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6
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6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104
Francis And Edith
SCHAEFFER
Defenders of the Faith
Sam Wellman
- Barbour Books -
six
프랜이 이디스에게 보낸 편지는 사랑이 담겨 있지만 덜 시적이었다. 그 중에 하나를 읽어보자.
내 사랑 :
사랑의 안부 전하오. 당신을 사랑하오. 지난 며칠동안 당신과 너무 지내고 싶었소. 우리는 화요일에 아무것도 못한 이래로 계속 이런 휴가를 보내고 있소. 수요일에는 쉬려고 했는데 백비 박사님이 돌아가셔서 이틀을 더 머물러야 했다오. 지난 해에 그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게 너무 감사하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소. 자신의 삶을 더 사랑했다면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텐데…
지난 시험은 잘 보았소? 잘 했을 것이라 믿소. 부모님도 잘 계시는지. 난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소. 그리고 좋은 일이 있었소. 내 평균이 91.6이었다오. 2학년 중에서 최고의 성적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그리스어는 86점이라니 믿을 수가 없소. 이디스. 이 영광을 당신에게 전하오. 당신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고 싶소. 모두 당신 덕이오.
우리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몇장 보냈다던데. 당신이 좋아한다니 기쁘오.
우리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기를 바라오. 당신 때문에 더 나은 아이가 될 것이오.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케익, 케익, 누가 그 케익을 만들었소? 당신이 공들여 만든 케익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오.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소. 내게 너무 과분한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당신은 내 사랑이고 내겐 당신이 필요하오. 빨리 이 편지를 붙여야 겠소. 행복한 주말 보내길!
프랜
그리고 프랜이 보낸 다른 편지도 같은 날에 도착했다.
사랑하는 이디스
이렇게 편지로 이야기 하는 게.. 하루에 두개나 쓰고 있소. 속달로 보낸 편지는 받았소? 어쨌든 한군데에는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쓰여 있을 것이오. 시험에 최선을 다했기를 바라오. 나는 성공이라고 할만한 열매를 맞보았다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좋은 성적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오. 그런데 슬픈 일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우울함이 찾아 오는 것을 느낀다오. 당신이 배우고 있는 가정 경제 중에.. 이런 병을 치료할 방법이 혹시 없소? 케익이면 좋겠는데.. 당장 내일 도착한다면 좋을텐데 말이오. 케익으로 전해지는 당신의 키스가 진짜 키스라면.. 오 이런.. 당신을 사랑하오.
급하게 편지 보낸 것에 대해 이해해 주길 바라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지는 못한 것 같소.
문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이야기 했었소? 그리고 학생회 서기도 되었다오. 내가 실수로 두 번 말했다면 용서해 주길 바라오. 그래도 내 아내한테 비밀이 있어서는 안되는게 아니오. 좋은 밤 되길 바라오.
키스와 함께 프랜
이디스는 플레인필드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프랜
당신에게 키스를 보내고 싶은 일이 참 많네요. 첫째는 당신이 특별하기 때문이고, 플레인필드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당신을 생각했어요. 내 옆에 있기를 바라면서…
들판이 흰색으로 덮였어요. 눈송이들이 가지마다 피어 있구요. 엘렌의 집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쇼핑하러도 가고, 통나무로 된 커피숍에도 가구요. 점심 먹은 후에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엘렌네 집은 참 화려해요. 문을 열자마자 우리가 본 것은 바로 당신의 편지였어요. 제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날아갈 것 같았는지 아세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편지를 읽고 나서 잠을 청했어요. 연두색 빛이 드리운 너무나 아름다운 침실이에요. 그 편지는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어요. 회복되었다니 고마워요. 전 여기서 주말을 잘 보내고 있어요.
둘째는, 당신의 성적이요. 정말 눈부시더군요. 내 남편, 당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특히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표현은 잊지 못할 거에요. 사랑해요.
