경적 사고에서 멀어져 왔는가를 볼 수 있으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서양사를 철학, 과학, 종교라는 통합적 시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그들은 변증학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린이들과 철학자들에게까지도 어떻게 하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까 고심했던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 특별히 사용하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루이스와 쉐퍼는 신학적으로도 미묘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관이나 성경관에 기본적인 차이는 없지만, 쉐퍼가 개혁주의와 칼빈주의에 철저했다면 루이스는 거기에 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쉐퍼는 예수님의 죽음을 법적인 대속의 개념으로 설명했다면 루이스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쉐퍼는 자연계시는 심판하는데는 충분하지만 구원 얻는데는 특별계시가 필요하다고 믿었으나, 루이스는 모든 계시에는 연속성이 있으며 신화까지도 우주적인 계시를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쉐퍼와 루이스의 성경관에 미묘한 차이를 낳습니다. 둘 다 성경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쉐퍼는 “성경은 무오하다”는 말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경은 가치, 의미체계, 종교적 사실들뿐만 아니라 역사와 우주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오류가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루이스는 성경의 무오설과 영감설을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고 성경의 문장 하나의 정확성보다는 전체적인 신뢰성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하물며 구약의 창조 기사나 여러 이적 기사들을 신화적으로 해석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레로 보았습니다.
 
나는 루이스와 쉐퍼의 책은 루터와 칼빈의 책처럼 같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같은 문제를 씨름하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살아온 여정이 다르고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고 견해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한국교회가 그들이 깨달은 진리와 지혜의 옷장을 더 활짝 열 날을 기다립니다.
(이 글은 [빛과소금] 199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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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나는 루이스와 쉐퍼의 책은 루터와 칼빈의 책처럼 같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에 대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루이스의 책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붉은 색으로 표시를 했듯이,
신학의 차이, 성경관이 차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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