이디스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답장을 붙이지 않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편지는 플레인필드에 있을 때 받았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제 방에 들어와 편지를 읽었어요. 새 편지두요. 또 축하해요! 전보를 붙이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대신 키스를 보내요. 부회장, 서기.. 아주 좋네요. 그렇지만 그런 일들로 너무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기를 바래요. 당신이 회장이 되어야 하는 다른 단체가 있어요. 그리고 그 곳은 당신이 낡아빠진 사람이 아니길 바라고 있어요. 펜을 플레인 필드에 놓고 왔어요. 바보 같지요? 그래서 엄마 펜으로 쓰고 있어요. 주일 저녁에 저녁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요. 순전히 밤기차를 타보고 싶어서 였어요. 어둠을 가르며 경적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아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밤 기차를 타고 싶었던 건 정말이에요. 사회학과 교육 역사 과목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이번 봄에는 도서관에서 책 읽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차가운 겨울이라도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전쟁, 전쟁, 전쟁…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안 좋은 움직임에 대해서 들었어요. 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이 연합하고 있어요. 미군도 해군과 육군의 병력을 강화하고 있어요. 이런 소식들은 간담을 서늘하게 해요.
사랑해요 – 당신을 너무나 존경하는 이디스
1934년에 프랜이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이디스:
어제는 편지를 쓰지 못했소. 이 편지가 금요일에 도착하면 좋으련만…
이디스, 나와 결혼했을 때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몇 가지 있소. 내가 무모하게 굴거나, 세상적인 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내가 원하더라도 당신이 힘을 다해 막아주길 바라오. 그것이 나의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오: “그 곳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크리스천에게는 맞지 않아요. 그곳에 가지 말아요. 결국 그 길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진로에 방해가 될 거에요”
… 당신이 주일에 쓴 편지는 잘 받아보았소.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오. 당신의 그림들과 꽃 향기가 당신의 넘쳐 나는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오. 이디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오. 어떻게 당신의 사랑에 다다를지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기뻐하는 것은… 당신이 견고하지 못했다고 말했잖소. 나의 마지막 편지는 내가 얼마나 견고하게 서있는지 보여준다오.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 견고하지 못하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더 힘이 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오.
내 기분이 어떻든지, 매일매일 받아보는 편지들은 내 삶의 활력이고 기쁨이오. 많이 많이 보내주시오. 당신의 편지가 필요하오. 무얼하며 지내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주시오. 당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 지 모르겠소.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오. 괜찮소? 나의 이런 생각이? 그러길 바라오. 당신과 함께 남은 여생을 함께 하고 싶소. 이만 줄여야 겠소. 사랑하오.
프랜즈
중국 내륙 선교 대변인 하워드 테일러의 소식을 들을 후, 프랜은 이디스에게 강력하게 편지를 썼다. 프랜은 이디스에게 그녀도 같은 심정인지 물었다. 함께 한지 2년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답장을 썼다.
프랜즈.
우선은 내가 얼마나 기쁜지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당신이 나와 함께이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살려고 하고, 또 그를 가장 우선시 하고, 그에게 가장 큰 사랑과 당신의 거룩함을 드리는 것이 내가 이 우주에 혼자 남겨지더라도 당신을 위해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죠. 나의 필요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당신이 가진 그 지위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어요. 그리고 프랜즈,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전에도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에는 당신을 제단에 올려놓는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당신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둘이 함께 하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지금은,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고 우리의 항복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다는 걸 알아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거에요. – 혼자라도 말이에요. 내 믿음이 작을 때에도 그분을 뜻을 따라 살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난 포기하기를 싫어했었어요. 그렇지만 그 분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기도했기 때문에 세상 끝이라도 가겠어요. 그리고 그분께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었죠. 내가 사랑하고 나와 같은 인생의 목표를 가진 사람의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어요.
아침에 당신의 편지를 받았을 때, 울고 말았어요. 왜냐구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사랑을 주셨기에 감사하면서도 이 상황에 당황했지만, 당신의 결정에 기뻤어요. 오늘 아침엔 수업이 없어서, 이 말들을 내 마음과 영혼에 새기기 전까지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성경을 읽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당신의 편지를 다시 읽었죠. 그리고 더 기도했어요. 무릎을 꿇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그리고 주님께 “당신의 뜻이라면,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프랜, 이해해줘요. 그분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놓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갈라놓으실 것이라면, 우리는 좀더 신실하신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해요. 또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라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렇지만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더 많이 기도해야 겠어요. 영혼과 권면과,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홀로 부르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내 감정과 이성은 열려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 있도록 하고 계신다고 느껴져요. 하나니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그의 선하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분께서 그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우리 둘을 함께 사용하실 것이라고 느껴져요.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지만 혹시 당신이 혼자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의 사랑을 그 분의 손에 맡겨야겠죠. 하나님은 두가지 다른 길로 인도하시지는 않겠지요. 만약 주께서 우리를 같이 부르셨고, 그것이 결혼의 의미라면,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니 함께 일할 수 있어요.
사랑해요
이디스
1934년 말에, 그녀는 프랜에게 존과 베티 스탬에 대해 썼다. 그들은 이디스의 부모님 보다는 훨씬 어리지만, 비슷한 배경을 가진 선교사였다. 그들도 중국 선교를 위해 따로따로 중국에 갔다가 그 곳에서 만나서 결혼했다.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스탬은 어린 딸 헬렌을 가진 30이 채 안된 사람이었다. 중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스탬을 과격하게 대하고 있었다. 중국 목사는 어떻게든 그 아이를 구하려고 했다. 그 소식은 끔찍한 것이었다. 비극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에서 먼 지역에도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통합하려는 모든 장군들의 뜻에 복종한 지도자, 치앙 카이섹은 공산주의자들을 진압하려고 했었다. 공산주의자들을 구하는데 방해가 있었다. 일본이 매우 공격적으로 만주로 진군하고 있었고, 중국의 북쪽에서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우회는 공산주의자들을 보호했고, 그들의 숫자가 늘어갔다.
프랜은 그 비극에 격분했다. 다음 편지에서 그는 공산당을 비난했다. 그는 여전히 선교에 대해 썼지만 적어도 이제 그는 이디스가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여겼다. “당신과 나와 우리의 아이들도 스탬이 직면했던 그런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르오…” 라고 그의 편지에 썼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나와 함께 하겠소?” 그러나 이디스는 그런 상황에서 더 현실적이었다. 프랜은 아직 신학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곧 졸업할 것이고, 그래서 이디스는 신학의 매력에 대해서 썼다. 언젠가 한번은 프랜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J.그래샴 머천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랜에게 최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호전적이고, 배운 것이 없어보였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디스는 그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잘 지내나요? 내가 백만장자라면 신학교를 짓고 싶어요. 좋은 교수들을 초빙하고, 졸업하고 딴생각 안하는 좋은 학생들을 모을 거에요. 필요하다면 싸우게 하고 또 침묵하게도 할거에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바른 진리에 서고, 긍적적이고, 신실하게 믿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편견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결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요.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일을 할 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편애하지 않을거에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랜즈.. 아마도 나는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만의 잣대로 사람들의 말을 시험하려고 그런건 아니에요. 갓 졸업한 사람들을 보고 신학교를 판단하지 말았으면 해요. 졸업생 모두가 형편없는 건 아닐 거에요. 그들은 젊고, 모더니즘에 물들어 있고, 그들 교회의 외적인 성과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죠. 주님께서 웨스트민스터에 대한 이런 불만족을 통해 신학교를 보게 하실 거에요. 나도 웨스트민스터를 늘 걱정하는 한 사람이 될거에요. 반복해서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말아요.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저도 그래요. 그분의 뜻이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의 결정에 대한 나의 정성어린 지원도 함께 할거에요. 당신을 정말 존경해요. 이 문제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할게요.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줘요. 프랜즈.. 내 안의 고집스러움이 사라지고, 당신이 그렇듯 더 신중해 지도록 말이에요. 고집 때문에 일을 망치지 않도록 기도해줘요. 내가 죄의 자리에 설까바 두려워요. 그러길 원치 않아요.
왜 나는 앞으로의 일을 자꾸 의심할까요? 오 프랜즈,,, 사랑해요.
이디스
이디스의 부모님께서 중국 내륙 선교 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녀는 국제적 이슈들에 대해 항상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 1930년도에 대공항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다른 나라들도 침체로 향해 가는 것 같았다. 전체주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확산되는 것처럼 세가 확장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디스의 아버지가 1935년에 은퇴하게 되었다. 그의 자아에 소용돌이가 일었을 뿐 아니라 월급도 급감했다. 그것은 이디스가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녀는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학생회 회장이었던 그녀가 돌아올 수 없다니.. 프랜은 6월에 졸업했다. 결혼하기 위해 이디스가 졸업하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 그들은 기다릴 수 없었다.
“아직 학사 학위를 받지 못한 나와 결혼해 줄건가요?”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러는 동안 프랜은 웨스트민스터에 장학생 지원서를 넣었다. 그는 대학에서 차석을 차지했고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서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기독학생연합의 임원이었다. 3학년때는 회계였고, 4학년때는 회장이었다. 문학가 모임에서 연속해서 서기, 부회장, 회장을 역임했다. 성직자 모임과 학생재정회의에서도 봉사했다. 그는 장학생이 되기를 기도했다.
무엇보다도 결혼할 때 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족함에 슬퍼했다. 그는 모든 것의 기준인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항상 기도했고 힘과 지혜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두가지 대 명령을 지키는 사람의 행복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자만과 열정과 싸웠다. 그는 바울의 위대한 사랑의 장, 고린도전서 13장을 암기했다. 울적할 때나 약해질 때마다 그 말씀을 생각했다. 그것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결단력과 진리를 전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는 담대하게 교회에서 진리를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모더니스트 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프랜이 웨스트민스터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은 장로교회의 극심한 혼란으로 꺾이는 듯 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104
Francis And Edith
SCHAEFFER
Defenders of the Faith
Sam Wellman
- Barbour Books -
six
프랜이 이디스에게 보낸 편지는 사랑이 담겨 있지만 덜 시적이었다. 그 중에 하나를 읽어보자.
내 사랑 :
사랑의 안부 전하오. 당신을 사랑하오. 지난 며칠동안 당신과 너무 지내고 싶었소. 우리는 화요일에 아무것도 못한 이래로 계속 이런 휴가를 보내고 있소. 수요일에는 쉬려고 했는데 백비 박사님이 돌아가셔서 이틀을 더 머물러야 했다오. 지난 해에 그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게 너무 감사하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소. 자신의 삶을 더 사랑했다면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텐데…
지난 시험은 잘 보았소? 잘 했을 것이라 믿소. 부모님도 잘 계시는지. 난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소. 그리고 좋은 일이 있었소. 내 평균이 91.6이었다오. 2학년 중에서 최고의 성적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그리스어는 86점이라니 믿을 수가 없소. 이디스. 이 영광을 당신에게 전하오. 당신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고 싶소. 모두 당신 덕이오.
우리 부모님께서 당신에게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몇장 보냈다던데. 당신이 좋아한다니 기쁘오.
우리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기를 바라오. 당신 때문에 더 나은 아이가 될 것이오.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케익, 케익, 누가 그 케익을 만들었소? 당신이 공들여 만든 케익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오.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소. 내게 너무 과분한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당신은 내 사랑이고 내겐 당신이 필요하오. 빨리 이 편지를 붙여야 겠소. 행복한 주말 보내길!
프랜
그리고 프랜이 보낸 다른 편지도 같은 날에 도착했다.
사랑하는 이디스
이렇게 편지로 이야기 하는 게.. 하루에 두개나 쓰고 있소. 속달로 보낸 편지는 받았소? 어쨌든 한군데에는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쓰여 있을 것이오. 시험에 최선을 다했기를 바라오. 나는 성공이라고 할만한 열매를 맞보았다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좋은 성적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오. 그런데 슬픈 일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우울함이 찾아 오는 것을 느낀다오. 당신이 배우고 있는 가정 경제 중에.. 이런 병을 치료할 방법이 혹시 없소? 케익이면 좋겠는데.. 당장 내일 도착한다면 좋을텐데 말이오. 케익으로 전해지는 당신의 키스가 진짜 키스라면.. 오 이런.. 당신을 사랑하오.
급하게 편지 보낸 것에 대해 이해해 주길 바라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지는 못한 것 같소.
문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이야기 했었소? 그리고 학생회 서기도 되었다오. 내가 실수로 두 번 말했다면 용서해 주길 바라오. 그래도 내 아내한테 비밀이 있어서는 안되는게 아니오. 좋은 밤 되길 바라오.
키스와 함께 프랜
이디스는 플레인필드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프랜
당신에게 키스를 보내고 싶은 일이 참 많네요. 첫째는 당신이 특별하기 때문이고, 플레인필드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당신을 생각했어요. 내 옆에 있기를 바라면서…
들판이 흰색으로 덮였어요. 눈송이들이 가지마다 피어 있구요. 엘렌의 집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쇼핑하러도 가고, 통나무로 된 커피숍에도 가구요. 점심 먹은 후에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엘렌네 집은 참 화려해요. 문을 열자마자 우리가 본 것은 바로 당신의 편지였어요. 제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날아갈 것 같았는지 아세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편지를 읽고 나서 잠을 청했어요. 연두색 빛이 드리운 너무나 아름다운 침실이에요. 그 편지는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어요. 회복되었다니 고마워요. 전 여기서 주말을 잘 보내고 있어요.
둘째는, 당신의 성적이요. 정말 눈부시더군요. 내 남편, 당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특히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표현은 잊지 못할 거에요. 사랑해요.
이디스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답장을 붙이지 않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편지는 플레인필드에 있을 때 받았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 당신의 편지를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제 방에 들어와 편지를 읽었어요. 새 편지두요. 또 축하해요! 전보를 붙이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대신 키스를 보내요. 부회장, 서기.. 아주 좋네요. 그렇지만 그런 일들로 너무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기를 바래요. 당신이 회장이 되어야 하는 다른 단체가 있어요. 그리고 그 곳은 당신이 낡아빠진 사람이 아니길 바라고 있어요. 펜을 플레인 필드에 놓고 왔어요. 바보 같지요? 그래서 엄마 펜으로 쓰고 있어요. 주일 저녁에 저녁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요. 순전히 밤기차를 타보고 싶어서 였어요. 어둠을 가르며 경적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아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밤 기차를 타고 싶었던 건 정말이에요. 사회학과 교육 역사 과목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이번 봄에는 도서관에서 책 읽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차가운 겨울이라도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전쟁, 전쟁, 전쟁…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안 좋은 움직임에 대해서 들었어요. 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이 연합하고 있어요. 미군도 해군과 육군의 병력을 강화하고 있어요. 이런 소식들은 간담을 서늘하게 해요.
사랑해요 – 당신을 너무나 존경하는 이디스
1934년에 프랜이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이디스:
어제는 편지를 쓰지 못했소. 이 편지가 금요일에 도착하면 좋으련만…
이디스, 나와 결혼했을 때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몇 가지 있소. 내가 무모하게 굴거나, 세상적인 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내가 원하더라도 당신이 힘을 다해 막아주길 바라오. 그것이 나의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오: “그 곳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크리스천에게는 맞지 않아요. 그곳에 가지 말아요. 결국 그 길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진로에 방해가 될 거에요”
… 당신이 주일에 쓴 편지는 잘 받아보았소.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오. 당신의 그림들과 꽃 향기가 당신의 넘쳐 나는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오. 이디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오. 어떻게 당신의 사랑에 다다를지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기뻐하는 것은… 당신이 견고하지 못했다고 말했잖소. 나의 마지막 편지는 내가 얼마나 견고하게 서있는지 보여준다오.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 견고하지 못하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더 힘이 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오.
내 기분이 어떻든지, 매일매일 받아보는 편지들은 내 삶의 활력이고 기쁨이오. 많이 많이 보내주시오. 당신의 편지가 필요하오. 무얼하며 지내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주시오. 당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 지 모르겠소.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오. 괜찮소? 나의 이런 생각이? 그러길 바라오. 당신과 함께 남은 여생을 함께 하고 싶소. 이만 줄여야 겠소. 사랑하오.
프랜즈
중국 내륙 선교 대변인 하워드 테일러의 소식을 들을 후, 프랜은 이디스에게 강력하게 편지를 썼다. 프랜은 이디스에게 그녀도 같은 심정인지 물었다. 함께 한지 2년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답장을 썼다.
프랜즈.
우선은 내가 얼마나 기쁜지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당신이 나와 함께이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살려고 하고, 또 그를 가장 우선시 하고, 그에게 가장 큰 사랑과 당신의 거룩함을 드리는 것이 내가 이 우주에 혼자 남겨지더라도 당신을 위해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죠. 나의 필요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당신이 가진 그 지위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어요. 그리고 프랜즈,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전에도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에는 당신을 제단에 올려놓는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당신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둘이 함께 하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지금은,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고 우리의 항복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다는 걸 알아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거에요. – 혼자라도 말이에요. 내 믿음이 작을 때에도 그분을 뜻을 따라 살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난 포기하기를 싫어했었어요. 그렇지만 그 분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기도했기 때문에 세상 끝이라도 가겠어요. 그리고 그분께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었죠. 내가 사랑하고 나와 같은 인생의 목표를 가진 사람의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어요.
아침에 당신의 편지를 받았을 때, 울고 말았어요. 왜냐구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사랑을 주셨기에 감사하면서도 이 상황에 당황했지만, 당신의 결정에 기뻤어요. 오늘 아침엔 수업이 없어서, 이 말들을 내 마음과 영혼에 새기기 전까지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성경을 읽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당신의 편지를 다시 읽었죠. 그리고 더 기도했어요. 무릎을 꿇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그리고 주님께 “당신의 뜻이라면,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지만 프랜, 이해해줘요. 그분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놓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갈라놓으실 것이라면, 우리는 좀더 신실하신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해요. 또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라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렇지만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더 많이 기도해야 겠어요. 영혼과 권면과,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홀로 부르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내 감정과 이성은 열려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 있도록 하고 계신다고 느껴져요. 하나니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그의 선하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분께서 그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우리 둘을 함께 사용하실 것이라고 느껴져요.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지만 혹시 당신이 혼자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의 사랑을 그 분의 손에 맡겨야겠죠. 하나님은 두가지 다른 길로 인도하시지는 않겠지요. 만약 주께서 우리를 같이 부르셨고, 그것이 결혼의 의미라면,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니 함께 일할 수 있어요.
사랑해요
이디스
1934년 말에, 그녀는 프랜에게 존과 베티 스탬에 대해 썼다. 그들은 이디스의 부모님 보다는 훨씬 어리지만, 비슷한 배경을 가진 선교사였다. 그들도 중국 선교를 위해 따로따로 중국에 갔다가 그 곳에서 만나서 결혼했다.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스탬은 어린 딸 헬렌을 가진 30이 채 안된 사람이었다. 중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스탬을 과격하게 대하고 있었다. 중국 목사는 어떻게든 그 아이를 구하려고 했다. 그 소식은 끔찍한 것이었다. 비극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에서 먼 지역에도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통합하려는 모든 장군들의 뜻에 복종한 지도자, 치앙 카이섹은 공산주의자들을 진압하려고 했었다. 공산주의자들을 구하는데 방해가 있었다. 일본이 매우 공격적으로 만주로 진군하고 있었고, 중국의 북쪽에서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우회는 공산주의자들을 보호했고, 그들의 숫자가 늘어갔다.
프랜은 그 비극에 격분했다. 다음 편지에서 그는 공산당을 비난했다. 그는 여전히 선교에 대해 썼지만 적어도 이제 그는 이디스가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여겼다. “당신과 나와 우리의 아이들도 스탬이 직면했던 그런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르오…” 라고 그의 편지에 썼다. “그런 일이 있더라도 나와 함께 하겠소?” 그러나 이디스는 그런 상황에서 더 현실적이었다. 프랜은 아직 신학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곧 졸업할 것이고, 그래서 이디스는 신학의 매력에 대해서 썼다. 언젠가 한번은 프랜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J.그래샴 머천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랜에게 최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호전적이고, 배운 것이 없어보였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디스는 그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잘 지내나요? 내가 백만장자라면 신학교를 짓고 싶어요. 좋은 교수들을 초빙하고, 졸업하고 딴생각 안하는 좋은 학생들을 모을 거에요. 필요하다면 싸우게 하고 또 침묵하게도 할거에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바른 진리에 서고, 긍적적이고, 신실하게 믿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편견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결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요.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일을 할 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편애하지 않을거에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발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랜즈.. 아마도 나는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만의 잣대로 사람들의 말을 시험하려고 그런건 아니에요. 갓 졸업한 사람들을 보고 신학교를 판단하지 말았으면 해요. 졸업생 모두가 형편없는 건 아닐 거에요. 그들은 젊고, 모더니즘에 물들어 있고, 그들 교회의 외적인 성과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죠. 주님께서 웨스트민스터에 대한 이런 불만족을 통해 신학교를 보게 하실 거에요. 나도 웨스트민스터를 늘 걱정하는 한 사람이 될거에요. 반복해서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말아요.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저도 그래요. 그분의 뜻이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의 결정에 대한 나의 정성어린 지원도 함께 할거에요. 당신을 정말 존경해요. 이 문제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할게요.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줘요. 프랜즈.. 내 안의 고집스러움이 사라지고, 당신이 그렇듯 더 신중해 지도록 말이에요. 고집 때문에 일을 망치지 않도록 기도해줘요. 내가 죄의 자리에 설까바 두려워요. 그러길 원치 않아요.
왜 나는 앞으로의 일을 자꾸 의심할까요? 오 프랜즈,,, 사랑해요.
이디스
이디스의 부모님께서 중국 내륙 선교 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녀는 국제적 이슈들에 대해 항상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 1930년도에 대공항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다른 나라들도 침체로 향해 가는 것 같았다. 전체주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확산되는 것처럼 세가 확장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디스의 아버지가 1935년에 은퇴하게 되었다. 그의 자아에 소용돌이가 일었을 뿐 아니라 월급도 급감했다. 그것은 이디스가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녀는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학생회 회장이었던 그녀가 돌아올 수 없다니.. 프랜은 6월에 졸업했다. 결혼하기 위해 이디스가 졸업하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 그들은 기다릴 수 없었다.
“아직 학사 학위를 받지 못한 나와 결혼해 줄건가요?”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러는 동안 프랜은 웨스트민스터에 장학생 지원서를 넣었다. 그는 대학에서 차석을 차지했고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서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기독학생연합의 임원이었다. 3학년때는 회계였고, 4학년때는 회장이었다. 문학가 모임에서 연속해서 서기, 부회장, 회장을 역임했다. 성직자 모임과 학생재정회의에서도 봉사했다. 그는 장학생이 되기를 기도했다.
무엇보다도 결혼할 때 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족함에 슬퍼했다. 그는 모든 것의 기준인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항상 기도했고 힘과 지혜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두가지 대 명령을 지키는 사람의 행복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자만과 열정과 싸웠다. 그는 바울의 위대한 사랑의 장, 고린도전서 13장을 암기했다. 울적할 때나 약해질 때마다 그 말씀을 생각했다. 그것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결단력과 진리를 전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는 담대하게 교회에서 진리를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모더니스트 들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프랜이 웨스트민스터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은 장로교회의 극심한 혼란으로 꺾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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